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초상화의 의미를 완성시키는 화상찬..
"초상화의 의미를 완성시키는 화상찬.." 내용보기
읽을 책을 고를 때, 버릇이 한가지 있다. 시리즈로 간행되는 책이 있으면 일단 첫 권을 읽어본다. 그리고 맘에 들면 그 시리즈를 차근차근 찾아서 읽는다. 계속해서 발간되는 책들이 첫 권을 읽을 때와 느낌이 같다면 별문제가 없지만, 어떤 경우는 읽다 보면 시리즈로 간행되지 않았다면 결코 읽지 않았을 책들도 있게 마련이다. 그럴 경우 나중에는 책을 읽는 즐거움이 아니라 의무감(?
"초상화의 의미를 완성시키는 화상찬.." 내용보기

읽을 책을 고를 때, 버릇이 한가지 있다. 시리즈로 간행되는 책이 있으면 일단 첫 권을 읽어본다. 그리고 맘에 들면 그 시리즈를 차근차근 찾아서 읽는다. 계속해서 발간되는 책들이 첫 권을 읽을 때와 느낌이 같다면 별문제가 없지만, 어떤 경우는 읽다 보면 시리즈로 간행되지 않았다면 결코 읽지 않았을 책들도 있게 마련이다. 그럴 경우 나중에는 책을 읽는 즐거움이 아니라 의무감(?)으로 읽게 되는 경우가 있다. [과학과 사회] 시리즈가 그렇고, [조선의 사대부] 시리즈가 그러하다. 다행히 [과학과 사회] 시리즈는 지금까지 간행된 책을 전부 읽었고, [조선의 사대부]는 이 책이 마지막이어서 한시름 놓는다.

 

나는 사진 찍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찍을 때야 그렇다 치더라도 나중에 그 사진을 보관할라치면 그것도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간단하게 핸드폰으로 찍어서 그냥 핸드폰에 보관하면 되지만 예전에는 사진기로 찍고, 인화하고, 보관하는 것이 정말 큰맘 먹지 않으면 안될 만큼 번거로운 일이었다. 작년 10월 이사하면서 그간의 사진첩을 정리하였다.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이 찍어주었던 사진들, 중고등학교 시절에 찍은 사진들, 군대에서 찍은 것, 그리고 결혼식 사진과 신혼여행지에서의 사진들.. 사진을 정리하면서 그 시절을 회상하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비슷비슷한 사진들을 어떻게 처리할 지가 고민되기도 했다. 그래서 몇몇 사진만을 핸드폰에 저장하고 모두 버렸다. 아이들 사진도 많았지만, 그것은 모두 아이들에게 주어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다.

 

지금이야 덜하지만 예전에는 사진이 크나큰 위안이 되기도 했다.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보고 싶을 땐 사진을 보면서 그들을 생각하고, 또 마음속으로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요즘도 죽은 사람과 만나는 것은 아마 사진이 유일할 것이다. 그래서 영정사진을 보관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진기술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보고 싶은 사람들을 어떻게 보았을까? 그것은 초상화였다. 특정인물의 얼굴을 정밀하게 그린 초상화가 오늘날의 사진을 대신했다. 그렇지만 초상화는 단지 사진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에 그치지는 않고, 그 인물 자체로 인식되었다.

 

조선시대 역시 마찬가지이었다. 조선시대의 문화 속에서 초상화는 인물의 모습을 기억하고 보존하던 유일한 방법이자, 특정한 곳에 모셔두는 경배의 대상이었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초상화 가운데 가장 많고 다양한 것이 사대부들의 초상화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사대부들의 초상화에 대한 글, 즉 화상찬畵像讚을 통해서 조선시대 초상화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초상화를 하나의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거기에 그려진 인물 자체로 여겼다고 한다. 그렇기에 회화적 효과나 의도적 과장을 추구하지 않고, 인물에 근접하기 위한 사실적 묘사만을 추구했다. 또한 초상화는 인물의 외형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성품을 전달한다고 인식하기도 했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초상화를 보는 순간, 그림 속 인물을 먼저 떠올리고 화상찬을 썼다고 한다. 그런 화상찬은 대부분이 그림에 대한 품평보다는 그림 속 인물에 대한 평가에 초점을 맞추어 칭송하고 기리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저자는 책에서 초상화를 선현과 같이 자신의 윗대인물, 동시대를 살아간 벗, 그리고 자신의 초상 등 3종류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먼저 선현의 초상은 사당과 영당 그리고 서원 등 곳곳에 모셨다. 사대부들은 그런 초상화로 선현의 모습을 보면서 생전의 행적을 추모했다. 그에 반해 벗의 초상화를 보고서는 초상 속 인물에 대해 자기가 알고 있다는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화상찬을 쓰면서 벗의 덕목을 강조하고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 덕목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자신의 인격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초상에 대해서도 화상찬을 썼다. 이른바 자찬自讚이다. 조선시대 문인들은 자찬으로 표현할 때는 그림 속 인물을 보며 흔히 ''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는 자신을 객관화하여 성찰하려는 태도를 보여주려는 표현형식으로, 자신의 외모와 실력을 과도하게 낮추면서 자신만의 자부를 은근히 내비쳤다는 것이다.

 

이처럼 화상찬의 대상은 초상화 자체가 아니라 그 초상화에 그려진 인물이었다. 그리고 화상찬은 초상화 속 인물과의 만남을 글로써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볼 때 화상찬은 초상화의 의미를 완성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책에는 조선시대 많은 인물들의 초상화와 화상찬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 초상화를 감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초상화를 읽으면서 나의 초상은 어떠할지를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자화자찬自畵自讚이란 자신이 자신의 초상을 그리고 거기에 화상찬을 써 넣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뜻이 바뀌어 자기 스스로 칭찬하거나 으스대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 그것이다.

k*****1 2016.01.19. 신고 공감 5 댓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