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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탈렌』우리의 삶, 소멸을 말하는 작품
"☆『나프탈렌』우리의 삶, 소멸을 말하는 작품" 내용보기
시골에 가면 시어머님이 우리가 잘 방에 이부자리를 내놓으시는데, 나프탈렌 냄새 때문에 코를 잡아 쥔다. 숨을 쉴수도 없을만큼 나프탈렌 냄새가 코를 찌른다. 볕 좋은 날 옥상에 말리면 좋으실것을, 힘에 부치시는지 장롱에 나프탈렌을 많이 넣어 두신다. 좀을 예방하기 위해 넣어두는 나프탈렌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부피가 줄어든다. 자신의 몸을 희생시켜서 점점 작아지며, 결국엔
"☆『나프탈렌』우리의 삶, 소멸을 말하는 작품" 내용보기

시골에 가면 시어머님이 우리가 잘 방에 이부자리를 내놓으시는데, 나프탈렌 냄새 때문에 코를 잡아 쥔다. 숨을 쉴수도 없을만큼 나프탈렌 냄새가 코를 찌른다. 볕 좋은 날 옥상에 말리면 좋으실것을, 힘에 부치시는지 장롱에 나프탈렌을 많이 넣어 두신다. 좀을 예방하기 위해 넣어두는 나프탈렌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부피가 줄어든다. 자신의 몸을 희생시켜서 점점 작아지며, 결국엔 한 조각으로 남다 스러진다.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한 사람으로 왔다가 나이가 들수록, 죽음이 가까워 올수록 점점 스러지는 존재. 나프탈렌처럼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제 죽음이후의 우리의 삶은 사람의 마음속에만 존재하게 된다. 그런 걸 생각하면, 우리의 숙명인줄 알면서도 어쩐지 슬프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놓아두고 발걸음이 떨어질까. 너무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워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비움의 미학을 배워야 하는데, 무슨 욕심이 그리 많은지 더 갖고 싶어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프탈렌』은 이러한 우리의 삶과 비슷한 면, 이십대에서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산속에 위치한 하늘수련원을 배경으로 수련원에서 묵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왔던 삶, 현재의 삶, 그들의 마음속 생각들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우리 모두는 나이를 떠나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나프탈렌처럼 백가흠의 작품은 어쩌면 다가올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늘수련원에는 5호방에 폐암 투병을 하고 있는 김양자와 양자의 어머니 김덕이 씨가 양자를 보살피고 있다. 바로 옆방 3호방엔 감암 투병을 하고 있는 사십대 중반의 남자가 있고, 6방에는 시인이라는 60대 남자가 머물고 있다. 하늘수련원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은 예전엔 목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책 속의 주요인물은 백용현과 최영래, 김덕이, 공민지다. 60대 남자 백용현은 대학교 교수였으며, 그가 정년을 앞두고 있었을때 공민지는 백용현의 새로운 조교로 왔다. 65세가 된 백용현은 이십대 중반이 된 공민지의 젊음을 보고 부러워한다. 젊은 여자만 상대해 왔을 정도로 그는 늙는게 싫었다. 늙어가는 몸, 잘 보이지 않는 눈, 이 모든게 싫었다. 공민지는 과거 애인과 4년을 사귀었고, 헤어진지 3년이 지났지만, 어쩐일인지 과거 애인이 결혼을 했음에도 한번씩 만나는 관계였다. 끊어내야 함에도 끊지 못하고 그렇게 일년에 한두 번씩 만나고 있다.

 

북에 아내와 어린 아들을 두고 내려온 최영래 또한 북한에서의 자신의 삶을 회상한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할 교도소에서 근무했던 그는 돈을 받고 누군가를 빼주려다 걸렸고, 혼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 하늘수련원 일을 도우며 살고 있지만, 그가 어떠한 일을 했는지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다. 딸이 폐암으로 수련원에 들어온 뒤로 찾아오지도 않는 사위가 야속하고 어려운 김덕이씨는 딸을 위해 자신의 몸은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고 병간호를 한다. 아버지의 죽음, 키워준 엄마의 죽음을 경험했다. 딸을 되살리기 위해 애쓰는 김덕이 씨는 우리 모두의 엄마이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할 것 같다.

어떻게든 죽음에게서 멀어지고 싶은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늘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백가흠의 『나프탈렌』은 죽음, 그에 따른 소멸을 말하는 작품이었다. 모든 것을 비우게 되면 비로소 죽음도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일까. 한번쯤 우리의 삶에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글이었다. 소멸하는 삶, 어느 순간에 나프탈렌처럼 다 스러지고 만다. 냄새만 남기고 형체를 잃어간다.

백가흠의 글은 이 책으로 처음 만났는데, 역시 새로운 작가의 작품을 알아간다는 건 좋은 일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3.09.04. 신고 공감 22 댓글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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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탈렌] 난 백가흠 님에게 락스를 원했다
"[나프탈렌] 난 백가흠 님에게 락스를 원했다" 내용보기
휘발성 강한, 백색의 좀약. 작년 <힌트는 도련님>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백가흠 님의 첫 장편소설 <나프탈렌>. 단편소설들에서 느꼈던 ‘나쁜’ 이야기의 치명적인 매력이 소설 제목처럼 다소간 퇴색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첫 장편이라 기대가 컸었는데, 백가흠 님이라면 ‘뭔가 제대로 센 녀석’이 ‘짠’하고 나올 줄 알았는데…. 아쉽다.   나프탈렌에는 요사 식의 유머는 없었
"[나프탈렌] 난 백가흠 님에게 락스를 원했다" 내용보기

휘발성 강한, 백색의 좀약. 작년 <힌트는 도련님>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백가흠 님의 첫 장편소설 <나프탈렌>. 단편소설들에서 느꼈던 ‘나쁜’ 이야기의 치명적인 매력이 소설 제목처럼 다소간 퇴색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첫 장편이라 기대가 컸었는데, 백가흠 님이라면 ‘뭔가 제대로 센 녀석’이 ‘짠’하고 나올 줄 알았는데…. 아쉽다.

 

나프탈렌에는 요사 식의 유머는 없었다

 

진부함과 진지함이 의기투합한 듯한 느낌이랄까? 바르가스 요사 식의 ‘복잡한 구성’(동일한 시기로 귀결되나, 등장 인물의 다양한 시점으로 재구성된다)이 조금은 소설에 집중하게 만들었지만, 그다지 신선하진 않다.

 

다시 '왜 소설을 읽는가?'

 

‘소설을 왜 읽는가?’에 대한 답을, 박웅현 님은 ‘인생의 지도 한 장’을 받아 드는 것이라고 했고, 천명관 님은 <나의 삼촌 브루스 리>에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가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두 작가의 말과도 다르지 않다. 유한한 삶에서 경험하지 못한 갖가지 삶을 대신 살아보고 싶은 욕망에서다. 그것이 세기의 사랑이든 불륜, 죽음, 전쟁과 멸망이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삶의 여정이 소설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가흠 님이 이번에 펼쳐 보인 ‘삶’은 조금은 허망하고 진부했다. 어쩌면 우리네 삶 자체가 이토록 진부하고, 허망할 지도 모를 일이다.

 

원형의 공간, 하늘수련원 사람들

 

소설의 주된 공간은 전주 근처 만공산의 하늘수련원이다. 환자들이 요양을 와 쉴 수 있는 공간인데, 이곳에서 모든 인물들이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는다. 폐암을 앓고 있는 딸 이양자와 함께 이곳을 찾은 김덕이 여사, 정년 퇴임을 앞둔 백용현 교수, 그의 대학원 조교 공민지, 하늘수련원의 실질적인 실력자 최영래 등이 소설의 중심 인물 들이다. 딸을 점령한 암은 치유했지만, 자신을 엄습한 암세포에 죽음을 맞이한 김덕이 여사, 30년 만에 시한부 선고를 받고 백용현을 찾아온 첫 번째 부인 손화자, 가족을 두고 월남하여 정착했지만 뜻하지 않게 2번의 살인을 저지른 최영래 등이 비중 있게 다뤄지지만, 난 누구보다 백용현 교수와 공민지의 이야기가 눈에 밟혔다.

 

구타유발자와 이적요 사이

 

권위와 위선의 상징인 백용현, 아버지를 잃은 상흔을 간직한 그지만, 악착같이 욕망을 좇는 현실주의자다. 영화 <구타유발자>에 등장하는 성악과 교수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반면 공민지는 백 교수의 치근거림에 경악하지만, 한편으로는 유부남인 예전 남친과 쿨하게 섹스를 즐길 정도로 이중적인 면모를 보인다. 신문 가십란에 자주 등장하는 ‘교수와 여제자’류의 스토리지만, 나름 반전이 있다.

 

어느 날(손화자의 죽음을 마주하고 쓰러진 이후)인가, ‘잠자는 것마저도 고된 노동으로 여길’만큼 한 번에 늙어버린 백용현은 삶의 비루함, 덧없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하루하루 자신을 유폐시킨다. 죽음에 가까운 나이, 현실을 인식하게 된 이후 백용현은 그야말로 존재감 없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룸싸롱에서 200만원이나 바가지를 쓰거나, 거칠게 수음을 하는 장면에서는 비루한 노년의 연민마저 느껴졌다. 소설 <은교>에서 나름 플라토닉 러브를 꿈꿨던 이적요 시인의 그것과도 겹친다.

 

까닭없는 연민과 다독임, 때론 독이 되는 법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 일상을 보내던 중, 공민지가 그를 찾아온다. 폭우에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게다가 백 교수의 집에서 샤워를 하고, 그의 셔츠와 파자마를 걸치고, 급기야 소파에서 대자로 뻗어 잠이 든 그녀. 전 남친의 아내(일본인인데다가 아이를 엎고 한여름 무더위에 그녀를 찾았었다. 자신의 남편을 놓아달라며 서럽게 울면서)의 출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까닭 없는 서러움에, 막막함에 눈물을 쏟는다. 압권은 아이처럼 통곡하며 우는 백 교수를 엄마처럼 토닥이고 있는 장면이다. 공민지 자신도, 백용현도 이유를 모른 채 ‘다독임’에 몸을 맡긴다.

 

당신은 지금껏 몇 번이나 '안아달라'는 부탁을 거절했는가?

 

내가 이 장면이 와 닿았던 이유는, 죽음을 앞둔 손화자가 백용현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내내 걸렸기 때문이다.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나눈 대화는 이렇다. ‘나 좀 안아주라’는 손화자(유방암으로 한 쪽 가슴이 함몰된 상태로)의 부탁을 백용현은 외면했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을 알지 못한다. 시간이 흐른 후에 그 마지막에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이라도(과거에도 몇 번 있었지만) 누군가가 내게 ‘안아줘’라 부탁할 때는 아무 토 달지 않고, 꼬옥 안아주겠다고. 그게 한 존재에게 한 뼘만큼의 온기를 전할 수도, 생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백가흠 님에겐 락스가 있잖아요. 다음엔 꼭...

 

나프탈렌과 표백은 어감상 비슷하게 다가온다. 표백이 락스에 의한 것이라면, 좀(곰팡이) 방지는 나프탈렌의 의무라 할 수 있다. 표백은 락스와 맞닿는다. 검정 셔츠를 하양 셔츠로 바꾸는, 즉 어제의 도둑이 오늘의 목사로 개과천선하는 과정을 표백이라고 한다면, 어제의 ‘나’는 오늘의 ‘좀더 작아진 나’로 바뀌는 정도가 좀 방지라 하겠다. 난 백가흠 님이 ‘락스’를 무기로 ‘표백’같은 이야기를 쓰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프탈렌’은 서글프게 늙어가는 우리네의 삶 자체가 아닐까 싶다. 좀이 슬지 않도록, 자신의 몸을 갉아가며 그것에 집착하는 정물. 그 집착의 대상이 돈이나 섹스일 수도, 건강이나 근거 없는 관심일 수도 있다. 이는 ‘내’가 아닌 ‘남’의 시선이라면 분명 덧없고, 허망하다. 하지만 우리 생은 남이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사는 것. 조용히 하루하루 휘발하며, 또 조용히 생을 마치는 ‘나프탈렌’의 그것처럼 말이다. 한편으론 다음 번 백가흠 님의 작품에서는 ‘락스’를 통한 무언가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t******2 2012.10.29. 신고 공감 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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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탈렌, 결핍을 간직한 채 사라져간 그들 모두 영면하시길
"나프탈렌, 결핍을 간직한 채 사라져간 그들 모두 영면하시길" 내용보기
60대 노인의 사랑 이야기가 이렇게 쉽게 다가오리라 생각 못했다. 그건 그들의 치열했던 20대와 30대를 넘어 60대까지 이어온 사랑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암에 걸린 손화자가 백 교수 연구실에 찾아와 너가 존재했었던 걸 확인하러 왔다 이야기할 때 가슴이 먹먹했다. 사랑했다는 걸 확인하려는 게 아니라 존재했었던 걸 확인하려 한다... 공 조교 앞에서 파렴치하게 보였던 백 교
"나프탈렌, 결핍을 간직한 채 사라져간 그들 모두 영면하시길" 내용보기

60대 노인의 사랑 이야기가 이렇게 쉽게 다가오리라 생각 못했다.

그건 그들의 치열했던 20대와 30대를 넘어 60대까지 이어온 사랑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암에 걸린 손화자가 백 교수 연구실에 찾아와 너가 존재했었던 걸 확인하러 왔다 이야기할 때 가슴이 먹먹했다.

사랑했다는 걸 확인하려는 게 아니라 존재했었던 걸 확인하려 한다...

공 조교 앞에서 파렴치하게 보였던 백 교수도 결국 사랑을, 사람을, 자신이 함께했던 시간을 잃고 나자 맥없이 무너져버린다.

참회하듯 조용하고 쓸쓸한 마지막을 택한 백 교수의 처절한 외로움이 느껴지는 듯해 내내 먹먹했다.

 

나 좀 안아주라는 말이 마지막이었다는 게, 그걸 한 번 안아주지 못해 끝끝내 후회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결핍을 간직한 채 사라져간 그들 모두 편안게 영면하시길...

j****k 2012.09.1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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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없이 사라지는... [나프탈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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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흔히 어른들이 좀약이라고 옷장에 넣어두거나 화장실에 걸어 두곤 했던, 지금은 발암물질이라고 해서 자취를 많이 감춰버린 것이 바로 나프탈렌입니다. 하얗고 동그란 모양 때문에 아이들이 사탕인줄 알고 먹을 수도 있어 주의를 요한다는 섬뜩한 경고가 있는 이 승화성 물질은 걸어두면 어느새 점점 작아져 없어져버립니다. 그래서인지 소설 <나프탈렌>에서도 죽음이 참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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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흔히 어른들이 좀약이라고 옷장에 넣어두거나 화장실에 걸어 두곤 했던, 지금은 발암물질이라고 해서 자취를 많이 감춰버린 것이 바로 나프탈렌입니다. 하얗고 동그란 모양 때문에 아이들이 사탕인줄 알고 먹을 수도 있어 주의를 요한다는 섬뜩한 경고가 있는 이 승화성 물질은 걸어두면 어느새 점점 작아져 없어져버립니다. 그래서인지 소설 <나프탈렌>에서도 죽음이 참 많이도 나왔습니다.

 

 만공산에 있는 하늘수련원과 K대학 국문과를 배경으로 딸 이양자의 폐암을 치료하러 수련원에 들어온 김덕이, 정년을 앞둔 K대학 국문과 교수 백용현과 조교 공민지, 북에서 넘어온 최영래와 수련원 인부들이 각기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갑니다.

 

 우리네 삶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것을 나타내려는 것인지 각자의 인물들이 자신의 눈으로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하고 또한 그것이 인물이 바뀜에 따라 전환되고 겹쳐집니다. 자칫 딴 생각을 하다보면 다른 이의 시선을 쫓아갈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위에서 죽음이 많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하늘수련원의 원장의 노모의 죽음을 시작으로 해서 딸의 폐암을 지극정성으로 완치시키지만 자신은 위암을 얻어 세상을 떠나는 김덕이 여사로 마무리가 되는데, 그 사이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는 갈등을 해소하고 수련원에서 죽음을 맞는 백용현, 여름내 장마로 인해 소일거리로 노름을 하다가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르는 인부들의 이야기도 전개됩니다. 소설 속에는 치유, 헤어짐, 만남도 있으나 역시 중심이 되는 사건은 죽음이었습니다.

 

 각각의 인물들이 개성이 넘치지만 가장 눈길이 가는 인물은 바로 백용현이었습니다. 왠지모르게 이적요 시인이 생각나게 백용현은 끔찍이도 자시 몸을 챙기는 이로 죽지 않기 위해 젊어지길 원했으며, 죽기 싫어 좋은 음식을 먹고, 젊은 여자들을 탐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에게 이혼한 첫 번째 아내인 손화자의 죽음은 큰 전환이 됩니다. 충격으로 쓰러지고 방황하면서 권위적이고 괴팍스러운 교수의 모습에서 나약한 노인으로 쪼그라드는 모습은 너무 극적이기까지 했습니다. 특히나 느닷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들은 모두가 후회되는 일 뿐이라며, 도대체 그간 살면서 이런 감정과 기억은 어디에 숨어 있던 것인지 모르겠다는 되뇌이는 대목은 암흑 속에 곧 침잠되어 자신의 존재는 그냥 검은 것으로만 남겨질거라는 그의 생각을 잘 나타내주는 것 같았습니다.

 

 죽음과 사라짐 등을 이야기하고 제목도 언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프탈렌이기에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 산 아래로 내려갈 수 없는 상황에서 쌀이 떨어져 꾸러온 수련원에 같이 요양을 하는 앞집 3호남자에게 쌀을 건네며 쌀은 빌려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는 김덕이 여사의 대사가 더욱 기억에 남는 소설이었습니다.

y********a 2012.10.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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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재구성과 죽음의 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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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의 첫 번째 장편<나프탈렌>은 계간지 <현대문학> 2011년 5월호부터 2012년 5월호에 까지 10회에 걸쳐 이뤄진 연작소설이며 EBS 라디오 연재소설에서 2012년 8월 13일부터 (소설 쓰는 ‘백가흠’이 참여한 낭독의 힘을 포함하여) 2012년 9월11일 까지 총24화까지 연재한 소설이다. 이렇게 그의 작품은 한 번에 구성된 총체적 세계라기보다는 띄엄띄엄하게 촘촘하게 조직된 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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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의 첫 번째 장편<나프탈렌>은 계간지 <현대문학> 2011년 5월호부터 2012년 5월호에 까지 10회에 걸쳐 이뤄진 연작소설이며 EBS 라디오 연재소설에서 2012년 8월 13일부터 (소설 쓰는 ‘백가흠’이 참여한 낭독의 힘을 포함하여) 2012년 9월11일 까지 총24화까지 연재한 소설이다. 이렇게 그의 작품은 한 번에 구성된 총체적 세계라기보다는 띄엄띄엄하게 촘촘하게 조직된 분절된 역사의 ‘편린’이다. 더 나아가 이 소설의 내러티브를 간단하게 묘사해보면,

 

“육체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하늘수련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김덕이 여사와 그녀의 딸 부부 이양자, 민진홍이 큰 축을 이루고 수련원 원장과 최영래, 다른 인부들이 또 하나의 축을 이룬다. 정년퇴직한 백용현 교수는 수련원에 들어 있긴 하지만 그와 조교 공민지의 이야기는 퇴직을 한 학기 앞둔 당시의 도시에서 벌어진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사연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소설은 이 인물들의 시각이 바뀌고 겹쳐지는 데에서 중심을 잡으며 전개된다.

 

폐암 말기 선고를 받기 직전 남편이 어린 제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알게 된 양자는 하늘수련원 황토방으로 들어오고 어머니 김덕이 여사는 자신의 몸이 망가져가는 줄도 모르고 딸을 위해 매일매일 동분서주한다. 혼잣 몸으로 수련원을 경영해나가는 원장은 노망 난 노모를 모질게 대하지만 개울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노모의 죽음을 겪은 뒤로 그 자신마저 정신을 놓아버린다. 혼란에 빠져든 수련원을 둘러싸고 금전 관계로 얽힌 탈북자 최영래와 다른 인부들은 걷잡을 수 없이 사건에 휘말리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한국전쟁 때 겪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노년의 교수 백용현은 30여 년 만에 재회한 전부인 손화자의 죽음을 통해, 삶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주지 않는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 중인 20대 중반의 조교 공민지와의 만남을 통해 죽음의 공포를 털고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이른다.“로 간략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백가흠이 계속해서 세상의 근원 점으로 시작해서 원형을 계속해서 그려나가 듯한 운동으로 그의 디셉션한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면 예전에 그의 단편에서 보여주듯이 폭력은 과도하며 서사는 쉽게 봉합되지 않은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폭력의 근원에는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을 억지로라도 끌어오는 듯 한 인상이 짙게 베여있다.

 

언제나 그랬다.

 

최근에 <더 송>이라는 연작소설 통해서라도 그 증명의 실체는 확실해져갔는데. 백가흠의 세계는 지금-여기의 화두는 모두 과거에 발생한 충격적 사건에서 파생되었다고 믿는 형이상학적 과거의 세상의 한 단면으로 믿고 있는 편이다. 여기에 서사들은 굉장히 복잡다단하도록 기록되어져 있다. 여기에는 ‘죽음’ 즉 데드타임의 존재가 현대인의 감각을 ‘불안’에 떨게 만든다. 그 멈출 수 없는 형식은 ‘공포’를 만들어 냈으며 그 형상들은 비현실적인 존재들이 마치 불가능한 현실이 재현되는 살아난 좀비들처럼 현실적인 공간의 주체로 탈바꿈하는 전환의 시대를 긍정하는 동시대적인 문제가 되었다. 비동시적인 동시성의 초월적인 부정, 이러한 풍경은 알랜 바디우가 말하는 “남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하는 ‘회생을 통한 구원’의 의미”를 떠올리게 만든다.




n*****m 2012.09.2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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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도 잡히지 않는 나프탈렌적(?)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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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내 마음이 흐물흐물 녹는다. 눅눅해진 마음의 습기를 제거할 한 줌의 나프탈렌을 강렬히 열망한다. 머지않아 비는 그칠 것이고 이런 나의 마음도 자연스레 차분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한 번 습기를 머금은 나프탈렌이 결코 처음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비에 젖어 서러웠던 기억만큼은 강렬히 내 곁을 따라다닐 것이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소설
"잡아도 잡히지 않는 나프탈렌적(?) 인생" 내용보기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내 마음이 흐물흐물 녹는다. 눅눅해진 마음의 습기를 제거할 한 줌의 나프탈렌을 강렬히 열망한다. 머지않아 비는 그칠 것이고 이런 나의 마음도 자연스레 차분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한 번 습기를 머금은 나프탈렌이 결코 처음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비에 젖어 서러웠던 기억만큼은 강렬히 내 곁을 따라다닐 것이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소설 ‘나프탈렌’을 읽은 오늘은 비가 내렸다. 우산이 없어 비를 맞으며 걸은 게 오늘 내가 한 첫 번째 일이다. 날씨 자체는 그리 춥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으스스한 기운이 여전히 내 몸을 감싸고도는 게 수상타. 단지 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기괴하다면 기괴할 수도 있는 분위기를 풍기는 한 편의 소설에 나는 완전히 사로잡혔다. 굳이 하나의 단어를 고르라면 나는 ‘혼란’을 고를 것이다. 단 하나의 시선을 따르며 평이하게 쓰여진 글의 꽁무니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면 당신은 좌절할 것이다. 수시로 이동하는 시선은 지금 내가 누구와 대화중인지를 묻게 만든다. 내가 중점을 두어 읽어야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라는 선언은 가급적이면 하지 않길 권한다. 그리고 글자에 집착하지 않길 바란다. 행간을 읽으라는 말도 살짝은 해주고 싶다. 작가가 쓴 것 이상을 읽어내야 비로소 작가가 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궤변과 함께 말이다.

소설의 배경인 하늘수련원에는 황토로 지은 집 다섯 채가 사이좋게 놓여 있다. 인적이 드문 곳. 오염되지 않은 자연에 심심할 겨를도 없을 듯한 그 곳을 한 번 즈음은 방문해보고도 싶은 마음이 일렁이려는 찰나에 저자는 강펀치를 날렸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 현대의학의 힘을 통해서는 치유를 기대할 수 없는 이들이 제 생을 정리하면서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들르는 마지막 공간. 하늘수련원은 그런 곳이었다. 황토집에는 저마다 사연이 가득한 이들이 기거했다. 간암 말기 환자와 위암 환자, 폐병에 신음하는 딸을 데리고 온 엄마 등이 풍기는 죽음의 무게가 상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죽어가는 과정 역시도 삶의 일종이기에 이를 통해 돈을 버는 이가 있었다. 누군가는 죽어가고, 다른 누군가는 죽어가는 누군가를 통해 사는 공간. 하늘수련원은 그런 곳이기도 했다.

그런 공간에 어울리는 이야기보따리를 저자는 풀어놓는다. 꿋꿋하게 살아가보자는 어미의 외침에 양자는 반응치 않는다. 돌아누운 그녀에게서 엿볼 수 있는 것은 타다 남은 재로 돌변한 사랑 그리고 회한뿐이었다. 죽기 전에 이혼을 하겠다는 그녀의 결심이 어쩌면 그녀를 견디게 만들어준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삶은 우중충했다. 또 다른 인물은 이제 막 은퇴를 경험할 백 교수였다. 일찍이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그는 챙겨야 할 가족이 없음에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는 제 나이 듦에 대해서는 고려치 못한 채 끊임없이 젊음을 탐하고 농을 쳐댔는데, 그런다 하여 내면의 공허함이 사라질 리는 없었다. 아버지 없이 성장했다는 공민지 역시 내면이 읽히지 않는다. 사랑이라 불러도 좋을까 싶었던 이는 다른 여자와 가정을 꾸렸다. 이젠 짐승과도 같은 눈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백 교수의 시선에 익숙해질 때도 된듯한데 아직은 아닌 모양이다. 공부 꽤나 했지만 그뿐이다. 안아달라는 상대의 말에도 딱히 어떤 반응을 보여야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어리석다. 한 번도 사랑해 본 적이 없고 반대로 사랑 받아본 적도 없는 영혼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서툶을 그들은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보는 독자도 지치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야 하는 등장인물로서도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나프탈렌에 대한 상상력이다. ‘좀약’이라고도 부르는 이 물질은 여름철이면 옷장 속에서 수분을 흡수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상실해간다. 이룰 수 없는 바를 강렬히 꿈꾸며 결국에는 스스로를 잃어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나프탈렌과 닮은꼴이었다. 적당한 때를 놓치고 꼭 해야만 하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면서 휘발성 물질마냥 상대의 기억으로부터 잊혀지고야 마는 삶들. 저자가 주목한 것은 하등의 주목할 가치도 없다 여겨진 그런 삶이었다. 그런데 마냥 방관자의 입장을 취할 수는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고는 뒤늦게 못난이마냥 메말라가는 게 소설 속 인물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갈망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멍이 들도록 제 가슴을 치고, 결국에는 나이보다 더 늙은 꼴의 백 교수와 같은 몰골이 되어 세상을 떠나는 게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니란 보장은 없다.

이미 우린 한 줌의 먼지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다. 손을 뻗어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실체 없는 너와 함께여서 두렵지가 않다. 그래도 이왕이면 사람으로 살고 싶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황토방에 스스로를 유폐하지 않을 수 있도록.

 

이달의 사락 q*****2 2013.01.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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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니타스의 나프탈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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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탈렌. 제목이 주는 어감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내가 아주 어릴 적, 엄마는 내게 나프탈렌을 조심하라고 했다. 나는 사탕을 좋아하던 꼬맹이였는데, 사탕인 줄 알고 먹으면 바로 죽을 것이라며 엄마는 무섭게도 얘기했다. 나프탈렌은 개미가 먹고 죽으라고 놔두는 것이어서 내가 먹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어른이 되면서, 휴지에 싸둔 나프탈렌 몇 알이 작아지고 사라지는 걸 느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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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프탈렌. 제목이 주는 어감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내가 아주 어릴 적, 엄마는 내게 나프탈렌을 조심하라고 했다. 나는 사탕을 좋아하던 꼬맹이였는데, 사탕인 줄 알고 먹으면 바로 죽을 것이라며 엄마는 무섭게도 얘기했다. 나프탈렌은 개미가 먹고 죽으라고 놔두는 것이어서 내가 먹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어른이 되면서, 휴지에 싸둔 나프탈렌 몇 알이 작아지고 사라지는 걸 느끼면서, 나의 어른이었던 분들이 작아지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아왔는데, 그 어른들이 이 책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백용현. 초반엔 그가 저지르는 눈빛과 언어의 성추행이 참 싫었다. 성경에 보면 다윗도 강간범이었으나 회개 후엔 하나님의 마음의 합한 자라고 인정받았다. 그처럼 백용현도 용서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책의 후반부를 읽다보니 성추행범에서 안고 싶은 사랑이 되었다. 손화자를 보낸 것, 백용현의 혼자 있음이 불쌍했다. 어쨌거나 그는 큰 어른이었다. 스스로 무진장 쓸쓸해했다. 인생은 아름다움에서 시작해 추함으로 이행해 가는 과정이며, 그러한 제 모습을 인정해야 살 수 있다. 공민정, 공민지라고 늘 젊고 예쁘고 옆에 남자가 있겠는가. 언젠가는 가슴을 도려낸 채 사라진 존재의 흔적을 찾으며 혼자 늙는 여자가 될 수도 있다. 혹여 그렇더라도, 나프탈렌 잔향처럼 후에 남길 것은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인간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자녀를 남기는 것과 책을 남기는 것이라던 에코의 말이 생각난다. 누구든지 우리 모두는 자녀를 키우고 책을 써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주인공이 다수인 소설은 이 책 외에 얼마전 읽은 다니엘 켈만의 <명예>도 있다. 개인적으로 같은 시기에 읽은 장편들이라서 전혀 연관이 없지만 같이 생각이 흐른다. <명예>에서는 주인공들이 서로 이야기들 속에서 교차하는 지점이 재미있었다. <나프탈렌>의 주인공들이 교차하는 지점은 협소했으나, 큰 맥락에서 보자면 통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의 각각의 이야기가 생생했기 때문이다. <나프탈렌>에선 인물들이 독립적으로 살아있었고 생생했다. 가독성을 결정하는 부분에서 두 책 다 각각의 장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명예>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 책이 켈만이 말하던 굴절된 리얼리즘의 실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프탈렌>에게 특히 사로잡힌 부분은, 공민지와 백용현이 같은 상황 속에서 느끼는 다른 심리들을 파악하고 묘사한 대목들과 황토방과 백용현의 집이다. 개개인에게 리얼리티란 자신이 느끼는 당시의 감정 뿐이라고 생각해왔다. 책 속 인물들이 생생한 것은 그들의 감정이 실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적인 심리 묘사와, 공간의 높은 활용도가 이 책을 읽는 독자인 나에겐 큰 즐거움이었다. 마지막장을 덮자 내게 밀려온 감정은 고마움이었다. 암튼 나는 앞으로 백용현, 손화자처럼 되지 않도록 건강관리에 신경써야겠다.

j*******6 2012.10.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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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탈렌, 쓸쓸하지만 위안을 주는 그 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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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탈렌, 쓸쓸하면서 위안을 주는 그 향기처럼   백가흠 작가님의 단편을 많이 읽어보았다. 그중에 ‘조대리의 트렁크’를 가장 좋아했다. 작가님이 그려낸 모습들은 사실 너무도 일상적인 현실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려내는 현실은 우리가 보고 있지만, 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의 폭력성과 비참함의 미메시스였다. 그래서 작가님의 소설을 읽었을 때 망치로 머리를 맞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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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탈렌, 쓸쓸하면서 위안을 주는 그 향기처럼

 

백가흠 작가님의 단편을 많이 읽어보았다. 그중에 조대리의 트렁크를 가장 좋아했다. 작가님이 그려낸 모습들은 사실 너무도 일상적인 현실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려내는 현실은 우리가 보고 있지만, 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의 폭력성과 비참함의 미메시스였다. 그래서 작가님의 소설을 읽었을 때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마냥 충격적이고 불편했다. 그래서 작가님의 소설을 좋아했다. 책을 덮고 다시금 세상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첫 장편이 나온다고 했을 때도 그간의 단편들과 비슷할 거라 예상했다. 예상은 예상 그 뿐이었다. 그동안 읽었던 지난 단편들이 강하고 톡 쏘는 향이었다면 오래전 옷장 속에 넣어둔 나프탈렌의 향처럼 은은한 잔향이 남는 그런 소설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 잠도 깨지 않은 상태로 침대에서 그냥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밥도 안 먹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조금씩 아껴보고 싶었는데 인물들의 이야기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그들의 욕망과 고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결국 책을 읽기 시작한 그 침대에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덮고 일어나서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밥을 먹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책은 하늘 수련원에 머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전개 된다.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 숨 쉰다. 수련원에서는 김덕이와 그녀의 딸, 암환자 이양자, 그리고 탈북자 최영래와 인부들이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노교수 백용현과 그의 조교 공민지의 이야기가 수련원과 교차되며 전개되고 작품 말미에 서울과 수련원 스토리의 평행선이 에서 접점을 만든다. 위에서 언급한 인물을 중점적으로 서사가 흐르지만 그들만을 주인공으로 이야기하기엔 작품에 등장하는 노교수의 옛 연인 손화자 , 수련원 원장과 그의 모, 공민지의 옛 연인이자 현재의 연인이 된 남자와 그의 일본인 아내 등 등장인물 모두에게 눈길이 간다. 어느 누구의 이야기도 소외시킬 수 없을만큼 그들의 인간상은 저마다의 욕망과 저마다의 고독함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노교수의 입장에서 노년의 결핍감과 고독을 이해하려는 찰나 젊은 공민지의 눈으로 노교수를 거부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공민지의 눈으로 그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소설은 이렇듯 다양한 인물들의 교차에도 산만함이 아닌 인물들의 매력으로 저마다의 인간상에 나를 이입시켜 작품에서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는다.

 

김덕이 여사의 죽음과 딸 이양자의 신생, 노교수의 늙음과 공민지의 젊음, 브로커에서 사기를 당한 피해자이자 인부를 살해한 살인자 최영래. 소설은 끝과 끝에 있을 법한 가치들이 결국은 인간의 삶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대립이 아닌 동반적 관계의 가치임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김덕이 여사의 딸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과 헌신,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오래된 옷장 속의 나프탈렌 향과 같다고 생각했다. 이는 어쩌면 진부한 이유일지라도 그녀의 모성애’라는, 오래전부터 늘 그자리에 있었던 보편적이면서 익숙한 정서가 나프탈렌의 익숙한 향과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용현이 보여주는 노년의 욕망 또한 여운이 짙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필연적인 결핍에 대한 욕망이 가슴시리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나프탈렌은 새로운 향이 아니다. 무심코 옷장에서 옛 옷을 꺼내들 때 옷에 베어든 나프탈렌의 향은 왠지 모르게 쓸쓸하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가버린 기억 너머의 무언가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 낯설지만 익숙한 향은  현재를 어루만져주는 것 같다.

 

소설 나프탈렌도 쓸쓸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y*****2 2012.10.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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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탈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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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탈렌 잘 읽었습니다~.~   원래 작가님 팬이라서 장편소설 나온다는 소식 듣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야기에 휩쓸려 책장은 빨리 넘어가지만 그 와중에도 계속 생각하고 곱씹으며 읽게 만드는 소설이에요.   죽음 앞에서 '끝'이 아니라 '시작'을 이야기하는 인물들...   저도 모르게 빨려들어서, 책을 다 읽고나니 마치 그들과 함께 사계절을 달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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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탈렌 잘 읽었습니다~.~

 

원래 작가님 팬이라서 장편소설 나온다는 소식 듣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야기에 휩쓸려 책장은 빨리 넘어가지만 그 와중에도 계속 생각하고 곱씹으며 읽게 만드는 소설이에요.

 

죽음 앞에서 '끝'이 아니라 '시작'을 이야기하는 인물들...

 

저도 모르게 빨려들어서, 책을 다 읽고나니 마치 그들과 함께 사계절을 달린 기분이 듭니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고, 그것을 어떻게 준비하며,

 

또 자신이 죽음에게 가까워진다고 느낄 때의 인간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에 대한 것들...

 

조금의 멋도 과장도 없이 그 사람들 그대로가 책에 옮겨져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들이 담담할 때 오히려 독자가 눈물이 나고,

 

그들이 울 때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입장이 되는 기분이에요.

 

마치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정말 생생했어요.

 

꼭 그게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느낌이 드네요.

 

나프탈렌이 죽음에 대해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계기를 주는 것 같아요.

 

 

 

저도 누군가의 죽음의 과정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더욱 마음에 와닿네요.

 

소설을 끌어가는 건 매력적인 인물들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작가님 소설 읽을 때마다 절실히 느낍니다^.^

 

 

m*****0 2012.10.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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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있고 언제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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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공민지처럼 아름다웠던. 이양자처럼 막막했던. 덕이여사처럼 헌신해야만 했던. 손화자처럼 고독했던. 엄마는 잘 지내고 있을까? 낮이건 밤이건, 다짜고짜 밥 얘기부터 꺼내는, 촌스러운 아줌마는 잘 있을까? 책을 읽고 나니 문득 엄마 생각이 난다. 좋은 일이다. 엄마 생각은 나고, 그동안 읽은 소설은 기억이 안난다.   공민지는 백교수를. 이양자는 민진홍을, 덕이여사는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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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공민지처럼 아름다웠던. 이양자처럼 막막했던. 덕이여사처럼 헌신해야만 했던. 손화자처럼 고독했던. 엄마는 잘 지내고 있을까? 낮이건 밤이건, 다짜고짜 밥 얘기부터 꺼내는, 촌스러운 아줌마는 잘 있을까? 책을 읽고 나니 문득 엄마 생각이 난다. 좋은 일이다. 엄마 생각은 나고, 그동안 읽은 소설은 기억이 안난다.
 
공민지는 백교수를. 이양자는 민진홍을, 덕이여사는 아버지를, 손화자는 백용현을. 끝끝내 말하지 못한 여자들, 그 여자들이 말을 건다. '사실은 말야.' 하고. 울 아줌마도 가끔 말을 건다. "내 첫사랑은.."하고. 엄마 입에서 사랑이라니. 나는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뜨악한다. '엄마 때도 사랑이란 게 있었어?' 묻고 싶은 걸 간신히 참는다. 야박하다. 못됐다. 들어주면 되는데, 웃어주면 되는데.
 
안하던 얘기 하는 엄마가 무섭다. 못하던 말 꺼내는 엄마가 두렵다. 비로소, 엄마도 늙는 것인가. 늙어가는 부모를 바라보는 일은 막막한 소설을 읽고 덮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 어쩌지 못하는 그들의 이야기, 나프탈렌은 곧 당신의 이야기다. 
 
먹먹한 가슴을 안고, 평론 「두려운 진실」을 읽는다. 대개 못 알아들어서, 혹은 귀찮아서 몇 줄 읽다 마는 게 평론이지만 이 글을 그렇지 않다. 놓친 장면을 되돌려주는, 다시 소설을 뒤적거리게 만드는. 나프탈렌의 압축판이자 한정판 같은. 진실은 언제나 두려운, 그래서 더 펼쳐봐야 할 이야기.
 
책을 사면 띠지는 가차없이 내버리는 편인데, 이 책의 그것은 아직 못 버리고 있다. 소설만큼이나 고독한 작가사진과 "나 좀 안아주라" 때문ㅋㅋ 시집과 소설책을 읽다보면, 자주 보이는 또 하나의 이름. 책의 날개는 결국 사진이라는 생각이. 나프탈렌의 마지막 얼굴, 뒷표지엔 이원 시인이 기다리고 있다. 서평도 결국 주저리일 뿐, 시인의 추천사로 올킬. 
 
"나 좀 안아주라."
마지막 말임을 알지 못해 머뭇거린 당신 앞에 나타난,
유일한 사랑의 순간을 붙잡는 주문, 『나프탈렌』

j****2 2012.09.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