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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소설책'으로 논술을 진행하고 싶어서 선정한 책이었다. 그런데 초등생에게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주제'가 난해한 듯 싶어서 살짝 보류한 책이다. 중등생은 되어야 '주제이해'가 쉽지 않을까 싶다.
미래의 어느 날, 벌이 사라졌다. 해충을 잡아먹는 이로운 벌레들도 사라졌다. 빠르고 용감한 아이들이 나무에 올라가 벌 역할을 하는 덕분에 도시 사람들은 소중한 과일을 먹는다. 하지만 벌이 되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벌만 되면 슈퍼 체리의 삶을 살 수 있다. 과일 농장 생활이 행복하기만 한 아홉 살 소녀 피오니, 벌이 되기만을 꿈꾸며 살아가는데, 어느 날 임신한 엄마가 나타나 도시로 끌려간다. 과연 피오니는 다시 농장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토록 바라던 벌이 될 수 있을까? (이 책, 뒷표지)
벌이 사라진 '가까운 미래'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다. 물론 '환경오염'으로 인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는 그런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런 것이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제이해를 위해서는 '도시 생활'과 '시골 생활'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다 '여성인권'과 '가족의 의미'를 이해해야 이 책의 주제에 접근할 수 있다.
우선 '주동인물'은 아홉 살 여자아이 '피오니'다. 벌이 사라진 시대에 '벌꿀 맛'을 전혀 모르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벌'이 되는 꿈을 키우고 있다. 할아버지와 언니와 함께 추위와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은 그닥 필요없다. 시골생활에서는 '돈'보다 중요한 것이 '먹거리'이기 때문이다. 어차리 '돈'을 버는 이유도 배고픔과 추위를 해결하기 위해서 밥과 집을 구하기 위해서인데, 집은 세 식구가 살 곳을 마련했으므로 큰 돈은 필요없고, 하루하루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홉 살..이 나이에 가족들의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설정이 지금 풍족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꽤나 낯선 '설정'이지만, 우리도 불과 3~40년 전에 그랬던 시대가 있었으므로 이해 못할 설정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요즘 10대들이 이해하기에는 '먼 나라' 이야기일 것만 같아서 선뜻 선정할 수 없었다는 핑계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우려와는 달리 책속 이야기는 너무나도 밝다. 할아버지와 다리가 약간 불편한 언니와 함께 조금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려는 모습이 매우 당차 보였기 때문이다. 정작 우려스러운 것은 '피오니의 엄마'였다. 이야기 속에서 피오니의 엄마는 '반동인물'이다. 매사에 부정적이며 수동적이다. 그리고 '시골생활'이 끔찍하게도 싫어서 '도시생활'을 하고 있는 허영스러운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엄마가 '피오니'를 도시로 데려 가려고 한다.
처음엔 '피오니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지독히도 가난한 시골생활을 청산하고 화려한 도시생활을 하게 해주겠다는 달콤한 유혹을 던지지만 '아홉 살'도 알고 있다. 진정한 행복은 '겉치레'가 아니라 '속마음'이라는 것을 말이다. 즉, 속마음이 따뜻하고 정겹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나는 '시골생활'이 더 낫다는 것을 말이다. 단지 '엄마'라는 가족구성원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엄마'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피오니와 다른 가족들 모두 '엄마'가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내려오길 간절히 바라지만 '엄마'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엄마에겐 '내면의 행복'보다 '화려한 겉치레'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피오니를 설득하는데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그러자 엄마는 작전을 바꾸었다. 어느 날 갑자기 '언니'를 대신 데려가려고 한 것이다. 절름발이인 언니라서 피오니를 데려가겠다고 하고서는 언니를 거의 납치하듯 데려가려 한 것이다. 피오니는 언니를 구하기 위해 자기가 엄마를 순순히 따라가겠다고 속이고는 엄마 몰래 탈출하고 만다. 그러자 이번에는 건장한 남자와 함께 온 엄마가 '낯선 차'에 피오니를 덥석 납치하고 도시로 떠나버린다. 그제서야 피오니는 엄마의 배가 조금 불룩하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엄마가 임신을 한 것이다. 뱃속 아기의 아빠는 덩치 큰 저 남자일 것이다. 상황을 눈치 챈 피오니는 거센 저항을 멈추고 엄마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저 남자(피오니는 '원숭이'라고 부른다)는 상관하지 말고 아기와 함께 할아버지 곁으로 가자고 말이다. 진짜 행복은 저 '원숭이'가 아니라 '우리들'에게 있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엄마는 '저 남자'와 결혼할 것이며, 도시에서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딸인 피오니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 피오니가 필요했던 것일까? 사실 엄마는 도시에서 '대저택의 가정부'로 일하며 살았었다. 거기서 주인댁 따님을 돌보며 '돈'을 벌었던 것이다. 그리고 돈을 모아서 자신도 '화려한 도시생활'을 하는 꿈을 꾸고 있다. '저 남자'와 함께 말이다. 뭔가 수상하다. 제대로 된 남자라면 엄마를 고생시킬 것이 아니라 툭하면 때릴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엄마를 아껴주고 성실하게 일하는 남자여야 할텐데, 저 '원숭이'는 엄마가 일하고 받은 돈을 함부로 쓰고, 심지어 엄마를 때리기까지 하고 있다. 도대체 뭐가 '행복한 미래'란 말인가? 암튼, 임신중인 엄마는 점점 불러오는 배 때문에라도 일을 대신할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피오니를 거의 납치하듯 도시로 데려온 것이다.
거기서 '피오니'는 주인집 딸인 '에스메랄다'를 만난다. 둘은 비슷한 또래여서 통하는 것이 있었지만, 처음에는 서로 다른 '신분차이'만 보일 뿐이었다. 주인과 하녀로 말이다. 그렇지만 에스메랄다는 점점 피오니에게 '호기심'을 발동한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본 적이 없는 활달한 성격에 '하녀(?)' 주제에 '주인댁 공주마님'에게 함부로 대하고 직설적인 말과 행동을 거침없이 하는 통에 오히려 '주인'이 자기 집에서 '하녀'의 눈치를 볼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득이 되었다. 소심한 성격을 가진 '에스메랄다'는 저택 구석구석을 맨발로 뛰어다니는 '피오니'의 활달한 성격에 큰 관심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창문 밖으로 몰래 탈출해서 시골과수원으로 되돌아가려는 '피오니'를 발견하고서는 둘은 급속히 절친 모드로 변하게 된다.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에다(에스메랄다를 피오니가 부르는 별명)'는 '피오니'의 당찬 모습을 통해서 점점 용기를 찾아가고, 도시를 탈출해서 시골과수원으로 돌아가려는 '피오니'에게는 과수원으로 가는 트럭을 몰래 타고 도망갈 '기회'를 얻기 위해 에다의 도움이 절실했다. 에다의 아빠가 과수원의 과일을 사들여서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작전을 착착 진행해가는 도중에 둘은 점점 더 친해진다. 그렇게 용감해진(?) 에다는 도시를 탈출해서 시골과수원으로 가는 트럭에 몸을 실게 되는데...
이야기는 '비극적 현실'에서 '희망찬 미래'로 서서히 바뀌는 결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남자의 폭력에 길들어져가는 엄마의 모습'은 주위의 시선을 안쓰럽게 한다. 그리고 끝내 '비극적인 죽음'을 면치 못했다. 이제 겨우 엄마품에서 벗어날 '아홉 살'에서 '거의 열 살'이 되어 가는 어린 피오니는 '그리운 엄마품'을 되찾지도 못한 채 '엄마의 죽음'을 맞이한다. 도대체 '엄마의 행복'은 무슨 기준이었던 걸까? 힘든 일을 하기는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매한가지였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남자의 폭력'을 감수하면서도 끝내 지키려 했던 '엄마의 가정'은 무엇이었을까? 엄마에게는 이미 '피오니'와 언니라는 두 딸이 있었는데도, 왜 이미 가진 '행복'을 버리고 '또 다른 행복'을 찾으려 했던 것일까? 가난하고 성실하지도 않으며 툭하면 엄마를 때릴 뿐인 '그 남자'가 엄마에게 준 행복은 무엇이었냔 말이다...
난, 이 주제가 너무 난해해서 끝내 논술책으로 선정할 수는 없었다. 아이들에게 설명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매 맞는 여성'이 존재하는 현실을 감안했을 때, 이런 '비극'을 고발하기 위해서라도 언젠가 이 책으로 수업하는 날이 올 것 같긴 하다.
한편, 벌은 '여성사회'로 이루어져 있다. 여왕벌이 알을 낳고 암벌이 꿀을 모으고 애벌레를 기른다. 수벌은 여왕벌과 '결혼비행'을 할 때만 필요한 존재일 뿐이다. 다시 말해, 종족번식 이외의 용도는 거의 없다. 그런데 그런 '여성사회'가 미래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는 설정은 의미심장하기만 하다. 그 '꿀맛'을 모르는 세대가 존재한다는 설정은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남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할아버지, 농장감독, 에다의 아빠, 에다의 운전기사, 그리고 트럭운전수, 아마도 왕진 온 의사선생님이 '남성 캐릭'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툭하면 '피오니의 엄마'를 때리고 돈을 뺏는 '원숭이'가 남자주인공이다. 적어도 이 책 속에서 '남성'은 '수벌'만도 못한 존재로 등장한다. 다시 말해, 아무 짝에 쓸모없는 존재로 말이다. 그리고 남은 '남자'는 아직 소년티도 벗지 못한 남자아이 뿐이다. 병이 들어 아픈 엄마를 대신해서 성실하게 가정을 이끄는 아홉 살 난 '애플조이'와 아직도 엄마가 필요한 어린아기 '망고' 말이다.
그리고 모든 일은 다 여자가 한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벌이 사라진 세상, 꿀맛을 모르는 세대...아마도 '남자' 없는 세상은 존재할 수 있어도 '여자' 없는 세상은 일상조차 불가능할 거라고 '경고'하는 것은 아닐까? ['불알두쪽' 달랑거리며 거들먹거리는 남정네들!! 어디 '여자' 없는 세상에서 잘 한 번 살아보시지!!!>]라는 외침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리고 여성들에게도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만 같다. [아직도 매 맞고 사는 여자들이여!! 너희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스스로 잘 생각해봐!! 너희 없는 세상은 존재할 수도 없을 지경이란 말이야!!!] 하고 말이다.
물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나 지금이나 '스스로 깨우친 자'만이 잘 살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또, 자신의 '존재가치'도 망각하며 노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피오니 엄마'와 같은 결론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