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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 시 전집(송준 편)을 읽고..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 시 전집(송준 편)을 읽고.." 내용보기
백석 시 전집 (송준 편)을 읽었다. 그중에 내 영혼을 관통한 시중 하나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시였다.백석시전집 31쪽에서는 저자인 송준 선생의 글중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전략) 이 시가 국토분단과 미증유의 전쟁을 예견한 백석이 우리 민족에게 가해지는 운명의 굴레를 스스로 이겨 나가는 모습을 우리 후손들에게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 시 전집(송준 편)을 읽고.." 내용보기

 

 

 

백석 시 전집 (송준 편)을 읽었다. 그중에 내 영혼을 관통한 시중 하나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시였다.백석시전집 31쪽에서는 저자인 송준 선생의 글중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전략) 이 시가 국토분단과 미증유의 전쟁을 예견한 백석이

우리 민족에게 가해지는 운명의 굴레를 스스로 이겨 나가는 모습을

우리 후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후략)"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1948년 10월 학풍에 발표한 이 시를 마지막으로

백석 선생은 남한에서 시를 발표하지 않게 된다.

이것도 백석의 절친한 친구인 허준이 보관하고 있었다가 학풍에 발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1945년 이후에서 1948년 사이에 백석 선생이 지은 시라고 볼 수 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꿀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백석 선생이 광복이 된  이후에 지은 詩인데도

절망적인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시인 백석은 조만식의 비서 역할과 러시아어 통역을 하였다.

시인 백석은 첫 시집 <사슴>의 33편의 시를 통해

항일의 의지를 드러냈고,그 시의 깊이에 일본인들도

감탄하며 감히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시인 백석의 시는 항일과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였으며,윤동주 시인과 만주의 독립운동가들이 백석의 시를

가슴에 품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불살랐었다.

 

이제 광복이 된 시점에서 지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는

그 기쁨이 넘쳐야 할 것이지만,시인은 비탄을 노래하고 있다.

 

행을 32행으로 한 것은 3.1운동 민족 대표 33명의 수에 하나가

모자른 행을 통해 민족의 붕괴와 분열을 말하고자함이었다.

한 남자가 아내가 없고 집이 없고 부모와 동생없이 헤매는 광경은

한 인간의 비참한 삶을 이야기한 것이며 민족의 슬픔을 표현하고자 함이다.

시인백석은 그저 낭만파적인 시인이 아니었다.민족의 슬픔과 개인의 슬픔을 상징적이고

사실적으로 읊을 수 있었던 놀라운 시인이었다.

 

이 시를 지을 당시는 광복이 된 후 얼마되지 않은 해였을 것이다.

시인 백석은 고당 조만식 선생의 수행비서 역할을 하면서

남한과 북한의 정치적인 상황들을 알게 되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말씀을 인용하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모택동과 장개석중 한편의  편에 서서 독립운동을 하였"고

그런 와중에 나중에 이 둘의 분쟁이 일어나 중국의 내란이 일어나게 되면서

남한과 북한의 세력이 서서히 나뉘어지게 되었고 일본의 침략이 끝나자

미국과 중국,소련의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조선이 토막나 버리고 민족상잔의 슬픔이 곧 올것이라는 거대한 슬픔에 시인 백석은 휩싸이게 되고

그래서 이 시를 지었던 것이다.

 

시인 백석이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라고 시를 읊은 것은 민족의 거대한 슬픔이 곧 올 것이며

부끄러운 동족 상잔이 될 것이라는 예견을 한 것이다.

시인 백석은 자신 개인의 삶속의 일을 민족의 일에 상징적으로

비유하여 두가지 의미를 부여하여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시인은 왜 부끄러워 했던 것일까?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10만이상의 독립운동가들과

남쪽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수십만의 독립운동가들이

이 6.25전쟁을 통해 서로 악랄하게 죽였으며

좌익과 우익을 나뉘고 미국과 소련이라는 거대국가의

기준에 의해 함께 항일을 외치던 독립투사들이 서로 칼과 총을 겨누었기 때문이다.

이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운 이 일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백석시전집을 읽다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마음으로

함께 읊어보면서 시인 백석이 느꼈을 거대한 슬픔을 함께 생각하여 본다.

아래에 도올 김용옥 선생의 남북 동족 상잔의 배경을 읽을 수 있는 명강의를 링크한다.

남북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로 생각하면서 더 깊이있는 민족의 슬픔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몽우 조셉킴

 

 

 

 

 

 

j*********w 2012.09.28. 신고 공감 8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