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6)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17%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9.0
  • 40대 0.0
  • 50대 8.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읽고 못질합시다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읽고 못질합시다" 내용보기
1   12월 16일 일본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자민당 총재 아베 신조(安倍晋三·)를 아십니까? 아신다고요, 그럼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도 아십니까? 우리나라 차기 대통령이 될 박근혜를 아십니까? 당근 아신다고요, 그럼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는 물론 아시겠죠?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책을 읽었냐고요? 저는 뒤끝이 긴 여자거든요.   2   강상중, 현무암 두 분의 공저인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읽고 못질합시다" 내용보기

1

 

12월 16일 일본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자민당 총재 아베 신조(安倍晋三·)를 아십니까?

아신다고요, 그럼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도 아십니까?

우리나라 차기 대통령이 될 박근혜를 아십니까?

당근 아신다고요, 그럼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는 물론 아시겠죠?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책을 읽었냐고요? 저는 뒤끝이 긴 여자거든요.

 

2

 

강상중, 현무암 두 분의 공저인 이 책은 일본 고단샤(講談社)에서 출간한 〈흥망의 세계사〉 시리즈의 하나인 <대일본·만주제국의 유산(2010)>의 완역본이다. 저자분들은 1932년~ 1945년까지 15년 동안 존재했던 일본의 괴뢰국 만주국을 통해 한일 양국의 현대사에 큰 영향을 끼친 '쇼와의 요괴' 기시 노부스케와 '독재자' 박정희를 다룬다. 이분들은 기시와 박정희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제국의 귀태(鬼胎)’라고 정의내린다. 하지만 두 인물의 비판으로만 연속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만주란 공간과 만주국의 역사, 만주국 인맥까지 조망하여 한일현대사와 한일 관계사까지 설명해 주는 책이다.

 

기시 노부스케는 1936년 만주 산업부 차관으로서 만주국의 산업진흥을 주도했고 1941년부터는 도조 내각에서 상공대신을 역임했다. 그가 만주국 시절에 이룬 경제개발정책이나 각종 국가 통제 시스템은 일본에서는 그의 후예 보수 정치인들에 의해서, 한국에서는 만주국 군인이었던 다카키 마사오, 즉 박정희와 그 주변 만주 인맥에 의해서 계승된다. 일본 패망과 종전 뒤에 그는 A급 전범으로 체포되었으나 한국전쟁과 냉전시기를 거치면서 미국의 필요에 의해 극적으로 풀려난다. 부활한 그는 1957년 일본 총리대신이 되어 일본의 고도 성장과 보수정치연합, 미일안보조약개정을 이끌었다. 또한 박정희와의 만주국 인연으로 한일 회담의 물밑작업을 도맡았다.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때에는 일본측 특사가 되어 당시 다나카 수상에게 박정희 정부 측의 뒷돈을 건네는 것을 성사시켜 일본의 대한 경제원조를 유지하기도 했다. 1987년 여름 91세로 사망.

 

다카키 마사오, 즉 박정희는 혈서를 써 바쳐 1940년 4월에 만주국 육군군관학교 제2기 즉 신경(新京) 2기로 입학하여 황국 군인의 꿈을 이룬다. 만주란 공간은 가난하고 나라 잃은 백성들이 살 곳을 찾아서 마지못해 혹은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만 향하던 곳은 아니다. 다카키 마사오처럼 야심과 출세욕에 찬 식민지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간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만난 만주 인맥으로 박정희는 만주군 소위로 만주에서 항일세력 토벌하는 황군에 복무했던 과거를 지우고 해방 후 대한민국 소위가 된다. 또한 여순항쟁 때 남로당원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살아남는 행운을 누린다. 6.25로 군에 복귀한 그는 5.16 쿠데타로 집권하여 대통령이 되고 장기독재집권 끝에 1979년 살해된다. 집권 당시 그는 1930년대에서 패망까지 실시되었던 일본 군국주의 파시즘의 이데올로기와 행동법칙에 따라 대한민국을 통치했다. 한마디로 다양한 전시 국가주의 동원정책과 교육정책을 사용하여 한국의 경제성장과 총력안보체제를 이끌어 간 것이다. 박정희가 실시했던 수많은 정책과 기구는 대부분 만주국에서 기시 노부스케가 시행한 것들의 카피본이었다. 1961년 기시 노부스케를 만난 박정희는 유창한 일본어로 내가 군사반란을 일으킨 것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떠올리며 구국의 일념에 불탔기 때문이라는 요지의 말을 한다. 메이지 유신을 이끈 조슈 세력의 후예이자 만주국의 관료였던 기시 노부스케는 이후 박정희와 더불어 한일관계를 이끌어 가게 된다. 둘 다 만주국의 귀태였기 때문이었다.


머리말과 제1,3장, 맺음말은 강선생님이, 2,4장은 현선생님이 맡아 집필하시고 전체적으로 강선생님께서 다시 손 보신 책이다. '귀태'가든가 사망을 '사거'로 표현하는 등 일본식 한자어를 그대로 살린 번역이 조금 생경스럽기는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찬찬히 읽어볼 만한 책이었다. 나같이 뒤끝 긴 독자들에게 권한다. 

 

3

 

아베 신조는 일본의 전 외무대신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 총리이자 아시아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가 그의 작은 할아버지(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이며, 참의원 의원인 기시 노부오(岸信夫)가 그의 친동생이고 부인은 모리나가유업(森永乳業)의 창업자 모리나가 타이헤이(森永太平) 외손녀이다. (여기에서 같은 집안인데 성이 다른 이유는 일본 특유의 데릴사위, 양자 제도 때문임. 양자도 친가뿐 아니라 외가로도 감. 이런 이유로 일본 극우 정치인들, 성이 달라 다른 집안 사람들 같지만 알고보면 다 친척인 경우가 많음). 여기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2차대전까지의 특권층이 현재도 정, 재계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 전범 세력 역시 종전 후 전범으로 처단되지 않고 우리나라의 친일파처럼 미군정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이들은 자신의 과거를 정당화하기위해 극우 발언을 일삼아 대중적 인기와 기득권 유지, 권력획득을 꾀한다. 어떤가, 일제시대 친일 세력이 미국에 의해 구원받아 다시금 기득권층이 된 후에 자신들의 구린 과거를 가리기위해 반공과 안보, 경제성장을 강조하며 불리하면 빨갱이 종북세력 발언을 일삼는 우리네 극보수 세력과 똑같지 않은가.  A급 전범의 외손자와 다카키 마사오의 딸이 정권을 잡은 한일 양국의 마래는 어떠할 것 같은가?

 

내게는 미래를 내다볼 혜안이 없다. 단지 이 현상에 대해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의 강상중 선생님은 이렇게 명쾌히 말씀하셨다는 것을 밝힌다.

 

이렇듯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에게는 애증이 공존하는 평가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은 마치 발 달린 망령처럼 되살아나 '독재자'와 '요괴'의 자식들을 움직이고 있다. 두 사람의 관(棺)에 제대로 못질을 안 한 탓일까.

- 본문 10 ~ 11 쪽에서 인용.

 

* ‘귀태(鬼胎)’라는 표현은 관동군의 독주에서 패전에 이르는 시기를 일본역사의 “비연속적 시대”라고 규정했던 일본의 역사소설작가 시바 료타로가 만든 말이다. 의학적으로는 자궁내 융모막 조직이 포도송이 모양으로 이상증식(異常增殖) 하는 ‘포상기태’를 뜻하지만, 이 책에서는 태아가 아닌 존재로 태어나서는 안 될, 불길한 존재를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 아베 신조와 악수하는 박근혜의 사진이 보고 싶다면 아래 링크 건 곳으로 가 보시길.

 이번 선거 유세 TV 광고 장면이다. "검증된 글로벌 리더십"이라나 뭐라나.

 

복사http://bigmoth.blog.me/80175822279



m******n 2012.12.23. 신고 공감 13 댓글 22
리뷰 총점 종이책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불편한 현실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불편한 현실" 내용보기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강상정, 현무암/이목/책과함께/2012 요즘은 잘 읽지도 않는 종이신문의 정치면 기사를 읽는 것 같은 목 뻐근해지는 불편함에 시달리면서도 마침내 이 책의 종장을 덮게 되었습니다.   이게 나라라고 할 수나 있는 것인지 아닌지도 헷갈리는 만주 괴뢰국에서 이들이 겪은 것이 바로 전후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와 국가 주도형 자본주의와 그를 뒷받침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불편한 현실" 내용보기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강상정, 현무암/이목/책과함께/2012

 

요즘은 잘 읽지도 않는

종이신문의 정치면 기사를 읽는 것 같은

목 뻐근해지는 불편함에 시달리면서도

마침내 이 책의 종장을 덮게 되었습니다.

 

이게 나라라고 할 수나 있는 것인지 아닌지도 헷갈리는

만주 괴뢰국에서

이들이 겪은 것이

바로 전후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와

국가 주도형 자본주의와 그를 뒷받침할만한 보수 정치 노선으로 자리잡음으로서

현재의 한국과 일본이 되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것이

바로 중심내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시 노부스케야 일본인이니만큼

박정희만큼 제가 관심있게 읽지는 않게 되거든요.

 

젊잖게 말하면 공과가 다 많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저자의 표현은 만주괴뢰국이 만든 돌연변이라는 뜻으로 이태, 귀태라는 표현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은 그리 바뀌지 않았는데요

무엇보다 크게 출세를 하고 싶었던 한 남자가

교사직을 버리고 군인으로, 죄익세력으로 마침내 전쟁 영웅으로 출세를 한뒤

눈앞에 다가온 기회를 잡았고

그리고 끝내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 한 이야기로 들리더군요.

그런 기회의 배가 왔을 때 그 배에 오를 수 있는 사람과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사람의 차이는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일단 오른 이상은 별반 큰 차이가 있겠나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뭔가 씁쓸하긴 한데, 그만큼 권력욕은 강한 것이니까요.

 

이 책이 저에게 준 자산이라면 만주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 입니다.

거기에서 활동한 애국지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거기에서 살아남으려 노력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아우성이

딱딱한 인용체에도 불구하고 느껴졌거든요.

 

자.. 이제 좀 편안한 책을 읽으러 가 볼까...

 

 

 

 

r*******n 2013.02.2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를 읽고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를 읽고" 내용보기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둘간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커넥션, 음모가 있었을까? 박정희는 마음의 고향인 일본, 거기의 (일본식 표현으로 하면 막후 실력자인) 기시 노부스케에게 무언가 빚진 것이 있었을까 와 같은, 타블로이드 찌라시 수준의 내용이 있나 싶은 마음을 조금은 안고 이 책을 들었다. 강상중 교수의 책을 읽은 바 있어서, 강교수님의 스타일이 타블로이드 수준으로 글을 쓰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를 읽고" 내용보기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둘간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커넥션, 음모가 있었을까? 박정희는 마음의 고향인 일본, 거기의 (일본식 표현으로 하면 막후 실력자인) 기시 노부스케에게 무언가 빚진 것이 있었을까 와 같은, 타블로이드 찌라시 수준의 내용이 있나 싶은 마음을 조금은 안고 이 책을 들었다. 강상중 교수의 책을 읽은 바 있어서, 강교수님의 스타일이 타블로이드 수준으로 글을 쓰지 않음을 충분히 알았으면서도...적다 보니 스스로 조금 창피한 마음마저 들려고 한다.


(그 누구의 말처럼) 어느 나라건 근대화는 폭력이 수반된,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우리에게는 식민지의 통치를, 그리고 이후 (현대 개념의) 전쟁, 장기 독재와 군부 독재로 그 폭력은 지독히도 이어져왔다.박정희라는 사람은, 그 흐름의 한가운데 있다. 그 사람의 논의, 잘함과 자잘못은 아직도 논의가 끝나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박정희라는 사람의 삶의 궤적을, 기시 노부스케라는 요괴와 짝지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 속에는, 식민-피식민 속에서의 폭력, 지식인의 출세욕, 미국과 세계 최종의 결승 전쟁을 준비하는 꼼꼼하지만 미쳐버린 정신병자, 동족을 팔고 매질해서 한자리 하려는 앞잡이가 각각 똬리 틀면서 자기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이 책의 두 명도 그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한 세상을 정말 풍미했다. 그 속에서, 아무리 초짜 정치인이라지만, 식민 통치국가에 가서 식민지 어로 그 나라의 정치인들에게 정치 한수를 구하고자 하는 그 정신은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간다. 그래서 그자가 쓴 혈서는 정말 그의 진심에서 나온 거였는지 매우 혼란스럽다. 그리고 여기에는 제국의 귀태라고 불리는 일본의 2차 대전 주역들이 나타난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의 교차점으로 괴뢰국이라 불리는 만주국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문관으로 자기의 수완을 부리고 인정받기 시작한 곳이고, 다른 한 사람은 식민지인으로 철저히 스스로를 바꾸고 일본 군인으로서 날개를 펼치기 시작한 곳이다. 또한 박정희의 만주 인맥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고, 나중에 사형 구형도 살려 준다.

책을 보면, 오늘날 정치권에서 말해지는 것 중에 그 기원이 일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이 정도 밖에 안되나 하는 슬픈 마음이 막 끓어오르려 한다. 1925년 치안 유지법 등 사상 통제의 내용을 보면 초등학교 시절에 많이 나왔던 말이 생각난다. [구미의 사조와 가치관이 가져온 시민의 자유를 요구하는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위기를, 천황의 조서는 공덕을 지키고, 질서를 유지하며, 충효의용의 미와 질실강건의 기풍을 높이고 황조황종의 유훈에 따라 국가의 훙륭과 민족의 안영을 도모하여 국민정신을 떨쳐 일으키으로써 극복하자. 기강을 바로 잡고 국가주의를 철저하게 하자고 다그쳤다]

이 번에는 두 사람의 슬픈 공통점이다. 이들은 패자부활전으로 살아남아 그들이 갖기에는 지나칠 정도의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상식이라는 차원에서의 윤리-도덕과는 거리를 두고 있어 보인다.[두 사람은 기사회생으로 부활하여 전후 일본과 해방 후 한국에서 저마다 최고 권력자로 떠올라, 각각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기게 되었다. 역사의 우연 치고는 너무나도 유사한 공통점이 거기에 보인다. 우선 첫째로 냉전이라는 새로운 전쟁의 그림자가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게 되었다. 전쟁 종결은 전쟁 자체의 종결을 의미하기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전쟁의 시작을 의미했다. 미소 대립이라는 거대한 파워 쉬프트는 제국의 귀태들이 새로운 승리자(미국) 아래에서 소생할 무대를 준비했던 것이다. 그것은 오욕으로 뒤범벅이 된 과거의 경력을 지워 없애고 그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부여하는 하늘이 내린 선물처럼 여겨지지 않았을까? 이런 의미에서 정치가가 성공하는 데는 자신의 힘이랄까, 그런 것보다는 운이 7할입니다.라고 했던 기시의 입버릇이 꼭 과장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기시는 그 기회와 운을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틀어쥐는 기술을 익히고 있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시대의 분위기를 읽어내는 민감한 관찰인이었던 것이다.] 기시는 정말 요괴 맞나보다. [두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냉전이라는 호기를 자신들의 권세확대로 이어나가는 데 만주 인맥이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이다넷째로 지적되는 것은, 기시도 박정희도 만주국 건국을 포함해서 전쟁 전의 역사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이제 박정희라는 사람의 경제 모델이 어디서 왔는지 알기 위해 기시가 무엇을 했는지 살펴 보자. [기시는 이미 자유당 의원이 된 첫해, 침체에 허덕이는 일본 경제의 실태를 놓고 중점 산업부문으로의 자원 배분에 의한 자본 축적과, 중공업 진흥에 의한 수출 산업의 육성을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는 한편, 중소영세기업의 보호육성, 사회 보장과 사회 정책의 충실화를 통한 민생의 향상을 주장하고 있었다기본 발상은 만주국의 경사생산 방식에 의한 중공업 진흥과 사회정책의 실험에 있었다박정희 정권은 만주국과 마찬가지로 몇 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서 한국의 산업 구조를 수입대체형에서 수출주도형으로 바꾸고, 나아가 중화학공업화로 발전시켜 나갔다. 다만 박정희의 한국이 국책으로 수출주도형 산업화를 적극 추진함으로써 노동집약 산업을 발전시킨 것은 만주국과는 다른 점이다. 그러나 그것도 군수산업을 타깃으로 한 중화학공업화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고, 자주국방을 지향한 중화학 공업화라는 점에서 만주국과 공통점이 있다 ]


무조건 박정희 정권이 기시를 따라했다고 말할 것은 아니다. 그들도 고민했고 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했다. 하지만, 그들이 잘했다고 말을 듣는 많은 부분은 그 사람들이 남들과 다른 통찰력이나 분석의 눈을 가졌다고 평가해줄 만큼은 아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있으면서 느끼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그들에게는 큰 성장판이 아니었을까? [정권 초기의 경제 정책은 수출주도형 공업화 정책으로 특징지을 수 있겠는데, 경제를 담당할 사람이 부족한 군부 세력이 처음부터 그런 명확한 전망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정책은 경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미국의 간섭이라는 대외 압력과 국내 재계의 요구라는 대내 조건 속에서 수정되며 시행착오를 거쳐 방향을 잡아 나갔다.]


이제 박정희 정권의 철학의 하나인 근대화를 힘껏 파보자. [박정희 정권은 근대화 논리로서 효율화된 동원과 노동, 근검 절약, 집단주의, 욕망의 절제 등을 국민에게 요구했다. 천리마 운동을 통해 자력 갱생과 혁명의식을 붇돋움으로써 사회의 조직화가 침투되는 북한에 대항하기 위해서도 정신 혁명은 빠뜨릴 수 없었다. 이러한 의식혁명운동의 중심 존재로 유신체제를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떠받친 인물이 전전에 만주에서 활동한 이선근이다. 이선근은 만주에 모든 것을 걸었고, 전후에는 서울대 교수가 되었으며, 이승만 정권에서는 문교부 장관과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박정희 정권에서도 권력층을 향한 역사 교육을 담당하는 등 여러모로 중용된 인물이다. 와세다 대학에서 게무야마 센타로나 쓰다 소키치의 영향 아래 역사학을 공부한 이선근은 전후에 자신이 경영하던 신문에 화랑도 연구라는 글을 연재했는데,그것이 건국 이념을 요구하는 당시의 정세 속에서 평판을 얻어 국방부의 정훈국장으로 초빙된다. 화랑은 신라시대에 청년들의 수양과 훈련을 맡은 조직으로, 전시에는 전투부대로서 국가통일을 위해 목숨을 희생했다는 사실에서 이선근은 화랑도를 국가 이념과 연결시켰던 것이다. 화랑도에서 민족정신의 기원을 찾는 신라중심사관은 북한과 대치하며 민족사관을 정립해서 이데올로기 면에서 국내체제를 다잡으려는 박정희 정권에게 유용했다. 이선근은 박대통령에게 국사를 진강하고 또 국무위원 일동에게도 국사를 강론하여 민족 주체사관에 입각한 국사교육을 강화하는 국책수립에 적극 찬동하고, 10월 유신이 선포되자 새로운 국가관과 유신정권의 구현을 위해서 칠순의 노구를 돌보지 않고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강연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철학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에서 만주국의 잔재가 얼마나 스며들어왔는지를 보면서 한심함과 놀라움을 같이 느꼈다. […만주국에서의 비합리 정신주의가 한국사회에도 만연하게 된다…1분간 묵념, 행진, 시국강연 청강, 선전영화 시청, 포스터 작성, 학생웅변대회, 집회와 대운동회 참가 등의 국가의례이러한 것들은 원래 1930년대 만주국의 국가행사재건체조라고 해서 시작한 라디오 체조의 모델은 만주국의 건국체조반공대회나 멸공대회도 거슬러 올라가면 만주국에서 수없이 열린 반공대회건국정신 함양을 위해 만주국 교육청이 주최한 학생웅변대회는 수십년 후 한국에서 실시되는 학생웅변대회의 원형가정의례준칙은 낭비나 허례의식을 삼가는 협화식 결혼식을 상정하고전국 각지에 세워지는 동상 역시 만주국에서 제사지낸 공자나 관우의 재래일 따름만주국에서 행해진 규율화의 방법을 엄밀하게 반복할 수 있는 국가는 박정희 정권기의 한국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새마을 운동에는 온갖 규율화의 방법이 동원오후 6시에 사이렌이 울리는 국기하강식에서는 길을 가는 사람 모두가 그 자리에 멈춰서서 황국 신민의 서사에 해당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암송]


마지막으로 박정희의 평가를 들여다보자. [박정희의 돌격 근대화는 바로 국가에 의해 지도된 변혁과 위로부터의 고도성장을 의미했다. 그것은 최빈국으로 허덕이던 해방 후의 구식민지를 신흥 산업국가로 변모시키게 되었다. 하지만 위로부터의 변혁은 민주주의 이념을 산 제물로 바침으로써 가능했다. 한국의 현대사는 그러한 이념을 국민 스스로가 정의하고 쟁취해가는 피로 얼룩진 역사였다. 그리고 독재자는 참혹한 최후를 맞이하고 한국은 민주화라는 목표에 도달하면서 독재의 시대는 과거가 되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박정희 정권은 이미 지나간 시간이다. 이제 과거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습관처럼 과거, 아니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꾼다. 그렇다면 이미 끝나버린지 30년이 지난, 그 정권의 시절을 보면서 무척 나아졌어야 할 지금을 느껴야 하는게 마땅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왜 일까 

s*****s 2016.10.1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추천 [서평] 귀태, 마사오 다까끼, 박정희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추천 [서평] 귀태, 마사오 다까끼, 박정희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내용보기
추천 [서평] 강상중, 현무암 저, 이목 역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에게 만주국이란 무엇이엇는가>를 읽고 / 2012. 09., 350쪽, 책과함께홍익표 의원의 '귀태(鬼胎, 태어나서는 안될 존재)' 발언 논란으로 '귀태'라는 단어와 이 책에 대해 관심이 생킨 데다가 페이스북에서 이정희 대표가 소개하여 읽게 되었다.괴물 같은 독재자로 최후를 마친 마사오 다카키,
"추천 [서평] 귀태, 마사오 다까끼, 박정희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내용보기
추천 [서평] 강상중, 현무암 저, 이목 역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에게 만주국이란 무엇이엇는가>를 읽고 / 2012. 09., 350쪽, 책과함께

홍익표 의원의 '귀태(鬼胎, 태어나서는 안될 존재)' 발언 논란으로 '귀태'라는 단어와 이 책에 대해 관심이 생킨 데다가 페이스북에서 이정희 대표가 소개하여 읽게 되었다.

괴물 같은 독재자로 최후를 마친 마사오 다카키, 즉 박정희한테서는 피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그리고 '쇼와의 요괴'로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권세의 정치가로 불렸던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이라는 어두운 과거가 지워지지 않는다.
국가의 재건과 총력안보라는 외형적 '돌격적 근대화'를 달성한 박정희는 한국의 노년층과 보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지금도 '민족중흥의 기수'로 변함없이 살아 있다.
끝없이 권력을 추구한 마키아밸리스트 기시 노부스케야말로 전쟁 전에는 국가개조의 핵심관료로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고, 전후에는 보수합동을 낳은 주인공으로서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 오름과 동시에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의 틀을 만들고 미일안보조약 개정을 주도했다.

이처럼 두 사람에게는 반대의 극단적인 평가가 공존하며, 두 사람은 많은 부분 공통점을 보이기도 한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일제가 전쟁에서 패망하고 해방이 이루어진 후 68년이 지난 후, 박정희의 딸이 한국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가 일본 수상이 된 2013년에 두드러진다. '독재자와 요괴의 자식들'로...

그렇다면 두 사람, 그리고 두 가계의 공통점은 뿌리는 무엇일까?
저자는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의 가계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뿌리를 만주국에서 찾는다. 일제가 대륙을 침략하면서 괴뢰국으로 세운 만주제국. 박정희를 '군인'으로 변신시킨 것도, 기시 노부스케를 '정치가'로 단련시킨 것도 훗날의 '독재자'와 '요괴'의 요람의 땅이었던 만주였다.

만주괴뢰국, 만주제국은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에게 어떤 경험이었고 그들은 어떻게 연결되었나? 왜 그들은 '귀태'라 불리우는가?
이 책은 이 두 가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젊은 시절의 박정희의 맨얼굴, 지금까지 이름 이외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기시 노부스케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일제와 조선인들에게 만주가 어떤 땅이었고, 일제가 만주땅을 어떻게 강점하고 어떤 방식으로 괴뢰국을 세웠으며 그 과정에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
두 사람은 모두 냉전이라는 조건에서 미군에 의해 목숨을 부지하고 복권되었고, 한국전쟁 후 미군의 필요에 의해 집권한 후 만주제국의 경험을 자국에서 실험했다.

독자들은 이 책을 박정희의 통치방식, 근대화 방식과 기시 노부스케의 전후 일본 재건 방식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공통점은 만주제국에 뿌리를 두고 만주인맥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연계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다시는 재발해서는 안되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자의 표현 그리고 홍익표 의원의 주장처럼 그들은 '귀태'가 맞다고 인정한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의 주제는 '귀태'가 아니라 '만주제국'이다. '귀태'는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에 대한 조사와 설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책 속에 단 한 번인가 나올 뿐이다. 홍익표 의원 역시 저자처럼 기본적인 한국현대사 속에서 일반적인 인식을 문장 속에 표현한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홍 의원의 표현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와 새누리당, 극우보수언론은 쌩난리를 첬고 민주당 지도부는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이런 상황은 한국 정치권을 주도하는 인라들의 역사인식이 초라한 것을 떠나 전근대적이라 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이 한국사회를 주도하는 기득권자들이 귀태를 귀태라 주장하지 못하고, 친일파를 친일파로 부르지 못하고, 다까끼 마사오를 다까끼 마사오로 부르지 못하고, 쿠테타를 쿠테라라 부르지 못하고, 친미사대주의를 친미사대주의로 부르지 못하고, 작전권이 없음을 굴욕으로 느끼지 못하고, 경제 예속을 예속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문화 종속을 종속으로 느끼지 못하고, 학문 식민지화를 식민지화로 느끼지 못하고, 분단과 정전체제를 전쟁위기로 느끼지 못하고, 극우세력 콤플렉스를 '국민의 눈높이'로 생각하고, 반북 세뇌를 보편 상식이라 느끼고, 재벌의 착취를 착취로 느끼지 못하고, 비정규직화를 분열책과 노예화로 느끼지 못하면, 우리 사회와 민족은 대를 이어서도 친일파가 득세하여 식민사관이 국사를 대체하는 것을 멍청하게 지켜보게 되고,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해외에서는 미국의 식민지라 손가락질 하는데 독립국가로 자위하고, 극우파시즘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하느님'처럼 전지전능한 북의 '위협'이라는 공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NLL과 같은 종북공세에 끌려다니고, 하루 4~5만원 벌어 재벌과 극우세력에게 5~6만원을 갖다 바치고, 알량한 기득권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짓밟으면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성공과
출세를 향해 질주할 것이다. 어차피 저 성공과 출세의 꼭대기 자리는 1%로 제한되어 있음에도...
2013년 9월 1일 현재 한국인들은 '귀태'를 청산하지 못한 대가를 처절하게 치르고 있다. 부정선거와 유신회귀와 정치공작으로...

참고로, 박정희(다까끼 마사오)가 귀태(鬼胎)인 이유 중 몇 가지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의 내용과 페이스북 친구분의 글을 일부 인용한다.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 견마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 - 만주군관학교 지원서류에서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고 쓴 혈서에 첨부되었던 박정희의 각오 내용

"박정희는 1940년 4월 만주신경군관학교 2기생으로 입교하고, 2년만에 수석 졸업, 일본 육사 57기에 3학년으로 편입하고 1944년 4월 졸업한다. 이 후 1944년 7월 만주군 보병 제 8사단에 배속되었고, 12월 23일 정식 만주군 소위로 임관되었다. 박정희의 보병 제8사단은 중국 항일 팔로군부대와의 전투가 주 임무였다."

"해방 후 박정희는 조선경비사관학교 2기생으로 입학 단기과정을 마치고 한국군에서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군인생활을 시작한다.
1948년에는 육군본부 작전정보국에 근무하던 중 여수 순천 사건이 발발하고 한국군 내의 남조선로동당 조직책이었던 박정희도 체포되어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2심에서 징역10년으로 감형됨과 동시에 형 집행정지 선고를 받고 강제 예편된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박정희는 다시 현역 소령으로 복귀하였다."

"만주군관학교 출신 선배 인맥의 지원에 힘입어 군부 내에서 인맥을 확보하였던 박정희는 1961년 5.16일 군부 쿠테타를 일으켜 장면정부를 무너뜨리고 군사정부를 수립하였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국정원은 박정희가 군부쿠테타를 일으킨 직후 본격적인 군사정부수립 이후 설립하였던 비밀정보조직인 중앙정보부를 전신으로 하고 있다."

"3선에 성공한 박정희는 급기야 1972년 10월 유신을 단행해 기존 헌법을 전면 중단 폐기하고 대통령 명령에 의한 초법적 긴급조치권, 국회의원정수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임명할 권리, 대통령 간선제 및 6년 연임제 등을 포함하는 유신헌법을 발효시킨다. 이 과정에서 국회는 무력화되고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은 금지된다."

[ 2013년 9월 01일 ]

 

c****n 2013.09.0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역사는 잊혀지지 않는다.
"역사는 잊혀지지 않는다." 내용보기
만주 괴뢰국이라는 나라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곳에서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와 국가 주도형 자본주의와 그를 뒷받침할만한 보수 정치 노선으로 자리잡음으로서현재의 한국과 일본이 되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인거 같다.  크게 출세를 하고 싶었던 한 남자가교사직을 버리고 군인으로,죄익세력으로마침내 전쟁 영웅으로 출세를 한뒤눈앞에 다가온 기회를
"역사는 잊혀지지 않는다." 내용보기

만주 괴뢰국이라는 나라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곳에서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와 국가 주도형 자본주의와 그를 뒷받침할만한 보수 정치 노선으로 자리잡음으로서

현재의 한국과 일본이 되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인거 같다.

  

크게 출세를 하고 싶었던 한 남자가

교사직을 버리고 군인으로,

죄익세력으로

마침내 전쟁 영웅으로 출세를 한뒤

눈앞에 다가온 기회를 잡았고

그리고 끝내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 이야기,


마지막으로 남기고싶은 말은 책을 좀 더 쉽게 쓸 생각은 없었던건지..

오래전 신문기사를 읽는 것처럼 딱딱하게 느껴져 읽는데 고전을 면치 못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p*******9 2017.10.0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식민지·전쟁·쿠테타·독재를 누린 ‘만주군 장교’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식민지·전쟁·쿠테타·독재를 누린 ‘만주군 장교’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내용보기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77식민지·전쟁·쿠테타·독재를 누린 ‘만주군 장교’―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강상중·현무암 글 책과함께 펴냄, 2012.9.20. 17000원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서는 이가 민주 아닌 독재를 휘두른다면, 이들은 정치만 독재로 휘두르지 않습니다. 이른바 독재정권은 군대를 비롯해서 공공기관하고 학교도 독재로 휘두르려고 해요. 어느 곳에나 계급이나 신분으로
"식민지·전쟁·쿠테타·독재를 누린 ‘만주군 장교’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내용보기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77



식민지·전쟁·쿠테타·독재를 누린 ‘만주군 장교’

―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강상중·현무암 글

 책과함께 펴냄, 2012.9.20. 17000원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서는 이가 민주 아닌 독재를 휘두른다면, 이들은 정치만 독재로 휘두르지 않습니다. 이른바 독재정권은 군대를 비롯해서 공공기관하고 학교도 독재로 휘두르려고 해요. 어느 곳에나 계급이나 신분으로 틀을 지으려 하지요. 이러면서 사람들이 독재정권을 우러르도록 교과서를 바꾸려 해요. 역사도 사회도 문화도 온통 ‘독재자 섬기기’로 갈아치우려 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독재가 아닌 민주라고 하지만, 정치 우두머리는 역사 교과서를 그들 멋대로 주무르려고 합니다. 글이나 그림이나 춤이나 노래로 문화와 예술을 밝히려고 하는 이들까지 멋대로 휘두르려고 해요. 이른바 ‘국정 역사교과서’나 ‘문단 블랙리스트’는 독재정권이 보여주는 숱한 몸짓 가운데 하나라고 느낍니다.



박정희는 “모든 조건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저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스스로 “일사봉공 박정희(一死奉公 朴正熙)”라고 반지(半紙)에 혈서를 써서 동봉한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를 만주국 치안군 군정사 정모과로 보냈던 것이다. 거기서 “일본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을 만한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의 굳은 결심”을 피력하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충성을 다할 각오”를 표명했다. (121쪽)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책과함께,2012)는 강상중·현무암 두 분이 글을 써서 지은 책입니다. 일본 사회를 제국주의와 반민주와 반평화로 이끄는 데에 앞장선 ‘만주국 권력자’라는 기시 노부스케하고, 전쟁과 쿠테타로 독재를 누리면서 사회를 윽박지른 ‘만주군 장교’ 박정희를 서로 맞대면서 역사라는 흐름에서 두 ‘독재자’가 어떤 몸짓으로 어떤 일을 꾀했는가를 찬찬히 짚습니다.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기시 노부스케가 외할아버지라고 합니다. 헌법재판소 탄핵을 앞둔 박근혜는 박정희가 아버지라고 하지요. 두 사람과 두 사람, 모두 네 사람은 서로 어떻게 닮았을까요. 이들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를 어떻게 주무르려는 마음일까요.



여순봉기로 숙군의 태풍이 몰아치며 극형에 처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궁지에서 그를 구해 준 사람은 백선엽과 정일권이라는 만주국 육군군관학교의 ‘선배’들이었다. 그 후 군부 내에서 진급이나 군사쿠테타 계획에서도 박정희의 만주 인맥은 숨은 존재감을 나타낸다. (189쪽)



  ‘만주군 장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에 붙어서 살아남는 길을 걸었습니다. 해방이 된 곳에서는 갈 곳이 없을 뿐더러 친일파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으나 이 나라에 전쟁이 터집니다. 일제강점기 만주국은 ‘만주군 장교’를 키웠고, 이이는 한국전쟁을 발판 삼아서 친일파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길을 찾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 이어진 이승만 독재를 사람들이 드디어 갈아엎었는데, 갈아엎기는 했어도 정권을 잡은 정치인은 나라를 제대로 이끌지 못했어요. 이 틈에 ‘만주군 장교’는 옛 ‘만주군 선배’와 하나가 되어 군사쿠테타를 일으킵니다. 이러고서 스무 해 가까이 이 나라에 군사독재를 속속들이 심어 놓습니다.



소련 혹은 북한과 대치하는 방공(防共) 국가, 집권적인 군부독재, 반공적인 국민통합 이념, 국방산업과 연계된 중화학공업화, 관료 주도에 의한 계획경제적인 자본주의산업의 구축 등 만주국과 박정희의 한국 사이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유사 관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218쪽)


박정희가 쿠테타 이후에 ‘재건체조’라고 해서 시작한 라디오체조의 모델은 만주국의 건국체조였다.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 하에서 개최된 반공대회나 멸공대회도 거슬러 올라가면 만주국에서 수없이 열린 반공대회에 가 닿는다. (270쪽)



  군사독재로 사회가 억눌리던 때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무렵 이루었다는 경제발전은 재벌 주머니에 돈이 들어갔어요. 수많은 어린 노동자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1970년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외마디소리를 남기고 몸을 불사른 젊은 넋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사독재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았고, 더 무서운 유신독재로 억누르려고 했어요.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는 이러한 사회 흐름을 ‘만주국’에서 뿌리를 찾으려 합니다. ‘만주군 장교’로 친일부역을 했던 독재자는 만주국에서 배운 대로 한국에서 독재를 펼쳤고, 만주국에서 함께 친일부역을 하던 선배를 비롯해서 ‘만주국 소속 조선인 친일 관리’가 바로 한국에서 군사독재를 버티는 바탕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만주의 친일조선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부류는 만주국 소속 조선인 관리들이다. 만주국에서 근무한 조선인 관료는 대략 3천여 명으로 추산된다 … 만주국 최대의 친일조적인 협화회에는 만주국의 조선인 관리나 유력자들이 간부로 활동하기도 했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기 최대의 어용학자였던 이선근이 협화회 간부 출신이었다 … (정일권은) 1960년대에 박정희가 한일회담을 진행할 때는 외무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일제로부터 독립했다는 나라의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모두 만주군 장교 출신이니, 한일 국교 정상화(한일회담)가 과연 정상으로 되었겠는가. (304, 305, 306쪽)



  한국이 ‘민주’ 나라이거나 ‘독립한’ 나라라 한다면 참말로 민주스럽고 독립한 나라다운 모습이어야지 싶습니다. 독재자를 추켜세우는 국정교과서는 하루빨리 걷어치워야 할 테고, 일본군 성노예가 되어야 했던 사람들 넋을 달래려는 ‘소녀상’은 일본 대사관 앞뿐 아니라 청와대 앞에 얼마든지 세울 수 있어야지요. 아니, 일본 총리실 앞에도 소녀상을 세운다거나 도쿄 한복판에도 소녀상을 세워서, 일본이라는 나라가 지난날 저지른 일을 되새기면서 돌아보도록 이끌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이 나라가 민주나라라 한다면 어용학자가 발을 붙일 수 없어야 해요. 이 나라가 독립한 나라라 한다면 전쟁무기와 군대는 이제 멈추고 남북녘이 평화로이 어깨동무하는 길로 거듭날 수 있어야겠지요.



“경험도 없는 우리한테는 그저 맨주먹으로 조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욕에 왕성합니다. 마치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청년 지사와 같은 의욕과 사명감을 품고 그분들을 모범으로 삼아 우리나라를 빈곤으로부터 탈출시키고, 부강한 국가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오카모토 미노루 중위 즉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이 발언을 (1961년 11월 11일 일본 수상 관저) 오찬회에 참석한 인사들은 어떤 생각으로 듣고 있었을까? (19쪽)



  식민지·전쟁·쿠테타·독재를 누린 ‘만주군 장교’는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역사에서 이 ‘만주군 장교’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역사 교과서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식민지가 키우고 전쟁이 먹여살리고 쿠테타로 총칼을 거머쥐고 독재로 평화·민주를 짓밟은 ‘만주군 장교’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울 만할까요?


  이제부터 이 나라가 나아갈 길은 참다운 민주와 평화여야 할 테지요. 아직도 군사독재 얼거리가 단단한 터라 부정부패와 불평등이 판치고 말 테지요.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책은 이제 우리가 이 땅에서 ‘만주군 장교’ 뿌리를 잘라내고 몸통도 잘라내면서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밝히지 싶습니다. 대통령 탄핵부터 비롯해서 모든 썩은 몸통을 내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빕니다. 2017.1.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이달의 사락 h*******e 2017.01.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