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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삼국지의 진실과 허구를 알리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의 저술 의도와는 다르게 내용이 흘러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책의 제목대로 삼국지의 진실과 허구를 파헤칠 거였으면 [삼국연의]의 저자인 나관중부터 심판대에 올려놓고 비판을 가했어야 했는데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찬양을 하며 자신의 삐뚤어진 역사관만 실컷 드러내고 말았다. 진수의 [삼국지]는 삼국의 역사를 대체로 진실 되게 담은 소중한 역사서다. 그런데 저자는 진수의 [삼국지]의 일부 내용이 자신의 생각보다 짧다는 이유로 투덜거리고 트집을 잡으며 마치 이것이 문제인양 이야기한다. 이에 반해 나관중의 [삼국연의]는 작가의 상상력과 조작이 가미되었음에도 그런 점은 전혀 문제 삼지 않고 단지 내용이 풍부해졌다는 이유로 칭찬을 하고 있다. 이는 정말이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관중 덕분에 삼국의 역사가 널리 알려지고 [삼국연의]가 지금까지 수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관중이 실제 역사를 조작하고 왜곡시킨 점까지 칭찬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조작해서 길게 역사를 남기면 잘한 것이고 짧게 진실한 역사를 남기면 잘못된 것인가? 이런 역사의식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 설마 이것이 중국 사학자들의 보편적인 생각이란 말인가? 무엇이 진실인지 간에 이런 사고를 갖고 역사를 대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이런 자들이 중국의 역사서를 쓰고 그런 책을 토대로 사람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가르친다고 상상해보라. 그렇게 되면 고구려 역사와 발해 역사는 시나브로 중국의 역사가 되어 나중에 우리가 손을 쓰려 해도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저자는 상당히 위험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학자라 말할 수 있다. 독자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이 책은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촉한정통론자들의 의견을 주로 대변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조조’는 영웅이긴 하지만 명예회복이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변명의 이유는 천 년이 넘는 시간동안 실제 이미지가 왜곡되고 변질되어 이미 중국인들의 머릿속에 나쁜 이미지로 각인되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그 이미지를 변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는 삼국지의 진실을 밝힌다는 명분하에 이 책을 저술했으면서도 조조에 대한 변명은 좀처럼 해주지 않았다. 아니 다른 인물들은 치부를 드러내기도 하고 진실을 밝히기도 하면서 독자들에게 그들의 본모습을 보여주거나 혹은 복권을 시켜주려는 노력을 했지만 정작 역사왜곡으로 인해 영웅에서 간웅으로 전락한 조조에게는 그런 노력 없이 그냥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대로 즉, 촉한정통론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조조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만 잔뜩 떠들어댄 것이다. 여기서 난 중국인들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천 년이 넘는 시간동안에 역사가 왜곡되었으면 지금이라도 왜곡된 부분을 명확히 밝히고 바로잡으면 그만이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고쳐나가는 것이 역사가의 길이자 사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를 비롯한 중국인들은 그러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것 같다. 왜 그런 것일까? 왜 중국인들은 역사가 왜곡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도 고쳐서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왜곡된 역사가 원래 역사보다 더 마음에 들어서이기 때문이다. 한족(漢族)인 중국인들의 대부분은 [삼국연의]의 내용을 진짜 역사로 인식하고 또한 그러길 바란다. 그래서 [삼국연의]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특징이나 이미지 그리고 그들의 능력이나 업적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한다. 몇몇 개념 있는 사학자들이 [삼국연의]의 오류를 지적하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이야기해도 그들이 열심히 떠들 때만 잠깐 귀 기울일 뿐 뒤돌아서면 다시 원래 왜곡된 대로 역사를 인식하는 게 오늘날 중국인들의 모습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제대로 된 사학자들이 조조를 복권시키려 노력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사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일반인이 아닌 사학자들은 역사를 바로 잡고 제대로 알려야 할 의무가 있는 특수한 위치에 놓인 사람들이 아닌가? 오랜 시간에 걸쳐 잘못된 인식이 퍼졌으면 다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도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 고쳐서 바른 역사를 가르치려 노력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사학자의 도리가 아니냐 이 말이다. 그런데 보라. 이 책의 저자도 [삼국연의]의 진실과 허구를 밝힌다는 취지에서 책을 써놓고 정작 바로잡아야 할 역사 혹은 인물에 관해선 그냥 넘어가고 쓸데없는 부분만 들추고 있지 않았는가! [삼국연의] 때문에 오랫동안 후손들에게 욕을 먹고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인물은 단연 조조다. 그렇다면 저자는 저술 취지에 맞게 조조에 대해 좀 더 파헤치고 그를 복권시켜주려 노력해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엉뚱한 인물에만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거나 내용을 촉한 위주로만 책 내용을 구성한 것은 저술 취지에 전혀 맞지 않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저자는 혹 세상의 비난이 두려웠던 것인가? 촉한정통론자들의 주장과 다른 주장을 하면 돌아오는 건 칭찬이 아니라 비난이기에 그걸 피하기 위해서 말로만 진실을 파헤친다고 해놓고 촉한정통론자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은 것이 아닌가 이 말이다. 비난을 피하기 위해 우물에 독 뿌리는 식으로 조조는 이미 나쁜 이미지가 퍼져서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해버리고 그를 위해 제대로 된 변명을 해주지 않는 것은 역사를 다루는 인물로서 자신이 무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저자는 진실로 [삼국연의]에 대해 진실을 파헤치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려 했다면 다른 인물들을 조명하기보단 조조 위주로 책을 구성하고 편집해서 이야기를 해나가야 했다. 관우나 제갈량은 역사왜곡 덕분에 좋게만 알려져 사람들에게 인식이 좋아서 안 좋은 치부를 몇 개 드러낸다 하더라도 별 다른 피해를 받지 않는다. 때문에 그들의 단점이나 문제점을 들추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었다. 오히려 그럴 시간에 조조에 대해 좀 더 연구해서 그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인물로 인식시킬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하면 조조를 간웅이 아닌 영웅으로 인식시킬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야 옳았다. 저자는 그런 노력 없이 그저 일반론적인 생각들을 정리해서 책을 낸 것 같은데 이건 저자는 물론이고 독자에게도 그저 시간낭비일 뿐이다. 이런 저자의 쓸데없는 말에 귀 기울일 바에야 차라리 잘못된 역사라도 [삼국연의]를 읽는 게 백배 천배 낫다. 저자가 이 책을 오직 촉한정통론자들의 주장만 대변하는 도구로 쓴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이야기를 하다 만 것 같은 느낌을 준 점’이다. 어떤 이론 혹은 사실에 대해 오류를 파헤치고 진실을 규명할 때에는 논리와 더불어 분명한 결론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듣는 사람들이 화자 내지 저자의 주장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식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동의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삼국연의]의 등장인물과 역사적 사실들을 평가하면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평가를 조금 하다가 도중에 끝내버리고 말았다. 마치 명확히 어떤 결론을 맺어버리면 대중들로부터 돌을 맞을지 모른다고 염려를 하는 사람처럼 대충 이야기를 하다 얼버무리고 만 것이다. 이 책을 만든 취지가 진실 규명을 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모를까 그런 취지로 책을 만든 거였으면 좀 당당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독자들의 눈치를 보고 왜 여론의 동향을 살피는가? 자신의 생각대로 [삼국연의]에 대해 이야기해버리면 책이 안 팔릴까봐 그것이 걱정이 되어서 변을 보다 중간에 끊은 것처럼 찝찝하게 이야기를 도중에 끊고 대강 대강 주장을 해버린 것이냐 이 말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만약 저자가 이런 태도로 이 책을 만들었다면 진짜로 글러 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역사를 다루는 사람이 대중의 눈이 무서워 진실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고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피력하지 못한대서야 어찌 사학자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눈치 보이고 신경 쓰이면 펜을 꺾고 더 이상 역사에 대해 논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가가 어떤 사람인가? 올바른 역사관을 토대로 신념을 굳게 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제대로 된 역사,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후세에 남기는 것이 역사가의 도리가 아닌가? 그런데 괜히 대중들이 사랑하는 혹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에 반하는 역사를 썼다가 욕이나 먹고 외면당할까봐 두려워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못 편대서야 어디 그게 역사가라 말할 수 있는가? 그런 자들은 그저 소인배일 뿐이다. 저자는 욕을 안 먹으려고 소극적으로 역사를 논하다 대인배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진짜 소인배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당대에 욕을 좀 먹더라도 후대에 높이 평가를 받으면 그게 더 영광스러운 것이 역사가인데 당대의 비난을 피하고자 후대의 비난을 미리 사다니 이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 또 있을까 싶다. 저자는 이 책을 내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더 나았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나관중을 찬양하기 위한 책이라는 점’이다. 이 책은 여러 가지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단점은 역사왜곡을 한 나관중을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한 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실제 역사서라 할 수 있는 진수의 [삼국지]는 내용이 너무 짧다고 비판하면서 역사왜곡의 진수를 보여주는 나관중의 [삼국연의]는 길고 자세하다는 이유로 칭찬하고 높이 평가했다. 여러분들은 이 말도 안 되는 비교가 이해가 되는가? 진실을 바로 밝힌 진수는 역사를 간단명료하게 적었다고 욕하고, 역사를 잔뜩 왜곡시키고 조작한 나관중은 역사를 길게 남겼다고 칭찬하는 것이 바른 비평이고 올바른 역사가의 자세인지 묻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잘못된 역사인식은 참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식의 태도가 팽배해지면 [삼국연의]의 내용이 실제 역사로 바뀐 것처럼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도 중국의 역사로 둔갑되어버리는 것이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 사학자들은 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한국의 역사인 고구려 역사와 발해 역사를 중국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작업을 끝마쳤다. 최근에 KBS 교양 프로그램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고발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접하곤 필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동북공정이 심각하다는 것은 전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심각한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고의적으로 만리장성을 늘리고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청의 역사에 편입시켜 마치 중국의 원래 역사인 것처럼 조작하고 있었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렇게 왜곡된 역사를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진짜 역사로 믿고 있다는 점이다. 사학자들은 분명 진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국인 중국을 위해 이런 역사왜곡작업에 힘을 보태고 있고, 일반인들은 그것도 모르고 잘못된 역사를 진실인양 받아들이고 있어서 한민족(韓民族)의 역사인 고구려와 발해 역사가 점점 한족(漢族)의 역사로 변모해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중국인들은 이런 역사조작도 모자라 조작된 역사를 광고로 만들어 전 세계에 퍼뜨리기까지 하고 있는데 진짜 이러다간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눈뜨고 빼앗길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우리 역사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것은 다 나관중 같이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는 자를 비판하기는커녕 찬양하고 본받으려 하는 중국인들의 잘못된 역사인식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어찌 필자가 이런 잘못된 점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겠는가! 필자가 자꾸 나관중의 [삼국연의]를 비판하고 바로잡으려 한 것은 [삼국연의]가 바로 중국의 역사왜곡의 시초이자 뿌리이기 때문이다. 이것부터 제대로 바로잡지 않고서는 중국의 역사왜곡을 막을 수 없다고 본다. 중국인들은 한족이니까 관우를 추종하고 제갈량을 찬양한다고 하지만 한국인인 우리들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우리가 [삼국연의]를 중국의 역사라 믿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중국인들의 역사왜곡을 인정하고 도와주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고구려 역사와 발해 역사를 중국인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우린 [삼국연의]가 역사왜곡의 근본이라는 것부터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중국인들은 역사에 틈 내지 여지만 있으면 그것을 상상으로 메워도 된다는 이상한 사상을 가진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고구려 역사와 발해 역사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고구려와 발해 관련 역사를 책으로 남겨야 하고 그 두 나라가 우리 역사였다는 근거를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역사를 등한시하고 외면하는 동안 중국인들은 야금야금 우리의 고대 역사를 자기들의 역사에 편입시켰고 이젠 아주 광고까지 해대고 있다. 힘을 키워 나중에 영토를 되찾고 역사를 바로잡아도 되지만 아직 우리에겐 과거의 영토를 되찾을 만한 힘이 없다.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지키려면 우리 역사에 대해 애정을 갖고 관심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 역사에는 밝게 하면서 정작 우리나라 역사에는 문외한으로 만드는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은 시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욱 역사교육에 투자를 해 절대 중국에게 우리나라 역사를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역사왜곡과 역사조작은 절대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중국인들은 소설을 실제 역사로 조작하고 둔갑시키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할 사학자들마저 공산당과 손을 잡고 역사를 조작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역사가 전해질리 만무하다. 자기들 역사를 조작하는 것도 문제지만 다른 나라의 역사까지 조작하는 것은 문제를 넘어 범죄다. 남의 역사를 자신들의 것으로 조작하는 것은 엄연한 범죄이기 때문에 우린 이와 같은 사실을 중국인들에게 분명히 알려야 한다고 본다. 중국인들의 역사왜곡 실태와 중국인들이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제대로 인식하고 싶다면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인상적인 글귀 “무릇 진정한 삶의 묘미란 평화롭고 안일한 시대에서는 깨달을 수 없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격동의 시간 속에서야 참된 삶의 진가를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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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삼국지'를 처음 만난건 1988년에 나온 '이문열 삼국지'였는데요. 당시 학교 다니면서 매일 받던 차비 1000원을..안 사용하고 (걸어가도 30분정도밖에 안되었거든요) 그돈 모아 '이문열 삼국지'가 출간될때마다 구매를 했습니다. (그땐 책값이 5000원..) 그후 '이문열 삼국지'만 해도 10번은 읽었고 그외에도 수많은 저자의 '삼국지'를 읽었는데..정말 읽어도 읽어도 질리지 않습니다..ㅋㅋㅋ 그런데 우리가 '삼국지'라고 읽는 작품은 '역사서'가 아닙니다.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라는 소설로.. 보통 70프로의 진실과, 30프로의 허구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소설속의 '캐릭터'나 '사건'들이 사실과 다르거나.. 어떤 '캐릭터'들은 '실존인물'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를 읽어볼까.. '도서관'에서 대충 읽어 봤는데..ㅠㅜ 이건 ...재미가 없더라구요.... 말 그대로 딱딱한 '역사서'다보니..'인물 백과사전'느낌.. 우리가 '위키백과'에 '세종'에 대해 치면...나오는듯... 그렇게 나열되더라구요.. 그래서 '정사 삼국지'는 포기했지만.. '삼국지'의 '허구'는 무엇무엇일까 궁금했는데 .. 바로 이 책인 '삼국지의 진실과 허구'가 보이더라구요 ㅋㅋㅋ 그래서 읽다보면 놀라는 부분도 많았는데요.. 예를 들어 '유비'는 '이릉전투'에서 패하지만.. 그 와중에 '관우'와 '장비'를 죽인 대상들은 다 죽는 것으로 나옵니다만.. 실제 역사에는 그들이 죽지 않았다고 되어있거든요 '마충'도 잘 살다 '병사'했고 '미방'도 '오나라'에서 '대접'은 받지 못했지만, 그곳에서 '천수'를 누렸다고 합니다. '적벽대전'당시 '조조'가 '주유'의 '계략'에 속아 '채모'를 죽이지만 사실 '조조'가 그렇게 생각없이 '장수'를 함부로 죽일 사람도 아니고 '채모'란 인물은 '조조'의 절친이기도 합니다. 역사에는 그는 죽지 않았지만, '주유'를 띄우기 위해..소설속에는 죽어야 했지요 (실상은 주유를 농락한 제갈량을 띄우기 위해...) 그리고 실존인물이 아닌 '관색'은 만들면서 왜 친아들이자 장남인 '관평'을 '양자'로 만든건 이해가 안되기도 하구요..
책속 '연표'에 보면 실제 '캐릭터'들의 죽음과 소설속 죽음의 비교가 나오는데요 대부분 '병사'하는 '캐릭터'들이.. '소설'속에서는 '전투'중에 사망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특히 '태사자'는 9년전에 '병사'했는데.. '합비전투'에서 싸우다가 죽은것으로 나오거든요..
아무래도 '소설'이다보니, '사실'보다는 '재미'를 추구하다보니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거기다가 '소설'이란 것이 '목적'이 있기 마련.. '나관중'이 살던 시대에는 '원나라'치하인지라.. '한족'의 가장 '리즈시절'이였던 '한나라'를 그리워했고.. 그래서 '촉한정통론'자인 '나관중'은 '유비'를 띄으고 '조조'는 '간신'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조조'는 대단한 사람인데 말이지요. 요즘 '조조'의 '명예'를 회복시키려는 움직임도 보이는데요 반면 '삼국지'최고의 수혜자는 바로 '관우'와 '제갈량'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갈량'은 중국역사상 최고의 '책사'가 되었고.... '관우'는 죽어서 '신격화'까지 되어있으니까요.. '춘추'를 달고 살았던 '충의'의 화신인 그의 모습은 당시 '성리학자'들에게 딱 맞았을테고...그래서 그는 '삼국지' 최고의 '영웅'이자 '수혜자'가 되었지요 '삼국지의 진실과 허구'는 총 4장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1장 삼국지 영웅본색은 '유비','조조','손권','원소'등 '군주'들의 이야기 2장 삼국지 장수열전은 삼국지의 유명한 '장수'들의 이야기 3장 책사, 삼국 쟁패의 주역들은 삼국지의 '책사'들의 이야기 4장 '저술의 바탕이 된 사료들은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사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대했던 만큼 좋았던 시간이였는데요 그동안 읽었던 '삼국지연의'의 '캐릭터'들과 '사건'들을 실제 '사료'의 '캐릭터'들과 '사건'들과 비교하면서 읽는게 좋았습니다. 그러고보니 요즘 '무적핑크'님의 '삼국지톡'을 읽고 있는데 '삼국지톡'이 좋았던 점이.. '삼국지연의'와 '정사 삼국지'를 잘 조합해서 쓰시더라구요 그래서 '삼국지연의'의 재미와..'정사 삼국지'의 '정보'를 ..둘다 알수 있어서 좋은 ㅋㅋㅋ 우야동동...재미있었던 '삼국지의 진실과 허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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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진실과 허구 : 삼국 시대 인물들의 진짜 인생 엿보기> 구청푸, 성쉰창 / 하진이 / 시그마북스 (2012) [My Review MMCCCXLI / 시그마북스 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일흔 번째 리뷰는 소설 삼국지와 정사 삼국지 사이를 오가며 삼국지의 참모습을 살펴보려 시도하는 <삼국지의 진실과 허구>다. 한중일 가운데 '팩트체크'에 진심인 나라는 한국 뿐이다. 특히 역사에서는 유별날 정도다. 일본은 '왜곡'을 일삼고 중국은 '공정'을 획책하는 마당에 왜 한국은 '진실'만을 요구하는 것일까? 이는 오직 '진실'만이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오랜 경험에서 축적된 지혜이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한국의 위치는 대륙의 수혜를 받아 해양으로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기에 적합하다. 하지만 한국은 상상 이상으로 막강했던 까닭에 대륙도 함부로 넘보지 못하고 해양은 감히 얼씬 거릴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근대 이후에 이런 '역사적 지위'가 뒤바뀌는 경험을 했다. 거대한 대륙이 서구열강에 짓밟히고 해양세력이 득세하면서 열도를 넘어 반도를 거쳐 대륙까지 집어 삼키는 파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은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경험을 당했다. 그리고 정말이지 밑바닥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는 위업을 보여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업을 보여줄 근본적인 원동력은 오직 하나 '진실'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드디어 '진실'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기고만장했던 일본은 추락 직전으로 내몰렸고, 어마어마한 덩치로 위용을 뽐내던 중국도 비실비실 휘청거리고 있다. 물론 아직 일본과 중국은 건재함을 자랑하고 '과거의 영광'을 뽐내려 든다. 그러나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삼국지의 진실과 허구> 관점 포인트 : 삼국지 책을 이야기하면서 '진실' 어쩌구 거창한 이야기를 꺼내든 것이 의아할 것이다. 차근차근 그 속내를 밝힐테니 따라오길 바란다. 이 책 <삼국지의 진실과 허구>는 소설 삼국지에 담겨 있는 '허구성'을 찾아내 '역사적 진실'과 대조하고, 저자인 나관중이 그렇게 진실을 감출 수밖에 없었던 사정에 대해서 되짚어 볼 수 있는 책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소설'은 역사가 아닌 까닭에 모든 내용을 '진실'로 담아야만 할 필요는 없다. 독자가 재미를 느끼고 '역사'에 흥미를 가질 의도로 '허구성'을 가미할 필요성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관중이 살던 시기는 '원말명초' 였기 때문에 오랜 오랑캐의 지배에서 벗어나 '한족의 자긍심'을 살리고 '민족의 위대함'을 돋울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이는 이민족에게 핍박을 받고 살았던 세대에게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심정일 것이다. 우리도 일제의 폭력과 약탈에 신음할 적에 우리 '한민족의 자긍심'을 되찾고 '조국의 위대함'을 돋울 수 있는 민족 정신을 찾으려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암튼 나관중은 그런 목표를 삼고 한족의 뿌리를 찾았고, 그 결과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고자 수많은 군웅들이 할거하던 '삼국시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모았던 것이다. 그 시대가 3세기였는데 원나라가 망한 14세기에 집필했으니 무려 1000년 전의 역사를 이야기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다행히 촉한 출신의 진수가 진(晉)나라 때 쓴 <삼국지>라는 정사가 있었기에 이야기를 쓰는 것은 큰 무리가 없었다. 허나 진수가 쓴 <삼국지>는 문장이 너무 간결하다는 흠이 있었다. 그 때문에 역사서에서 꼭 필요한 '객관성'을 높일 수 있었으나, 이야기를 쓰기에는 오히려 주관적일 망정 '장황한 서사'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송나라 때 배송지가 <삼국지>에 주석을 붙인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이 덕분에 나관중은 '소설 삼국지'를 집필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톡톡히 살려낼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니 '역사소설'을 쓰다 보면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이 너무 '진실'을 추구하다보면 발목이 붙잡혀서 '허구성'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야기가 너무 딱딱하고 재미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 7할의 진실에 3학의 허구성이 가미한 셈이다. 이로써 '역사소설'의 지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재미와 흥미'를 한껏 돋울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여기에 한 가지 문제를 더 해결해야 했다. 바로 '한족의 자긍심'을 되찾을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 '한족 영웅'를 내세워야 했다. 역사상 삼국을 통일한 것은 '위나라의 기틀' 위에 '진나라의 결정적 한 방'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조를 뒤이어 사마의가 매듭을 짓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데 조조와 사마의는 '실리'를 챙기는데에는 충실했지만, 흩어지고 무너진 '한족의 자긍심'을 되찾기에는 적절치 못한 인물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임자가 바로 '유비'였다. 전한 경제의 후예인 '중산정왕의 후손'인 유비를 정통으로 내세운 '촉한정통론'이 대두된 것이다. 이렇게 유비를 주인공으로 낙점한 뒤에 주인공을 돕는 조연도 필요했다. 관우와 장비가 있었기에 이들을 한데 엮어 '도원결의'라는 아름다운 미담으로 의형제로 삼았다. 완전 거짓은 아니다. 유비는 측근의 사람들과 '형제'처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관우, 장비를 콕 집어서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나관중은 그리 정했다. 그렇게 '복숭아 밭에서 형제를 맺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게 형제의 의리로 끈끈하게 맺어진 관우, 장비다 보니 자연스레 '오관육참장'이란 고사도 만들게 되었다. 옛 주군을 찾아 떠난 급박한 길임에도 대단히 구불구불하다. 분명 유비가 있다는 원소의 진영은 북쪽인데, 관우는 두 분 형수님을 모시고 조조의 배웅까지 받으며 서쪽으로 향했다가 살짝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다시 강을 따라 동쪽으로 간 뒤에 강을 건넜다가, 형님이 이미 남쪽으로 몸을 피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강을 건너 남쪽으로 향한다는 줄거리인데, 사실 헤어졌던 관우와 유비가 다시 만난 장소는 어처구니 없게도 조조의 진영 동남쪽인 여남땅이었다. 그러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애초에 동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달리면 될 일인데, 그러면 이야기가 밋밋해지니 일단 때려부술 수 있는 관문이란 관문을 다 조지고 형제끼리 애뜻한 상봉을 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 '역사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까닭을 이해했다면, '진실'을 밝히고 '허구의 의미'를 찾아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는 '공정'이나 '왜곡'과는 다른 일이다. 나관중이 허구성을 가미한 목적이 역사의 진실을 감추고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은 모두 '역사의 진실'을 감추고 자국의 역사를 '미화'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자신들의 역사가 부끄럽기 때문에 '거짓 날조'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이런 거짓 날조는 '재미'도 없다. 위안부가 사실은 '자발적 매춘'을 하고, 김치의 원조가 '파오차이(채소절임)'였다는 것에서 무슨 재미가 느껴지느냔 말이다. 감동적이기라도 한가? 그런 거 없다. 하지만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지'는 재미라도 있다. 그리고 역사적 흥미를 느끼고 역사의 진면목을 찾아보려는 노력까지 기울일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촉한정통론'은 거짓이지만 오늘날에도 <삼국지>를 읽는 독자들에게 재미와 역사적 흥미를 유발시키는 장치로 옳게 작용한다. 나가는 글 : 그럼에도 독자들은 '촉한정통론'에 만족하지 못하고 '역사적 진실'을 찾으려 노력한다. 기왕에 '역사적 흥미'를 유발시켰으니 소설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역사를 읽으면서도 느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의 역사적 진실을 오늘날의 사람들도 흥미를 느끼고 찾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공정과 왜곡한 역사에 누가 관심을 갖고 있는가? 의외로 관심을 별로 두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애써 공정을 하고 왜곡을 한 보람(?)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상당수다. 더구나 그런 허튼 노력이 '들통'이 나면서 쪽팔림까지 당하기 일쑤다. 그리고 그런 쪽팔림은 자신들의 '강한 국력'으로 무마시킬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데, 정작 속아넘어가야할 '피해자(한국)'이 호락호락하고 만만한 나라가 아니며 점점 더 강한 국력을 갖게 되니, 속된 말로 '똥줄이 타들어갈 지경'에 이르렀다. 반면에 애초부터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고 찾고 증명하려 애썼기에 한국은 오히려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있다. 더구나 한류열풍을 넘어 'K-컬처의 붐'을 맞이하며 전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편'을 들고, '한국의 매력'에 푹 빠져 있으니, 도리어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이 역풍을 맞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 이 책 <삼국지의 진실과 허구>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한족의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저자 나관중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빠졌을 때 '민족의 정체성'과 '조국의 위대함'을 되새길 수 있는 초석이 되는 '역사적 진실'을 되찾을 수 있는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이게 뭔소리냐면, 중국 오천년 역사 가운데 '위촉오 삼국시대'만큼 빠삭하게 알고 있는 역사가 있느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소설 삼국지'가 가진 위대한 힘이다. 전세계인이 중국사는 몰라도 '삼국지'는 알고, 그 시대를 풍미했던 수천이 넘는 군웅들의 이름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다는 점이 우리가 주목할 대목이다. 최근 들어 전세계 사람들이 '한국사'에 관심을 쏟게 된 까닭이 무엇이냔 말이다. 다름 아닌 'K-드라마', 'K-영화' 덕분이다. 지금도 드라마 <대장금>과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끝없이 시청되고 있단다. 그리고 어김없이 이런 역사드라마와 역사영화를 본 관객들은 한국에 관심을 갖고 한국 방문을 하려 한다. 만약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만들었다면 '흥행'에도 실패하고, '관심' 유발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아름답고 재밌게 만들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소설 삼국지'의 인기에 힘 입어서 이 책과 같은 '진실과 허구'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나관중이 소설의 재미를 추구하고 적절히 '허구'를 가미한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중요한 것은 재미를 추구하려고 '거짓 날조'를 방조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진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애초에 관심조차 끌어낼 수 없다. 더구나 진실을 바탕으로 연구하는 학문인 '역사'는 더욱더 그렇다. 한껏 흥미를 끌어올리는데 성공한 '역사'라 하더라도 '진실이 없는 거짓'을 바탕으로 한 것이 밝혀지면 가차없이 외면 받는 것이 또한 '역사'다. 그래서 '진실은 언제나 승리한다'는 말이 진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소설 삼국지'조차 진실로 마주하고 싶어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