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그 사람의 삶은 소설이 될 수 있겠다. 어떤 경우에도 가치 없는 삶이란 없는 것이고, 한 사람이 나서 자라는 과정은 유일하면서도 귀중한 삶의 여정일 것이므로 기록으로만 바꿀 수 있다면 바로 소설처럼 될 수 있겠지. 다만 누구나 쓸 수는 없는 것이고, 쓴다고 다 소설이 되지는 못할 것임을 알기 때문에 말로나 한탄할 수밖에 없는 기막힌 인생사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일 테고.
괴테의 이 소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읽는 재미는 별로였다. 빌헬름이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다채로운 만남과 사건들로 펼쳐 보이고 있는데 특별하지도 않았고 그다지 애절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괴테의 세밀한 묘사는 고개를 젓게 만들었다. 이 단순한 상황을 이렇게나 풍부한 표현으로 만들어 내다니. 작가라는 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실제의 삶에서도 귀찮아서 하지 않을 무수한 대사를 펼쳐 보이고 무심히 넘길 정황도 구체적이면서 끈질기게 묘사하고 있으니 정지되어 있는 화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그럼에도 마냥 지루하지만은 않는(긴장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내용 전개. 그리고 계속되는 작가의 의지가 담긴 삶의 자세에 대한 말들.
정말 그들은 이렇게 진지하게 살았을까. 나는 그게 꽤나 궁금했다. 지금의 나처럼, 혹은 요즘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삶에 대한 가벼운 대처(내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에 비한다면 200년 전 그 땅의 사람들은 신기할 정도로 삶의 순간순간에 성실하다. 종교의 영향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내면의 힘을 키우기 위해 삶의 모든 순간들을 집중시키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교양이 단순한 지식의 총합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교양은 당대인으로서 가져야 할 지식뿐만 아니라 취미, 옷차림이나 태도, 심지어 얼굴 표정에까지 일관되게 흐르는 지침으로 작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겠다. 어떻게 사느냐를 보여 주는 기준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남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삶을 향한 나의 의지, 그게 교양이고 그걸 당당하게 보일 수 있는 사람이 교양인이 될 수 있다는 것. 나로서는 참으로 욕심 나는, 갖고 싶은 주제이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도 다시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욕심 탓이겠다. |
이 소설은 독일의 교양소설의 선두라고 했다.... 교양소설이란건.... 주인공이 젊은 시절의 방황을 거쳐서 자기의 자아를 인식하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이해심을 가진 조화된 인간으로 성숙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는 일련의 소설들을 일컫는다.
소설은 주인공 빌헬름이 만나는 각기 다른 성격의 여자들과 나누는 사랑과...결혼... 그리고... 그의 그러는 과정에 나타나는 이야기로 꾸며진다.... 사랑에 대해서.. 혹은 삶에 관해.. 감동적이 말이 많았다.
이 소설에 나타나는 사랑 이야기가 실재였다는것에 놀라기도 했다. 그걸 모르고.. 첨엔 읽으면서...헷갈리기도 했었지만....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여느 고전이 그렇듯이 우연성의 남발이 심해서... 황당하기도 했고 집중하기가 힘들 정도로 산만한 스토리 전개로 앞장으로 넘어가 다시 읽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 역시... 오랫동안 읽혀온 고전은 뭔가 다르구나.. 란걸 느꼈다. 재밌다. 괴테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싶다. 감동이다..... 강추다... !!! ^^;; [인상깊은구절]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으며 판단은 어렵고 기회는 쉽게 달아난다. 행동하기는 쉽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불편하다. 모든 시작은 밝고 즐거우며 문턱은 기대의장소리다. 소년은 경탄하고 인상이 그의 갈길을 정하여 그는 놀면서 배우지만 뜻밖에도 진지성이 찾아오는 통에 깜짝 놀라게 된다. 모방은 우리가 타고난 재능이지만 무엇을 모방해야 할 것인지를 알아자리기는 쉽지 않다. |
일반적으로 분권되어 있는 작품의 경우, 그것이 출판사의 임의로 나뉘어진 것이 아니라면 대개 1권 보다 2권이 재미있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합니다. 이유는 간단하죠. 1권에서 씨를 뿌리고 2권에선 그것을 수확하는 구조가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언가 삶의 메시지를 담으려는 성장소설의 경우에는 사실 거기에 해당할 게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야기 소설처럼 씨를 뿌리고 수확해야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속성 때문입니다. 목적이 이야기의 전달이 아니라 교훈에 있는 것이므로 이야기 자체가 그리 튼실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독자에게 감동이나 공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게 성장 소설의 장점일 테니까요. 다시 말해 그런 작품에서의 이야기란, 교훈을 이끌어 내기 위해 소용되는 도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해서 성장 소설이나 교양 소설이 갖는 의미는 이야기의 재미보다는 삶에 관한 공감 또는 감동에 그 비중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저의 생각입니다만.
그런데 이 작품 빌헬름 형님의 수업 시대는 어느 정도 이야기 소설의 구조를 지닌 것 같습니다. 1권에서 씨를 뿌리고 2권에서 수확한다, 라는 딱 한 가지면만 보자면 그렇습니다. 그러다보니 교양 소설임에도 1권과 2권의 재미면에서 일단 저 개인적으로는 차이가 좀 많이 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전 좀 진작부터 이랬으면 얼매나 좋노, 하는 생각까지 했더랬습니다. 뭐랄까, 2권이야 말로 제가 기대했던 빌헬름 형님의 수업 시대였거든요. 일단 1권과 다른 점은 앞서 제가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고전의 묘, 삶에 관한 통찰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대폭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작품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싶은 부분과 그어놓고 되풀이해서 음미하고 싶은 부분이 상당히 많아졌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1권과 다른 점은, 1권에서의 삶은 지극히 빌헬름의 개인적인 삶, -연극에의 갈망- 그러니까 일반 사람과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예술가로서의 고뇌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저 지루할 따름이었다면 2권에서는 이제 그 범위가 대폭 늘어나서 누구나 한번 성찰해볼 필요가 있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그리하여 진정 빌헬름의 수업 시대가 저에게도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할 있게 된 것이지요. 두 번째는 이야기의 전개가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이야기 전개 그 자체만으로도 꼬리를 물며 흥미를 주지만 거기에 1권에서는 이게 무슨 일과 관련된 것인지 알쏠달쏭했던 부분까지도-그러니까 괴테 스스로 정도나 알 수 있었던 어떤 비밀이- 그 실마리가 풀려 전체 이야기의 아퀴가 맞아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굳이 어떤 공감대나 교훈적인 측면을 살피지 않는다고 해도 이젠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재미있는 2권이 된 것입니다. 물론, 그 이야기에 교훈이나 어떤 해석을 가미하지 않는다면, 괴테 특유의 막장 스토리로 둔갑하기는 합니다. 어쩌면 막장 스토리이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이 작품뿐 아니라 제가 읽어본 괴테의 작품은 일단 그가 말하고자 하는 시대적 상황으로부터 비롯된 고뇌라든가 역사적인 의의 뭐 그 딴걸 제외하고 나면 좀 막장 성향이 강한 이야기이긴 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아니나다를까, 복잡한 여성 편력에, 돈 많은 여자 아니면 패리스 힐튼 수준의 상속녀, 혹은 그를 능가하는 귀족 집안의 처자, 그녀와의 결혼이란 도구로 신분 상승을 꾀하는 남주인공, 거기에 이젠 출생의 비밀을 비롯해 알고 보니 모두 다 아는 사람이라는, 우리나라 일일연속극 단골 메뉴가 벌써 여기 18세기 후반 괴테의 작품에서부터 비롯되었다니까요. 이걸 무슨 역사적인 의미와 시대적 배경에 관한 울분의 표현으로 해석하자니 묘하게 가치있는 고전이 되어버렸습니다만, -막장이라 가치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고- 여하튼 이야기 자체만을 두고 보자면 레알 당신, 부숴버릴 거야, 스토리와 별반 차이 없습니다. 오오, 사랑하는 그녀가 알고보니 내 친동생? 뭐 그런 거 말입니다. 니가 내 아들이라고? 엄마는, 너의 엄마는 어디 있느냐. 엄마는 돌아가셨어요. 흑흑. 오 저런, 맙소사!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저기 가는 미니 스커트 아가씨는 다리가 참 예쁘구나. 그런 게 여기 다 들어 있어요.
이 작품을 읽다가 생각이 났습니다. 괴테가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다는 사실이. 본래 알고 있었는데 까먹었다가 이번에 다시 기억이 났네요. 재미있는 건, 작품에서 프리메이슨 이야기가 나올지는 몰랐습니다. 물론, 작품 속에서는 '탑의 모임' 이라는 타이틀로 등장하지만 그곳에서 수업 시대를 수료했다는 설정이 나오고 그것이 제목으로 이끌려나온 것으로 보아, 괴테의 삶에 프리메이슨이란 단체가 과연 적잖은 영향력을 지닌 것 같기는 합니다. 작품 후반부에 같은 단원이자 상급 단원인 야르노가 설명하는 탑의 모임의 지향 목적이 프리메이슨의 지향 목적과, 현재 음모론으로 치부되고 있는 프리메이슨의 영향력과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도 저 개인적으로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18세기 후반 작품에서 우리 탑의 모임은 이러한 세계무역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21세기에는 정말로 그리되었으니 말이지요. 역시 세계화를 추진하는 대단한 양반들의 프로젝트는 단순히 음모론이 아니라니까.
1권에서의 지루했던 부분은, 물론 2권에서는 온데 간데 없어져서 읽기에 훨씬 수월했던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번역자 선생님의 문장이 좋아 다행이었습니다. 지루해 지쳐 쓰러질 뻔한 대목에서도 그나마 안 자빠지게 지탱해준 유일한 끈이 호흡에 딱딱 떨어지는 문장이었기 때문에 안삼환 님의 문장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 말미에 첨부된 번역자 선생님의 해설 또한 작품에 관한 이해를 훨씬 높여주는 좋은 챕터였고 말이죠. 여하튼 1권을 읽고 괴테를 완전히 손에서 놔 버릴 뻔 했던 그 지루함이 2권에서는 말끔히 씻겼을 뿐만 아니라 남은 괴테의 작품 또한 좀더 면밀하게 읽어봐야 겠다는 욕심까지 들게 했으니 2권은 과연 제 타입이었나 봅니다. 2권만을 두고 보자면 충분히 별 다섯이었겠지만, 1권과 물려 비밀의 고리들이 풀어지는 부분과 너무 늦게 시작한 삶에 관한 탐구 등등의 요인으로 그냥 별 넷 갔습니다. 다른 괴테의 작품도 이 분이 번역했으면 싶은데 아쉽게도 그렇지가 않네요. |
풍요의 시대, 음식의 시대에 온갖 먹을 거리가 넘쳐난다. 라면도 먹고 빵도 먹고 피자니 통닭이니 스파게티니 온갖 음식들을 먹는다. 과자로도 배를 채운다. 끝도 없이 먹거리를 편력한다. 그런 것들을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다. 바로 밥에 대한 본원적 갈망이다. 산을 다닐 때도 그렇다. 낮은 산이든 높은 산이든 흙산이든 돌산이든 산은 산이다하고 다니지만 저만치서 묵직하니 떡 서있는 지리산에 대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항상 갈망은 하지만 가지 못한다. 멀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어쩌면 내가 갈 산이 아닌, 나와는 격이 맞지 않는 높고 큰 산이어서 그렇기도 하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오르게 되고 지리산이 주는 그 깊이와 힘과 푸근함과 본원성은 비교할 바가 못된다.
새로 나온 수많은 신간들을 뒤적거리고 다닌다. 꼭 신간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리저리 읽을거리를 찾아 다닌다. 대가의 고전이 저만치서 버티고 서 있지만 섣불리 다가가지 못한다. 이해할 수 없을 것같고 재미없을 것 같고 내 취향하고 안맞을 것 같고 두껍기도 하고 옛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어느날 손에 잡는다.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결국 괜히 고전이아니구나 하는 감탄과 의식의 포만을 느낀다. 밥을 먹은 것과 같은 느낌, 육체적 포만과 함께 정신적 포만을 느낀다. 즉 의식의 포만과 함께 영적 포만을 느낀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1782년부터 쓰기 시작했고 당시의 제목은 <빌헬름 마이스터의 연극적 사명>이었다. 1794년에 개작을 하여 1796년에 최종 완성본이 나왔다. 그 중간인 1786년과 1787년에 이탈리아를 여행하는데 그 영향이 있었을까? 아마도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의 후미에 이탈리아이야기가 나온다. 괴테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동안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온다. "...기묘한 것은 요즘 어떤 친구가 나에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관해서 상기시키고 그 속편을 쓰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마지막 몇 章속에 이 곳 분위기가 얼마간은 전해지게 될 것이다......"<이탈리아기행>-1787년3월22일,나폴리에서-
소녀 미뇽과 하프타는 노인의 신비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소설 속의 이탈리아 북부의 古城과 수도원, 호수등의 분위기가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때 느낀 그 분위기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 자연에 대한 묘사가 1839년에 나온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의 지역과 분위기가 유사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 편견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늒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 그 곳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유럽사람이 보기에 아시아 사람은 다 똑같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일 것이다.
'삶의 고양' 혹은 '교양의 고양'이 이 책이 추구하는 바이다. 당시의 관점, 독일적 관점, 괴테적 관점이기는 하나 오늘날과 다르지않을 것이다. 괴테의 지향점을 니체가 철학적으로 풀어낸 것이 아닐까? 니체가 꼽는 가장 완전한 인간이 괴테였다는데.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들은 대체 이렇게 어두운 대지 위에서만 나타나야 하는 걸까? 우리가 황홀경을 맛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빗방울이 떨어져야만 하는 걸까? 청명한 날도 우리가 감동하지 않고 바라본다면 흐린 날과 다를 것이 없다......" -제7권 1장- "...내면적인 교양에 큰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외적인 여건을 아주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은 모든 인간들에게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양태라는 것을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이제야 처음으로 그는 지속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외적인 보조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같았다..." -제7권 8장-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으며, 판단은 어렵고 기회는 쉽게 달아난다. 행동하기는 쉽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 -제7권 9장-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판단할 때, 자신들이 타고난 사명을 생생하게 느끼고 분명히 고백할 수 있으며 자신들의 길을 어느 정도 즐겁고 편안하게 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연습한 사람들에게만 수업시대가 끝났음을..." -제8권 5장- |
독일엔 사람이 몇명 살지도 않고, 마을도 몇 개 없다. 적어도 괴테는 그렇게 표현했다. 내가 너무 심한가? 뭐 이리도 우연이 많고, 이리도 사연이 기구한 사람들도 많고, 그 기구한 사람들이 죄다 한군데 모이고....
다분히 연극에서나 이해해 줄만한 우연한 만남들의 비상식적인 지속... 으으...내가 이래서 연극을 안보는데... 소설마저도..으으... |
![]() 빌헬름의 여성편력은 지루하게 이어진다. 사람들은 그의 어디에 매력을 느꼈던 것일까. 시민계급인 빌헬름이 결국엔 귀족인 나탈리에와 이루어지는 것. 독일 신분사회에 있어 그 사랑은 획기적이다 할 만했지만. 글쎄.. 그다지 큰 감흥이 일지 않았다. 시민계급의 사람으로서 그가 누려야 할 것들과 나탈리에를 만남으로서 그가 만난 귀족계급의 삶. 그것이 정말 행복한 삶인 것일까? 갑자기 요즘 인기있는 드라마 대물이 생각나버렸다는...
사실, 빌헬름이 계급을 뛰어넘거나, 그가 연극을 통해 보여준 삶들 보다도, 그가 만난 여성들과 그가 상처준 여성들에게 먼저 눈이 갔다. 내가 여자라서 일지도 모르겠으나. 마침내 그가 얻게 된다는 나탈리에와의 사랑. 그러나 정작 그가 만나왔던 진정으로 사랑한 그 여자들은 어떻게 되는것인가...어떻게 그것이 주인공의 교양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화가 나기도 했다.
차라리 한 인물이 예술의 세계로 뛰어들어 여러 다양한 인물들과 교류하고 만나 좀 더 교양을 갖춘 인물로 성장한다. 라고 했다면, 그가 교양있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되리라. 그리고 그것을 교양소설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괴테의 높은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건 나뿐인것인가... 괴테의 이 책을 먼 훗날 다시 한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사람을 그런 식으로 다루는 것은 제 생각과는 완전히 다를 것 같군요. 지금 도와주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도와주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충고해 주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충고해 주지 않을 사람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의지가 될 만한 몇몇 법칙을 분명히 말해 주고 아이들에게 엄하게 가르쳐 주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본성이 제 멋대로 충동질하는 데에 따라 방황하느니보다는 차라리 규칙들을 따르면서 방황하는 것이 낫다고까지 주장하고 싶을 정도입니다.(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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