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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장금'의 열기로 후끈했던 얼마전, 그 드라마를 통해서 우리의 음식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의 궁중 음식이 아직까지도 계승되어 내려오고 있기는 하지만, 대중적인가 하면 또 그렇지 않은 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세계 여러나라 음식도 동시에 우리가 손 쉽게 접할 수 있기에 관심이 덜 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의 전통 음식과 더불어 음식 문화가 한류 붐을 타고 세계 곳곳에 소개되기도 하여 바람직한 요즘인 것 같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 음식을 지키고 보전하여 후대에 물려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했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황혜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음식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만든 각고의 노력을 살펴볼 수 있어 참 좋은 시간이 되었다.
황혜성은 1920년 충남 천안 태생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손이 귀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지극 정성으로 자라왔다고 한다. 돌봐주는 엄마만해도 낳아준 엄마를 포함해서 모두 다섯 엄마나 되었다고 한다. 소위 불면 날아갈새라 하는 그런 느낌이었던 듯 하다. 그래서 어릴적엔 무척 까칠한 성격이었나보다. 밥을 먹을 때도 옆에서 거들어주는 엄마가 따로 있었을 정도라니까 말이다. 게다가 음식도 엄청 가려서 먹었던 것 같다. 매운 음식보다는 담백한 음식 위주로 먹었다고 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엄청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녀는 몸도 허약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가정에서도 애지중지하여 학교를 보내는 것도 걱정을 많이 했나보다. 그러던 중에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사촌 오빠가 일본에서 공부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를 하자 처음엔 가족들이 반대를 하지만, 열여석의 나이에 계획없는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낯선 곳에서 차차 적응을 하게 된 그녀의 그 시절은 우리나라도 일본에 주권을 빼앗겼던 시기였기에 조국의 현실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차별에도 굴하지 않고 학업을 마친 그녀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가사 선생이 된다. 그러던 중에 자신에게 버팀목이 되었던 가족을 연이어 잃고 어린 남동생 뿐인 혈육을 맡아 가장이 된 힘든 여건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고, 그러던 중에 우연히 조선 궁중음식을 배우게 되는데.....
궁중음식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그녀에게 스승이 되어준 한희순 상궁으로 인해 그녀는 우리나라 궁중 음식 역사에 한획을 긋는 조선 왕조 궁중 음식을 인간 문화재 중요 무형문화재 제 38호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한다. 자칫 왕권이 무너지고 사라져갔을 우리의 전통을 그녀로 인해 맥을 잇게 된 것.
비록 어린 시절 허약하고 편식도 했고 어리광쟁이였을지 몰라도 우리 음식에 대한 열의를 가지고 이룩해낸 업적에 숭고한 마음이 들었다. 음식의 가치를 세계에 알린 궁중음식연구가의 그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동화 구성의 이야기라서 아이들에게도 우리의 소중한 음식 문화에 대한 관심도 가질 수 있을뿐더러 재미있게 읽으며 도전이 되고 용기가 되는 그런 구성이 아닐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