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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와 강모가 있는 봉천에 전주고보 심진학 역사 선생과 부서방 가족이 온다. 부서방한테 비로소 청암부인의 부음을 들은 강모는 통곡한다. 일본 경찰에 쫓겨 온 심진학 선생은 봉천에서 이민사를 쓰려고 하고, 부서방은 청암부인의 은덕을 잊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먼 길 왔으나 썩어가는 여식의 볼을 가위로 잘라 살리려고 하지만 끝내 잃고 만다. 매안의 기표는 아들 강태를 찾으러 봉천으로 떠나고, 기응은 강실이가 사라진 것을 알고 돌아와 매안이 발칵 뒤집힌다. 강실이가 매안을 떠나도록 일을 도모한 효원은 강실이가 부디 살아 있기를, 살아만 있기를 기도하듯 강실이를 부른다.
효원은, 강실이의 목숨만이 자신의 생애를 건져 줄 수 있을 것 같아, 한없이 까라지려는 몸을 추스리며, 강실이 얼굴을 부른다. 강실이가 비록 누항(陋巷)의 시궁창 그 어떤 질곡에 빠져, 말로 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여도, 그네가 온전한 몸으로 살아만 있다면, 효원은 이 무서운 죄책에서 놓여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에…… 어디에 있소……. 효원은 등을 구부리고 기도하듯 강실이를 부른다. 그 온몸에 눈물이 차 오른다. (326 -7쪽) |
| 언제부터 인지 모르나 나는 독서를 하게 되면, 알수 없는 책의 향기와 색깔이 묻어 나옴을 느껴왔다. 다시말해 나만의 향기와 빛깔을 느끼며 책을 읽어 왔다. 예를 들면 몇년전에 읽었던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을 읽을때는 진한 된장찌개 냄새와 황토색을, 염상섭 선생의 '삼대'를 읽을 때에는 추어탕에 들어가는 향신료인 산초같은 냄새와 연푸른 하늘색을, 최근에 읽었던 전경린씨의 '내 생애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이라는 작품에서는 박하사탕과 가슴시리도록 차가운 백색을 가슴으로 느끼며 책을 읽었다. 이번에 [혼불]을 읽으면서 나는 향나무의 은은한 향기와 짙푸른 파란색을 느끼었음 고백하고 싶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작품이 던져주는 내용과 주인공들의 삶이 펼치는 인생 역정이 나를 그렇게 몰고 갔으리라 생각해 본다. 암울하고 어려웠던 시절(1930년대) 남원지방 매안 이씨 종가를 통해 처참하게 부서지고, 상처받고, 한없이 몸부림치는 양반과 서민 그리고 하층민들의 생활을 통해 우리 민족의 역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미 본 작품을 각종 언론 및 문학계에서 우리 문단의 좌표를 새로이 설정한 작품이라고 극찬을 하고 있는 이유를 떠나서도 문학의 문외한인 내가 보는 견지에서도 이 작품이 그렇게 높이 평가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 읽어보고,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알수 없겠지만 -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당시의 풍속과 문화사를 생생히 복원하고 있어서 일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나의 머리를내내 떠나지 않았던 느낌으로 염상섭 선생의 '삼대'라는 작품과 대비하여 내용을 음미하며 읽었다. 이 작품이 '여인3대'에 관한 것이라면 염상섭의 '삼대'는 '남자3대'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말하고 싶다. [혼불]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기보다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 즉, 민초들과 서민들의 이야기를 주류로 하여 우리 조상의 실생활에 스며들어 있는 있을 수 있는 각종 사건과 우리의 풍습을 매개로, 일켠 복잡하기고 하고 또한편으로는 간단하기도 한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각종 전설내지는 옛 이야기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어려서 우리의 부모나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들었음직한 이야기를 사례로 들고 있어 토속적인 내음과 고향집 앞마당의 감나무와 같은 애착이 가게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겨움이 더하게 한 요인으로 각종 대화를 토속적인 정감이 우러 나오는 남도지방의 사투리로 표현한 것인데, 작품 속의 대화를 읽는 사람이 소리를 내며 읽어 보면 또다른 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특히, 대가집 자식들의 결혼방식과 절차(2권),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옷의 유래에 관한 것(4권), 전통적인 장례절차(4권), 하인들의 유래 및 투장(6권), 윷점(7권), 절에 있는 사천왕상(8~9권) 등에 관한 설명이 문학사적 평가 이전에 우리네의 숨겨진 전통을 되살려 주기에 충분한 내용이었기에 더욱 값진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진다. 종가집의 전통을 이으려는 주인공 '강모'는 바로 우리들이었다. 강모가 처한 현실은 당시의 사회상이, 전통적 가족생활이 현실적 도피를 몰아넣는 계기를 제공하였으며 나약한 정신적 면모는 당시의 우리 국가의 운명과도 같은 위치를 암묵적으로 이야기해 주고 있다 하겠다. 반면 모든 것을 던져 살아가려는 옹구네와 후손의 발복을 기원하는 무당의 생활 양식은 우리 민족성의 또다른 형태가 아닌가 여겨지게하였다. 어쨌든 살아보려 노력하는 인간군상의 전형인 옹구네와 자신의 처지는 한낮 보잘것 없으나 자신의 자식만큼은 좀 더 나은 생활과 삶을 영위시켜 보고자 하는 무당부부의 행동은 후손들의 발복을 기원하는 우리의 전통적생활 양식의 발로이며 전체적인 내용중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으나 주인공의 아버지인 이 기채의 종으로 행실이 얌전한 바느질 전담 여종인 '우례'를 범해서 낳은 '봉출'이에 대한 모정 역시 우리들의 어머니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 작품은 일견 사랑의 상처를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시작해서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 더불어 끈끈한 생명력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이야기한 작품으로 가슴찡한 감동도 감동이지만 그 보다 더한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뭔가 묵직한 감흥을 불러 일으키게 한 작품이었다는 것이 나의 소회이다. 또한 작품 후반부에 나타나고 있는 강모의 역사 선생인 '심 진학'의 발언을 우리 모두는 정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되새겨 보아야 할 대목이 아니었나 생각하였다. |
| 10권이라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끝을 보기 위하여 계속 간다. 불쌍한 사람들은 천지에 널렸다. 줄줄이 끌고 전라도에서 만주 봉천까지 온 부서방. 업고 온 딸년은 귀때기가 얼어 어느 사인지 떨어졌다. 천연두로 썩은 볼때기를 가위로 썩썩 잘라도 머리라도 자르는냥 뚫린 구멍으로 조르르한 이를 보이며 배시시 웃던 딸년은 이웃집 아낙이 쑤어 준 미음 한 숟가락도 넘기지 못한 채 어린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병자호란에 스물 닷냥이 없어 중국까지 끌려간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미천한 인생들은 300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신의 성을 지키며, 집안의 딸들에게 전족을 시키지 않으며 조상의 놋수가락과 떨어진 갓을 신주로 모시며 조선을 지키며 살고 있다. 아아 하찮아서 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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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을 읽으며 난 줄곧 어릴 적 엄마에게서 듣던 우리 집안의 내력을 떠올렸다. 하긴 그시절 파란만장한 곡절을 겪지 않은 사람, 가문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자체가 엄청난 소용돌이속에 있었으니 그 속에 몸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그 소용돌이를 피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혼불에 나오는 매안의 이씨문중은 단순한 하나의 가문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혼불은 다른 대하소설들처럼 숨가쁘게 진행되는 사건들이 연속되는 것도, 사람사이의 갈등이 복잡한 것도 아니다. 줄거리만 놓고 봤을 때는 그다지 뛰어난 작품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혼불은 줄거리만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10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을 받쳐주고 있는 기조는 바로 우리고유의 말, 우리 고유의 풍속에 대한 작가의 무한에 가까운 사랑인 것이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작가 최명희는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를 각고하여 얻고자 했으며 그 모국어의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아픔을 감당했다고 한다. 그런 작가의 뜻이 내게도 통했는지 단숨에 소설을 읽어 내리던 습성이 혼불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단어 하나, 어휘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에 새기며 읽었다고 할까? 그래서 혼불을 다 읽는데 몇달이 걸렸지만 읽고 난 후의 형용할 수 없는 '포만감'에 가슴이 벅차다.
또한 최명희의 우리의 사라져가는 풍속과 전통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다. 혼례, 장례에 대한 방대한 설명과 상세한 묘사는 내가 마치 그 자리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했다. 그저 작가적 상상력 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을 설명과 묘사들... 또한 배경과 사물에 대한 묘사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특히 사천왕상에 대한 엄청난 설명에는 그저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어딘가에서 읽으니 그 사천왕묘사에 원고지 1천장을 소모했다고 한다. 그가 혼불을 쓰기 위해 얼마나 철저하게 자료를 수집했고 몸소 뛰어 다녔는지는 누구의 설명이 없어도 쉽게 알 수가 있었다.
17년간 한 작품에 몰두할 수 있는, 아니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 최명희.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한 작품에 몰두하도록 만들었는지 난 잘 모른다. 그저 그런 작가와 작품을 통해 공존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한동안 그처럼 글쓰기를 운명적으로 하는 작가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의 죽음을 몹시 애통해 할 뿐이다. [인상깊은구절] 눈멀고 귀먹어 민둥하니 낯바닥 봉창이 된 달걀, 껍데기 한 겹, 그까짓 것 어느 귀퉁이 모서리에 톡 때리면 그만 좌르르, 속이 쏟아져 버리는, 알 하나. 그것이 바위를 부수겠다, 온몸을 던져 치면, 세상이 웃을 것이다. 하지만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것이요, 달걀은 아무리 약해도 산 것이니. 바위는 부서져 모래가 되지만, 달걀은 깨어나 바위를 넘는다. |
| 혼불을 읽기란 쉽지 않다. 물론 그 방대한 양도 양이려니와 그 내용 또한 여타 다른 소설책들처럼 쉽게쉽게 읽고 넘겨버릴 일이 아니다. 혼불은 민속학 교과서이고 역사책이고 우리 민족의 삶이다. 우선 혼불을 읽다보면 혼례, 장례의 의식과 절차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내가 혼불을 읽기 바로 전에 학교에서 민속학이라는 과목을 수강했었는데, 종강을 하고 혼불을 읽으면서 '조금만 더 일찍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예술가의 철저한 준비와 열정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우리말 표현...이 책은 문장 하나하나가 예술이다. 나는 이 책의 한 단어를 따서 아이디로 만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적어 놓은 것도 한두개가 아니다. 혼불이 아니고서야 어디서 '마음이 연두로 물들은들' 같은 글귀를 볼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단순한 소설책이 아니다. |
|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홀가분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 한 국가의 민족은 국가가 패함으로써 민족마저 바람앞의 재 마냥 가볍게 흩어지는게 아니다. 함께 하지는 못할망정 그들의 가슴과 머리속에는 조금씩 뿌리박혀진 얼과 혼이 어떠한 형태로든 승화되어 보여진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설움은 상하계층을 막론하고 섪기만 하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창씨개명을 할 지언정 마음까지 그러하겠는가. 이런 어수선한 시안은 매안도 비켜가질 못한다. 결말은 좀 아쉬웠다. 강태와 강모는 만주로부터 귀환할 수 있을까. 강실이의 미래는 어떠한가. 매안 이씨 가문의 존패는. 양반 위세앞에 고개 못들고 허리 접혀 살아온 상놈들,종놈들의 분노와 반역의 움직임. 개인의 능력으로서가 아닌 세상에 갓 태어나면서 양반, 상놈으로 결정지어져 각 소속된 계층의 삶을 운명인냥 순응하며 살다가..양반으로 났다면 무엇이 부족하리. 상놈, 종놈 팔자 고쳐 양반 줄에 한번 서보자고 이를 갈며 역모를 꾀하는 옹구네와 춘복이. 옹구네는 무서운 사람이다. 독해서 싫고 뻔뻔해서 싫다. 그네들 삶의 고초가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 때의 현실에서 다들 순응하며 사는 것을 그네는 독을 뿜어 적극적으로 운명을 바꿔보려하는 적극성이 아니꼽다. 그런 옹구네를 싫어하는 건 나의 잠재된 소극적 성격 탓이 클 것이다. 그냥 남들 다 그러고 사는거 조용히 있으면 될 것을 어찌 저리 고개를 외로 꼬고 파장을 일으키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그 시대의 불평등한 계층구조를... 혼불. 그것은 정말로 존재하여 오늘의 삶을 사는 우리들 마음속에서 흩어진 조선의 얼을 불지피고 있는 것일까 |
| 혼불에 대한 뜨거운 찬사에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10권이라는 만만치 않은 권수이긴 했지만 수월하게 읽혀지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찬사와 아쉬움 두가지 모두 경험하게 한 작품이기도 했지요. 우선 작품의 예술성만을 따지자면 찬사를 보내겠습니다. 우리의 전통 문화에 대한 작가의 깊은 이해와 치밀한 묘사는 존경스럽기 까지 합니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혹은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우리것에 대한 애정이 작품의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반면에 아쉬움을 표하자면 스토리상의 전개에 지극히 단순한 면이 없지 않았나 하는 점입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청암부인에 이어 그 성품을 그대로 빼어 닮은 손부 효원을 중심으로 스토리 전개가 이루어졌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하는 것이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어찌되었든 대하 예술 소설로서는 대단히 성공한 작품인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