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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lo는 6공화국시절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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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는 건축물 대장에서 분류가 어떻게 될까 모든 건축물은 업무 숙박 주거 판매 등 각각의 기능을 지니고 있고 건축허가 준공검사 등을 받을 때 건물이 지닌 기능을 명시하도록 되어있다. 요즘 들어 주상복합건물이라는 것이 유행되고 있는데 단위건물이면서 아랫부분은 상업업무기능, 윗부분은 공동주택이 들어 복합용도를 지닌다는 뜻이다. 그런데 롯데월드처럼 5~6개에 달하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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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는 건축물 대장에서 분류가 어떻게 될까 

모든 건축물은 업무 숙박 주거 판매 등 각각의 기능을 지니고 있고 건축허가 준공검사 등을 받을 때 건물이 지닌 기능을 명시하도록 되어있다. 요즘 들어 주상복합건물이라는 것이 유행되고 있는데 단위건물이면서 아랫부분은 상업업무기능, 윗부분은 공동주택이 들어 복합용도를 지닌다는 뜻이다. 그런데 롯데월드처럼 5~6개에 달하는 기능이 동시에 들어가는 경우는 어떻게 표시할까 궁금해서 구청이 비치하고 있는 건축물대장을 뒤져봤더니 용도란에 숙박 판매 위락 관람집회 운동 전시시설로 기재되어 있었다. 아마 이렇게 긴 이름으로 건축허가가 되었고 준공검사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중략)

동서의 길이가 390m, 남북의 길이가 265m였다. 분명히 지금까지는 가장 큰 건물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무식한 건물은 쉽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잠실대로를 사이에 두고 60층 건물 2개가 마주보고 그 주위에 30~40층 고층건물 여러개가 세워져 석촌호수 위에 웅장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 계획안은 다핵도시 조성의 꿈에 부풀어 있던 구자춘 시장을 흡족하게 했고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는 잠실중심지구 개발은 율산산업이 독점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중략)

율산이 해체되었을 때 이미 서울시와 체결했던 잠실쇼핑센터 부지 11천 평 낙찰의 건은 무효가 되어 있었다.

(중략)

88올림픽 서울개최가 결정된 것은 1981930일이었다. 바로 잠실벌에서 올림픽이 개최될 예정이었으니 그 중심지구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3만평을 훨씬 넘는 땅이었다. 올림픽을 위해 몰려올 세계 각국사람들에게 자랑거리가 될 시설들이 들어가야 했다. 우선 최고급 숙박시설이 들어가야 하고 백화점도 들어가야 했다.

(중략)

한양이 소유한 이 토지를 인수하여 대규모 관광위락단지 조성을 강하게 희망한 것이 롯데그룹이었다.

(중략)

당시 건축과 담당계장이었던 변영진에게 그간의 사정을 알아보았더니 그 역시 대형 복합건물 하나로 짓겠다는 롯데측의 의향을 도시설계팀이 받아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중략)

롯데월드라는 건물이 좋은 건물인가 아닌가를 묻기 이전에 여하튼 이 건물이 한국 건축의 역사에서 하나의 거대한 발자취가 된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토목분야의 지하연속벽 공사라는 것부터가 국제적으로도 드물게 보는 특수공법이었다. 그리고 지하물막이공법, PC커튼월시스템, 스카이라이트 설치공사, 대공간 천장공사 및 방재계획 등 여러 가지 최신공법과 새로운 자재와 장비가 도입되었다.

 

처음 롯데월드 구경 갔을 때는 크게 잘 지었다고만 생각했다. 원래 계획했던 율산이 무너졌다는 사실, 올림픽 전에 멋지게 완성해야하는 절실한 동기, 여러 공법이 도입된 사실 등은 전혀 몰랐다. 다음에 롯데월드 갈 때는 다르게 보일 것 같다.

 

거의 해마다 평균 10% 정도씩 성장을 했던 것이다. 저환율, 저 국제금리, 저유가 등 이른바 3저 현상때문이었다.

(중략)

이와같은 경제성장은 시중자금의 유동성을 크게 증가시켰고 그 당연한 결과로 주가와 부동산가격이 급등했다. 그 중에서도 두드러진 것이 수도권 아파트가격 상승이었는데, 일례로 서울 강남 아파트의 경우 19891~4월에 그 가격이 23%나 상승했다. 주택가격 상승은 당연히 전세 월세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져 도시근로자들의 주거비 부담을 가중시켰다

도시 근로자 주거비 부담가중은 첫째는 노사간의 임금협상시 근로자들이 높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주요인이 되었다. 둘째는 내집마련의 꿈이 점차 멀어져가고 있다고 판단한 근로자들이 깊은 좌절감을 느껴 일할 의욕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일부 근로자들 중에는 과소비를 통하여 그런 좌절감을 극복하려는 (hopeless spending) 행태를 나타내 사회전반적인 과소비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려할 만한 현상은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야기된 국민들간의 갈등구조였다. 집이 있는 계층과 없는 계층 간에 심각한 갈등이 야기되었을 뿐아니라 부동산 가격이 일부지역의 중대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폭등함에 따라 심지어 자기 집을 소유한 사람들 간에도 주택가격의 급등에 따른 이해득실에 따라 여러 갈래로 갈등이 증폭되었다. 즉 주택가격의 폭등으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크게 악화됨에 따라 주택문제가 초미의 국가 현안과제로 대두했다.

이것이 제6공화국 정부가 2백만호 건설을 결정하고 집행한 표면상 이유였다.

그런데 2백만호 건설에는 이러한 표면상 이유 이외에 또 한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중략)

1988년 당시 남북의 경제력은 대체로 51 정도로 알려지고 있었다. 국민생활 전반을 통해 남쪽이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전체의 비교에서였다. 만약에 남쪽 저소득층과 북쪽 저소득층을 단순 비교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첫째가 주택문제였다. 북측의 주택수준은 형편없이 저질이지만 그래도 무주택자라는 것이 없었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면 방 한 개에 부엌과 화장실이 딸린 집이 공급되고 있었다.

(중략)

이러한 실정 아래에서 만약에 남북간에 정보자유화가 이루어진다면 남쪽의 저소득층 국민(30%)는 북쪽이 오히려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5권이나 되는 적지 않은 분량인데, 5권 모두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hopeless spending이라는 단어를 보고 너무 놀랐다. 요새 유행하는 YOLO와 크게 다른 개념이 아닐 것이다. 정말 역사는 반복되고 사람의 마음은 크게 변하지 않음을 한번 더 느꼈다. 내가 열심히 해서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의욕도 생기고 저축도 하는 것인데, 희망이 사라지니 그냥 포기해버리고 마는.

실제로 저 당시 200만호 공급하니 집값이 꽤 안정되었다고 한다. 서울 집값이 하락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IMF,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200만호 공급 당시 정도라고 한다. IMF나 서브프라임은 금융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인 것이고, 200만호 공급은 공급의 증가라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태수의 한보주택이 갑자기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강남구 대치동 316번지 일대에 은마아파트를 지었을 때부터였다. 탄천제방이 낮아 홍수 때면 수몰했던 농경지와 원래는 유수지였던 곳 일대의 239224m2를 사모아 14층 짜리 26개동 4424가구의 대규모 아파트를 준공시킨 것은 1979년이었다. 서울시에 의해서 탄천제방이 새로 구축됨으로써 이 지대가 앞으로는 수몰지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알고 이 지대의 땅을 헐값에 사모아 그 위에 아파트단지를 조성했던 것이다.

이 은마 아파트 단지는 당시 이미 주택단지 개발로 크게 성장하고 있던 현대건설이나 한양주택도 1년간에는 조성하지 못한 규모를 전혀 무명의 업자가 그것도 제 2차 석유파동으로 온나라 안이 불경기의 늪에 빠져 있을 때 1년만에 조성한 것이었다.

(중략)

한보 정태수 회장의 경영철학은 크게 두가지였다. 첫째는 대량의 부동산을 확보한다는 것이었다. (중략) 그가 매집한 부동산은 보통의 상식으로는 택지가 될 수 없는 저습지이거나 자연녹지였으며 그것을 택지화하여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정태수 회장의 장기였다.

(중략) 둘째는 정치인이건 공무원이건 간에 돈에는 약하다는 것이었다.

 

재건축의 대명사 은마아파트. 서울에 살지 않더라도 은마아파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아파트가 1년만에 지어졌고 수몰되는 지역이었다.

 

김현옥 시장은 일에 미친 사람이었고 해마다 미치는 대상이 달랐다는 점에 특징이 있었다.

(중략) 그는 문득 미아리고개 시내중심부 청계천로 신촌 홍제 등을 연결하는 유료 고가도로를 건설하면 서울의 교통이 훨씬 빨라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중략) 예정했던 대로 815일 오후 2시에 박 대통령 정일권 총리 등이 참석하여 성대한 기공식을 거행했다. 말하자면 무예산 무설계의 대표적인 공사였다. 무예산이라는 것은 예산조치 없이 일단 기공식부터 올려놓고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다는 것이었고 무설계라는 것은 일단 기공을 해놓고 설계를 해가면서 공사도 추진한다는 것이었으니 김현옥 시장이 즐겨 쓴 수법이었다.

 

무예산 무설계라는 말이 너무 참신했다. 계획만하고 행동 안하는 것보다는 무예산 무설계라는 방법도 방법이라면 방법이겠다.

a*********0 2020.08.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