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하다. 학교 폭력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으나 뾰족한 해결책은 없는 상황에 대한 재앙에 가까운 경고다.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는 '놀이밥 삼촌' '놀이운동가'로 불리는 편해문이 대한민국 부모와 교사들에게 보내는 글이다. 편해문은 오늘날 학교 폭력의 원인을 '놀이 굶주림'에서 찾는다. 어릴때 충분히 놀지 못한 아이들의 억눌림이 폭력적이고 삐딱한 방식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해결책은 아이들을 놀게 하는 것이다. '놀이밥을 충분히 먹었는가, 안 먹었는가'를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그의 견해는 충분히 새겨들을만하다. 단순히 학교 폭력 해결책으로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물음에 하나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일단 '놀이'에 관한 일천한 생각을 틔워주는데 큰 도움을 준다. 놀이와 게임의 구분, 장난감과 놀이감의 구분, 진짜 놀이와 가짜 놀의 구분 등 이 책은 '놀이'에 관해 그동안 알고 있었던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놀이'에 대한 태도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의 문제, 즉 교육 철학과 관련된 것이다. 자, 이제 곧 있으면 태민이가 유치원에 간다. 엄마 품을 떠나 조직 생활이라는 것을 경험하며 친구를 사귀는 사회적 경험을 시작할 것이다. 어떻게 마음껏 놀면서 심신이 건강한 조화로운 인격체로 성장하게 할 것인가.
육아 관련 책을 볼 때마다 예전에 '고래가 그랬어' 김규항 소장의 강연이 기억난다. 김 소장이 그때 그랬다. 소위 진보적인 성향을 가졌다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유치원, 초등학교 때까지는 대안 교육에 열성을 보이다가도, 열의 아홉은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 올라갈수록 시류에 편승해 교육 서열화의 공범이 된다고. 교육적 의욕을 갖고 달려들어도 대부분이 변하고 또 변하기 쉽다는 말이다. 고민이 많아질수록 두려움도 함께 커가는 것을 느낀다. 나 또한 언젠가는 현실이라는 핑계거리에, 나의 욕심과 집착을 포장한 비겁한 변명들에 무릎 꿇게 되지는 않을까. 이것이 아이 키우기의 몫을 가정에서 공동체로, 학교에서 마을로 나누어 져야 할 이유이지 싶다.
'놀이'의 반대가 '일'이라고 한다. 일하거나 놀거나 둘 중의 하나가 아니냐는 말이다. 일의 반대가 놀이이고 놀이의 반대가 일이라는 것은 꽤 오래된 오해이고 이런 오해 때문에 우리는 놀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헤맨다.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다. 일이 바빠 놀지 못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중략)...먼저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왜 당신은 놀지 않거나 놀지 못하는가? 나아가 아이들을 놀게 내버려 둘 수 없는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고 '불안'이다. 우리가 놀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퍼뜨린 불안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놀이를 제대로 알려면 불안을 파고들어야 한다. (p18)
왕따가 놀이가 될 즈음 아이들 사이에서 물건 사는 '소비와 쇼핑'이 새로운 놀이로 등장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놀 틈'과 '놀 터'와 '놀 동무'라는, 놀이에 꼭 있어야 할 세 뿌리가 무참하게 뽑힌 아이들이 놀이 대신 하는 것이 '왕따 놀이'이고 '소비와 쇼핑 놀이'다. 아이들은 괴롭히고 빼앗고 때리고 사면서 그 쾌감의 나락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p34)
나는 컴퓨터 게임이 가진 폭력성에 그다지 큰 걱정의 무게를 두지 않는다. 폭력성을 이야기하다 보면 더욱 중요한 폐해를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진짜 위험은 그런데 있지 않다. 게임의 세계에 온전히 빠지면 아이들은 세상의 많은 것에 관심을 끊는다. 인간이 느끼는 이러저러한 사랑, 우애, 슬픔, 연민 등등의 감정에 그만 무심해진다는 말이다. 이것이 컴퓨터 게임이 기진 가장 큰 해악이다. (p73)
아이들 자리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온갖 체험과 캠프와 프로그램의 난장이다. 방과후 프로그램도 아이들을 너무 촘촘히 붙잡고 늘어진다. 학교 공부가 끝나면 아이들이 자유놀이 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할 것이 아닌가. 아이들끼리 하는 놀이가 방과 후 하는 여러 프로그램보다 아이들을 더 잘 보살핀다는 것을 대한민국의 교육은 무시한다. (p75)
배움은 놀고 난 다음이다. 지금은 아이들한테 무턱대고 책 읽으라고 할 때도 아니다. 책은 추상의 세계를 다룬다. 아이들은 손에 잡히는 것을 오래도록 충분히 만나야 한다. 이게 부족함이 없어야 추상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책을 너무 많이 읽어 탈이다. 특히 영유아와 초등학생들에게 지나친 책 읽기는 위험천만이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아이들이 적게는 천 권에서 많게는 만 권을 읽게 한다는 '독서영재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높은 관심과 행동은 우리 사회가 이제 천박을 지나 막장에 거의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p76)
부모라면 장난감과 놀이감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겠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장난감을 사주지 마시라. 집안에 널린 온갖 것들을 놀이감으로 삼도록 하시라. 가장 좋은 놀이감은 동무이고, 부모 형제이고 교사이고 자연이고 엄마가 음식 만들 때 쓴느 주방 조리기구임을 아시라. (p86)
어려서 일과 가까이 지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노는 것도 어려워하는 것 같다. 일할 줄 아는 아이라야 놀 줄도 안다. 놀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이 힘은 어른들을 돕거나 작은 일을 스스로 하면서 길러진다. 어른들이 아무리 공부만 하라고 해도 어려서 몸을 움직여 일을 거들던 아이들은 몸으로 이것을 기억하고 놀이로 세상을 이해하는 길을 찾는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쉽게 문명의 편리에 사로잡히고 만다. (p97)
아이들이 큰 힘 들이지 않고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 또한 놀이다. 왜냐하면 오래 집중해야 하는 일 만큼 좋은 놀이가 없기 때문이다. (중략) 세상에서 으뜸으로 훌륭한 놀이를 꼽으라면 나는 부모가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 옆에서 따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최고의 놀이다. (중략) 그러나 오늘을 사는 부모들은 몸을 움직이는 일과 멀어져 산다. 이런 좋은 놀이는 다 잊고 돈과 시간을 따로 들여 아이들을 놀이방으로 보내고 체험 프로그램에 보내고 비싼 장난감을 사줘야 아이들이 논다는 착각에 빠져 산다. 누가 무래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으뜸은 농사일이다. (p99)
놀면서 수도 없이 지고 이기고, 죽고 다시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지 않은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무언가에 좌절했을 때 아이들이 어떻게 그것을 넘어설 수 있을까? 놀이는 패배와 좌절을 넘어서는 수많은 상황과 만나게 해주고 그것들을 넘어설 수 있는 긍정의 힘을 길러준다. (중략) 놀면서 몸으로 익힌 용기와 긍정의 힘은 놀이 바깥 세계에서 살아 움직인다. 더불어 행복을 찾아가는 힘도 놀이에서 기른다. 왜냐하면, 놀이는 행복을 미래가 아닌 지금 만나게 하기 때문이다. 놀면서 자유와 해방을 만나 그 속에서 행복을 몸으로 느낀 아이라야 행복을 더듬어 갈 수 있다. 행복을 찾아가려면 행복할 때 느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이것이 놀이의 힘이다. (중략) 아이의 노는 모습을 눈여겨 보면 커서 무엇에 관심과 즐거움을 가지고 살 수 있을지 알 수 있다. 만약 아이가 놀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영 그것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p15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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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해문이란 사람을 처음 알게 되었다. 희망연대 특강을 통해서..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책을 먼저 보고 참여 했다. 이번 강연을 통해 책도 미리 구해 볼 수 있어 참 좋다..
편해문 선생은 한마디로 말하면 아이들에게 놀게 해 주자는 사람이다. 스스로 노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제발 놓아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당키나 한말인가..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사교육 시장에 내몰리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몇 명이나 편해문 선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나도 편해문 선생의 의견에 절대 공감한다. 어릴 적 야산에 묻힌 초등학교에서 자라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또는 운동장에서 땀내 풀풀 풍기며 놀던 기억이 추억으로 새롭다. 아이는 아이답게 놀면서 커야 한다. 그래서 더욱 요즘 아이들이 짠하고 안타깝다. 내 아이들만큼은 정말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마음껏 놀게 해 주고 싶다.
아이들 교육은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부모가 어떤 교육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아이의 자율성이 보장된다. 특히 교육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엄마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 엄마의 용기있는 사교육 근절이 정말 필요하다. 무엇보다 동료 아줌마 부대에 휘둘리지 않는 투철한 교육 의지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아이도 엄마의 믿음으로 마음껏 제맘대로 놀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강연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자유롭게 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많은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랄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길 바란다. 놀이의 방법도 여러가지 소개하고 있지만 일단 마음껏 놀 수 있는 터전이 아이들에게 주어졌으면 좋겠다. 일단 놀 수 있는 자유가 생겨야 놀이의 방법도 생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어쩌다 우리 아이들이 놀 시간을 걱정해야 할 만큼 사회가 각박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부모들이 아이들의 시간을 돌려주었으면 좋겠다. 강연을 들으며 공감했던 부모들부터라도 모두 아이들에게 놀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정말 우리 아이들의 하루하루는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 기회를 우리 어른들이 제발 빼앗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눈높이로 바라봐 줄 때 비로소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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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어린이 놀이운동'이라는 희한한 일을 하고 있다. '놀이'의 반대는 '일' 이라는 생각에 반기를 들며 놀이의 반대는 불안이다 라고 주장한다. 사실 내가 어린때 우리가 하는일은 주로 놀이였다. 그러나 요즘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초등학생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아이들은 놀 수 없어 고통받고 있고 놀아보지 않았기에 우리때보다 친구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더욱 모른다. 이 책은 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문화산업, 체험학습들을 비판하며 컴퓨터게임과 TV를 줄이고 함께하는 구슬치기, 공기놀이 등의 즐거움을 다시금 되살리게 해준다. 시와 노래도 우리에겐 놀이였다. 지금의 아이들에겐 학습인 이것들을 놀이처럼 즐길 수 있다면 배움의 기쁨을 다시 찾는 아이들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놀이를 가르치려는 교사에게 놀이는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해준다. 마음껏 놀았던 아이는 스스로 세상을 버리지 않는다는 챕터를 보며 공부에 지친 아이들에게 놀이를 선물하고싶게 만드는 그런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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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아이들은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개인학습지로, 방문수업으로... 수업이 끝나면 학원간다고 부리나케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운동장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지요.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노란색 표지에 놀이밥이란 글씨가 크게 쓰여 있는 것이 상큼하네요. 책을 읽으며 많이 반성했습니다. 아이들은 놀이가 기본이고 놀이에서 배우고 하는 건데 너무 공부만 강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아이들에게 놀 시간을 조금씩 늘려줘야겠습니다. 머리만이 아닌, 몸도 마음도 쑥쑥 자랄 수 있게 건강한 놀이밥을 줘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결심이 흐려질때마다 이 책을 다시 꺼내어 읽으며 지금의 마음을 다시 새겨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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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만해도 작가가 이야기했던 놀이들을 나도 했었다. 비석치기, 활만들기, 딱지치기 등 학교에서 오자마자 놀기 시작해서 저녁먹을때 까지 밖에서 놀았었다. 그리고 테니스 공으로 야구도 하고, 또 축구도 하면서 스포츠가 활성화되는 그 시점에 그런 놀이도 했었다.
그러나 현대를 살고 있는 아이들은 놀이가 그렇게 많지 않다. 아파트에 둘러쌓인 환경에서 그리고 학교 끝나고나면 학원릴레이를 통해 늦게서야 집에 들어오기 때문에 놀이를 할 시간 조차 없는 것이다. 놀이를 하지 못한 스트레스를 게임이나, 친구를 괴롭힘으로 풀고 있는 모습이 이 시대의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더 편해진 세상을 살면서 더욱더 각박해지는 세상을 살고 있다. 여유가 없다. 빈틈이 없다. 빡빡한 스케줄에 멍때릴 시간없이. 남보다 무언가를 더 많이 하지 않으면,,아니 남만큼 하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교육도 남만큼이라는 잣대뿐이다.
지금의 청소년들의 사회문제가 애들이 어렸을 때 많이 못놀아서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애들은 분명히 예전보다 억압되어 있고, 풀밭이 아닌 닭장같은 학교, 학원에서 지내는 것은 분명하다.
편해문씨의 직설적인 문장들이 읽는 내내 불편했다. 그것은 바로 나 또한 애들을 놀이보다 무언가 주입시키고 있는 교육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놀이에 빠질 수 있도록 심심해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 해 줘야 겠다. |
![]() 며칠 전 세바시에서 강의로 먼저 접하고 나서 책을 읽어서 그런지, 열을 올리며 목소리를 높였던 저자의 목소리가 자동으로 음성지원되는 듯했다. 주장이 단호하고 강해서 웃음이 나는 포인트가 많았다. 정말 재밌어서가 아니다. 세태를 꼬집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아주 불호령을 내리신다. 한 예로 요즘도 공기놀이가 가능한 이유는, 그것이 좁은 공간과 짧은 시간에도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아이들에게 놀 시간과 공간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참 많이 담겨있다. #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다 - 어른이 놀지 않거나 놀지 못하는 이유, 아이들을 놀게 내버려 둘 수 없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이다. -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고 불안이다. - 우리가 놀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퍼뜨린 불안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 놀이를 살펴보기 - 하나. 아이들과 관련된 것들 중에 '놀이'라는 말을 앞뒤에 끌어다 쓴 곳은 먼저 '내용 없음'을 '놀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지 않은지 본다. - 놀이는 머리 좋아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과 행복을, 미래가 아닌 오늘 당장 만나기 위해 하는 것이다. - 즐거울 때, 행복할 때 느낌이 어떤지 알아야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무언가를 더듬거리며 찾아갈 수 있다. - 둘.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하는 놀이가 정말 '놀이'인지 본다. - 놀이의 맥락은 없고 순서만 있는 놀이는 가짜 놀이다. - 셋. 다시 더 안으로 들어가 그들이 건강하게 노는 사람인지 본다. - 한 두 사람이 이끄는 것은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레크리에이션이다. - 놀이 속에 있는 모든 아이가 주인 노릇을 할 때 그것이 놀이다. # 장난감 절대 사주지 마라 - 만약 뭔가 하나를 사줄 수 밖에 없다면 스스로와 아이에게 백 번을 물어보고 사줘야 한다. - 세상이 아이들한테 하는 소리는 딱 하나다. '사라'이다. - 당연하게도 이 소비중독의 고리를 끼워 준 사람은 부모이다. # 먼저 텔레비전을 내다 버리고 이야기하자 - 가장 척박한 땅에 가장 아름다운 놀이의 꽃이 핀다. - 아이들로부터 놀이를 빼앗은 것은 다름 아닌 풍요다. - 놀이는 심심하고 뭔가 없을 때 꿈틀거린다. # 컴퓨터 게임 - 게임이 무엇인지 진정 모른단 말인가. 정말 무서운 것은 게임에 가까워질수록 동무와 형제와 부모 같은 사람과 멀어진다는 것이다. 삶이라는 것, 사랑한다는 것, 가슴 아프다는 것, 힘들다는 것, 눈물겹다는 것, 관계라는 것에서 멀어지고 그것이 무엇인지 점점 느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어른들은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를 때가 있는데, 그냥 저희들끼리 잘 놀면 놔두고, 같이 놀자고 하면 같이 놀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른이 먼저 놀이 자체를 편안히 대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의 팁으로는 아이들과 이야기하기가 어려우면 노래로 나아가고, 그래도 힘들면 놀이로 서둘러 넘어가주라고 말한다. 사실 놀이라는 게 별 게 아닌데, 돈을 들여 사줘야 하는 '장난감'이 아니라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놀 수 있는 '놀이감'이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 놀이에서 땅과 돌과 금을 빼면 이야기할 것이 반으로 준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실과 끈과 줄이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보자기, 상자, 동굴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p.153) 마지막으로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정리하여 어린이놀이운동을 제안하고, 이에 다섯 가지 실천안을 내놓았다. 1. 아이에게 한가한 시간을 줍니다. 2. 아이와 함께 놀 수 있는 이웃 동무를 만듭니다. 3. 아이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곳을 찾습니다. 4. 학습이나 창의력 등을 놀이와 연관 짓지 않습니다. 5. 하루에 두세 시간씩 '놀이밥'을 꼬박꼬박 먹입니다. 세바시 강연을 통해서 열정적이라는 느낌은 받았지만 이렇게 글에서도 이리 단호한 말들을 만날 줄은 몰랐다. 놀이조차도 교육으로 끌어들이려는 상술과 부모의 욕심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큰 목소리를 내도 모자라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말투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은 말 그대로 순수하게 '놀아야 한다'는 주장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게 슬프다. 어떻게 놀아줘야 한다는 지침이 아닌, '놀자, 놀자, 제발 놀자'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애들을 막 교육시키려는 짓을 안 하고 있어서 속으로 '전 아니에요' 할 수 있었지만 충분히 놀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을 반성하게 하는 책이었다. 덧.
놀이밥 약속 안내문이 필요한 사람은 메일(hm1969@hanmail.net)로 짧은 소감을 보내주면 웹 이미지를 보내준단다. 보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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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 당신 아이가 놀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이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 + 내 옆에서 걸으면서 친구가 되어 다오 + 놀이는 즐거움과 행복을 미래가 아닌 오늘 당장 만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이 느낌이 어떤지 알아야 아 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무언가를 더듬거리며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 비석치기 할때의 포인트는 비석을 찾아 다니며 어디 쓸만한 좋은 돌이 없나 찾는 과정이 즐거운 일이다 +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만 사는 아이들이 대한민국에 너무 많다 + 컴퓨터 게임과 텔레비젼은 저소등층 아이들의 삶을 더욱 깊게 파고들어 어지럽힌다, + 게임에 가까워질 수록 동무와 형제와 부모 같은 사람과 멀어진다 +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자녀보다 부모들이 빠르게 게임의 당사자로 나서는 모습이다. 직장을 쉬는 날에 아빠가 게임에 빠져드는 모습을 곧 보게 될 것이다. + 놀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외로움이다. 그래서 왕따는 외로운 아이들 모두의 마 지막 놀이로 자리잡는다 +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물건을 함부러 사주지 않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아이들의 소비 놀이, 소비중독의 고리를 끼워준 사람은 부모이다 + 사주지 마라 + 놀이밥을 충분히 먹고 자란 아이들만이 게임과 놀이에 대한 균형을 잡을 수 있다 + 어디까지나 놀고나서 그래도 시간이 남을 때 읽는 것이 책이라는 순리. + 부모가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 옆에서 따라 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놀이이다
책을 읽으며 열심히 한 손에는 연필을 들고 밑줄을 그으며 읽은 , 간만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입니다. 저는 교사이면서 현재 아이들을 키우고 있으니 더욱 더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아요. 책 전체에서 몇부분만 발췌해 보았는데요, 이부분만 읽어도 단순히 아이들의 놀이에 대한 책이 아닌 우리나라 사회전반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 깊이가 있는 책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빈부격차가 더 심해지고 있는데 이것이 단순히 어른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크게 나타납니다. 정말 교육의 현장에서 보면 부모가 경제가 힘들어 열심히 돈을 벌다보면 아이들을 소외되어 열심히 게임에 빠져들고, 그리고 소외와 외로움 속에서 왕따현상이 일어나고 그리고 교육열이 심한 부모밑에 자라는 아이들은 입시지옥과 자신의 생각은 뒤로 한채 공부만 하는 로봇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실에서나 놀이터에서나 정말 친구들과 진실된 마음으로 노는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빛이 나고 웃음이 있는데, 이걸 캐치해서 언어로 잘 표현한 부분이 바로 이 책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정말 조금 더 숨통이 트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어느 하나가 바뀌어선 답이 없겠지만 우리 어른들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절절히 느낍니다.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입니다. 알면서 실행에 옮기기 힘든 부분도 있고, 이 책의 내용 중 일부분은 학교 현장과는 다른 답답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이 책을 통해, 눈가리고 아웅이 아니라 조금 더 우리아이들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는 어른이 되었음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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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0일 서교동 태복빌딩에서 여러 명의 저자가 함께하는 조촐한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아이들이 직접 쓴 일기와 문집을 묶어 낸 저자들도 있었고, 아이들 말을 그대로 옮겨 낸 저자도 있었으며, 아이들 시를 노래로 만들어 편집한 저자도 있었으며, 선생도 함께했다. 아이들 글과 말을 소중히 여기며 그들 편에 서서 일하는 참된 어른들이다. 선생도 함께한 저자들을 잘 알고 있고 마음을 나누는 관계다. 그런데 선생은 그 자리에서 평소와 달리 강한 주장을 폈다. 오늘날 같이 아이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책이 아니라 놀이라는 거였다. 책 잔치인 출판기념회에서 책보다 놀이라는 주장을 펼친 것은 선생이 오늘날을 얼마나 절박하게 보는지 드러내는 증거이다. 더구나 선생은 온유한 성품으로 사람을 대하는 분이 아니던가. 선생이 보기에 오늘날 아이들은 학교와 교사와 부모와 학원이 짜고 벌이는 생체 실험의 극한으로 몰리고 있다. 학교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사는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부모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학원은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닦달하고 있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정 속에 아이들 스스로 하는 놀이는 없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은 스스로 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놀아도 왠지 두렵고 미안하고 부모에게 죄짓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어른들이 공모하여 놀이의 씨를 말리는 데 성공한 듯하다. 아이들은 그 속에서 왕따, 괴롭히기, 집단 따돌림, 폭력, 협박, 공갈 놀이에 짓눌려 세상을 버리는 아이들조차 줄을 잇는다. 교양 있는 부모인 척하는 어른들도 공모자이다. 그들은 공부를 재미있게 놀이처럼 시킨다고 한다. 그리하여 온갖 체험과 캠프와 프로그램에 아이들을 돌린다. 게임에 빠지는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사이버 세상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선생은 단호하다. 학습은 학습이고 놀이는 놀이이다. ‘놀며 학습한다.’는 말은 사기에 불과하다. 그런 말은 물건 팔아먹는 장사꾼이나 하는 말이다. 이미 학습이 아이들을 집어삼킨 상황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학습의 편을 들고 있는 것이다. 놀이는 다른 엇비슷한 것으로 바꿀 수 없다. 다른 무엇으로 바꾸거나 거래될 때 놀이는 타락한다. 놀이가 아이들 삶 전면에 강처럼 흘러야 한다. 책도 놀이 다음이다. 책 말고 재미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아이들이 몸으로 먼저 알아야 한다. 아이와 함께하는 ‘놀이밥’ 약속 3 ☆ 마음껏 놀 수 있는 한가한 시간을 줄게 ☺ TV, 스마트폰, 게임을 내려놓으렴. 그래야 놀이와 동무를 만나지 ♤ 함께 놀자꾸나 선생은 위 글을 벽이나 냉장고에 붙여놓고 수시로 보며 아이들을 놀게 하라고 한다. 밖에 나가도 놀 아이들이 없다고 핑계대지 말고 우리 집 아이 먼저 놀게 하라고 한다. 하루를 잘 논 아이는 짜증을 모르고, 10년을 잘 논 아이는 마음이 건강하니 말이다. 선생 또한 어려서 잘 놀았다. 온종일 놀았다. 더워도 놀았고 추워도 놀았다. 추울 때 오히려 더 놀았다. 꼭 밖에서 놀았다. 해가 지면 어머니 손에 잡혀 와 밥 먹고 저녁에 또 나가 놀았다. 놀이를 먹으며 자랐다. 실상 선생 세대까지 아이들은 놀이를 먹고 건강하게 자랐다. 그렇게 즐겁게 놀았던 행복의 기억이 어른이 되어서도 바닥나지 않는 힘이 된다. 어릴 때 놀던 힘을 꺼내 오늘을 살아간다. 그러니 지금은 아이들에게 정성스레 따뜻한 ‘놀이밥’ 한 그릇을 퍼줄 때라고 강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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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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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2살 아이를 둔 엄마로써 아이가 태어난후 많은 육아서를 읽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했다.
때론 책을 많이 보여주다가 어쩔때는 책을 다 덮고 무조건 실컷 놀게하기도 하고 팔랑귀라서
그런가 많은 육아서를 볼때마다 생각이 바뀌었고 최근들어서는 무조건~놀게하가~
무조건 아이가 즐겁게~라고 생각하고 아이가 원하는 놀이를 해주려고 한다.
내가 주가 아닌 아이가 주가되게..
그래서 이 책도 그런 맥락에서 골라서 읽었는제 솔직히 읽기 힘들었다.
몇번을 시도한 끝에 겨우 겨우 읽었는데 결국 반밖에 못읽었다.
그냥 내용을 읽으면서 불편했다. 뭔가 현실적이지 않은듯한 내용
그냥 내가 어린시절 놀았던것을 지금 아이들이 똑같이 놀순없다고 생각했기때문
나역시 구슬치기부터 시작해서 촌에서 자라면서 자연과 살았지만...
글쎄 지금 전원주택에서 자연과 살지 않는 이상...책내용은 공감이...되지 않았다
내 기준으로는 예전 우리 어린시절 처럼 못논다면 때론 체험이나 변형된 놀이 어쩔수 없는
대안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작가님은 그것도.노우..이것도 노우라고...외치고 있어서
결국 반만 읽다가 덮었다 . 이책을 읽기 위해서 7번 8번 시도했지만 결국은 겨우 겨우 반만 읽었다.
리뷰를 쓰면서도 좋은 리뷰가 많은데 이렇게 비딱하게 읽은것 나밖에 없는것같아서 마음이 그렇다
아마도~ 내가 마음이 생각이 너무나도 많이 오염되서 이책을 이렇게 읽을수 밖에 없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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