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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매일의 반복, 그러면서도 뭐가 그리 바쁜지 ‘생각’이란 단어를 떠올릴 사이도 없이 하루가 지나갑니다.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요즈음 제 삶에 봄 햇살을 비춰 준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입니다.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시인들과 외국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마음이 함께 합니다. 거기에 저자의 맛깔스러운 예와 해석은 할머니 품처럼 따뜻하고 자상하지요. 어려운 철학적인 내용과 시를 깊이 있게 읽도록 도와주는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하셨죠.
21개의 인문학적 봉우리를 순서대로 정복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 날 그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생각에 따라 느낌 가는대로 읽는 묘미도 제법 있더군요. 특히 같이 읽으면 생각이 배가 되는 봉우리가 있구요. 그 중 3번째 봉우리인 사유의 의무(아렌트와 김남주)와 14번째 봉우리인 작고 상처받기 쉬운 것들(아도르노와 최명란)이란 봉우리가 그러합니다.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무사유가 가져오는 이 세상 모든 악을 다 합한 것보다 더 큰 죄악의 모습을 통해 ‘사유’의 필요성을 더 깊게 불러 일으킵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사유는 ‘타자의 입장에서 서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 무사유는 ‘타자의 입장에 서서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 되겠지요.
아우슈비츠를 다녀온 후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모습이 서글퍼지고 밥을 먹는 일조차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최명란 시인. 이것은 고통 받으며 죽어갔던 수많은 유대인들의 입장에 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그 고통까지 함께 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그 고통스러움을 한 번이라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그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본다는 것 그 자체가 타자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도르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앞으로 도래할 철학은 이성이나 개념이 아니라 개별적인 것이나 비개념적인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여기서 말한 개별적인 것은 작은 것, 약한 것,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겠죠. 물질만능주의,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대에 이런 것들에 대해 관심과 사랑과 배려가 세상을 조금은 변화시켜주겠지요.
새록새록 잠든 아기 옆에서 매일 아침 차 한 잔과 함께 이 책을 읽는 일주일이 참 행복했습니다. 일상생활에 묻혀 무의미하게 보낼 수 있는 아침 짜투리 시간이 하루 종일 설레임을 갖고 살 수 있게 해주었지요. 그리고 주변에 작고 지친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더 깊이 있는 내면의 우물을 가진 사람이 되면 그 관심이 관심에 그치지 않고 말과 행동으로 표현해 쓰러져 있는 것들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 될 수 있겠죠. 그런 날을 기대해봅니다.
정치, 경제, 사회,문 화 모든 면에 다양한 모습들을 시인과 철학자의 눈을 통해 다시 한 번 통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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