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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카라얀의 전기를 읽어보고 싶었는데, 올 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이해 800페이지에 달하는 베토벤 전기를 읽고 난 뒤에 내친김에 본문만 1200여 페이지나 되어 두 권으로 분철된 이 책도 함께 읽게 되었다. 평전 첫 권에서는 카라얀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1955년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에 추대된 것까지 서술되어 있으며, 여기 두 번째 책에서는 1957년 국립 오페라 극장의 예술감독이 된 카라얀이 빈 필하모닉과 다시 만나 리허설을 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지휘할 때 눈을 감는 카라얀의 습관은 그것에 익숙해지지 않은 연주자들을 괴롭혔고, 카라얀은 연주자들이 서로가 서로의 소리를 듣는 법을 다시 배우도록 이끌었다고 한다. 하지만 카라얀은 오페라 극장에서는 내내 눈을 뜨고 지휘했다고 한다. 그리고 연주자들의 실수에 결코 반응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뭐라고 지적을 하면 긴장이 고조되어 더 낭패를 볼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물론 솔로 가수가 노래하는데 갑자기 오케스트라 연주를 중단시키는 것은 좀 더 엄해질 필요가 있다고 느낄 때 카라얀이 자주 쓰던 수법이었다고 한다. 또한 이 무렵 스트라빈스키가 빈을 방문해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지휘를 했는데, 오케스트라가 낯선 스트라빈스키의 지휘법을 극복하기 위해 카라얀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한다. 한편 카라얀은 1960년 여름 잘츠부르크 음악제가 진행되던 중 이면에서 일어난 여러가지 불화로 음악제 감독직을 사임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정부와 오페라 극장 조합 간의 협상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결되자 카라얀은 관료들에게 무시당했거나 그들의 술책에 넘어갔다는 것을 깨닫고 예술감독 자리를 사임했던 것이다. 물론 이후에 다시 복귀하지만 파벌은 여전히 존재했다고 한다. 물론 베를린 필하모닉과는 좋은 관계 속에서 그 전성시대를 열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여러가지 눈길을 끄는 대목들이 있는데, 건축가 한스 샤룬의 설계안대로 새로 짓게 된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오케스트라 자리가 홀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것에 반발했으나 카라얀은 찬성했고, 베를린 필하모닉의 급여 수준을 높이도록 재조정하는 일과 함께 증가하는 오케스트라 활동에 걸맞게 개인적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단원들의 요청을 관철시키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제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닉은 예술적 차원에서 깊이 신뢰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특히 여름마다 카라얀과 단원들은 휴양지 장크트모리츠로 모여들어 같이 휴가를 즐기며 녹음 작업에 임했다고 한다. 편히 서로 동지애를 나누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니 정말 좋은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던 것이다. 빈 오페라 극장을 사임한 카라얀은 새롭고 흥미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자신이 주도하고 모든 책임을 졌던 잘츠부르크 부활절 음악제와 잘츠부르크 성령강림절 음악제였다고 한다. 카라얀의 딸들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되어 있는데, 아이들이 아버지를 따라 어려운 음악가의 길을 걷지 않도록 자유롭게 놔주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카라얀을 비롯해 동시대에 활동했던 유명 지휘자들의 리허설과 공연 장면들을 유튜브를 통해 찾아 보았는데, 이 책에도 그 당시 제작된 음악 영화와 리허설 장면들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특히 내가 감명 깊게 본 슈만의 교향곡 4번에 대한 카라얀의 리허설 장면이 그가 최초에 작업했던 영상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1960년대, 카라얀은 그 당시 오십 대에 국제적 위상을 얻게 된 유일한 지휘자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명성에 근접하고 있는 젊은 지휘자는 없었으며, 비슷한 명성을 지닌 나이 든 다른 지휘자들에 비해 적어도 스무 살은 젊었다고 한다. 이어서 파리 오케스트라의 고문직을 수락한 뒤 외부 압력으로 인해 사임한 사건과 소련의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를 공연 차 방문했을 때 쇼스타코비치가 직접 무대에 합류했던 일, 제임스 골웨이가 솔로 플루트 주자로 베를린 필하모닉에 오디션을 보았던 일, 이 책의 저자가 직접 목격했다는 13살의 안네 소피 무터가 베를린 필하모닉과 처음 리허설을 했던 일도 함께 서술되고 있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카라얀은 1975년 말 신경의 흐름이 막히고 척수의 3분의 2가 압착되어 거의 죽을 뻔했던 고비를 넘겨가며 수술을 받은 이후에 연주가 더욱 날카로워졌으며 리듬과 음색에 예리함이 더해졌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카라얀은 뇌졸중으로 리허설 도중 균형을 잃고 쓰러지기도 했다는데, 그의 건강 문제로 인해 메타, 오자와, 텐슈테트가 가능성 있는 후임자들로 언급되기도 했다고 한다. 1979년 3월 자신의 평생 동지였던 월터 레그가 세상을 떠나자 카라얀의 지휘는 갑자기 더 간결해지고 더욱 강렬해졌으며, 그런 환경 속에서 1979년에서부터 1982년 사이에 많은 음반을 발매했다고 한다. 이 음반들에서 연주의 강렬함은 융통성 없이 틀에 박힌 스튜디오 녹음과 결부되어 말년의 토스카니니 스타일과 비슷했고, 토스카니니처럼 카라얀은 실제적이고 직접적이며 작곡가가 의도한 대로 연주하는 데 점점 더 몰두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1982년에서 1989년에 걸쳐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관계가 그의 건강만큼 심상치 않게 악화되었던 일들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몇몇 단원들이 오케스트라의 주권을 주장하는 가운데, 카라얀이 채용한 일부 연주자들에 대한 거부권이 행사되었고 오케스트라 내부의 정치 공작이 판을 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카라얀이 누리는 영광이 사실은 단원들 자신들의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오케스트라 안에 존재했었다는 이야기도 언급되어 있다. 한편 카라얀은 1983년 경부 척수 압박 교정 수술을 받은 이후 음악적 경화 현상 같은 징조가 나타났다고 한다. 서 있는 것의 긴장 탓에 에너지가 고갈되고 팔의 움직임이 둔화되어 의자에 앉아서 지휘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카라얀의 건강 문제로 인해 마지막 4년 동안 그가 지휘한 연주회는 거장의 지휘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표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고 한다. 이러한 와중에 소프라노 조수미와 카라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 언급되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불화 속에서 82세로 접어든 몇 주 후 빈 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한 것이 카라얀이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서 지휘한 것이었다고 한다. 곧 건강상의 이유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감독과 상임지휘자에서 사임한다는 카라얀의 편지가 베를린 필하모닉에 전달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집에서 평상시처럼 생활하다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속전속결로 장례가 치뤄졌다고 한다. 이 책의 부록으로 몇 가지 글들이 실려 있는데, 카라얀의 나치당 입당과 잘못된 정보의 영향에 대해 언급된 것 외에 지휘자와 지휘법에 관해 카라얀이 쓴 미완의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 인상깊었다. 리허설은 음악 한 곡을 그 형태대로, 그 내용대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음악적, 기술적 구조에 따라 효율적으로, 체계적으로 공연 가능하도록 만든다면서, 지휘자의 고된 임무가 그 때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지휘자는 생생한 설명을 동원해 음악에 접근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연주자 개인 혹은 그룹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수는 분명히 설명할 필요가 있고, 모든 새로운 시도는 무언가 더 나은 쪽으로 인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그리고 침착하게 연주자에게 실수를 설명해서 그가 문제를 완벽하게 파악한다면, 다음 번에는 분명히 더 나은 연주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 연주자의 연주가 향상되어 만족하게 되면 지휘자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고 작품에 대한 흥미가 배가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더 이상 말을 다루듯이 지시하지 않아도 전체에 대한 소속감에서 템포의 변화는 저절로 생겨난다고 설명한다. 각 연주자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끌어가는 계획에서 자신이 단순히 의미 없는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 과정에 창조적으로 기여했다고 느끼며 만족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카라얀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 있는데, 마지막으로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의 사진에 대한 것이었다. 일반인들에게 카라얀은 눈감고 지휘하는 옆 모습 사진으로 유명한데, 원래 그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 사진 찍히는 것을 꺼려했다고 한다. 어떤 것에 의해 침해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완전히 집중해서 연주하기 위한 필요성 때문에 그랬다고 하는데, 전문사진 작가 슈타이너를 고용해 조심스레 사진을 찍을 때에는 모델 경력이 있는 아내에게 프로 모델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등을 조언 받아 자연스러운 사진 포즈를 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이 책을 통해 카라얀에 대한 명성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 수 있었고, 향후 그의 리더십 스타일에 대한 것들을 좀 더 분석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