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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스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또한 사람들의 인생도 행복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누구보다 환한 웃음을 간직한 사람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고,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 아픔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세상은 왜 점점 살기 팍팍하고, 힘겨워지는 것일까?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가운데 나 혼자만 아픈 것 같다. 남들이 가지지 않은 고통이 나 혼자에게만 존재하는 것 같다.
아내의 임신 소식과 함께 찾아온 자신의 암 선고로 절망하는 남자를 그린 자연 의원, 동네 k제과점의 빵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엄마를 가진 여자와, k제과점의 빵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를 가진 남자는 우연히 만나고 느닷없이 이별을 한다. 두 가족의 사연을 그린 달콤한 빵, 외도의 이유를 따지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버린 남편 이야기 즐거운 게임, 자신을 임신시킨 남자가 떠나가 버리자 남자에게 불러가는 배를 사진 찍어 보내는 여자, 아내의 죽음으로 기구한 삶을 살아가는 삼촌의 이야기를 그린 토끼풀의 탄생, 사업을 하면 망해버리는 아버지지만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 허전하다. 그 빚 때문에 노래방 도우미를 하는 엄마와 자살을 꿈꾸는 딸 이야기를 다룬 육포냄새, 말이 통하지 않는 러시아 여자 소냐와 자폐증을 가진 소녀 성언이의 아픈 이야기 대화법, 더 큰 세상을 꿈꾸지만 현실은 불량청소년인 아이들의 성장을 담은 지브라,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 잠시의 일상탈출을 시도한 현제.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찜질방에서 현제를 만나기로 한 제현은 그곳에서 이상한 할머니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 요괴인간.
우리네 이웃들과 별반 다름없는 사람들이 나오고, 아픈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의 인생은 왜 이렇게 아픔들로 가득할까?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행복은 사치란 생각이 든다. 몸은 건강하지만 영혼이 아픈 사람들, 욕구와 욕망이 늘어가는 사람들, 세상에는 물건이 넘쳐나지만 오로지 내 것일 수 없는 물건들. 무엇을 위해 저 물건을 사고 저 물건을 갖기 위해 욕심을 부리는지 주객이 전도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왜 슬픔은, 그리고 아픔은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더 자주 그리고 더 크게 다가서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닐 텐데....
만약 그들이 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났다면 그 아픔을 유유히 이겨낼 수 있었을까? 벗겨낼 수 없는 가족이라는 멍에는 남겨진 가족. 특히나 여자들에게는 더욱 버겁다. 엄마의 삶을 닮지 않겠노라 큰소리치지만 엄마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인생길이 뻔히 보이는 여학생들의 절망이 그래서 더 눈물겹다. 가족이 무너졌다고, 가족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그래도 결국은 가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처절하게 부서진 가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 말이 과연 어떻게 들리게 될까? 읽는 내내 답답하고 아프다. 8편의 단편 모두 결코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없다. 가족을 지켜야 할 이유도, 가족을 지켜야 할 힘도 없는 그들에게 가족은 끊을 수 없는 족쇄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에메랄드 궁을 시작으로 얼음 꽃을 삼킨 아이, 그리고 즐거운 게임까지. 작가 박향의 책을 모두 읽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장편들이 더 좋았지만, 단편도 그 나름의 색깔이 있어 좋아하는 작가로 선정(?)했다. 세상에는 많은 책과 많은 작가들이 있다.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가 생긴다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자신만의 색깔로 좋은 책을 많이 써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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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즐거운 게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김미라 책의 표지에는 긴 머리의 소녀가 독자들을 응시하고 있다. 소녀의 표정은 좀체 읽을 수 없다. 차분하게 보이다가도 순간 날카로운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저 맹랑하게 느껴진다고 할 수밖에. “엄마는 세상이 너무 겁나지? 왜 그렇게 우거지상으로 살아? 아빠한테 속았다고 세상을 송두리째 거부할 필요 있어? 아빤 갔어. 제발 그렇게 살지 마. 엄마 눈엔 내가 몹쓸 년으로 보이겠지만 난 엄마처럼 살지 않아. 다 용서해. 다 용서하고 즐겁게 살아. 인생은 즐거운 게임 같은 거야. 눈으로 보고도 몰라? (…) 난 적어도 엄마처럼 엄살을 피우지는 않아. 죽은 남편 때문에 인생 전부를 지옥으로 만들지는 않는다구. 난 지금 즐거워. 그러면 오케이 아냐?” 「즐거운 게임 - 즐거운 게임」 책 표지에 있던 소녀가 내뱉는 듯한 소설 속 대사는 책의 제목이 『즐거운 게임』이 된 이유인 듯하다. 그러나 소녀가 엄마와 대화를 하는 공간은 집이 아닌 찜질방이고, 소녀는 지금 자살을 위한 여행을 하는 중이다. 소녀에게 과연 삶은 정말로 즐거운 게임같은 것일까. 게임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닌 나로서는 게임에 대한 어감이 긍정적인 부분은 별로 없다. 승자와 패자로 나뉘고 나서도 계속해서 승자를 유지하기 위해 게임의 시스템속에 철저히 몰입해야 하는, 유저(user)인 나 자신의 현실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게임 자체에 흥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진정한 자아와 만나지도 못한 채 삶이라는 진창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우리 모두,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 모두 게임은커녕 살아내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것은 아닐는지.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신들만의 사각지대를 갖기 위해 노력한다. 감시망을 피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을 극복해가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끔찍하기만 한 게임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단편 8개가 묶인 소설집에는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화자가 등장한다. 「자연의원」에는 암수술 후 재발을 염려한 화자가 ‘자연의원’이라는 대체의학병원으로 옮겨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의 아내는 다른 남자의 정자로 인공수정을 했고 자신의 투병보다 아이의 탄생에 더 심혈을 기울인다. 화자가 바라보는 아내의 세계는 자궁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온전히 아내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잠자리와 보살핌, 병간호 모두를 아내 뱃속의 아이에게 빼앗기고 그는 모욕으로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206호 여자와 가까워진다.「달콤한 빵」의 화자는 체육교사로 등장한다. K제과의 달고 부드러운 빵만을 고집하는 어머니 때문에 매일 빵을 산다.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수년 전 아들과 이복형제를 잃었다. 이제 그들은 유일한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특히 화자의 어머니는 ‘달콤한 빵’이라는 일상에 대비되는 것들을 손에 쥔 채 어떤 고통과 아픔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즐거운 게임」과 「육포 냄새」,「토끼풀의 탄생」은 조금씩 다르지만 여성 혼자의 힘으로 아이를 키워가고 있는 화자가 등장한다. 「즐거운 게임」의 경우 외도를 하고 빚을 진 채 떠난 남편 때문에 내재된 감정이 폭발 직전인 화자가, 「토끼풀의 탄생」에는 임신한 채로 남자친구에게 일방적으로 결별을 당한 화자가 등장하고「육포 냄새」에는 노래방 도우미를 하는 엄마를 둔 딸아이가 화자로 등장한다. 「대화법」에는 외국인 엄마를 둔 초등학생여자아이와 담임선생님이 화자로 등장한다. 구체적인 어떤 대화도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어떤 방법으로 소통하려고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지브라」와 「요괴 인간」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고등학생 화자로 그들의 입으로 생생하게 이야기하는(거친 욕과 은어까지 포함해) 세상에 대한 분노와 그들의 고통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언제까지고 아이들에게 가해자인 이 세상, 때문에 소설의 결말은 대부분 불행할 수밖에 없다. 소설 속 주인공 모두가 이렇게 외치는 듯 하다. 그러니까 제발 벗어나고 싶다고. 이 ‘즐거워야만 하는’ 게임으로부터. 즐겁지 않은 현실에서 즐거운 것처럼 행동하고 살아가야 하는 이 게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게임에서 빠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어떤 세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즐거운 게임의 악랄한 규칙을 뒤엎을 그곳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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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여기 나오는 가족은. 병마와 싸우는 남편은 아내의 뱃속 아기의 핏줄을 의심하고, 엄마의 응석에 질릴대로 질린 딸에, 자살로 아내를 떠나보낸 삼촌과 미혼모인 조카와, 국적 다른 새엄마를 비롯한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차단해버린 어린이, 남편의 부재로 서비스직에 종사하며 생계를 잇는 엄마와 그런 환경 때문에 방목 되다시피 하는 아이들까지.
하지만 ‘막장’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가족이 있어 성가시고 괴롭고, 또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오늘을 살아가는 이 단편소설 속 사람들의 솔직한 속내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공감의 폭이란 독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누군가 그랬다. 남보다 못한 가족도 있고, 가족보다 살뜰한 남도 있는거라고. 가정의 해체와 그 속에 불안전한 자아들을 보며 이 시대에 걸맞은 가족관에 대해 고민한다. 결혼율, 출산율이 저조한 시대. 1인 가구의 급증에 따른 사회상의 변화. 이런 현상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순수하고 완전한 행복을 닮은 가정은 몇이나 될 것인가. 가족이라는 굴레가 우리의 삶을 더 괴롭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이 소설집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게 결코 ‘가족의 불필요성’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가족은 피붙이, 살을 맞대고 사는 사람, 서로간의 책임이 따르는 사람, 그래서 때로 성가시고 괴롭게 만드는 존재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억척스럽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른이 다되도록 부모님과 한지붕 밑에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위기들이 있다. 그럴때마 다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얼마나 절실하게 그리운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또 자취생활을 하던 시절 혼자 아파 끙끙댄 그 날들을 떠올린다. 감기몸살로 하루 종일 앓다 새벽녘 눈을 떴을 때, 혼자라는 사실을 얼마나 처절하게 실감했던지. 엄마가 해 준 죽 한그릇이면, 아빠가 부지런히 챙겨주시는 약이면, 옆에서 살펴주는 언니의 존재만 느껴도 금방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정말 간절했었다.
책에 대한 감상이 이렇게 흘러서인지, 단편 중 ‘요괴인간’의 할머니 모습이 참 쓸쓸했다. 병원비는 꼬박꼬박 들어오지만 가족들의 왕래는 끊어졌다는 할머니의 가족은 최소한의 도리는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당장 뉴스를 봐도 그 최소한의 도리조차 하지 않아 생기는 비극이 얼마나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시대인지. 하지만 최소한의 의무만 지켜지는 사이가 제대로 된 관계일리는 없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쓸쓸한 사람이 너무나 넘쳐나고 있다.
이렇게 가족과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것과 함께 이 책이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여자들’이다. 당돌하기도 하고, 억척스럽기도 하고, 돌발스럽기도 한 다양한 여자 등장인물들. 특히 ‘육포냄새’의 엄마와 딸이 인상 깊다. 아버지의 죽음을 ‘육포처럼 꼬들꼬들하게 말라 가고 있더라’고 말하는 엄마나 쌀쌀맞은 옷집 점원에게 속으로 ‘너도 내 유서에 한 줄 넣어주겠다’며 새기는 딸. 둘은 아버지의 부재라는 예사롭지 않은 상황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하고, 서로간에 다정다감한 대화도 없다.
하지만 오히려 현란한 장식이나 가식 따위가 배제된 날것 그대로의 ‘가족’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에서 고요하지만 강한 ‘생활미’를 느낀다. 육포를 계속 씹다보면 단물이 나듯이, 이들이 계속 ‘생’을 향해 나아갈 것이 그려진다. 그리고 결국 그게 ‘삶’이라는 것을 <즐거운게임>을 읽으며 나는 다시 한번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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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근질근질해 온다. 미칠 것처럼 근질근질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그렇다. 나도 이제 먼지를 싫어하는 여자로 살고 싶다. 문득 유림이년의 말이 떠오른다. 뭐가 겁나? 인생을 즐기라고. 그 맹랑한 것이 제법 그럴 듯한 말을 했다.
-소설집《즐거운 게임》중 <즐거운 게임>에서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즐거운 게임>에서는 10대부터 중년 여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의 모습들을 다루고 있다. 하나같이 즐겁지 않은 삶을 사는 인물들이다. 책을 읽다보니 그네들의 어둡고 무표정한 얼굴이 떠오른다.
불륜으로 인해 상처받은 여자 -<즐거운 게임>, 한국말이 서투른 러시아 여자 그리고 그런 새엄마를 싫어하는 여자아이 -<대화법>, 아들을 잃고 빵에 집착하는 여자와 그런 그녀를 위해 빵을 사다바치는 여자 -<달콤한 빵>, 아픈 남편에게 시달리는 여자 -<자연의원>, 아이까지 가졌지만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 -<토끼풀의 탄생> 등 다양한 군상의 여성들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들은 따뜻하고 행복해야 할 가정 대신 어딘가 깨져있고 우울한 가정속에 살고 있다. 가정이란 공간이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 아닌 질식시키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들 나름에 방식을 찾는다. <즐거운 게임>의 나는 파출부 하는 집의 남편을 유혹하려 하며 기대감에 찬다. <달콤한 빵>에서는 모녀사이를 잠식하고 있던 죽은 지호의 그림자를 조금 걷어내고 다시금 서로를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 엄마가 빵을 꺼내 먹다가 나에게도 하나 건네주더니 어서 받으라는 듯 손을 재촉했다. 나는 엄마의 주름진 목 언저리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빵을 받았다. 남자는 빵을 버렸지만, 나는 버리지 못했다. 대신 나는 엄마를 위해 그 하찮은 빵을 한 번쯤 열심히 씹어 주기로 했다.」
-<달콤한 빵>
자연의원, 달콤한 빵, 즐거운 게임, 토끼풀, 육포 냄새, 대화법, 지브라, 요괴인간 등 화자를 억누르고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것들이 책의 소제목이 되어 달려있다. 하지만 글의 말미에는 이런 것들의 고통해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들이 드러난다. '소통'을 통해서이다.
<대화법>에서 성언이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러시아 에서 온 새엄마 소냐를 싫어한다. 싫어한다기 보다 혐오에 가까운 수준이다.
나는 내 눈을 들여다보는 갈색 눈동자가 싫다. 수세미 같은 머리카락도 싫다. 갈색 털이 숭숭 솟은 팔뚝도 싫다. 소냐의 큰 눈은 징그럽다. 나를 다락방을 밀어넣을 때, 소냐의 긴 손가락이 마치 갈고리처럼 내 몸속으로 들어와 간을 빼먹을 것 같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던 '나'역시 소통의 부재로 남편과 이혼했다. 알아들을수 없는 말로 그녀에게 화내듯 전화하던 소냐와도 소통의 부재를 겪고 그녀를 당황시키던 성언이와도 역시 소통의 부재를 겪는다. 하지만 성언이의 사건을 계기로 세 여자는 소통을 하기 시작한다. 성언이가 일을 당했을 때 서툰 말로 성언이의 담임인 '나'에게 연락을 한다. 소냐를 대신해 '나'는 성언이와 소통을 시작하려한다. 금붕어로 말이다.
전혀 즐겁지 않은 이 세상에서 게임을 하는 그녀들. 그녀들 스스로 고통을 이겨내는 방식이 이 소설 <즐거운 게임>에 묻어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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