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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함 속에서도 공감과 배려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으려... 이응준, 《해피 붓다》
"냉정함 속에서도 공감과 배려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으려... 이응준, 《해피 붓다》" 내용보기
사전 투표가 지난 주에 있었고, 내일은 본 투표날이다. 선거철이고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오래 전 나는 최선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차선을 택하여 투표하였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어느 즈음 이후부터 나는 최악을 피하기 위하여 차약을 선택하는 것으로 투표를 하고 있다. 최악이 무엇인지는 언제나 명확하지만 최선의 영역은 이미 붕괴된 지 오래다, 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냉정함 속에서도 공감과 배려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으려... 이응준, 《해피 붓다》" 내용보기
  사전 투표가 지난 주에 있었고, 내일은 본 투표날이다. 선거철이고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오래 전 나는 최선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차선을 택하여 투표하였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어느 즈음 이후부터 나는 최악을 피하기 위하여 차약을 선택하는 것으로 투표를 하고 있다. 최악이 무엇인지는 언제나 명확하지만 최선의 영역은 이미 붕괴된 지 오래다, 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본시 나는 타인에 대한 연민을 바탕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 절대 안 믿는다. 자신의 자유를 바탕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만 믿는다... 무식한 자들의 전형적인 특징은 진실과 진리를 말해주면 화를 낸다는 것이다. 자신의 소박한 노동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과는 상종을 하지 마라. 그는 자신을 확인시키려고 분란과 분쟁을 일삼을 테다.” (p.55)

  이응준의 《해피 붓다》는 소설의 외피를 두르고 있는 에세이다. 에세이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파스칼 키냐르나 배수아가 선보이는 에세이 소설과는 또 다른 뉘앙스를 품고 있다.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는 척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거친 단면을 확인하고자 한다. 혹은 사회라는 거울에 비친 인간의 허울을 통하여 그 속에 감춰진 부서지기 쉬운 내면을 건드리고자 한다.

  “사람들이 왜 자꾸 그때가 그립다느니, 그 시절이 좋았다느니, 그러는지 아는가? 그건, 그때와 그 시절도 어렵고 지금과 이 시대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나간 게 더 낫지...” (p.69)
  “순진한 타인들이 자신처럼 행동할 거라 착각하는 부류다. 순수한 자들은 타인들이 자신처럼 행동해야 옳다고 화가 나 있는 부류다.” (p.103)

  실은 책을 읽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위악보다 위선을 더욱 가증스러운 것으로 삼는 작가의 방식에 동의하지 못해서였다. 생각해보니 위선을 대하는 태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모든 인간은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되어 있는데 너는 뭐가 그렇게 착해, 라는 태도와 모든 인간은 선하게 행동해야 해 착한 척 하는 것이 아니라, 라는 태도. 내가 싫어하는 것은 전자의 태도이고, 작가의 태도는 전자일 것이다, 라고 다독이고 나서야 마음이 가라앉았다.

  “세계적으로 근래 정치평론가나 사회평론가들의 예상이 자꾸 빗나가는 것은, 세상이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인간의 내면이 더욱 더 아수라장이 돼서도 그렇겠지만, 사실은 근본적인 착각 때문이다. 인간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요인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이지만, 사실은 자연과학과 동물학의 영역 안에서 좌충우돌하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그러한 인간이 정치적이나 사회적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p.170)

  그럼에도 불구하고 덧붙이자면 나는 위악보다는 위선이 낫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다만 위선과 악은 구별되어야 한다. 좀더 선할 용기가 없어 택한 위선은 사실을 은폐하고 거짓을 선동하기 위하여 택한 위선과 구별되는 것이 맞다. 후자는 위선이라고 부를 것이 아니라 거짓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고, 거짓은 악의 영역에 있다. 위선보다 위악이 낫다고 하는 것은 거짓보다는 가짜 악이 낫다고 위무하는 행위일 뿐이다.

  “사람은 일생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얻으려 살아가고, 또한 자기에게 불필요한 것들을 내버리며 살아간다. 한 사람이 제 일생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얻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내다버리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것만은 확실하다. 사람은 자기가 원했지만 못 얻은 것들 때문에 불행하기보다는, 자기가 불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내다버리지 못한 것들 때문에 불행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필요한 것들을 원하고, 필요한 것들을 내다버리고 있는 우리는.” (p.199)

  지금의 정권이 등장한 이후 되도록 뉴스를 보지 않는다. 라디오는 클래식 채널에 맞춰놓고 있다. 그래서 종종 판소리를 듣기도 한다. 사설이 길어졌다. 요즘 공감과 배려와 예의를 자꾸 생각하려 하고 있다. 공감하지 못하면 배려를 할 수 없고, 배려하지 않는 자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스러져가는 선함을 어떻게든 챙겨 공감하는 마음 챙겨보려 애쓰는 중이다. 거기서부터 인간은 시작될 것이니...


이응준 / 해피 붓다 / 은행나무 / 202쪽 / 2019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24.04.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