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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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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조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사상을 다룬 연구서다. 우암은 일생 주자학을 깊이 연구하고 공자의 《춘추》 속에 담긴 대의를 구현하였으며, 전쟁과 반란 등이 계속되어 무너진 인륜적 질서를 회복하는 데 절의의 숭상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이를 위해 전력을 쏟은 인물이다. 우암의 공부와 실천의 핵심주제는 의리였다. 우암은 정몽주, 조광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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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조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사상을 다룬 연구서다. 우암은 일생 주자학을 깊이 연구하고 공자의 《춘추》 속에 담긴 대의를 구현하였으며, 전쟁과 반란 등이 계속되어 무너진 인륜적 질서를 회복하는 데 절의의 숭상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이를 위해 전력을 쏟은 인물이다. 우암의 공부와 실천의 핵심주제는 의리였다. 우암은 정몽주, 조광조, 이황, 이이, 조헌, 김장생의 이학과 예학을 이어 집성했으며, 이항로, 최익현, 유인석으로 이어지는 의리학파의 연원이 된다.
 

주자학자 우암에 대한 학계의 비판은 그의 존주(尊周)사상, 북벌사업, 당쟁의 책임문제, 학풍의 편벽성 문제 등으로 정리된다. 우암의 모든 언행에 깔려 있던 바탕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조문도 정신이다. 우암 사상의 중핵은 직(直)으로, 공자, 맹자, 주자 세 성인이 서로 주고받은 마음의 법이 오직 '직' 한 글자라고 강조했다. 인의예지효제충신서 등과 같이 유학사상을 포괄적으로 드러내는 핵심 덕목과는 달리 직은 성(誠)과 경(敬)과 함께 성리학에서 부각된 개념이다. 정자를 중심으로 하는 낙학에서 경을 중시했다면, 주자를 중심으로 하는 민학에서는 직을 강조한다. 주자는 임종 시 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학문하는 요령은 오직 일마다 그 옳음을 추구하고 그릇된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를 오래도록 하면 마음과 이치가 하나가 되어 저절로 그 발동하는 것이 모두 사악하고 굽은 것이 없게 된다. 성인이 만사에 대응하는 원칙과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는 원칙은 오직 '직(直)'일 따름이다."(52쪽)

 

우암의 《춘추》 의리는 복수설치, 존주양이, 문명의 유지라는 차원에서 논의된다. 이런 의리학의 연원을 저자는 석담, 중봉, 석실에서 찾는다. 우암의 의리학은 가학의 영향도 있다. 가령 우암의 부친 송갑조는 매월당 김시습과 기묘정신을 강조하고 율곡을 강조하였다. 우암의 의리학은 율곡의 《석담일기》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석담일기》는 율곡이 속론을 의식하지 않고 솔직하게 당시의 현안들을 평론한 일기 형식의 글인데 율곡이 그의 시대를 평가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동방의 《춘추》'라 불리기도 한다. 율곡이 주로 해주 석담에서 기술하고 정리하였기에 《석담일기》라 불리지만 율곡 문집에 수록될 때의 이름은 《경연일기》였다. 중봉 조헌(1544-1592)은 율곡의 문인이고 사계와는 동문이자 친구로, 우암은 그를 사숙하였다. 또한 석실 김상헌(1570-1652)을 대의의 종주로 인정하고 그의 문하에 나아가는데 이때 우암의 나이 39세이고 석실의 나이 75세 때이다.

 

저자는 19세기 화서학파를 우암학파의 학통을 이어받은 학파로 규명한다. 화서 이항로(1792-1868)를 종장으로 하는 화서학파는 위정척사운동의 태두다. 화서는 이기론에서는 퇴계를, 의리론에서는 우암과 율곡을 존숭했다. 그래서 의리학파라고도 불린다. 화서학파는 한말 위정척사파와 창의호국파의 근간이 되는데, 위정척사파의 대표적 인물로는 중암 김평묵, 성재 유중교, 면암 최익현, 의암 유인석이 있다. 화서는 율곡보다 우암을 더 흠모했는데, 북벌의 이념, 존주대의, 정학(正學)의 숭상과 사설(邪說)의 식멸, 주자학적 명리(明理), 선현과 절의의 숭상 등 우암의 철학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특히 화이론은 정사론으로 변모해 서학배척론과 존주양이의 사상적 틀이 되었고 조선의 문화적 주체성과 민족적 주체성을 강조했다.

 

나는 애초에 우암과 백호 윤휴, 명재 윤증과의 관계를 저자가 어떻게 풀어냈는지 몹시 궁금했다. 송시열을 사이비 북벌론자로 규정한 역사학자 이덕일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와 《윤휴와 침묵의 제국》을 읽은 터라 저자의 윤휴에 대한 입장 표명이 더더욱 궁금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저자는 우암의 사상적 라이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그저 "우암은 윤휴를 대표적인 이단 사설의 하나로 규정하였고 그와 관련된 일들을 음사로 규정한 일이 있다"고 지적할 뿐이다. 허나 다행히도 우암과 남인의 영수 미수 허목(1595-1682)과의 입장 차이와 예송논쟁이 갖는 의미는 자세히 다루고 있다. 우암과 미수는 각각 신학(新學)인 주자학과 고학(古學)이라 불린 한학의 상이한 입장에서 예의 실제적 적용, 북벌의 대의 여부, 절의의 문제에 대해 선연히 대립각을 세웠다. 잘 알다시피, 미수는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이 추앙한 대유였다. 

z***a 2013.03.0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