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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씌어진 인류의 역사가 곧 남성의 역사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다. "약 5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역사에 등장하는 여성은 남자를 닮은 여자들이거나 남성의 기대를 충족시킨 '이상적' 여성들뿐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1960년대 이후 여성운동을 포함한 민권운동이 성장하면서 그동안 역사에서 소외되어 온 집단들과 여성들이 역사가들의 조명을 받으며 역사의 무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대에서 현재까지 서양 여성사의 흐름을 정리한 이 책의 기획은 이러한 시대적 반영물이다.
원시·고대편, 중세편, 근대편, 현대편으로 시대를 구분한 이 책은 서양 여성의 삶에 나타난 변화를 구조적 관점에서 추적하고 그 이행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원시·고대편 [1장 여성 억압의 기원을 찾아서- 원시·고대 사회의 여성들]은 원시사회에서 고대사회로 넘어가는 여성의 삶의 변화과정을 살피며 어느 지역에서 모권제가 나타났는지, 또는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다룬다. 그 결과 원시사회는 모권제보다는 '여성 중심적 사회'였다고 결론내리며, 고대사회로 이행하면서 엥겔스가 말하는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원시,고대 사회를 반영하는 자료로서 신화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다음처럼 말한다. 괴트너는 신화 연구를 통해서 그리스 신화 자체도 초기의 여성중심적인 성격에서부터 후기의 여성의 패배나 부권을 정당화하려는 것으로 변화해감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미 부권제가 정착한 사회에서의 신화, 즉 아마조네스나 판도라의 경우에도 그것이 전적으로 허구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 속에는 경험 세계에 가까운 것 아니면 그야말로 주변의 실제 현실, 그들의 무의식 세계, 지배 세력의 정치적 의도 따위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화는 현실과 가공을 동전의 양면처럼 가지고 있는 셈이다. (92쪽)
중세편 [2장 성녀에서 마녀까지- 서양 중세 여성의 재발견]은 중세 사회의 여성관, 여성의 법적 권리와 일상을 다룬다. 이 시기에 교회와 세속 권력은 여성에 대한 관념과 법적 권리를 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성의 역할과 지위는 계급적 위치에 의해 규정되었고, 모든 공적 영역은 남성들에게만 집중되었다. 법, 관습, 권력기구, 이데올로기에 의해 성차별이 일상 속까지 스며있었다.
중세 초기에 여성에 대한 이데올로기 및 여성의 법적 지위를 만들어낸 것은 중세의 으뜸가는 토지 소유자이면서 로마제국 멸망에서부터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지적 영역을 주도했던 성직자들과, 여성을 자신의 토지 재산에 종속된 장식적 재산으로 간주했던 소수의 특권 계급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여성들의 삶에는 가장 무지했던 사람들로서, 여성을 완전한 개인이 아닌 남성에 종속된 존재로 보는 데 합의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교서, 교훈서, 장원 문서, 문학작품, 법전 속에 새겨지고 여성들의 삶 모든 영역에 깊이 파고들었다. (103쪽)
근대편 [3장 자본주의와 노동, 그리고 가족 속에서- 근대의 여성들]은 자본주의가 여성의 노동에 가져온 변화와 공·사 영역의 분리, 근대 가족의 탄생, 교육의 기회와 정치적 권리의 획득, 여성의 조직화된 저항과 페미니즘 담론으로 인한 변화를 다룬다. 특히 근대가 여성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개선시켰다는 주장과 악화시켰다는 페미니스트 역사가의 논쟁을 제시한다.
동즐로는 근대 시민 계급 가족의 특성으로 사생활의 확대, 거실, 작업실, 침실 등의 공간 분리, 가족의 건강과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의 증대를 말한다. 이와 같은 가족과 사회의 명백한 분리와 사생활의 강조는 시민계급의 성관계 및 성 담론 형성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 남편과 아내의 엄격한 생활 영역 분리, 그리고 남편의 권위는 부부 사이의 의사소통 영역을 제한했다. ... 시민 계급 여성의 지위가 19세기 후반보다 더 복종적이고 비자립적이었던 시기는 없었다.... (175쪽)
현대편 [4장 타자에서 주체로-현대사 속 여성들]은 19세기 말, 20세기 초를 기점으로 나타난 여성들의 삶의 변화를 기술한다. 1,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총력전,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국가의 등장, 파시즘과 홀로코스트, 여성운동과 복지국가의 확대 등이 여성의 삶에 미친 영향을 다룬다. 특히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된 국가 페미니즘의 역할로 여성해방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둔 시대였지만 복잡하게 얽힌 젠더 문제로 인해 '여성해방은 유예된 꿈'이라고 결론 내린다. 또한 지구화의 추세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여성운동이 고민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한다.
(이런) 지구화의 추세 속에서 남녀 관계에는 몇 가지 근원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첫째, 고도의 기술과 정보산업의 발달은 사회 구성원의 20퍼센트만을 노동력으로 요구함으로써, 남성이 곧 생계부양자라고 하는 모델은 더 이상 통용되기가 어려워졌다. 둘째, 남성 가장의 실직으로 비공식 부문에서의 여성의 노동이 증대하고, 고도로 발달한 자동화가 저렴한 여성 노동력을 선호하기 시작하면서, 공,사 영역 분리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다. 셋째, 중산층 내에서 전문직 여성이 증가하면서 남녀 간의 차이는 줄었으나 여성 내부의 빈부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특히 이런 차이는 국내적으로는 전문직 여성과 영세화된 비공식 부문 여성 종사자라는 계급 간의 차이로 나타나지만, 국제적으로는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차등화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넷째로, 세계화는 현금, 금융 사회와 노동 사회로의 사회적 분화를 수반하는데 전자에는 남성, 후자에는 여성이 주로 종사하는, 새롭게 이원화되고 성별 분리가 된 사회를 만들어내고 있다. (280쪽)
저자는 지난 10여년 사이에 역사학계에서 여성사 연구가 질적, 양적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고, 이제 여성사 연구는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한다. 서양 여성사를 다룬 이 책이 유럽과 미국 중심의 여성사를 다루는 데 그치고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여성사를 담지 못한 한계가 있음도 지적한다. 또 서구의 여성사라 해도 그들 간의 상호작용뿐 아니라 탐험과 교환, 정복과 착취, 이민 등 비서구인들과의 교류에서 형성된 역사가 있는데 그러한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시인하면서 '근대화'를 둘러싼 개념과 더불어 아직 남은 미래의 과제가 많다고 한다. 처음 읽은 여성사로서 어려운 부분도 더러 있었지만 대체로 흥미롭게 읽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여성사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쉽고 깊이 있게 다가오는 책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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