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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1쇄 인쇄 2012년 9월 10일
부제: 중세부터 20세기까지 인테리어의 역사 온 가족이 침대를 나누어 쓰던 때부터 부엌이 실험실처럼 깔끔해진 지금까지의 이야기
침실 과거에는 침대 위에서 손님을 맞이했고, 많은 사람들이 침대로 몰려들었다. 1880년에서 1914년 사이, 각각 하나씩 침대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보편화되었다. 서민 계층은 아직 신성한 개인 침실을 누릴 처지가 못 되었다. 1920-1930년대에 가서야 가족 모두가 쓰는 거실에서 침대를 치웠고, 그 무렵에야 비로소 여유가 생기는 대로 침실에 돈을 들였다.
19세기 초 부르주아 가정집의 설계 도면을 연구하다 보면, 놀랍게도 아이들 방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아이들은 태어난 직후 유모들에게 맡겼고, 좀더 자라서는 기숙학교에 보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1870년 이후에야 아이들 방이 설계 도면에 나타났다.
난방 <휴대용 보온기의 그림도 벽난로 앞의 그림도 독특하다> 16-17세기 프랑스 절대왕정기 시절, 흔히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숲은 많아도 불을 때울 땔감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유럽을 덮고 있는 광대한 숲이 모두 영주들의 소유지였기 때문이다.
부엌 13세기 중세 귀족들이 사는 집에서 부엌은 보통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집과 분리된 건물에 있었다. 그리고 원형의 부엌 중앙에 연기와 열기와 냄새가 빠져나가도록 환기용 굴뚝을 세웠다. 14세기부터는 사각형 모양으로 부엌을 지으면서, 한쪽 벽에 두 개의 벽난로를 세우거나 양쪽 벽의 벽난로가 두 개씩 서로 마주보게 만들었다. 루이 13세 때 등장한 요리용 화덕은 돌이나 벽돌로 만들었으며 그 위에 단지를 올려놓고 채소를 끓일 수 있었다. 수세기 동안, 화덕의 불에 덴 화상은 주된 사망 원인 중의 하나였으며, 안전한 요리가 가능해진 것은 폐쇄형 화덕이 나온 이후의 일이었다. <요리하는 모습의 그림을 보면 지금과는 너무도 다르다. 바닥에 나뒹구는 음식들과 화덕에 올려진 하나의 그릇, 달라도 너무나 많이 다르다.>
20세기의 물결 속에 1920년대에 냉장고가 부유층 사이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1930년대에는 세탁기가 탄생했으며, 급기야 1940년대에는 규격형 부품들을 조립해서 만든 미국식 부엌이 출현했다. 또한 새로운 에너지원인 가스가 부엌에 들어왔다.
실내장식 인쇄술 발명 이전, 부유층 골풀 엮어 만든 장식을 벽에 걸었다. 신분이 높은 귀족들의 집 벽에는 프레스코화(기하학 무늬 또는 식물이나 가문의 문장) 17세기부터는 집 안에 그림(초상화)을 거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중세에도 창문에 커튼을 다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거튼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17세기 말의 일. 18세기에는 실내장식을 위한 거울의 사용이 발달했다.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성에는 비싼 벽지천을 대신할 결정적 신제품, 그림벽지가 등장했다. 아마도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최초의 그림 벽지들은 네덜란드 선교사들과 여행객들 덕분에 유럽에 들어왔다.
물 우물로 물을 길러가는 일은 날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 물장수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종종 겁을 주거나 욕을 하면서 일을 했다. 19세기 중반까지 집에 물이 나오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였다.
조명 19세기 가스등이 등장하기 전까지 ~ 집 안을 밝히고 있는 고급 양초의 수를 보면 그 집이 얼마나 부유한지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창문 로마 시대 궁전의 창은 백 대리석이나 흑요석과 같이 투명한 돌이나 동물의 뿔로 막아 놓았다.(추운 겨울에만) 14세기까지, 창을 완전히 덮는 덧문이나 나무 격자를 사용했다. 기원 후 1000년에 가서야 8내지 10제곱센티미터의 얇은 유리판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12*12센티미터 크기가 넘는 유리판은 17세기 중반에야 나왔다. 유리창은 오랫동안 보잘것 없는 품질에 머물렀고 무엇보다 푸르스름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그러다가 1463년 이탈리아에서 '투명한 유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여러방들 이 시절에, 방이라 하면 보통 온 가족이 종일 쓰는 방을 뜻했다. 베르사유 궁에서, 루이 14세조차 몽테스팡 부인을 보러 가기 위해서는 이전 애첩인 발리에르의 방을지나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17세기 파리의 저택에서 집주인인 귀족들이 사용하던 1층에는 전실, 살롱, 연회실, 침실 등 모든 방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고 때로는 제대로 나뉘어 있지도 않았다.
식당 기다란 식탁은 16세기에 가서 더욱 길이가 늘어났는데, 만찬에 따르는 악사와 광대들의 공연을 보기 위함이었다. 이 경우 집주인과 부인은 식탁의 양쪽 끝에 앉았다. 18세기 중반까지 식당이라는 독립된 방은 존재하지 않았고, 식탁 예절이 성립된 것도 19세기 초의 일. 과거에는 어린 남자아이들도 여자 아이들처럼 원피스를 입었다.
욕실 중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공중 목욕탕을 즐겨 찾았다. 15세기 최고 부유층들은 개인 욕조를 소유하고 있었다. 전염병이 돌고, 타락의 장소라고 비난을 받게 되면서 목욕탕은 점차로 사라졌다. 16세기부터는 청결은 중시하지 않게 되었다. 18세기 후반에 가서야 일부 부유한 저택에 욕실, 심지어는 욕조까지 달린 욕실이 등장했다. 욕조는 고대부터 있었지만 앵글로 색슨 문화의 영향으로 욕실이 프랑스에 처음 등장한 것은 1730년대다.
1870년부터는 가스 온수기가 나와 ~ 더운물을 마음놓고 쓰기 시작했다. 기술자 벨그랑이 시작한 파리의 상수도와 하수도 지하 공사가 최종 완성된 것은 1900년이었다. 1910년 이후, 욕실이 요즘의 욕실이 되었다. 칫솔질이 대중화 된 것은 20세기 말의 일이다. 1880년경에는 세면대(교회 의례 용어에서 나온 것)가 등장했다.
살롱과 거실 살롱 Salon이란 단어가 플아스에 나타난 것은 1664년 무렵으로, '큰 방'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살로네Salone에서 나온 것이었다. 18세기는 살롱의 황금기였다.
수납 농부의 집이건 왕족의 집이건 모든 사람이 사용하는 수납가구는 궤짝이었다. 북부의 시골에서는 18세기에야 궤짝에 넣을 수건이나 침구류를 갖추게 되었다. 16세기 전반 내내 교회 제의실에서만 사용되던 장롱은 17세기 말 서서히 집안의 가구로 들어왔다. 17세기 말에 나타난 서랍장은 18세기 중반까지도 상류층만 쓸 수 있는 고급 가구였다. 프랑스의 농촌에서는 17세기부터 찬장이라는 새로운 가구가 나타났다.
살림 17세기와 18세기의 그림들을 보면 프랑스는 아직 정리와 완벽한 살림에 대한 취향에서 거리가 멀었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 이전의 가정에서는 설거지는 안 할 때도 많았지만, 할 때는 뜨거운 물이 담긴 솥옆의 땅바닥에 나무통을 놓고 된는대로 그릇을 씻었다. 때로는 그릇들을 월계수, 노간주나무, 창포 등 향기나는 식물들과 숯을 넣은 물에 삶거나 혹은 식초로 씻었다. 위령의 날에는 가족들을 찾아오는 고인의 영혼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일절 청소하지 않았다. 또한 복, 가족 간의 화합, 집 안의 돈을 쓸어낸다 하여 해가 진 후 빗자루질도 패했다. 처음으로 가정용 진공청소기를 고안한 것은 1907년 미국 오하이오 주의 머레이 스팽글러였다.
*그림과 연결된 역사의 흐름속에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매우 흥미롭게 표현되었다. 동양적 사상은 안방이 거실이고 침실이고 서재이고 다방면으로 사용되었으며 사대부인 양반집에서는 자녀들의 방을 안방 좌우에 두는 경우도 있고 따로 두는 경우도 있고 서민층이 아닌 이상 아이들의 방을 따로 챙겼는데 오히려 서양에서는 아이들의 방이 없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서양의 이미지가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것으로 한정되어서인지 아이들을 무척 위하는 걸로 보이는데 한편으로는 아니라는 점이 아이러니다. 동양은 아이들의 잘못에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려서 훈계를 했던 문화이고 서양은 때려서 훈계하지 말라는 이미지이면서도 한편에서는 잘못했을 때 뺨을 후려친다던가 하는 등의 과격함을 보이는 지역을 보면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했나 의문스럽기도 하다. 오히려 인디언의 문화는 자연, 어른, 아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인격체로 대했던 것을 보면 서양에서 미개의 문화라고 우겼던 것들이 실상은 그들의 이기성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기도 하다. 문화라는 것이 사람의 생각을 얼마만큼 바꿀 수 있는지도 흥미로운 것 중 하나이긴 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제사나 차례를 지내기 전에 청결을 우선으로 집 안과 밖을 깨끗이 하는데서부터 시작하는데 서양은 고인의 영혼을 위해 청소를 하지 않았다하니 어떤 시각으로 봐라보느냐가 그 민족의 특성을 다르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읽을수록 볼 수록 다른 것이 보이는 책이다. 처음 볼 때는 한 방에 모인 사람들과 에밀 살로메[데레르의 집]과 니콜라 베르나르 레 피시에[아침준비]를 보면 땅에 나 뒹구는 음식과 지저분한 부엌 등이 눈에 들어오고 조금 지나면서 일레르 드 뒤뤼[기운 빠진 늘은 물지게꾼]에서는 힘든 삶을 사는 지금의 서민 모습과 연결해 생각해도 어색하지 않을만큼 힘듬이 보이는 물장수의 그림이 그리고, 랭부르 형제 [베리 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의 벽난로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이 엄숙함과는 먼 것에 신기하기도 하고 속옷이 없는 지금과 다른 모습에 그 당시 문화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미셀 마르델레미 올리비에 [루이 프랑수아 드 콩티의 만찬, 성당 기사단 궁전] 그림은 병 마개가 하늘로 솟은 바로 그 순간을 표현한 그림으로 작가의 기발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내어 소개하는 작가의 꼼꼼함에 감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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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변화해 온 오늘의 집, 방과 거실,salon, 과 침실 글구 욕실들.
난방이 없던 시절, 뜨거운 물을 담아 발을 쬐던 그림, 얀 스테인의 즐겁게 흥청대는 사람들. 벽난로의 등장과 필립 졸리에의 그림. 책 읽기.. 부엌. 화덕의 등장과 정교한 마르탱 드롤랑의 부엌의 내부..루브르소장.. 중세의 실내장식과 tapistry. 그림은 조셉 시모어 가이의 로버트 고등가족 .메트로폴리탄소장. 과 특이한 미하이 문카치: 파리의 집안.. 에드와르 뒤아르의 백작부인. 오르세소장.. 식수. 기본이 우물. 19세기 들어와 현대적인 상수도가 보급되고... 그림은 프라오와 봉뱅의 구리급수통 정도. 오르세소장... 조명과 창문..에선 화사한 공작같은 필립 콘라드의 5월의 아침-오르세소장 식당...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점심식사 - 개인소장은 뛰어나다..
욕실. 1910년이후에니 요즘과 같은 타일을 바른 현대적욕실이 나오고 그림은 토니 로베르 플뢰니의 목욕- 그로노블소장.. 앙드레 부이의 접시닥는 하녀- 파리장식 요 정도다..
기나긴 세월과 모습을 주마간산으로... 5~6개 그림만 건질만하다....
표지는 펠릭스 발로통의 붉은 ~ 취리히미술관 소장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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