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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책 인지 일문학책인지? 우리 국문학의 수치?
"국문학책 인지 일문학책인지? 우리 국문학의 수치?" 내용보기
우리나라 원로 국문학자가 쓴 책이라 해서 잔뜩 기대를 하고 거금을 들여 구입 했건만 읽다가 중간에 집어 던졌다. 국문학을 했다는 분이 한국 말을 제대로 못한다. 문학이론은 해박 한 것 같은데 한글 쓰는 기본은 안되어 있다. 일본어는 잘 하는지 모르겠지만 번역해 놓은 꼬라지는 일본말로 소중한 한국어를 오염 시키고 있다. 저자는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 했다고 항변 할지 모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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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원로 국문학자가 쓴 책이라 해서 잔뜩 기대를 하고 거금을 들여 구입 했건만 읽다가 중간에 집어 던졌다.

국문학을 했다는 분이 한국 말을 제대로 못한다. 문학이론은 해박 한 것 같은데 한글 쓰는 기본은 안되어 있다. 일본어는 잘 하는지 모르겠지만 번역해 놓은 꼬라지는 일본말로 소중한 한국어를 오염 시키고 있다. 저자는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 했다고 항변 할지 모르겠으나 직역을 해도 너무~~ 직역을 해서 한국어가 아닌 문장이 곳곳에서 튀어 나온다. 지금까지 우리 국문학이 이런 학자들에 의해 주도 되었다면 문제도 한참 문제다.

책의 대부분을 일본책을 퍼 날라 채웠다. 인용한 글들 중 일부는, 일어과 저학년 학생들에게 숙제로 번역 시킨 걸 써먹었다는 오해를 사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 그런 교수분들이 아직도 종종 있다- . 도대체 한국말이라고 볼 수 없는 번역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실려 있다.

그나마 3장 까지는 중언 부언과 자기 자랑을 참아가면서 읽으면 읽을 만 하다. 루카치, 고바야시 히데오, 에토 준에 관한 이야기는 저자가 신경쓰고 집필 한 것 같다.

4장 모리 아리마사 부터는 슬슬 짜증이 난다. p 421 '비단을 반반하게 하는 판지를 새긴 방의 창에서는 ....' 모리 아리마사의 '바비론의 흐름의 기슭에서' 라는 책의 부분 부분을 퍼다가 번역한 부분에 이르면 짜증이 분노로 변한다. ’バビロン の流れのはとりにて ’  라는 책 제목 부터 번역을 '바비론 흐름 ...' 식으로 해놓고 맘이 편 했을까? 한국말을 가장 오염시키는 빌어먹을 가 연속으로 나오는 걸 그대로 ''. '' 로 무책임하게 직역하고 있다. 그런 제목을 붙인 원저자도 자기가 뭔 소리 하는지 모르고 붙인 것 같다.

p 439 '그러기는 하나, 또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의 인간적인 고민이나 약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뭔 소리 하는 건지 모를 문장이다. -내 독해력을 탓 해야 하나?

P 440 '부친이 없는 딸을 가진 여자' 그 여자가 아버지가 없다는 이야기 인지, 딸이 아버지를 잃었다는 건지, 사생아 라는 건지 알 도리가 없다. 그래도 돈이 아까워 읽는다.

5장 '국화와 칼'로 넘어 가면 p508 '~그 나름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함에  쉽게 흥분하거나 열광하는 자 훌륭한 문화인류학자라 하기 어렵다.'  뭔 소리 하고 있는가? 영어를 어설프게 일어로 번역한 걸 다시 한국말로 직역하느라 엄청 고생 했다.   

p520 부터 531 까지는 10쪽에 걸쳐 남의 책 번역으로 채웠다. 그것도 인류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바탕에 깔고 번역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엉성하다. 잘 모르는 분야면  그냥 책 소개나 하면 될 걸 주제를 몰라도 이 정도면 뻔뻔함의 극치?

p523에 이르면 남을 시켜 번역한 원고를 검토도 하지 않은 표가 확실하게 난다. '그녀의 사진 조차 일기,사진,시,평론 등의 자료를 수집한 것은 루스의 친구에 의한 것이며 미드가 평이하게 평전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중학생이 번역해도 이보다는 잘 할 것 같다. 남을 시켰으면 검토라도 했어야지.....

같은 페이지 '부는 의사 였는데 두살 때 죽었고 모와 여동생의 3인 가족 이었다. 모는 도서관에 근무하여 가족을 다스렸다.' 에 이르면 코미디의 절정이다. 

770쪽 중 550쪽을 읽은 내 인내력도 대단하다. 나머지 부분은 소제목 만 훓어 보았다. 문학사에 관한 의미있는 정보가 있을 지는 모르겠으나 중언 부언하는 건 여전해서 덮었다.

책을 사고 본전 생각 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오랫만에 그 돈으로 막걸리나 마실 걸 잘못했다는 후회를 했다. '원로 국문학자의 지적여정'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 인지 모른다.    

 

나이드신 학자의 노작에 대해 이렇듯 칼질하면서 서글픔이 밀려 왔다. 한국에서 내노라는 국문학자가 쓴 문장 속에 덕지덕지 끼어 있는 일본말식 한국어를 보면서 씻겨지기 어려운 일제의 잔재가 오늘 이시각에도 우리 말을 오염시키고 있음이 서글픈 것이다.

 

           

b********k 2013.01.24. 신고 공감 6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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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에게 일본이라는 프리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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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은 『내가 읽고 만난 일본』에서 ‘일본’에 대해, ‘일본’이라는 국가, ‘일본’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일본인,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명과 문화, 심지어 그 나라와 우리나라와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 그저 그가 일본을 매개로 ‘읽고 만난’ 것들에 대해 쓰고 있을 뿐. 당연히 그것은 그곳보다 근대화가 늦어 나라, 식민지를 겪은 나라의 국립대학
"김윤식에게 일본이라는 프리즘은?" 내용보기

김윤식은 『내가 읽고 만난 일본』에서 ‘일본’에 대해, ‘일본’이라는 국가, ‘일본’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일본인,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명과 문화, 심지어 그 나라와 우리나라와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 그저 그가 일본을 매개로 ‘읽고 만난’ 것들에 대해 쓰고 있을 뿐. 당연히 그것은 그곳보다 근대화가 늦어 나라, 식민지를 겪은 나라의 국립대학 조교수, 혹은 정교수의 신분으로 겪은 것이기에 그가 쓰지 않은 것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없으나, 그래도 그는 그것에 대해 단 한 차례도 방범을 찍고 있지 않다. 무려 800쪽에 가까운, 이 두터운 책에서.

 

김윤식은 일본을 읽으면서 만났다. 1970년, 1980년 두 차례다. 이유가 있었고,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길 잃음’에 대해 너무나도 자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길 잃음’ 속에서 그는 만났다. 바로 그 만남이 ‘길 잃음’의 이유라 적고 있지만, 정작은 그게 ‘길 잃음’의 이유일 수 없다. 그가 지금껏 짚고 걸어온 길이, 지금 바로 딛고 서 있는 자리가 바로 그 만남과 전혀 관련 없다 할 수 없기에. 또한 잃은 길에서도, 아니 바로 그 길 위에서 ‘길 찾기’는 다시 시작되기에.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만났을까?

그는 루카치를 만났다. 소설 이론가였으며, 실천가였으며, 사상 전향과는 전혀 무관한 루카치를 만났고, 대학 강단에서 수도 없이 ‘황금 시대’를, ‘별빛이 길을 환히 비춰주는 시대’를 설파했다고 했다. (나도 그 ‘루카치’를 기억한다.)

그는 고바야시 히데오를, 에토 준을 만났다. 그 만남은 글쓰기, 그러니까 학문으로서의 글쓰기와 비평으로서의 글쓰기를 고민하게 했다.

그는 또한 모리 아리마사를 만났다. 노틀담과 마주했다. 그것은 그저 회색 벽돌담일 뿐. 그와 함께 이옥(李玉)을 만났다. 사색의 힘을 생각했다.

그는 루스 베네딕트, 아니 『국화와 칼』을 만났다. 아니, 이 만남은 김윤식의 만남이라기보다는 루스 베네틱드, 『국화와 칼』과 대한민국의 만남을 주선했다 해야 옳다.

또한 그는 미첼의 『일제 하의 사상 통제』를 만났다. 일제 하 사상 전향의 의미를 되물었으며, 역시 문학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리고...

이광수를 만났다. 그 만남이야말로 김윤식의 목적이었다. 이광수와의 만남은 그의 시대와의 만남이기도 했다. 멍에 같은...

 

나는 이 만남들의 의미를 제대로 해독해낼 수 없다. 낯선 문체에, 낯선 단어들이 독서를 방해했기에 그렇다고 한다면 비겁한 변명이다. 그저 이해할 수 있는 지적 능력과 경험이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 놓는 편이 마음 편한 노릇이다.

그럼에도 궁금한 것이, 왜 그는 그렇게 일본을 읽고 만났음에도 자신의 목소리로 한 마디도 일본에 대해서는 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리고 우리가 김윤식이라고 하는 국문학, 문학 비평의 거두의 사상적 발자취를 일본을 매개로 더듬어야 하는 이유를 조금이라도 더 친절하게 남겨 주었다면 어땠을까?

욕심일까? 무지(無知)의 떼쓰기일까?

 



(2012. 11)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n*****m 2015.11.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