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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행복담론이 홍수를 이루는 이유는 대다수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행한 현실의 증거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전세계 곳곳에서 넘쳐나는 종말론이다. 마야의 예언은 허위로 판명되었지만 이웃나라 중국도 현재 종말론을 신봉하는 사이비종파 때문에 골머리를 썪고 있지 않은가. 행복론과 종말론이 함께 범람하는 것은 대표적인 세기말 현상이다. 공자와 예수가 생존한 시기에도 오늘날과 똑같이 행복론과 종말론이 함께 했다. 일자무식의 사람도 이제 개인이 불행하고 사회가 혼란한 원인으로 현대문명,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시스템 쯤은 지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우울증, 스트레스, 무기력함,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복해지는 비법을 알려주겠다는 유혹이 난무하고 세계종말을 대비하라는 선동가들도 출몰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유혹과 선동에 아무런 방어기제 없이 혹하고 마는 불행한 대중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데 있다. 물론 넘쳐나는 행복론과 긍정주의심리학에 '행복은 허구다'라며 제동을 거는 이들도 있다. 쇼펜하우어, 프로이트, 라캉과 지젝과 같은 이들은 행복은 성취할 수 없는 것, 행복은 개인과 사회의 오해, 혹은 위선이나 자기기만이라고 설파한다. 그러나 행복이 허구라서 결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회피하는 차선책에 불과하다. 행복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고찰과 종합적인 시각이 필요한 오늘이다. 철학자 시셀라 복은 《행복학 개론》(이매진, 2012)에서 철학자, 시인, 종교 사상가들의 행복담론과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의 행복연구를 종합하려고 시도한다. 또한 도덕적 문제가 행복의 문제를 어떻게 제한하는지 검토하려 한다. 다른 무수한 자기계발서류의 행복담론이 행복에 이르는 비법이나 메뉴얼 제작에 골몰한다면, 이 책은 오히려 고금의 지식인들이 행복에 관해 던진 근본적인 물음과 성찰을 정리하고 있는 철학노트에 해당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행복을 탐구하는 길은 두 가지다. 행복의 내적 조건을 탐구하는 주관적인 길과 행복의 외적 조건을 탐구하는 객관적인 길. 주관적인 행복 관점은 덕과 연계된다. 가령 플라톤은 덕을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걸음 물러나서 덕을 필요조건으로 보았지만 행복의 충분조건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칸트는 덕과 행복의 연결고리를 잘라버렸다. 칸트에게 중요한 것은 행복보다도 선한 의지였다. 선한 의지 없이는 행복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던 덕과 재능이 무용지물이라고 보았고, 행복 그 자체가 아니라 행복할 만한 가치가 있게 사는 것을 더 중시했다. 객관적인 관점은 물질적 부나 건강과 같은 외적 조건과 연계된다. 행복의 내적 조건과 외적 조건을 모두 탐구하는 ‘행복과학’이라는 학문이 더 이상 공상과학의 얘기가 아니다. 특히 불행한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은 버트런드 러셀은 오늘날 '행복과학'의 창립과 발전에 박수와 지지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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