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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은 현실이다". 선언문과 같은 이 책의 타이틀은 도발적이다. 제목만 봐도 내용이 뻔히 예측되는 보통의 경영/경제 서적과 달리, 이 책은 제목만 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할지 가늠이 안 된다. 궁금하게 만든다. 말 그대로 도발하는 것이다. 특이한 걸 넘어 기묘하게 생긴 표지도 도발적이다. 책의 주요 주제인 페이스북, 알파고, 비트코인의 로고와 뫼비우스의 띄를 형상화한 표지는 한국 책보다는 미국 논픽션을 떠올리게 한다. 구글에서 근무하고 세계경제포럼의 차세대 리더로 뽑혔다는 저자의 이력 역시 궁금증을 일으킨다. 요컨대, <가상은 현실이다> 는 외관부터 도발적인 책이다. 책을 펼치면 안다. 겉모습보다 내용은 훨씬 더 도발적이다. - 이 책은 기술이 모든 것을 바꿔놓고 있는 요즘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서다. 소셜미디어에 우리 자신을 업로드하고, 인공지능이 사회 각 분야에 새로운 두뇌로 작동하고, 비트코인이라는 인터넷에서 만든 가상 화폐가 현실 세계로 흘러 들어가고... 저자는 이러한 세태를 "가상화" 라는 예리한 프레임으로 통일시켜 해석한다. 현실을 복사한 가상의 것들 - 현실에 대해선 소셜미디어, 지능에 대해선 인공지능, 돈에 대해선 비트코인 - 즉 "가상화된" 대상들이 현실 그 자체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단언한다. "가상은 현실이다" 흥미로운 메시지를 그야말로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에겐 가상현실이 필요 없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네트워크가 이미 현실을 왜곡시키는 "가상현실" 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위협도 더 이상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인공지능은 인간을 감시하고, 알고리즘 추천으로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유려한 문장과 참신한 관점, 그리고 수많은 예시를 듣다 보면 인류는 벌써 인류가 두려워해온 미래에 살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보통 기술에 대한 책이 일어나지 않을 미래 이야기를 하는 것과 달리, 가상은 현실이다의 시점은 "오늘" 이다. 좀 더 정확히는 지난 10년. 2010년대라는 시점을 타겟으로 하고 있다. 인류를 바꿔놓은 기술이 지난 2010년대에 모두 등장했고, 이것이 인류를 미래로 가져다 놓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동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한편으로는 조금 무섭고 얼얼하다. 현실의 디스토피아적인 면을 너무나 다이나믹하게, 너무나 스타일리시하게 짚어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은 흥미롭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알아가게 되는 현실은 무섭다. 마지막 장에 이르르면, 소름이 돋는다. 인터넷에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찾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장에서 소름을 느끼는 것 같다. 저자는 "오늘날 인간이 사실 가상화된 미래 인류의 꿈일지도 모른다" 고 말한다. 물론 넌센스지만, 책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완전히 거짓말도 아닌 것 같다는... 소름이 돋는다. - 이 책에는 꽤 많은 철학적인 레퍼런스가 담겨 있다. 인문/사회과학 계열의 책을 많이 읽어본 독자라면, 저자가 여러 철학적인 레퍼런스를 책에서 가지고 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첫 장에 언급하는 플라톤을 시작으로, 마르크스, 보드리야르, 푸코, 벤야민, 지젝, 장자와 같은 철학자들의 프레임을 빌려 오늘의 현상을 분석한다. 몇가지 부분은 철학자들의 저작/문장을 직접적으로 오마쥬하는 것 같다 (저자가 만든 "우버레타리아트" 같은 기발한 표현이 단적이다) 실제로 주석 부분을 보니 무수한 레퍼런스가 있다. 젊은 저자가 쓴 첫 저작에, 이렇게 많은 레퍼런스를 밝히는 점 역시 흥미로웠다. 국내 논픽션에서 이 책처럼 성실한, 또는 충실한 레퍼런스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짜깁기에 치우친 국내 논픽션과는 또 다른 지적인 성실성을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주석의 수준을 보았을 때 아마도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일듯하다) - 한국에서 기술에 관한 책은 주로 내용이 얕거나, 외서를 베낀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내용 역시 "4차 산업혁명이 온다",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와 같은 굳이 책으로 안 읽어도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어디에서 본 적이 없는 자신만의 주장을 매우 담대하게 전개하는 책이다. 그것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쏟아지는 기술비평 논픽션을 읽어온 사람이나, 최신 실리콘밸리 기술 트렌드를 팔로우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수준이 국내를 넘어서 있음을 아마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아직 화제가 되지 않은 것이 의아할 뿐이다. 저자가 아직 신예고, 작은 출판사에서 낸 책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점점 이 책의 매력을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않을까 한다. "가상은 현실이다" 는 기술 시대를 사는 오늘날 더 널리 읽혀져야 한다. |
| 이 책은 저자 인터뷰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어 구입해서 읽었는데 나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생각보다 이슈가 안 되어서 안타깝다. 저자가 많은 외국서적들을 참고해서 썼겠지만 통찰력이 매우 놀랍고 분석력이 상당히 샤프하다. 지금의 현상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이 가상세계가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도 과감히 서술하고 있는데 전혀 황당무계하지 않고 매우 설득력이 있다.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유체이탈하듯 나의 일상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완성도 높은 책이라 친구에게 종이버전으로 한 권 선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