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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는 인간의 억압 조건으로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한다. 한 가지는 물질적 현실로 '채권자와 채무자'라는 강압적인 권력관계다.자본주의의 실상은 부채경제이고 강도의 피로 씻는 속죄 행위를 통해서 강도 역시 철공소의 다른 채무자들과 마찬가지로 갚을 빚을 짊어진 한 명의 채무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부채경제'라는 말이 생소한 독자들은 '신용사회'라는 말이 주는 자본주의적 의미의 실체를 잠시 고민해 보면 된다. 신용사회라는 껍데기 표현이 가리고 있는 자본주의적 진실이 바로 현재를 사는 누구나 부채를 짊어진 한 명의 부채인간이고 우리 사회는 신용사회라는 미명 아래 채무자를 대량생산하는 부채경제의 사회라는 점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다른 한 가지는 심리적 현실로 약탈적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죄책감에 시달리는 일종의 '심리적 불구자'라는 사실이다. 멀쩡한 이를 장애인으로 만들어 보험금을 타내어 빚을 갚으라는 강도와 장애로 인해 사회의 맨밑바닥에 떨어져 결국 철공소에서 목을 매어 자살할 수 밖에 없었던 채무자들이 영화에서는 대조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계송과 훈철이 돈 때문에 신체적인 장애자가 되었다면, 강도는 개인적으로는 엄마의 기아 행위와 유년기의 상실, 사회적으로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권력관계 때문에 심리적인 불구자가 된 경우다.
영화 <피에타>는 단순히 한 엄마의 아들에 대한 복수와 죽음을 통한 속죄라는 종교적 소재의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시대를 부채경제의 시대라고 고발하는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다. '부채경제'라는 개념으로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의 메커니즘을 조명한 이는 이탈리아 출신의 철학자 마우리치오 라자라토다. 그는 《부채인간》(메디치미디어, 2012)에서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인간의 존재 형상을 '부채인간'(빚을 진 사람)이라고 정의내리고, 사회적 관계의 기초를 채권자-채무자의 권력관계로 파악한다. 여기서 부채경제의 사회는 약육강식의 생존놀이의 사회이고, 끝없는 자기 계발의 사회이며, 동시에 승자독식의 사회이기도 하다. 라자라토는 책에서 들뢰즈·가타리, 니체, 마르크스, 푸코 등의 담론을 빌어 신자유주의의 부채경제에서는 개인과 사회 뿐만이 아니라 국가와 미래의 국민까지도 빚을 지고 있는, 한마디로 말해서 모두가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을 주인으로 삼은 노예가 되어버렸다고 설명한다.
<피에타> 남녀 주인공의 이름이 무척 상징적이다. 청계천 공장가에서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채무자들의 돈을 뜯어내며 살아가는 '채권자' 강도는 말그대로 신자유주의의 약탈자 '강도'를 떠올리게 하고 이는 부채경제의 노골적인 '이름'으로 재현된다. 반면에, 엄마 미선의 이름은 복음을 전도하는 종교적 임무를 뜻하는 '미션'을 생각나게 한다. 또한 미선은 '진리'를 은폐하고 단지 어머니의 '도덕'만을 미화하고 앞세워 '이에는 이'라는 복수와 대속의 논리를 구현한다. 미선의 이처럼 원한을 품은 태도는 자본주의적 심리의 대표적인 증후에 속한다. 미선과 강도의 관계도 채권자와 채무자의 사회적 관계로 정리될 수 있다. 금융자본주의 시대, 부채경제의 사회는 고통과 구원의 '피에타적 관계'도 왜곡되고 변태적일 수 밖에 없다.
채무자는 한마디로 '자본의 죄인'이다. 라자라토의 말대로 "우리는 '자본'이라는 '신'에게 빚을 진다."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그 자체로 거대한 '포괄적 채권자'의 모습이고, 우리는 부채라는 원죄를 지닌 죄인이 되어버린다. 모두가 채무자인 상황에서 채무자의 ‘부채에 대항한 투쟁’이나 노예의 주인에 대한 반란이란 있을 수 없다. “남의 돈 빌려놓고 '설마 어떻게 하겠어?' 하는 니들이 쓰레기지.”라는 강도의 대사처럼 부채경제가 모든 인간에게 지우는 족쇄는 인간의 삶의 양식을 철저히 통제한다. 영화에서는 강도의 직업처럼 채무자에 대한 타율적인 억압을 강조하고 있지만, 채무자는 실은 사법적·강제적 억압이 아니더라도 양심의 가책과 책임감을 짊어진 상황에서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삶과 행위를 자율적으로 통제하게 된다. 영화 <피에타>의 한계는 채무자가 가진 이런 자율적 통제의 속성을 살려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부채의 힘은 억압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 아니다. 채무자는 '자유롭지만' 그의 행동과 태도는 그가 계약되어 있는 부채에 의해 규정되는 범주 안으로 제한된다. 이는 국민이나 사회집단에 속한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부채 상환 능력 내에서만, 소비·고용·세금·사회 비용 등 삶의 양식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다."(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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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신용사회에 살고 있다. 여전히 지갑에 약간의 현금을 갖고 다니긴 하지만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을 때 빼곤 현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카드로 결제하고 돈은 컴퓨터를 통해 이체된다. 실질적으로 화폐가 종이였을때조차 그것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게 통찰력있는 사람들의 조언이었는데 이제 대부분의 돈은 실물로 존재하지조차 않고 비트로만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다. 문제는 이런 신용사회가 우리를 더욱 편하게 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빚을 지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신용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는 지난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로 세계적인 불황으로 나타났지만 오늘날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유럽 여러 나라의 과도한 국가 부채는 여전히 세계 경제의 위협요소로 남아있고 세계 경제는 침체되었으며 국내도 부동산 대출로 인한 가계부채로 인해 잠재적인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에 대한 평가나 해결책은 수많은 전문가와 경제학자들을 통해 제시되고 있지만 저자는 독특한 관점에서 부채 경제를 분석하고 있다.
작은 사이즈에 두께도 얇아 언뜻 문고본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만큼은 만만치 않다. 특히 명료하면서 고도로 압축된 그리고 예리한 문체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다만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니체, 들뢰즈, 푸코 같은 이들의 통찰 위에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어서 이들에 대한 기본 배경지식이 있다면 더욱 이해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몰라도 큰 상관은 없어 보인다. 최근의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무너져가고 있다고 보는 편에선 마르크스와 자본론을 다시 꺼내 들고 있는 데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마르크스의 자본론만큼 자본주의를 잘 분석한 책은 없다고 한다. 거기에 철학자 답게 니체와 들뢰즈, 푸코라니, 분명 이해하기 쉬운 구성은 아니지만 이들 20세기의 예언자들은 오늘날 세계가 처하게 된 현실을 어느정도 통찰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개인의 부채, 사회의 부채, 그리고 국가 부채까지 현대 사회는 온통 빚으로 둘러쌓여 있다고 한다. 금융사회란 자본가들이 막대한 돈을 굴리면서 눈덩이처럼 부를 쌓아가는 동안 대부분의 나머지들은 금융경제 아래 채무자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빚을 지고 있지 않다고 해도 국가 채무가 많아지면 그것 역시 개인의 삶을 위협하긴 마찬가지다. 아마도 경제학자들이 조명했어야 할 경제 이야기겠지만 철학자로서 우리의 삶과 실존을 위협하는 금융 경제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선한 관점을 제공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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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나오는 뉴스라곤 가계부채가 900조원대로 치솟고, 부동산 침체로 인해 하우스 푸어가 60만 명에 이른다는 암울한 소식뿐이어서 그런지 이탈리아 출신의 사회학자 겸 철학자인 마우리치오 라자라토가 쓴 <부채인간>은 현시점에 딱 맞아 떨어지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본이라는 신에게 빚을 진다”는 문구에 맞게 저자는 현대 신자유주의 논리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통제하는지, 그리고 신용과 부채의 문제가 어떻게 ‘당신이 열심히 일을 할수록, 저 많은 빚을 지게 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위기는 조만간 사라져 버릴 종류의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무한히 확장될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로 하여금 다가올 전투의 수행에 도움이 될 무기들을 구축하기 위해, 적들의 영토를 섭렵하고 부채 경제 및 부채인간의 생산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p. 31)면서 글을 시작합니다.
마르크스의 <자본>, 니체의 <도덕의 계보>, 들뢰즈·가타리의 <앙띠 오이디푸스>, 푸코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등이 주로 인용되어 이해하기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읽어 나가다보면 부채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는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부채에 대해 국경도, 생산의 이분법도, 경제사회정치의 구분도 존재하지 않는 횡단적 권력관계를 표상한다고 합니다. 이 횡단적 권력관계는 부채인간의 윤리적 생산을 동반하고 자극하면서 전 인류를 가로질러 직접적이고 전지구적인 수준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책의 하나로 민간 부채와 국가 부채사이에 사회 부채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합니다. (p. 178) 지난 경제금융위기로 드러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의 실패가 우리 사회에서 부채 경제를 통한 사회적 영역의 투자 논리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 분명하기에, 이 양자를 연결시켜 사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고 말입니다.
요즘 성장도 성장이지만 복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복지에 관해서는 많은 나라의 표본이 되고 있는 유럽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은 다시금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는 그리스, 포르투갈 뿐 아니라 독일, 프랑스 등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는 유럽발 금융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부채 인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어 한 번 정도는 생각을 해보아야 할 문제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는 그가 인용한 마르크스의 글입니다. 그의 일부를 옮겨봅니다.
돈의 영혼이 소유하는 육체, 재료는 이제 더 이상 돈과 종이가 아니라 나의 인격적 실존, 나의 살과 나의 피, 나의 사회적 덕성, 나의 사회적 평판이다. 대출은 화폐의 가치를 돈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살, 인간의 마음속에서 만들어 낸다. (p.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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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마르크스의 논문과 니체, 들뢰즈, 가타리, 푸코 등을 원용하여 현대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통제하는지, 그리고 신용과 부채의 문제가 어떻게 열심히 일을 할수록, 더 많은 빚을 지게 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의 과정에서 저자가 핵심으로 삼는 개념은 니체적 의미로 해석된 부채인간이다. 대출자와 채무라는 권력관계 안에 우리 사회관계의 기초가 있다고 말한다. 니체는 죄는 빚, 곧 부채라는 매우 물질적인 개념으로 정의했다. 손해와 고통 사이의 균형이라는 관념은 근본적으로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계약적 관계, 사법적 개인의 존재만큼이나 오래 되었으며 교통, 교환, 가치의 구입이라는 근본적 형식으로 또 다시 돌아가는 하나의 관계라 말했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경제적이지 않은 가치를 경제적 효용가치로 환원한다. 그래서 학생들도 스펙 쌓기 위해 부채를 지고, 결혼하기 위해 부채를 지고, 그러한 모든 것들이 개인의 책임으로 둔갑했다. 국가는 현실에서 뒤쳐질 경우에 모든 책임을 개인 자신에게 떠넘긴다. 신자유주의는 마음, 품행, 일상을 통제한다. 생활, 습관, 생각, 자세, 가치관, 세계관을 새롭게 빚어낸다. 그들이 제시하는 기준에 스스로 맞춰야 생존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삶이 개인에게 자발적 선택으로 만들어진 모습을 진짜 자기인줄 착각하는 데 있다. 개인은 신자유주의에 의해 주체로서 조립, 제조, 재생산된다고 말한다.
요즘 집, 자동차를 살 때 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다. 기업과 국가는 그렇게 소비를 강요한다. 마치 아무일 없을 것처럼 금방 갚을 수 있을 것처럼 광고한다. 그럴 경우 개인은 갚아나가기 위해 무리하게 된다. 게다가 일을 계속 더 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올가미에 걸린 상황에 처한다. 지금 사회는 이러한 은행 대출, 사체, 카드로 인한 피해가 크다. 개인들은 한 몫 잡아보려는 희망과 주변의 부추김으로 빛을지고 집을샀고, 집값이 떨어지면서 대출로 인한 파산과 무분별한 소비로 인해 자신을 저당 잡히며 사는 사람도 많다. 국가는 이렇게 국민들의 부채를 이용해서 성장하려 한다. 경기가 떨어졌다고 해서 그것을 부채로 메우려 해서는 안 된다.
부채는 속박이고 장악이다. 부채를 진 사람에게 사회는 억압하려하고 그 사람을 죄인처럼 대한다. 마치 당신이 잘못 살았기 때문에, 노력을 안했기 때문에 당신의 잘못으로 빚을 진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대부분 이런 사람들도 열심히 노력해서 살고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 취업전쟁, 결혼식, 자동차, 등등 경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소비를 해야 하는데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할시에는 부채가 온전히 빚으로 남게 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개인이 늘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부자나라는 가난한 나라를 장악해서 그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자원을 싸게 들여오고 있다. 부자나라 사람들은 해외로 조세피탈하고 고임금을 받으면서 점점 더 부를 축적하고 가난한 나라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으며 자신들의 나라가 가난한 이유를 무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난은 수치심이요, 가난하니까 경쟁에서 졌으니까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현실에 순응하고 복종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부채인간이 되었다. 그들은 평생 부채를 갚고 집을 사기위해 일할 것이다. 그리고 자식을 또 경쟁시키느라 많은 돈을 벌어야 하기에 또 부채를 지게 될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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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읽은 후. 서평이랍시고 감상을 남긴 이래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책을 만났다. 남들이 다들 어렵다고 말하던 <과학혁명의 구조>나 <이기적 유전자>. <종의 기원>같은 책을 읽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부채인간>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가 되었다는 정도 밖에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 책을 읽고 <화차>나 <피에타>같은 영화의 장면이 떠올랐다는 다른 분들의 감상을 읽었다. 나 역시 <피에타>의 한 장면. 돈을 빌려준 이가 돈을 갚지 못하는 자의 팔을 아무렇지 않게. 내 돈을 쓴 댓가로서 정말 당연하다는 듯이 기계 속에 집어넣고 비틀어버리는 장면에서 채권자와 채무자의 계급나누기의 모순을 엿볼 수 있었다.
2. <부채인간>이라는 책에는 뭔가 많고 복잡하고 전문적인 용어로 설명하는데(니체의 글. 들뢰즈와 가타리의 글. 푸코의 글을 인용. 그러나 그에 대한 개론은 생략된). 그 이야기들이 계속 반복된다는 인상. ‘그래 그렇군. 했는데 어라 또 나오는군’. 이 얇은 책에서 열 번 이상 그런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3. 화폐의 정의. 신용이라는 것.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 그 관계에서 무의식적으로 피어나는 죄의식. 채무에 발목이 잡혀버린 그들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 성공은 나의 탓. 실패는 나의 몫의 풍조. 그래서 그들은 부채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게으름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신자유주의. 그리고 그 구조적 모순에 대한 비판.
이런 구조가 국가적인 범위로까지 발전하여 그리스의 더운 기후 속의 나태한 국민의식 때문에 국가부도위기에 직면했다며 세계인들은 비웃고. 은행과 정부와 정치권력. 그리고 기업은 암묵적으로 이런 불평등관계를 부추겨 빚을 가진 상태로 태어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그렇게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본주의 의식과 부채의식 속에 자라나야만 하는. 이런 이야기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 계속 이어진다.
4. 이 책에서 단 하나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화폐의 기원에 대한 통렬한 패러다임 부수기였다. 지금껏 우리는 학교에서 화폐는 물물교환을 하던 시대. 곡식이나 동물의 그 거대한 부피를 간소화하고, 교환의 편의를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부채인간>에서 말하기를 태초에 화폐라는 것은 교환이 아닌 청산에 대한 증표로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애초부터 교환의 개념이 아니라 부채의 개념이라면. 화폐란 빚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되고. 많은 화폐를 쓴다는 것은 보유한 미래가 감당할 수 있는 지반이 탄탄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게 진화하여 오늘날 한 사람의 신용을. 도덕성을. 능력을 나타내는 기준이 되는 것이라는 설명은 자연스러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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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인간 /저자 마우리치오 라자라토/출판 메디치미디어/발매 2012.10.01.
금융 자본주의가 호출하는 주체성으로부터 벗어나라.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빚을 진 인간(부채인간)'이 되며, 평생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채는 개인의 정치적 힘과 미래까지 약탈하고 있다. 빚을 지는 순간 '부채'는 개인의 삶을 유린하기 시작한다. 채권자는 채무자의 내적·외적인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으며, '의무', '죄책감', '양심' 등 개인적이며 도덕적인 부분까지 건드린다.
신자유주의는 부채를 통해 개인의 도덕과 양심, 일상 통제하며 그것이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 금융 권력들은 사람들을 '빚을 진 죄인'으로 세뇌시키는 데 여념이 없으며,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주체성을 잃고 '부채인간'으로 조립·제조·생산된다. 신자유주의 시대, 부채인간들은 빚이라는 죄를 짓고 '자기 자신에 대한 노동'에 복무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빚을 갚으라"는 지상명령은 무엇보다 강력하게 인간의 삶을 짓누른다.
저자는 자본주의 경제를 부채경제로 바꿔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소득과 자본은 다르게 작용하는데 우리는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부채 경제의 악랄함이 우리를 점점 더 구렁덩이로 밀어버리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신용도라는 것은 무엇인가? 신용도는 부채 경제가 어느 대상에게 부채를 빌려주기 앞서 그 사람의 미래적 능력을 담보로 하여 빌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의 미래까지 부채 경제가 확보하는 것이다. 고리대금업에 대해 많은 사회학자들이 미래 시간을 빼앗는 사악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러한 부채 경제의 위험성 때문이다. 미래 위험을 대상화하여 그 사람이 스스로 빚을 갚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 신용도인 것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 때 많은 중산층들이 위기를 가졌던 것은 이러한 미래적 담보를 금융기관에 다 맡겨버렸기 때문이다. 주택이라는 공공성이 마치 개인의 잘못인 양 취급되는 현실이 부채 경제의 가장 큰 문제이다.
채무자는 한마디로 '자본의 죄인'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자본'이라는 '신'에게 빚을 진다." 금융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그 자체로 거대한 포괄적 채권자의 모습이고, 우리는 부채라는 원죄를 지닌 죄인이 되어버린다. 모두가 채무자인 상황에서 채무자의 '부채에 대항한 투쟁'이나 노예의 주인에 대한 반란이 있을 수 없다.
P58
부채의 힘은 억압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 아니다. 채무자는 '자유롭지만' 그의 행동과 태도는 그가 계약되어 있는 부채에 의해 규정되는 범주 안으로 제한된다. 이는 국민이나 사회집단에 속한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부채 상환 능력 내에서만, 소비·고용·세금·사회 비용 등 삶의 양식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다.
P191~192
부채의 활동 범위는 단순히 금융과 화폐 정책을 세심히 조작하고 막대한 양의 돈을 굴리는 일에 국한되지 않으며, 사용자의 실존을 생산하고 통제하는 기술을 형성, 배치하는 것에 이른다.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경제는 결코 주체를 장악할 수 없을 것이다.
《부채인간(마우리치오 라자라토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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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서 정부인사들과 많은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가계 부채를 줄이자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개인이나 나라할 것 없이 부채의 크기가 날로 증가하면서 위험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마우리치오 라자라토가 쓴 이 책은 그런 부채에 대한 생각을 철학적인 시선과 사회학적인 관점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면 딱인 그런 서적이다.
부채는 모든 경계와 국경을 허물고, 채권자 - 채무자 관계는 전세계적 차원으로 확장될 것이다. 부채는 또한 노동,고용의 관점과는 다른 관점을 갖게 만들어 '자본' 혹은 '보편적 채권자'의 수준에서 정치를 사유하도록 우리를 강요한다. 부채는 고용과 실업, 활동 인구와 비활동 인구, 생산자와 빈민, 임시직과 정규직 사이의 모든 기존 경계를 넘어선다.
저자는 프랑스의 재정 상태를 이야기하면서 금융보다는 부채와 금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다. 저자는 금융이 이성적으로 제어해야 할 인간 본성의 탐욕과 물욕의 표현들 중 하나가 아니라 하나의 권력관계라고 말하고 있다. 부채는 돈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의 입장에서 본 금융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저자는 금융이 아닌 부채를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철학적이면서도 사회학적인 내용과 언급들이 자주 나오는 이 책을 단 한번만 읽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자 무리수일 것이다. 이 책은 적어도 세번은 읽어야지 비로소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그런 심도깊은 철학 에세이라고 말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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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자를 만들어 내는 사회에 대한 철학 에세이 [부채인간]
우리는 '자본'이라는 신에게 빚을 지고 태어난다.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부채경제에 통합시키고 있는 지를 여실히 밝혀주는 책이다.
이책은 부채가 사회기반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자본주의 신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질문이다. 유럽의 예를 들면서 공공부채의 증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생각해본다. 정부가 중앙은행을 통한 현금확보가 불가능해지면서 결국 공채라는 환상을 통해 금융시장에 의존하게되고 이것이 결국 정부의 부채 의존도를 심화시키고 있다. 기업이나 개인도 이러한 경제에 통합되는데 특히 카드라는 것을 통해 소비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부채경제로 자신도 모르게 편입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자본주의경제를 부채경제로 바꿔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소득과 자본은 다르게 작용하는데 우리는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부채경제의 악랄함이 우리를 점점 더 구렁텅이로 밀어버리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의 순환을 만들어야 하는 금융경제가 아닌 채권과 채무라는 관계로 형성되는 부채경제의 차이는 권력관계의 표시 차이이다. 금융경제라고 표현하는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평등하게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절대 평등하지 않으며 채권자가 권력을 가지고 있는 부채경제의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채경제가 심화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사회보험메카니즘의 민영화, 사회정책의 개인화, 사회안전성망의 기업화를 추구한다. 그들은 공공성보다는 자본의 이익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신용도라는 것은 무엇인가? 신용도는 부채경제가 어느 대상에게 부채를 빌려주기 앞서 그 사람의 미래적 능력을 담보로 하여 빌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사람의 미래까지 부채경제가 확보하는 것이다. 고리대금없에 대해 많은 사회학자들이 미래시간을 빼앗는 사악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러한 부채경제의 위험성 때문이다. 미래 위험을 대상화하여 그 사람이 스스로 빚을 갚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 신용도인 것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때 많은 중산층들이 위기를 가졌던 것은 이러한 미래적 담보를 금융기관에 다 맡겨버렸기 때문이다. 주택이라는 공공성이 마치 개인의 잘못인양 취급되는 현실이 부채경제의 가장 큰 문제이다. 신자유주의가 세계경제를 제편하는 방법은 IMF와 신용평가기관 등을 통해서이다. 신용평가기관이 한 나라의 신용등급을 한 등급만 내려도 그 나라의 이자지출은 엄청나게 증가하는 것이다. 올해 유럽의 위기를 통해 그 이전과 이후의 경제적 상황 자체가 바뀐 것을 별로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신용등급을 몇 단계 낮추었지만 세계의 모든 나라가 위기를 겪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공공재여야 할 금융이 자본의 힘에 의해 사유화가 되면서 자본의 커다른 권력에 의해 세계가 재편되고 있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모습인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막강한 부채권력을 통해 새로운 통치시스템을 강요한다. 각국에 노동통제시스템을 변화할 것과 사회안전망이나 사회보험을 재편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의 가장 큰 논리는 작은 정부를 만들라는 것이다. 힘이 없는 작은 정부를 통해 보다 쉽게 각국의 정책을 통제하고 자본의 축적을 만들어가려고 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권력의 핵심인 부채경제인 것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요즘 많은 지자체가 고민을 하고 있는 민자투자사업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민자사업에 가장 많이 참여하고 있는 맥쿼리의 자본이 철저하게 금융투자회사라는 것과 그 회사의 투자방식이 상환대출방식이라는 것은 정말 이책의 요지와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유신장과 자본의 자유화를 통해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해왔지만 결국 우리에게 남은 것은 엄청난 바벨탑의 거대한 자본가를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내일은 어떻게 돈을 갚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수레바퀴의 삶의 모습이다. 미국에서도 굶주리고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인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환상이 점차 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적 상황도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가계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이러한 상황은 개선되지 않을 거라고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왜곡의 현상을 극복하고 불균형을 해소할 올바른 대안을 고민해볼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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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인간, 채무자를 만들어 내는 사회, 인간 억업 조건에 관한 철학 에세이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처음에는 얼핏 일본이 저자가 쓴 글인 줄 알았는데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 사회학자 겸 철학자였다. 유로존 경제3위 국가이자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이며, 독일과 유로존의 한축을 이루고 있는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저자가 어떤 것을 보고 배웠으며 어떤 생각을 할지 어느정도 추측 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세피난처에 애플은 810억달러 이상, 마이크로소프트는 540억 달러, 구글은 420억 달러, 시스코는 410억 달러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 돈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다 라는 르 몽드의 기사는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전세계 극소수 기업과 사람들이 전세계 대다수 사람들에게서 부를 빨아들여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조세 피난처에 묻어두고 있는게 아닌가 그래서 더더욱 문제가 심화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죄,양심,의무의 신성함 같은 도덕적 개념이 채무법에서 발생되었다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사회적 구조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결 해야 할 문제가 마치 개인이 잘못 한 것처럼 죄책감을 갖게 만들어 스스로 책임지고 늘어만 가는 부채를 끊이없이 갚아나가게 만들어 착취를 계속 이어 나간다는 내용에 읽으면서 수긍이 갔다.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를 통해 착취와 지배의 메카니즘을 강화 시켜 나간다는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였다.
부채 경제에 대한 최책감과 의무,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벗어나 부채를 없애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주장을 저자는 들려주고 있다.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을 깨우쳐 주고 부채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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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핫한 이슈로 떠오른 단어 중에 하나가 ‘하우스 푸어(House Poor)', ’워킹 푸어(Working Poor)'다. 집 한 채만 가지고 있을 뿐 제대로 된 경제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과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노력을 해도 가계생활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인 것 같다. 최근 미국 월가 점령 사건이나 그리스 등 유럽 국가들의 부도 사태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닌가 한다. 이런 현상들은 대부분 20세기 후반에 나타났다. 많은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이는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남겨준 상흔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부채인간은 그와 같은 신자유주의와 연관되어 있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적이지 않은 모든 것들, 즉 사회적인 것, 개인적인 것, 도덕적인 것, 정치적인 것을 모조리 경제적 효용가치로 환원시켜 버린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핵심 원리가 바로 채무자-채권자 관계다. 그리고 ‘빚’이라는 ‘원죄’를 진 인간, 즉 ‘부채인간’의 형상이 여기서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까지 알고 지내온 경제학적인 지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상당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우리는 매일 매일 신용카드를 쓰면서 빚을 지고 있고, 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주택담보 대출을 이용하고 있으며, 최근 반값 등록금으로 문제되고 있는 학자금 대출을 받고 있는 등 우리의 생활 전체가 크고 작은 빚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빚으로 인해 우리는 마치 죄인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바로 이 점에 주목을 하고 신자유주의는 부채를 통해 개인의 도덕과 양심, 그리고 일상 통제하며 그것이 개인의 자발인 선택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부채인간들은 빚이라는 죄를 지고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앙띠 오이디푸스’를 중심으로 마르크스의 ‘대출과 은행’, ‘자본’, 니체의 ‘도덕의 계보’, 푸코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등을 통해 부채인간의 생산 과정에 대해 들려준다. 솔직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내용이다. 책 분량이 얼마되지 않지만 경제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철학적 개념을 빌려서 이야기함으로 인해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책을 다 읽으면 부채는 단순한 개인과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는 구조와 권력의 문제이며, 인식과 투쟁의 문제다. 부채는 단순히 개인과 개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최근 국가 부도 사태를 맞고 있는 그리스에 대해서도 부채를 안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이제까지와 달리 그리스라는 나라 자체를 안좋은 쪽으로 보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 국민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빚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빚을 갚거나 아니면 파산신청 내지 개인회생신청을 한다고 해서 빚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 같다. 부채인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부채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협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부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경제적인 것이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 어떻게 하면 부채라는 것이 개인을 통제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부채가 죄악은 아니다. 누구나 살다보면 부채를 떠안을 수 있다. 이를 어떻게 현명하게 헤쳐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부채를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 본 색다른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