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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식] 얼떨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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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는 고증식 시인의 시집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횡성군 우천면 출신의 시인이자 교사이니 얼마 전까지 교단에 있었던 나와는 여러모로 소통이 가능한 작가기도 하다. 고증식 시인은 1994년 문단에 나온 이래 『환한 저녁』, 『단절』, 『하루만 더』등의 시집을 펴냈으며, 그의 시들은 ‘기교를 부리지 않아 담백하면서도 생의 단면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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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는 고증식 시인의 시집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횡성군 우천면 출신의 시인이자 교사이니 얼마 전까지 교단에 있었던 나와는 여러모로 소통이 가능한 작가기도 하다. 고증식 시인은 1994년 문단에 나온 이래 환한 저녁, 단절, 하루만 더등의 시집을 펴냈으며, 그의 시들은 기교를 부리지 않아 담백하면서도 생의 단면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의 생활과 생각을 잘 알고 있으니 친지를 방문하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펼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나의 지난날을 보는 마음으로 친근감을 느꼈다. 작가는 서시를 겸한 시인의 말에서 책을 펴는 마음을 이렇게 고백했다.

 

타박타박 걸어 어느새 고갯마루에 이르렀다. 돌아보니 어느덧 갑년. 아홉 살짜리 두고 아버지 떠나시던 그해가 지금의 딱 이 나이다. 아버지 못 가보신 길을 이제부터 시작한다. 새소리 듣고 바람의 노래도 흥얼거리면서 우짜든지 따뜻하고 유쾌하고 뭉클하게!(시인의 말)

 

시인은 지금 교단을 떠날 때가 다가왔다. 이 시집은 교단생활을 마무리하는 마음도 담겨 있을 것이다. 교단을 마칠 때 내 마음도 그랬지 싶다. 나 역시 아버지가 일찍 떠나셨고, 할아버지도 그리 장수하지는 못하셨다. 나는 지금 아버지가 걷지 못한 길을 걸어왔고, 할아버지가 걷지 못한 길에 이미 접어들었다. 이것이 어찌 시인과 나만의 삶일까? ‘시인의 말에서부터 공감을 느꼈다. 아마도 앞으로 다가올 길에서는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과 함께 흥얼거릴 시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따뜻하고 유쾌한 나날만 펼쳐질 것인가? 찬바람이 느껴지거나 마음이 무거울 때는 작가는 이 시집을 다시 펼쳐들며 새로운 길에 접어들 때의 초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둘째, 내 또래는 대부분 느꼈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확인했다. 4부로 된 이 시집의 1부 제목은 사실은 무서워서 그랬단다이다. 1부의 세 번째 작품이 이 시집의 표제가 된 얼떨결에이다.

 

나이 팔십에 여주 당숙이 다시는 수술을 안 받겠다는 선언을 하고 두해쯤 더 살다가 돌아가셨단다. 무슨 큰 결단이나 인생을 달관한 것이 아니라 무서워서 그랬다던가. 얼떨결에 한 번은 했지만 수술 후의 고통이 너무 아파서 다시 받는 것이 두려웠다나. 그런 당숙의 마음을 시인은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다. 얼떨결에 한 번 했지만 다시 하기 힘든 것이 수술뿐일까? 군대도 그렇고, 학창생활이나 결혼생활은 물론 삶 자체가 그럴 것이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부끄러워서 숨고 싶은 장면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시 태어나서 같은 삶을 살라면 천리만리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런대로 아름다운 삶이 아니었던가? 시인이 만난 가족이나 학생이나 동료나 이웃이 다 좋은 사람이었듯이 내가 만난 사람들도 그렇지 않나 싶다. 작가는 이 시집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세상은 무서운 곳이 아니라 살아볼 만한 곳임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셋째, 감정이입이 되는 장면이 많았다. 모녀간에 한바탕하고 딸이 나간 뒤의 집안 분위기, 열심히 가짜 뉴스를 퍼 나르는 무슨 전우회의 친지, 마지막 공연을 하는 패티김을 보며 느끼는 마음, 동창회 풍경, 돈을 찾으러 농협에 갔다가 인출기에 돈을 꺼내지 않은 뒤에 기부라고 생각하는 이야기 등 저것은 내 이야기가 아닌가, 나도 저럴 뻔했다는 장면이 이어지고 있었다. 시인은 횡성을 떠나서 먼 남쪽 밀양에서 살고 있지만 남이나 북이나 사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무언가 당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어찌 속상하지 않을까. 그 모든 것을 살아가는 과정의 하나로 보면서 살아온 시인의 마음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시인은 물론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도 따뜻하고 유쾌하고 뭉클하게살아갈 수 있을 듯하다.

 

넷째, 개인적으로 윤정식당이 반가웠다. 횡성군 우천면에 있는 추어탕 전문식당이다. 몇 번 식사를 하러 가기도 했고, 버스를 타고 횡성에 갈 때면 반드시 지나는 곳이다. 시인은 자신의 고향에 있는 이 식당을 정겨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백년을 내다 보고 지었다는

시골동네 별정우체국 자리

삼십 년 하루 같이 산마을 지키며

햇살 소식도 전하고

궂은 비 소식도 전하고

한평생 빨간 자전가만 몰다 간

우체부 정씨 아저씨

구석구석 중매쟁이도 겸하던 곳

어느날 우체통 옮겨간 그 자리

자연산 추어탕집 문을 열었네.이하 줄임(60윤정식당)

 

시속에는 옛 시절의 교환아가씨도 등장한다. 그곳 사람들은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웃음을 짓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을 누구에게 권할까  긴 시간 교단에서 근무하면서 거의 매일 시를 접한 나이지만 시는 늘 어렵다. 시집을 펼칠 때는 어렵지 않을까 부담스럽고,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 때는 안도하곤 했다. 이 책은 편안한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이 이어지고 있으니 독자에게는 정겨운 벗이 되리라고 본다. 그러나 어린 독자보다는 나이가 든 이들에게 더 가까이 느껴질 듯하다. 어린 독자라고 해서 나이가 들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생텍쥐페리는 어린왕자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는데…….

 

지금은 어른이 되어 있는 예전의 어린 벗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

 

얼떨결에독자들에게는 이런 추천사를 전하고 싶다. 작가는 아마 이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언젠가 어른이 되어 있을 지금의 어린 벗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

y******3 2019.08.27.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