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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책 제목을 보면 오랫동안 서점가를 지배하는 얄팍한 힐링서적 일 듯하지만, 목차와 책의 두께 그리고 밀도만 봐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고, 꼼꼼히 읽다보면 우리가 놓치기 쉬운 삶의 문제를 깊이있게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철학서이자 과학서이다. 아무개와 아무나와의 언어적 차이에서 차별받지 말고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이야기 역시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은 아주 일부분일 뿐이며, 책의 전체 내용은 사회 문화 과학적 여러가지 상황을 인류원리라고 하는 하나의 주제와 연결시켜 일관성있게 풀이하며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한다. 사실 내겐 철학서를 읽는 것만큼 고역이고 졸리운 일이 없는데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딱딱하고 재미없고 이론적인 내용일 것 같지만 철학서를 힘들어하는 내게 (물론 읽는데 매우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이 책은 굉장히 흥미롭게 읽혔다. 첫번째 이유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사고실험 위주로 저자가 일관적으로 접근하는 인류원리를 풀이하기 때문이다. 사고 실험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매일매일 부딪치는 딜레마를 하나의 단순한 상황으로 분리하여 그 기저에 있는 인간의 윤리성 합리성 등을 따져보게 한다. 책에 제시된 수많은 예시들은 궁극적으로는 철학이 책상과 책장 속의 고루한 이론이 아니라 삶을 결정하고 인류가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두번째는 미학에 철학 전공을 한 학자인 저자가 쓴 글이지만, 대중을 대상으로 일상어로 쓴 글이어서 무슨 뜻인지 모르는 난해한 철학적 전문 용어를 남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부득불 전문 용어가 필요한 대목이 있으면 그 전문 용어를 써야하고 이해해할 이유를 알 수 있도록 그것을 풀이하고, 대부분은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세번째는 저자가 대중서는 처음 쓰는 것 같은데 글 자체를 재미있게 쓴다. 인문사회과학 책을 쉽고 재미있게 쓰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얕은 지식을 끌어와서 조금 재치있게 배열하거나 일기장인지 인문서적인지 자기 생각에 과학적 이론의 표피를 섞어 1년에 몇권씩 다작을 하는 소위 최고연구과학대학의 유수한 교수들의 질낮은 대중인문과학 서적류와는 다르다. 인류원리라고 하는 일관된 주제안에 과학 철학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사고방식을 일관되게 제시하는 이 책은 유발 하라리나 제랄드 다이아몬드같은 범주에 넣어야 할 듯하다. 그렇다면 인류원리란 무엇일까. 가장 기본적으로 이분법을 거부하는 사고방식이고 확률적 사고방식이고 의미를 기대하지 않는 현상에서도 의미를 추구하는 사고방식이다. 마지막 말은 우리가 비과학적이라고 여겨지므로 조금 설명이 필요하다. 과학은 일식이 일어나면 그 원인을 찾아야지, 의미를 찾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인류원리는 주어진 현상의 의미하는 바를 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에 이 말을 읽었을 때 이 책은, 그리고 인류원리라는 것은 종교적인 배후가 있을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되었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인과 관계 배후에 숨겨진 혹은 드러난 행동 양식 사고 방식의 의미. 그것은 무엇일까 인류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가장 먼저 제시하는 것이 편향성이다. 저자는 1장에서 편견과 편향성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고, 편향성이란 우리에게 주어진 필연적인 환경이며, 그것을 벗어날 수 없으므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편향성은 편견을 낳기도 하지만 편견을 이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이 편향성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 있다. 급비탈진 곳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자신이 선 땅이 평평한 줄 알고 직각 방향으로 자란다면 결국에는 중력 때문에 언젠가는 꺾이고 말 것이다. 하지만 비탈진 곳에서 자라더라도 그곳의 경사진 곳이라는 것을 알고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면 싹을 튀워 성장을 처음 시작할 때는 어려움이 많겠지만 결국은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처한 사회 경제 시대적 여건이라는 거대한 편향성 외에도 이 광활한 우주 내에서 아주 조금만을 이해하고 있다는 편향성 위에 서 있다. 자신이 아는 것이 우주의 전부라고 믿는 믿음, 자신이 믿는 것이 우주의 하나밖에 없다는 진리는 편견을 낳는다. 하지만 편향성은 좁은 범위에서도 흔한 현상이고, 우리 모두는 각자의 편향성 위에 서 있다. 모든 개인이 각기 다른 얼굴을 가진 우리는 멀리서 인간이라는 종을 보았을 때는 비슷비슷하지만, 각자는 모두는 제각기 비범하다.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 는 천체 물리학자 카터가 1970년대에 우주론의 맥락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50년이 채 되지 않은 역사를 가졌지만 과학계에서는 상반된 견해로 비판을 받았다. 카터의 최초 인류원리는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관찰자가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에 의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로 동어반복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원리의 유일한 정의가 아니며, 베토와 티블로의 약한 인류원리 및 강한 인류원리가 있다. 약한 인류 원리는 “모든 물리량과 우주량의 관찰값은 동등한 확률을 가진 것이 아니라, 탄소 기반 생물체가 진화할 수 있는 곳이 우주 내에 존재한다는 조건과 우주는 그런 곳이 이미 존재할 만큼 오래되어야 한다는 조건에 의해 제약된 값을 갖는다”는 것이고 그들의 강한 인류 원리는 “우주는 생명체가 우주의 역사 중 한 지점에서 생겨날 수 있게 만드는 속성들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강한 인류원리는 너무 사변적여서 너무 강하고, 약한 인류원리는 너무 사소해서 배울 게 없어서 너무 약다고 비판받는다. 결국 “지적 생명체는 지적생명체가 가능한 곳에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너무 당연하고 동어반복처럼 보이지만 동어반복의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면 여러 층위가 있고, 모든 동어반복이 모두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역설한다. 이를 위해 조건부확률이라는 개념을 인류원리의 해석을 위해 여러 상황에 대입하여 해석하며, 인류원리가 적용되는 부분이 매우 넓으며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 한가지는 각자가 처한 자신의 위치를 인류원리에 적용하는 것이다. 현재 지금 내가 있는 곳을 우리는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범위를 극단적으로 넓히면 우주의 역사의 어느 시간과 우주의 어느 공간에 있는지 그 시점과 위치를 알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과 앞으로 존재할 모든 사람들보다 행복한 집단에 속할까 같은 질문들 말이다. 내가 서 있는 지점 그것이 바로 나의 편향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문, 내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가장 상식적인 대답은 “내가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있으므로 세계는 이러저러하다”는 것이다. 상식적 경험론이라고 불리우는 이러한 이론은 해가 지는 것처럼 보이기에 해가 지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재현적 실제론은 세상이 경험하는 대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미 재현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고 것이다. 하지만 재현적 실제론 역시 세계가 간접적으로만 우리에게 드러난다면 결코 세계의 진짜 모습에 도달하지 못하기에 헛점이 있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것은 재현물일 뻔이고 세계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우리의 지각이며 관념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관념론이라고 한다. 따라서 2단계 추론은 “내가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있다면 나는 그런 경험을 하도록 적합한 상태에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개인의 경험과 지각은 모두 다르므로, 이것은 확률적으로 계산해야 하는데, 어떤 경우 평균값은 전체의 경험을 매우 왜곡시켜 보여준다. 극도의 소수에게 극도의 부가 분배된 소득불균형의 사회에서 평균값은 무의미하고 중앙값이 사회 다수의 소득을 대변한다. 결국 인간이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에 의해 제약받을 수 없다는 인류 기본원리에는 확률이 관여한다. 저자는 계속해서 인류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흥미로운 상상력의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늪사람이 그 중 하나다. 내가 죽고 늪에서 나와 구별할 수 없는 사람이 나타나서 나의 행동방식 그대로 행동한다면 늪 사람과 죽은 나는 어떻게 다른가. 라이프니츠는 모든 점에서 구별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두 개의 물체가 아니라 사실 하나의 동일한 물체라고 생각했다. 식별불가능한 것은 동일하다는 거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눈앞에 할머니가 나타났다면 눈앞의 상황은 현실이 아니거나 과거의 기억에 의심을 품을 수 있다. 데카르트는 우리의 경험은 편견에 불과한 것이므로 이렇게 지각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두 상황을 똑같이 대해야 된다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이 중 하나를 진정한 것으로 쉽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조언한다. 투명인간은 투명해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는 옷을 입어야 자신을 드러낼 수 있고 옷을 모두 벗어야 자신을 숨기는 거꾸로된 숨김 구조를 가졌다. 존재가 있는데 없는 것으로 여겨짐으로써 그는 소외된다. 누구도 그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해 부딪힘 사고로부터도 무방비하고 날카로운 물체에 다치거나 혹은 눈비가 오는 자연으로부터 어떤 보호를 받지도 못한다. 하지만 관찰자로서의 투명인간은 익명의 존재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고 싶은 이상화된 투명인간이다. 하지만 인류원리는 말한다. 우리는 세계의 관찰자로만 살아갈 수 없는 조건 하에 놓여있다고. 대중이 스타에게 관심을 가지고 스타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고 즐길 때 대중의 각자는 마치 이상화된 투명인간처럼 자신의 시선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미줄같은 네트웍과 감시카메라는 자신의 괘적을 지켜보고 있다. 첫사랑 독점자 이야기가 흥미로왔는데 길어서 여기까지만 쓴다. 과학과 인문을 어우르는 다양한 종류의 사고실험과 재미있는 상황에 대한 철학적 고찰, 정말 잘 쓴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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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사람이 편향적이라 하더라도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여전히 나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습니다. "편향성을 사랑하자." 편향성을 무시하지도 말고 편향성에 굴복하지도 말고 편향성을 사랑하자는 겁니다. - p.34
편향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편견과는 다른 차원의 방향성입니다.
'편향성'은 우리가 세계 속에 처한 모습을 규정하는 표현입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믿음을 규정하는 표현이 아닌 겁니다. 편견은 바로잡아야 할 대상이지만, 편향성은 바로잡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 p.35
『나는 아무개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는 편향성으로 가득 차 있는 철학의 세계를 거닙니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편향입니이다. 이놈의 편향성은 왜 중요한 걸까요?
'편향성을 사랑하라'라는 메시지를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편향성을 사랑하는 것이 편견에서 벗어나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편향성을 사랑한다는 것은 편향성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편향성을 제대로 이해할 때에야 그 편향성 때문에 생겨난 편견을 고칠 수 있습니다. - p.38
편향성은 기울어진 길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나무가 자랄 때 심하게 기울어진 땅에서는 기울어진 곳으로 자라나야 제대로 자랄 수 있습니다. 편향성을 알아치재지 못하고 이 나무가 똑바로 자라려 한다면 이 나무는 자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편향성은 중요합니다. 자 그럼, 이 책의 주제인 편향성을 관통하는 세계로 한번 떠나볼까요?
2. 사실 살아가면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어디 있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생각은 특정한 범위에서만 옳습니다. 범위를 넓힌다면 확실성은 사라집니다. 예를 들어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우리는 어느 위치에 있을까요? 또는 범위를 극단적으로 넓혀서, 우주의 역사와 공간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위치는 어느 곳이고 어느 시점일까요? 이렇게 범위를 달리 하면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생겨납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 중에서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의 집단에 속할까요, 아니면 불행한 사람들의 집단에 속할까요? 지금까지 존재했던 사람들뿐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까지 모두 포함한다면 어떨까요? 이렇듯 우리 자신의 위차기 어디인지 확신할 수 없는 질문들은 많습니다. 인류 원리를 적용하는 첫 단계는 이런 종류의 물음을 제기하는 겁니다. - pp.78~79
인류원리란 물론, 창조주 하나님의 원리에 있을 거라는 대답은 어쩌면 이 책에서는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어떤 경험을 하고 있다면, 나는 그러한 경험을 하기에 적합한 상태에 있을 것"이라 추론하는 것이 인류 원리를 적용하는 기본 원칙입니다. - p.87
사람의 경험,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완성되는 철학은 이러한 결론을 맺게 됩니다.
"인간이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에 의해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 p.87
그렇다면, 여기서도 편향성이 존재할까요? 그렇습니다. 인간이 존재하려면 필요한 조건들이 있습니다. 그 필요한 조건들이 없다면 인간은 생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살기 위해 인간은 필요한 조건들에 의해 제약받을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편향성으로 인해 인간은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투명인간'이라는 표현은 두 가지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소외된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관찰자입니다. 소외된 사람의 이미지를 가진 '투명인간'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고, 관찰자의 이미지를 가진 '투명인간'은 우리가 되려는 것입니다. 앞의 투명인간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없지만 뒤의 투명인간은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것이죠. 우리는 필요할 때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 합니다. 투명인간이 되어 익명의 존재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길 원할 때가 있습니다. - p.111
나의 리뷰에도 편향성이 존재할까요? 물론입니다. 필요할 때는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나이지만, 그러나 보통 때는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하지 않으면서 나의 편향성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이 리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지금 편향성이라는 주제로 이 리뷰를 쓰기로 마음먹었으며, 그 편향성이 이 리뷰를 이끌어가는 힘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나의 이 리뷰는 '편향성'이 주제이면서 편향적이기까지 합니다.
4. 구청을 포함해서 여러 관련 기관에 민원을 제기한 주민들은 마침내 바라는 대로 주변 도로의 제한 속도를 20킬로미터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속도를 넘기는 차들은 아파트 주민들이 설치한 폐쇄회로 카메라에 찍혀서 여지없이 범칙금을 물어야 했죠. 그런데 일 년이 채 못 되어 제한 속도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아파트 주민들이 제한 속도를 원래대로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던 걸까요? 제한 속도를 낮추자 속도위반으로 범칙금을 물게 된 운전자들이 속출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범칙금을 낸 사람들 대부분이 아파트 주민이거나 이 아파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었던 겁니다. 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 단지 주변을 가장 빈번하게 다니는 사람들이 자신이라는 점을 잊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투명인간'처럼 생각헀던 것이죠. - pp.136~137
그러니까 불평불만을 쏟아내고자 할 때는 그 불평불만이 자신을 향한 것은 아닌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단점이 '투명인간'이 되어 보이지 않으니, 그 불평불만을 남에게 쏟아내는 것이죠. 저도 그런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을 하는 게 되겠지요. 그러니까, 투명인간이 되는 것은 조금 고려해 봐야겠습니다. 이놈의 투명인간은 장점보다 단점이 많으니까요.
우리는 다양한 정도의 특정성을 가진 관념을 갖게 되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나 가족의 경우는 상당히 높은 정도의 특정성을 갖지만,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의 경우에는 낮은 정도의 특정성만을 지닐 뿐입니다. '아무개'는 이 특정성이 모두 휘발하여 날아간 존재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 각자는 특정성의 잣대에서 아무개와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고 볼 수 있죠. 반면 '아무나'는 특정성의 잣대 위에 아예 올라오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특정성의 최대치를 갖는 존재로 나타나지만 남들에게는 아무개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 원리를 따라서 우리 스스로를 아무개로 본다는 것은 자신을 거꾸로 보는 것과 같이 간단치 않은 일입니다. - p.160
그러니까, 나는 아무나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아무개로 특징지어지면서 나라는 존재는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인류 원리는 특정성의 잣대가 지닐 수 있는 오류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아무나'가 아닌 '아무개'로 볼 수 있도록 안내하며 우리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가늠하게 해줍니다. - p.160
그러니까, 나는 아무개지만 아무나는 아니라는 이 말은 내가 지금 현재 처한 위치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게 해 주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 어떤 편향성에 기대어 있을 것인지, 또는 어떤 편향성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하게 해준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니까, 나는 신통한 다이어어리이며, 그렇기에 나는 누구에게 특정한 성향을 가진 인물로 분류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5. 남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는 자신의 생각도 바꿀 수 있음을 전제합니다. 남이 어떻게 말하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유지할 의도를 가진 채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두고 경청하는 자세라고 할 수는 없죠. 적어도 남의 생각을 듣고 나서 자신의 견해를 바꿀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 p.183
남의 말에 잘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남의 글을 잘 보고 이해하는 것도 경청의 한 태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나의 어떤 생각이 바뀌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면 그 또한 관용의 한 부분이 아닐까. 나의 편향성은 편견이 아니므로, 언제든 다른 의견을 수용할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6. 사람들 중에는 거짓말을 더 많이 하는 사람과 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즐겨 하는 사람이 있고 마지못해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말도 똑같습니다. 주로 참말을 하는 사람이 있고 가끔 참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말을 즐겨 하는 사람도 있고 마지못해서 참말을 실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말과 거짓말을 하는 빈도와 성향에 있어서 다양한 편차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 p.215
나는 어떤 성향일까? 물론, 여기서 그걸 밝힐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편향성의 잣대에서 본다면, 누구나 자신이 살기 위해 이 중 한쪽으르 지향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니까, 편향성은 아무개의 특정 성향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7. "어둠이 깊었으므로 새벽이 곧 온다"는 말에서 '어둠이 깊었다'는 말은 어둠 속에 머물러 있었던 사람의 위치를 알려줍니다. 어둠을 경험했던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어둠이 깊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방금 전에 잠이 깨었는데 주변이 어둡다면 '깊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겠죠. '깊다'는 시간의 경과에 대한 경험을 표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가 새벽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겠죠. - P.335
어쪄면, 편향성은 어둠이 깊은 곳에 있는 우리의 처지를 잘 나타내주는 단어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편향성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지만, 곧 그 편향성으로 인해 더 높이 올라갈 나무의 가지를 기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방식으로 인해 우리는 새벽이 멀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편향성이 주는 안락함이 우리를 이끌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저만의 착각은 아니겠지요?
8. 내가 하는 행위는 너무나 사소해서 전체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겸손한 생각이 아닙니다. '평범하다'는 것은 대중 속에 파묻혀서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 P.407
지금 내가 쓰는 이 리뷰가 이 글을 보시는 그대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런 생각 이제부터 버리기로 했습니다. 너무나 사소한 나의 글 한마디가 어쩌면 당신의 삶을 쥐고 흔들지도 모르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나의 이 리뷰들을 결코 가볍게 쓰면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작지만, 사소하지 않은 생각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 소박한 리뷰를 통해서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아주 위대한 생각을 합니다. 편향성이 만든 기적, 그 기적을 체험하게 되길 바라면서 말이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 앞에는 두 가지 유혹이 뭉게뭉게 생겨납니다. 하나는 오로지 나에게만 주목하고자 하는 유혹이고, 다른 하나는 나를 투명인간처럼 여기고 싶은 유혹입니다. 인류 원리는 이 두 가지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라고 조언합니다. 내가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고 여기지도 말고 내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 p.408
저 역시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겨봅니다. 내가 모든 것의 중심에 있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내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말. 오늘 편향성을 통해 본 하나의 철학이 당신의 인생에 작은 기적을 일으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세계의 중심에는 이 리뷰가 아닌 당신 자신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편향적이길 바랍니다. 편향적인 인생을 통해, 제대로 자라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대로 자라난 당신의 인생에 멋진 변화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 기대가 자라나면, 저에게도 한 몫 뚝 떼어줄 수 있는(?) 여유가 되시기를 소망해 봅니다.
- 이 리뷰는 청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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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고백하는데 이 책을 읽는데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내가 좀 아프기도 했고, 책 내용이 나를 아프게도 했다. 꽤 심오한 책이라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인간의 근원에 대해 추적하는 철학적인 내용이 많이 담긴 책이었다. ![]()
우리 모두는 각자 평범하게도 비법합니다. 이것이 이 책에서 하는 핵심 주장이라는 저자의 첫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이 주장은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이미 전해진 바 있다. 인류 원리는 천체물리학 집단에서 태어났지만 그곳에서 합당한 환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가 관찰 할 수 있는 것은 관찰자가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에 의해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인류 원리의 핵심은 바로 우리 모두 각자 평범하게 비험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언뜻보면 역설적인 말이다. 사람들은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이기 위한 '개성'을 강조한다.
결국 우리 인간은 편견 없는 투명인간처럼 살 수 있는가? 자문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답은 나의 '편향성'을 제대로 인정할 때 더 넓은 세상과 진정한 인간의 가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울어진 비탈길에서 자라는 나무와 같은 존재로 우리 자신이 그 뿌리를 확실히 내딛고 살 수 있을 때 세상을 조금 더 재미있고, 올바른 시각과 관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배가 고플 때 장을 보지 말라는 말이 있다. 배가 고플 때 장을 보면 너무 많은 것을 사기 떄문이다. 반대로 배가 너무 부를 때 장을 보면 필요한 것을 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장을 보면 안된다는 말도 성립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떨 때 장을 봐야 할까? 배가 적당히 부를 때?, 아님 조금 고프기 시작할 때?
인간과 인간 사이를 보는 관점도 이 '적당히'가 굉장히 중요하다. 인류 원리는 다음과 같은 특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인류는 이분법을 거부하는 사고 방식이다. 우리는 흔히 주관과 객관이라는 두가지 관점을 명백히 구분하는데 익숙하다. 주관적 관점의 시작과 끝은 결국 모두 '나'이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고, 객관적 관점은 결국 그속에서 '나'를 몰아내는 과정이다. 2) 인류원리는 확률적 사고방식이다. 이는 연역적으로 타당한 추론을 통해 결국 모든 행동을 결정하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에게 누구던지 확실한 것은 없다. 단지 그간의 경험으로 좀 더 옳은 방법을 찾아갈 뿐... 심지어 1+1=2라는 불변의 진리 같은 공식도 어쩔 땐 맞지 않다. 물방울 1개와 또다른 물방울 1개가 합쳐지면 그냥 1이기 때문이다. 3) 인류원리는 우리가 의미를 기대하지 않는 현상에서도 그 의미를 추구하는 방식이다. 한강이 흘러 갈 때 우리는 그 주변 배경 경치를 보거나 또는 왜 한강물이 흘러갈까라는 그 이면의 추론까지 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긴이기 때문이다.
이 책 『나는 아무개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는 1장에서 3장에 걸쳐 우리의 편향성이 갖는 의미를 진단하고 이를 통해 근대철학이 지닌 관점을 넘어서게 해준다. 세상에 똑같은 얼굴은 단 하나도 없다는 점, 우리의 일상이 결코 질서정연하지 않으면서도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세계가 다양한 ‘편향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인류 원리는 우주를 설명하는 방식이 우리의 편향성에 달려 있으며 여기에는 오류(편견)가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인류 원리에 따라 이 책은 우리 자신을 ‘평범하게 비범한’ 존재로 여김으로써 우리가 암암리에 가졌던 편견과 차별 의식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4장부터는 '나'라는 존재가 갖는 독특한 성격에 주목한다. 왜 나는 다른사람이 아닌 '나'인지를 묻는다. 5장에서는 우리는 나에대한 논의를 '너'까지 확장해간다. 근대 철학을 통해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을 보여준다. 6장은 첫사랑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왜 '나'는 '너'를 오해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사랑까지 철학을 끌어들여 이렇게 설명하는 방식 신선했다. 7장은 '나'와 '너'가 모여 '우리'에 인류원리를 적용해 본다. 나는 너의 생각을 오해할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속이기도 하고 상대방이 나를 속이려 한다면 의심도 해보는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를 살펴본다. 8장은 인류원리를 적용하는 범위를 당위의 차원으로 확대한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머리를 쥐어짜며 읽기 시작했다. 앞에서 했던 말도 많이 나오기 시작하고, 자신이 '특별한 위치'에 있길 욕망하는 사람은 과거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지 않고 미래에 닥칠 결과만을 중시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태도가 인류원리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을 보게 된다. 9장은 우리는 시간의 축을 거슬러 올라가 '인류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류 탄생을 의도적인 행위와 우연한 사건의 결과로 보는 설을 보여준다. 마지막 10장은 우리는 시간의 끝으로 간다. 인류가 언제 사라질 것인가, 인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인데 사실 8장부터는 조금 어려운 개념도 많아서 읽기는 했지만 나중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중간중간 이런 옛 선인들이 한 심오한 말이 담겨있다)
결국 우리 '인류의 원리'는 참과 거짓이 가려지는 명제라기보다는 ‘우리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지 말라’라는 메시지를 담은 권유형 문장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것은 ‘편향성을 사랑하라’라는 명령문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인류 원리는, 목적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하듯이, 참인 것으로 가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조건부확률을 가늠하는 메타적 기준이다. ‘미세 조정’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되는 조건 하에서 설계론이 참일 확률과 우연론이 참일 확률을 비교하면서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이다.
책의 두께만큼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이었고, 꽤 어려운 철학적인 내용도 많았다. 저자가 미학을 전공한 학자라 더욱 그런 것 같다.
결국 이 책 제목처럼 우리는 아무개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인생을 더욱 깨달아 갈 때 다시 한 번 읽어볼 생각이다.
좋은 기회를 준 청림출판(추수밭)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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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부터 곱씹어보며 생각에 잠기도록 만든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 무언가 존재의 특별함이 느껴진다. 우주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아무개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우주에서 바라보는 나 자신은 티끌보다 못한 존재일까, 유일무이한 특별한 존재일까. 이 책은 철학책이다. 이 책『나는 아무개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를 읽으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기적으로 만드는 인류 원리의 통찰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 ![]() 이 책의 저자는 김한승. 현재 국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언어철학, 논리학, 윤리학, 미학 영역에서 논문을 써왔으며, 철학 논문에서 제시한 생각들을 하나로 꿰어 쉽게 풀어내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시도를 담은 첫 번째 결과물이다. 이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된다. 시작하는 글 '평범하게 비범한 존재, 인간'을 시작으로, 1장 '우리는 편향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2장 '인류 원리란 무엇인가', 3장 '어떻게 인류 원리는 투명인간에서 벗어났는가', 4장 '왜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나인가', 5장 '너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6장 '왜 나는 너를 오해하게 되는가', 7장 '어느 정도로 너를 믿어야 하는가', 8장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9장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10장 '우리는 언제 사라지는가'로 이어지며, 더 알아보기 '확률'과 마치는 글 '인류 원리가 그리는 인간의 지도'로 마무리 된다. 우리 모두는 각자 평범하게도 비범합니다. 이것이 이 책에서 제가 하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사실 '인류 원리'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이미 전해진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 원리는 제대로 우리 손에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천체물리학자 브랜던 카터는 인류 원리를 '미운 오리 새끼'로 태어나게 한 사람인데, 그는 다음과 같이 인류 원리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관찰자가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에 의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아리송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우리는 앞으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4쪽_시작하는 글 中) 이 책을 읽으며 인류 원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쉽게 풀어냈다고 했지만 절대 쉬운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해당 주제가 워낙 난해한 것이어서 이 정도면 쉽게 풀어냈다고 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인정한다. ![]() '인류 원리'란 "우리는 왜 이 우주에서 살아가게 되었는가"를 밝히고자 과학자들이 도입한 철학 개념이다. "인간이 관찰하는 우주는 인간이 존재하는 조건에 의해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는 이 개념은 우리가 단순한 관찰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이 세계에 적극적인 영향을 끼치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권유한다. 이 책은 '나'와 '너', 그리고 무한한 '우주'의 영역으로까지 뻗어나가는 10가지 질문을 통해 인류 원리를 철학적으로 설명하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그 답을 제시한다. (책 뒷표지 中) 이 책을 읽으며 인류 원리에 대해 사색에 잠기는 시간을 보낸다. 이 책은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야 한다.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나가다 보면 그 의미가 전해진다. 나에게 그 속도는 느렸다. 하지만 내 존재를, 인간 존재를 우주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필요한 시간이었다. '평범하게도 비범한' 존재를 인식하고, 내 안으로 침잠하는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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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이른바 인류원리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사고실험과 철학적 사변을 전개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관찰자가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에 의해 제약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인류원리인데, 원래는 천체물리학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사실 처음 이런 이야기를 접했을 때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수십 년 전 학생 때 나를 가르쳤던 과학 교과 선생님이 그 당시 석사학위를 받을 때 제출했던 논문인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에서의 특수 관찰자와 관찰 대상에 대한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런 원리들을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이 책은 그래서 더 어려운 것 같다. 일단 인류원리는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하며 확률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인다고 설명한다. 거기에다 의미를 기대하지 않는 현상에서도 의미를 추구하는 사고방식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어떻게 이 현상이 일어났는가라는 물음을 넘어 왜 이 현상이 일어났는가라는 물음을 피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말해 창의적인 적용을 요구하는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이야기하며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가장 먼저 편향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편향성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편향성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이고, 제대로 이해할 때에야 그 편향성 때문에 생겨난 편견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이 인류원리를 적용하는 첫 단계라 말한다. 즉, 인류원리는 우리를 둘러싼 외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의 위치를 추론하는 데 적용되는 원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있다면 나는 그런 경험을 하도록 적합한 상태에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어떤 경험이 올바른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경험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 내가 가진 경험이 진리를 말하고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 살펴볼 수 있는 것도 경험뿐이라는 것이 근대철학의 입장이라고 하는데, 경험을 하기 위한 수단을 스스로 선택하여 가지게 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수단을 갖고 있다는 것조차 잊기 쉽다고 말한다. 관찰을 돕는 수단은 관찰을 하는 동안에는 관찰되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예를 들어 꽃을 든 소녀를 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경험을 일으키는 경험의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란 사실을 지적한다. 그 밖에도 인류 원리의 정신에 따르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일한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생각을 양보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는 확신을 낮추는 것이란 말이다. 또한 인생의 갈림길에서 하나의 선택을 다른 것보다 더 바람직하게 만드는 것은 그 선택이 앞으로 어떤 일들을 만들어 내는지 와도 관련이 있지만 과거의 노력을 얼마나 보람되게 만드는지 와도 관련 있다고 말한다. 즉, 인생의 갈림길에서 우리가 하나의 선택을 하는 이유는 그 선택이 단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선택이 그간의 노력을 헛된 것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인류 원리의 정신은 자신의 경험을 특별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라 언급하고 있다. 그게 바로 우리 모두는 평범하게 비범하다는 말과 연결된다. 전반적으로 동어반복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조건부확률 등을 활용한 논리철학의 주제들이 언급되고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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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개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
아무개나 아무나나 그게 그거 아닌가요 그렇진 않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의미입니다.
아무개는 어디사는 누군가를 말한다면 아무나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특정성이 없는 누군가입니다.
이 책의 주제는 인류 원리입니다. 꼭 이 원리를 인류 원리라고. 꼭 인간에 한정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보진 않습니다만 그 원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 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편향성을 가지고 편견을 경계하라고.. 위의 아무개와 아무나를 편향과 편견으로 대비해서 보면 비슷합니다. .. 조금 다르지만.
편향성도 경계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편향이라는 것은 다름을 말합니다. 같은 사람이 있나요 다시 본다면.. 같은 생물이 있나요
그런점에서 인류 원리라는 거. 굳이 인류에만 한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더 세밀하게 보자면 똑같이 만들어진 무언가도 완전히 똑같은 것은 없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만... 어느정도 이상 유사하다면 같다고 보고.
편향성이라는 건 다름을 말합니다. 굳이 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모두 다르고 그 다름에 대해 인정하고 자신만의 다름을 살리는 것이 더 특별하고 가치롭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편견은 편향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그럴것이라는 생각을 통해 사실을 왜곡해서 보는것이죠. 그러니... 편향성을 가지고 편견을 경계하라는 말에 동감할 수 있습니다.
2장에선 이 책의 주제인 인류 원리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굳이 인류 원리라고 말할 필요가 있느냐는 제 말은 인류 원리의 근원에 가깝습니다. 옛 그리스 철학에서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인식은 인본주의의 기초가 되었고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 이전. 따지고 보면 고대 그리스 시대도 포함되긴 합니다. 신이 중심이 되던 세상에서 인간의 중심세상으로 인식을 바꾼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세상이 그리스 철학을 통해 보다 인간에 가까워졌지만 기독교 중심세상으로 다시 신중심의 세상으로 퇴보되었지만 오랜 암흑시대 이후 다시금 인간중심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볼 때 인본주의는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인간만으로 구성되어 있지않고 세상 모든 것이 소중하다는 것이죠.
인류 원리는 이름인 인류 원리로 오해하기 쉽지만 근원을 보자면 반인본주의에 가깝습니다. 과학의 입장에서 철학을 보고 인류 원리를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고전철학 위주의 책만 읽다 요즘 경향의 철학서를 읽으니 느낌이 새롭더군요.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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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나는 아무개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평범하게 비범한 존재 인간, 그리고 나
![]() <나는 아무개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를 보았을 때, 제목을 보고 요새 자주 나오는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철학 수업이라고 소개는 되어 있었지만 워낙 '철학'이나 '심리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런 책들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작하는 글에서 '인류 원리'와 그 핵심에 대해서 읽었을 때 그저 그런 책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우리 모두가 각자 평범하게 비범하다니, 항상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이제껏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꿰뚫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비슷하게 살아가지만 그 비슷함에 묻혀버리면 나 자신을 찾을 수 없다. 분명 각자에게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데 한 덩어리로 그냥 뭉쳐 넣기엔 찜찜했다. 그리고 인류 원리는 그것을 정확히 짚어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류 원리'가 천체 물리학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천체물리학자 브랜던 카터가 인류 원리를 규정했지만 인류원리는 천체물리학 분야에서 '미운 오리 새끼'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난 곳을 벗어났을 때 마침내 '백조'가 되었다고 한다.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상의 틀을 깨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 틀 안에 안주하게 되면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나이가 들면 안정적인 환경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커지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나이 든 사람들을 반기지 않고, 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고정 관념 속에서만 살아간다면 '젊은 꼰대'가 되고 만다. 이와 유사하게 인류원리도 자신의 세상을 부수고 더 넒은 분야로 나아갔기 때문에 백조가 되었을 것이다. 인류원리의 특성은 크게 다음과 같다. 1. 이분법을 거부하는 사고방식 2. 확률적 사고 방식 3. 우리가 의미를 기대하지 않는 현상에서도 의미를 추구하는 사고방식 4. 인류의 창의적인 적용을 요구하는 사고방식 이 특성들만 봐도 <나는 아무개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는 난무하는 자기계발서나 얕은 자기 찾기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즉 편향성에서 벗어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고 좁은 세계를 벗어나 더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관점에 대해서 공부한다. 그러나 이 방법이 감성적인 이야기로 치우치지 않고 지극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다. 물론 감성적인 이야기에 감명받고 감화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책처럼 논리적인 전개 방식에 잘 공감하는 사람도 있다. 먼저 <나는 아무개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를 읽으면서 우리가 편향적인 사람임을 인정하자. 이는 내가 감명받았던 '인류 원리의 핵심'과 직결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대칭적인 관계를 이루며 살고 있고 사람들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 그리고 제각기 다른 사람들을 좋아하고 싫어한다. 우리는 자신의 우물 속에서 살고 있지만 단지 거기에 머물기만 한다면 계속 냉소적으로 살아야 한다. 저자는 이 편향성을 받아들이고 사랑하자고 이야기한다. 내가 기울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편향성때문에 생겨난 편견을 고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다름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기울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관찰자로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 책은 편향성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여 인류 원리의 역사, 인류 원리의 철학적 해석, 타인에 대한 논의 등 차원을 차근차근 확장해나간다. <나는 아무개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는 누구든지 읽어도 좋다. 내가 매일 똑같은 관점으로 갇힌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싶은 사람,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틀을 더 확장해나가고 싶은 사람, 끊임없이 정신적으로 발전하고자 하는 사람 등 모두가 읽을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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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만 읽으면 최근에 유행하는 비교적 가벼운 심리서나 자기 개발서 같은 느낌을 받는다. 부제도 '차별해서도 차별받아서도 안 되는 철학적 이유 10 '라 각박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각종 부담으로 상처받은 개인들을 치유하는 책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책의 처음 두세 페이지를 읽으면서 바로 생각이 바뀌며, 갑자기 진지한 철학의 바다에 빠진 게 되었다. 저자는 미학과 언어철학을 전공한 박사님이다. 주로 언어철학, 논리학, 윤리학, 미학 영역에서 논물을 써오셨다고 한다. 이 책이 언어에서 출발해 개인의 인식, 우주, 심리 등등 영역이 무한대로 뻗쳐나가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책의 첫 머리에는 인류 원리 anthoropic principle라는 완전히 생소하고 개념 잡기가 힘는 용어가 나오는데 그러면서 그 철학을 단계적으로 이해하는 형식으로 내용이 이어졌다. 이 개념은 '우리 인간은 왜 이 우주에서 이렇게 살아가는지'를 밝히는 쳘학 개념인데 인간의 생물학적인 기원이나 종교적인 기원 등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인간이 관찰하는 우주는 인간이 존재하고 그 인간이 존재하는 조건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는 원리라는 철학 개념이다. 우리는 피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인 우주의 관찰자이며 이 변동하는 세계에 적극적으로 변화를 끼치고 영향을 주는 존재임을 설득한다. 인간이 혼자사는 존재가 아니기에 인간은 항상 '나'라는 의식과 '너'라는 의식, 그리고 무한한 '우주'까지 의식이 확장되는 원리는 철학적으로 풀어간다. 우리 인간은 관찰자로서 투명인간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현실이며, 각 개인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각각 제약을 받으며, 거기에서 '편향성'이라는 것이 생겨난다고 설명한다. 이 편향성이라는 것은 편견과는 다른 개념으로. 그러기에 타인과의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해준다. 우리의 동료가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본인 의견을 그대로 고집하는 태도는 스스로를 매우 특별한 위치에 있는 존재로 여기는 것으로 인류 원리의 정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에 경청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는 것이 관용인데 관용이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 다름과 나의 의견에 동등 무게를 두라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선택하는 다수의 의견이나 집단 지성도 규모가 커질 수록 무조건 최선의 좋은 판단이 아닐 수도 있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규모도 따로 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에는 확률적인 오류, 딜레마나 의심, 역설과 음모가 존재하며 그런 복잡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결론으로 이끌어지고 있다. 이 책은 우연과 필연 사이에 선 인간이라는 질문으로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고찰이 수준높게 계속 이어지는 데 아주 설득력이 있고 자세하며 때때로 어렵고 심오해서 가벼히 독서할 첫 마음에 도전 의식을 계속 심어주는 책이다. 다소 쉬운 구어체지만 역설적인 뜻의 제목은 바로 이러한 철학 개념을 여행하기 위한 첫 계단인 셈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점에서 특유의 편향성을 지녔고, 그렇기에 비범한 단 하나의 존재라는 점, 하지만 우리 모두가 다 그렇기에 또 우리는 평범하다는 사실, 그러기에 인간은 서로에세 '갑질'을 하는 것은 이런 점을 잘 모르는 상태이며, 상대방은 을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 '연대'해야 한다는 이상적인 결론을 이끌어 주었다. '나' 는 이 우주에서 특별하지만 '너'도 특별하다는 것이 '인류 원리'의 철학이며 우리에게 더 큰 통찰로 위치를 가늠하라는 가르침을 주는 개념이다. 참신하고 심오한 책 한권, 때때로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매력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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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디에 "아무개"가 들어가기 때문에 '어? 내가 말하는 아무개와 같은 의미로 쓰여진 책일까'하는 호기심이 들어서 책을 신청하였다. 이 책이 말하고 있는 중심은 "인류원리의 핵심인 우리는 평범하게 비범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평범하지만 비범하다?는 이상한 모순적인 말도 아니고 평범함과 비범함의 중간을 뜻하는 말도 아니고 우리 각자의 비범함은 너무나도 흔한 것이여서 놀랄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각 개인의 비범함은 특출난 누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이 중심 원리로부터 총 10장에 걸친 인류철학적 질문과 대답이 소개된다. 책에서 말한 인류원리로 인해 파생되는 "편향성"을 제 1장에서 다루는데 "편향성"은 한쪽 방향으로 치우쳐지는 인류의 오류가 아니라 편향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생각과 뜻을 알아가도록 우리의 지식체계를 확장시키며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또한, 잘못된 '편견'을 수정하는 도구로 오히려 이 "편향성"이 쓰인다고 하니 알수록 신기하고 오묘한 철학이 아닐 수 없다 근대철학에서는 편견없이 모든것을 관찰할 수 있는 "투명인간"을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설명하였지만 이 책에서의 인류원리는 사람이 "투명인간"일 수 없음을 설명한다. 사람은 관찰자로서만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떄문이 그 이유이다. 그렇다! 익명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나는 내 존재를 드러내기 보다 마치 투명인간처럼 인터넷상에서 살아가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인류원리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우리가 비록 관찰자처럼 살고 있다 하여도 "관찰자로만 살아갈 순 없기에" 우리는 사람인 것이라고.
책을 읽으면서 깨달아졌던 것들이 이 명언 한마디에 싹 정리가 되면서 무릎이 탁 쳐질 때가 많았다
챕터가 끝날 때마다 <질문와 응답>이 있다 챕터마다의 요약과 함축이라고나 할까 흔히들 어렵다고 생각하는 철학책에서 이런 요약 부분이 있으니 책을 읽고 나서도 머릿속에 정리가 잘 되어서 좋은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모든것을 대변하는 책 중간에 나온 명언 하나 소개하겠다 '아무개somebody'를 '아무나anybody'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nobody' 없다 -마가렛 딜란드Magaret Deland- |
인문학 서적이 화두가 되면서 관련 서적도 출시도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요.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여느 철학 관련 책들과 비해서 좀 더 깊은 철학 관련 이론에 대해서 내용들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는 말장난인지 아닌지 아직도 해 갈리는 단어들인 "평범하게 비범하다는 것"에 의미가 아직도 100% 이해되지는 못했는데요. 철학 관련 책들이 그렇듯 1번 읽고 덮어두기에는 글 내용들이 깊은 내면의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몇 번을 읽어봐야 될듯합니다. 책에서는 인류 원리에 대해서 좀 더 깊은 이해를 돕기 위해서 9장에 걸쳐서 자세히 설명하고 논거하고 있습니다. 독자분들의 이해 수준에 따라서 어럽게도 쉽게도 느껴질 것 같은데요. 가겹게 읽고 넘기고 내려가는 소설이나 에세이 분야의 책들과 다르게 생각의 깊이를 더 하게 만드는 책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읽다 보면 대학 교제 이론서와 비견될 만큼 내용들이 깊이가 있어서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저에게는 어렵게 느껴졌네요. 이 글의 제목에 명기된 저의 한줄표현인 "철학에서의 인간의 존재 의미란?" 방향을 찾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이보다 좋은 책이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물론 책 내용의 옳고 그름의 판단은 이 책을 선택하신 독자분들이지만 400쪽이 넘는 내용들 중에 한 줄의 인상적인 한 문장이 남는다면 그걸로도 이 책을 선택한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