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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동양고전을 접하면서 흔히 범하는 오류가 있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체계를 묶어서 일반적으로 노장사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들 사상을 도교와 연결 지어 생각하면서 현실도피적이고 염세주의적인 사상으로 알고 있다. 아마 학교 다닐 때 제자백가에 대해 배우면서 책이나 선생님들이 간략하게 소개해준 것이 그런 생각을 굳히게 해 주었을 것이다. 하긴 사마천도 [사기]에서 노자와 장자를 하나로 묶어 통칭하고 후대의 사가들도 그것을 충실히 따랐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들의 사상을 새롭게 조명한 많은 책들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오해였음을 이해했다고 하지만, 사실 노자와 장자의 차이를 분명하게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쉽지가 않다. 또한 장자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자들이 서로 자신이 생각하는 장자의 사상에 대해 얘기하지만, 노자에 대해서는 그러한 서적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우리가 노자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싶다.
일전에 어느 책에선가 노자와 장자의 차이를 설명한 글을 본적이 있다. 노자가 무위(無爲)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려 한 것은 무위지치(無爲之治)이고, 장자는 무위를 언급하였지만 이는 무위지치가 아니라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것이다. 즉, 노자사상의 본령은 통치에 있는 입세간(入世間)의 입장이고, 장자사상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소요(逍遙) 할 것을 설파한 출세간(出世間)의 입장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노자와 장자를 명확하게 구별하라면 그리 쉽지만은 않다. 노자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노자의 저작으로 알려진 [도덕경]을 읽는 것이 우선이겠다 싶어 고민 끝에 이 책을 골랐다.
노자는 생몰년이 확인되지 않지만 춘추시대 말기 공자와 동시대의 사람으로 보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욕망 앞에서 광분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道)와 덕(德)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저작이 바로 [도덕경]이다. [도덕경]은 상편 37장, 하편 44장, 총 81장으로 이루어졌으며 기원전 2세기경 한경제때 경서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도덕경]이란 말은 후대에 상편 1장의 시작인 ‘道可道 非常道’의 道와, 하편 1장의 시작인 ‘上德不德’의 德을 합쳐 만든 명칭으로, 경이란 말이 붙은 것을 보아서는 경서로 분류된 한경제 이후의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이런 [도덕경]을 번역한 책이다. 저자는 [도덕경]이 5000자에 불과한 짧은 글이지만 여기에 담긴 사유는 심오하기 그지없다고 말한다. 그는 각 장 별로 번역문에 이어 원문을 싣고, 해설과 각주를 다는 형식으로 완역했으며, 해설에는 사상적이고 철학적인 해석보다는 원전이 말하는 바를 그대로 옮기고자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 노자의 사상을 확실하게 알겠다는 꿈도 사실상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오로지 번역문을 참고삼아 자신이 찾아가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자의 사상을 제대로 알아가기 위해 스스로 사유를 해야 하니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읽고 또 읽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노자는 어떤 특정한 가치와 방향을 유일하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가 중요함을 말한다. 따라서 자연과 사회의 상반되는 성질 중에 어느 하나만을 기준으로 삼아 다른 모든 것이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서로 상반되는 성질이 의존하고 맛 물려 있다고 본 것이다. 노자사상의 핵심 중 하나인 無를 놓고 볼 때, 노자가 말하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은 有와 無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의존한다는 것을 뜻한다. 세상의 만물은 모두 有에서 생기고 또 有는 無에서 생겨나듯 만물은 늘 서로 의존하며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道 역시 마찬가지이다. 노자는 道를 모든 존재가 따라야 하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덕(德)으로 나타나는 작용이며 그 기저에 자연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기에 그가 주장하는 무위(無爲)는 태고의 자연을 가리키며, 무욕(無欲)은 만족할 줄 모르며, 그칠 줄도 모르고 질주하는 욕망을 경계하는 말이지 싶다. [도덕경] 44장에 나오는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지족불욕(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는 내가 늘 생각하는 글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도덕경]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노자가 상대적인 차이를 갖는 어느 한가지에 갇히지 않고 전체를 보는 시선을 갖도록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경계에 갇히지 않고 기존의 시선에서 벗어난 사고, 즉 존재 자체인 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노자가 살았던 시기는 패권을 향해 질주하던 춘추시대였다. 그 시대는 특정한 가치만을 수용하고 다른 가치를 부정하는 극단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런 시대현상을 단지 상대적인 차이밖에 지니지 않는 有들의 경쟁과 대립이라는 병적인 현상으로 본 노자. 그래서 노자의 사상은 비주류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얽매임이라는 有의 세계를 넘어 無의 세계로 나아가는 자유의 사상가가 될 수 있었을 게다.
지금의 세상 역시 온갖 有들이 서로 맛 부딪치는 세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특정한 자신의 가치만을 수용하도록 요구하는 극단의 세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때, [도덕경]은 존재 자체인 나에 대해 생각하도록 화두를 던져주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내가 노자에 대해 좀 더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다시 [도덕경]을 읽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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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에서 당나라는 위진 남북조시대를 끝내고 천하를 통일한 수나라가 3차례에 걸친 고구려 정벌의 실패와 대운하건설과 같은 토목공사로 민심이 이반하면서 패망의 길로 들어서면서 성립된 국가이다. 우리에게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한을 통일한 신라의 연합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나라는 중국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화려한 문화를 꽃피운 제국이기도 했다. 이런 당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 바로 당태종 이세민이다.
당태종 이세민은 수양제 말기 전국각지에서 반란이 끊이질 않던 시기에 아버지 이연을 설득하여 병사를 일으켜 당나라를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장남인 이건성이 황태자가 되고 그와 알력이 심해지자 이세민은 ‘현무문의 난’이라는 형제의 난을 통해 제위에 오른다. 비록 유혈사태 끝에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는 했으나 그는 제위에 오르고 나서는 유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문치의 길로 들어선다. 중국역사에서 당태종이 다스린 시기를 ‘정관의 치’라 하는데 이는 현종시대인 ‘개원의 치’와 더불어 중국역사상 황금시기로 불린다. 당태종은 ‘군주는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는 말을 대전제로 내세우고, 열린 정치와 소통하는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정관정요]는 이런 당태종이 신하들과 정치에 대해 폭넓게 대화를 나눈 토론집 성격을 띠고 있다. 책에는 당태종의 재위기간인 627년부터 649년까지 22년간 정치의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이런 [정관정요]는 당 현종 때 사관인 오긍이 저술했다. 오긍은 황제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백성이 큰 고통을 받고 국가에 막대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 후세에 교훈을 남기고자 했다. 10권 40편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오긍은 당시 역사기술의 원칙인 춘추필법을 고수하며 당태종의 장점은 물론 단점까지도 기록했다고 한다. 춘추필법이란 공자가 저술한 [춘추]와 같이 엄정하고 비판적인 태도로 대의명분을 밝혀 세우는 역사서술 방식을 말한다. 그럼에도 오긍은 자국중심주의와 승자가 기록한 역사를 재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기록했다. 고구려와 돌궐에 대한 비하가 그렇고, 당태종이 당시 태자였던 이건성을 죽이고 보위에 오르지만 이건성이 먼저 음모를 꾸민 것으로 뒤바뀐 채 기록된 역사를 그대로 따른 것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역사서를 읽으면서 제국을 세우는 창업과 그 제국을 유지하는 수성의 과정이 다름을 느끼곤 한다. 창업의 과정에서는 한비자가 요구하는 제왕적 리더십이 필요하지만 수성의 과정에서는 당태종이 추구한 소통의 리더십이 더 효과적이다. 이는 난세에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법가가 주장하는 변법이 부국강병의 기초가 되지만, 통일된 후에는 유가가 주장하는 덕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사와 고전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오긍은 [정관정요]를 저술했을 것이라고 이 책의 역자는 말하고 있다.
오긍의 [정관정요]를 번역한 이 책에서 역자는 각 편이 시작되기 전 해제를 통해 간략하게 요점을 정리한 후 번역한 내용만 싣고 있다. 현대의 우리말로 옮겨 놓은 것이기에 읽고 이해하는데 무리는 없으니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온전히 읽는 사람의 몫 일게다. 각 권의 구성 및 각 편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을 살펴본다.
1권은 1편 군도(君道)와 2편 정체(政體)로 구성되어 있다. 군주가 갖추어야할 도리와, 정치는 군주와 신하가 상호협력 할 때라야만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태종과 신하들이 나눈 담소형태로 실려 있다.
2권은 3편 임현(任賢), 4편 구간(求諫), 5편 납간(納諫)으로 되어있다. 임현에서는 어진관리의 임용에 대해, 그리고 구간과 납간에서는 간언을 장려하고 수용하는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당태종은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하게 할 수 있고, 고대 역사를 거울삼으면 천하의 흥망과 왕조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기의 득실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93쪽)고 말하며, 신하들에게 간언을 독려하곤 했다.
3권은 군주와 신하가 서로 거울삼아야 할 계율에 대한 군신감계(君臣鑒戒/6편), 관리의 선발방식에 대한 택관(擇官/7편), 군주가 자신의 혈족이나 공신들에게 영토를 나누어주는 제도인 봉건(封建/8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태종은 신하들이 관리 선발 방식과 봉건제의 폐지에 대해 간언하자 이를 받아들인다.
태자제왕정분(太子諸王定分/9편), 존경사부(尊敬師傅/10편), 교계태자제왕(敎戒太子諸王/11편), 규간태자(規諫太子/12편)로 구성되어 있는 4권은 각 편명에서 보듯, 모두 태자와 관련되어 있다. 적자인 태자와 서자인 여러 왕의 신분상의 차이 및 태자를 가르치는 스승과 가르침의 중요성에 대해 논하고 있다.
5권은 인의(仁義/13편), 충의(忠義14편), 효우(孝友/15편), 공평(公平/16편), 성신(誠信/17편)에 대한 문답으로 되어있다. 대부분이 유교의 핵심 사상이라는 점에서 당태종의 문치에 대한 의지를 확고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위징은 ‘사람들이 모르게 하려는 것은 자기가 하지 않은 것만 못하고,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은 자기가 말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370쪽)는 속담을 이용하여 문제가 발생하면 도리어 화를 내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공평이란 자기와의 친소관계나 이해관계를 떠나 정확한 기준에 근거하여 일을 처리하는 것이며, 남들이 모르기를 바란다면 아예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우리 현실을 보고 하는 말처럼 들리는 것은 왜일까?
6권은 군주가 지켜야 할 개인적인 덕목에 대해 다루고 있다. 검약(儉約)에서부터 겸양(謙讓), 인측(仁惻), 신소호(愼所好), 신언어(愼言語), 두참사(杜讒邪), 회과(悔過), 사종(奢縱), 탐비(貪鄙)에 이르기까지 18편에서 26편까지로 가장 많은 편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군주가 스스로 사치와 방종을 경계하며 언행에 신중하고 신하들의 간언을 받아들이며 백성을 아끼고 변방을 안정시켜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목표로 노력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많은 간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당태종은 ‘공자는 ‘한마디로 평생 동안 실행할 수 있는 말은 아마도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하려고 하지 않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했소.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물을 상하게 하는 일은 확실히 백성에게 시행할 수 없소. 나는 제왕의 존귀한 지위에 있고 천하의 부유함을 갖고 있으며, 모든 일은 나로부터 나오므로 나 자신의 욕망을 억제할 수 있소. 만일 백성이 그렇게 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반드시 백성의 정서를 따를 수 있어야 하오.’(396쪽)라고 말한다. 그가 정관의 치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자기절제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이 또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숭유학(崇儒學/27편), 문사(文史/28편), 예악(禮樂/29편)으로 구성된 7권은 유학에 대해서, 그리고 백성의 생활과 관련된 내용으로 이루어진 8권은 무농(務農/30편), 형법(刑法/31편), 사령(赦令/32편), 공부(貢賦/33편), 변흥망(辯興亡/3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32편인 사령은 사면령에 대한 것이다. 대체로 사면해주고 용서해주는 은혜는 범법자에게 내려지기 때문에 사면이 잦으면 선한 사람은 침묵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며, 신하들은 사면은 한번 나가면 거두어들일 수 없으므로 신중을 기해야 하고 간결하고 명확한 기준에 준해서 해야 한다고 간언한다. 16편인 공평과 함께 읽을 때 이 편 역시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국민과 실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국민은 같은 사람들일까?
9권은 35편 정벌(征伐), 36편 안변(安邊)으로 구성되어 국방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행행(行幸/37편), 전렵(?獵/38편), 재상(災祥/39편), 신종(愼終/40편)으로 이루어진 10권은 군주가 초심을 유지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이처럼 신하들의 간언을 수긍하고 그들과 협력하여 제국을 다스린 당태종이지만 그 역시 초심을 끝까지 유지하지는 못했다. 말년에 영토 확장과 고구려 침략 등으로 민심이 이반하고 재정이 고갈되었으며, 후계자 선정을 놓고 난항을 겪기도 했다. 그 결과 그의 사후 후궁이었던 측천무후에 의해 주라는 나라가 건국되는 치욕을 겪기도 한다. 이는 처음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끝까지 신중하게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반증해주는 것이지 싶다. 그럼에도 당태종의 리더십은 오늘날 열린 정치와 소통하는 리더십의 전형으로 불리며, 그와 신하들의 토론집인 [정관정요]는 그런 리더십의 고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관정요]는 다른 동양고전에 비해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는 사상서도 아니고 또 난세나 창업기에 필요한 항목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수성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창업이 어렵지 수성은 누구나가 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에서나, 현대에서나 우리는 수많은 조직들이 단명으로 끝이 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설사 목숨은 부지하고 있을지라도 혼란 속에서 온갖 치욕을 겪는 것 또한 쉽게 볼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정관정요]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나은 세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소통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가르쳐준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혼자서 살 수만은 없는 법, 소통을 꿈꾸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은 분명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문이 실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한문을 모두 해독하고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원문이 실려 있다면 책을 읽는 느낌이 훨씬 달랐으리란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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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주문을 해서 책을 보지 못하고 구매했는데 매우 실망입니다. 제 생각엔 이렇게 한자로 쓰여진 책을 살 때는 독자들이 한자 원문도 감상할 수 있게 배려를 해야 할 것 같은데 한자는 크기가 너무 작아서 읽을 수도 없고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의미와 음을 달아 놓으려는 노력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책 내용이나 구성에 신경을 많이 써주시고 하드 커버로 만드는 노력은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진짜 한자를 이렇게 작게 인쇄하면 누가 읽을 수 있는지요? 대부분 나이가 들어서 채근담을 읽어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 정말 비추네요.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나온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 일 것 같다고 생각이 드는데 신경을 써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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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고전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세기 전에 쓰여졌지만 지금까지 통용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전략적 사고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지인 분 중에 사업하시는 분이 사업에 손자병법을 적용시킨다고 추천해주셔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온전히 자기것으로 만들기위해 여러번 반복해 읽어야겠습니다 그 중에서도 적을 이기려면 이기려고 하면 안된다는 글이 인상적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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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솔직히 말하면 조금 어렵게 읽힌다. 번역과 해설이 정확하고 꼼꼼하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어렵다. 논어는 공자와 제자들 간에 나눈 대화와 말들을 담은 책이다. 하지만 한 문장, 한문장 꼭꼭 씹으면서 읽다보면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
이 책의 이전 버전을 갖고 있었다. 워낙 유명한 책이고, 논어를 다른 분의 번역본으로도 가지고 있지만 굳이 또 구매해서 읽은 이유는 이것이다.
논어는 보통사람도 인생을 의미 있게 살도록 하는 지침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으로 널리 읽혀왔다.
호학은 절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먹음에 배부름을 추구하지 않고, 거처함에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으며, 일처리 하는데 민첩하고 말하는 데는 신중하며, 도가 있는 곳에 나아가 [스스로를] 바로잡는다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공자가 말하는 안빈낙도의 빈이란 단어와 연결되는 것으로 군자는 먹는 것, 사는 것 이 두가지에 대하여 초연하고 절제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유자도 이럴진대, 하물며 얼마전 문제가 된 '멈추면 뭔가 보인다'는 스님이야말로 편안한 거처, 웰빙을 즐기는 스님이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정직한 사람을 천거하여 비뚤어진 사람 대신 앉혀라. 번지가 인(仁)에 대해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번지가] 지혜로움에 대해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정직한 사람을 천거하여 비뚤어진 사람 위에 두어 비뚤어진 사람으로 하여금 바르게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번지가 물러나와 자하를 만나자 말했다. "아까 제가 선생님을 뵙고 앎에 대해 여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정직한 사람을 천거하여 비뚤어진 사람 자리에 두어 비뚤어진 사람으로 하여금 바르게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던데 무슨 뜻일 까요?" 자하가 말했다. "풍부하구나. 그 말씀이! 순임금이 천하를 차지하고 나서 여러 사람 중에서 뽑아 고요를 등용하니, 인하지 않은 자들이 멀어졌던 것이다. 탕임금이 천하를 차지하고 나서 여러사ㅏㅁ 중에 뽑아 이윤을 등용하니, 인하지 않은 자들이 멀어졌던 것이다." ---p.315 ~ 316
공자의 논어를 찬찬히 읽기도 하다가 또 때로는 그냥 넘어가 이곳저곳 읽었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 경공이 말했다. "좋은 말씀이오. 진실로 만일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아들이 아들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은들 내가 [어찌] 그것을 얻어먹을 수 있겠소!"
사실 소크라테스의 "니 꼬라지를 알라" 와 같은 말이기는 한데 언뜻 보면 뭐 이런 당연한 말을 하지만 참으로 이 당연한 말이 진리요.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는 요즘이다.
공자께서 자산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는] 군자의 도 네 가지를 갖추고 있었으니, 행동할 때는 공손하고 윗사람을 섬김에 있어서는 공경하며, 백성을 봉양함에 있어 은혜롭고, 백성을 부림에 있어서는 의로웠다." 자산은 공손교의 자다. 너그럽고도 엄격한 정치가로 정나라의 재상을 오래 지냈으며 공자가 평소 존경했다. 공자는 나이 60세에 이르러 정나라에 가 보았지만 자산은 이미 세상에 없었다.
안평중의 장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평중은 사람들과 잘 사귀어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은] 그를 공경한다." 공자가 존경한 인물로 손꼽히는 안평중은 안영이며, 자가 평중이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영공, 장공, 경공 등 3대에 걸쳐 재상을 지내며 50년 동안 집정하면서 제나라를 중흥시켜 제후들 사이에 이름을 떨쳤다. 그는 2인자로 귀감을 보여 결단력과 슬기와 해학이 넘쳤고, 제갈공명이 극찬할 만큼 내치에도 뛰어났다. 그는 평생동안 단 한 번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고 하며 30년간 단벌로 생활할 만큼 검소했고 밥상에 고기 반찬을 두가지 이상 놓지 못하게 하고 첩에게는 비단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 또 조정에 나아가서는 임금이 물으면 바르고 신중하게 대답하고, 묻지 않을 때에는 몸가짐을 조심했다. 그러면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은 명재상이었다.
오늘날 많은 정치인들이 안 평중을 본받았으면 좋겠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공자의 말이 듣는 자에 따라 달리 전해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는 공자의 교육법에서비롯된 매우 재밌는 현상인데, 이 때문에 공자의 원래 생각이 그대로 전해질 수 없다는 한계를 감안하고 봐야한다.
이 책이 어렵다고 하는 분들은 예전 선비들이 몇 년을 걸쳐서 천천히 읽은 단지 1~2번의 독서로 다 읽고서 뜻이 이해가 안된다고 하는 것은 애초에 어불성설이었다. 이 책은 두고두고 천천히 한 장, 한 장 읽어갈 예정이다. 그 옛날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춘추전국시대를 전전하던 그 혼란기와 지금은 많이 닮아 있다.
자하가 말했다.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며, 절실한 것을 묻고 가까운 것부터 생각하면 인(仁)은 가 가운데 있다." 책을 보며 배우고 마음을 단단히 하는 것이 필요한 세상인데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이런 세상이 된 것 같다. 고전에 길이 있는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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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읽다 문득 도덕경과 같은 글을 보게 된다. 엄청난 시간의 간격과 지역의 간격 속에서 이런 내용을 보면 참 신기하다. 특히 서구인이 공자, 노자를 언급할 때면 자뭇 신기하다. 생각과 생각하고 있다고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도서관에서 도덕경을 찾아봤다. 그리고 읽어보지 않았던 이 책을 펴고 보게 되었다. 참 신기하게도 에크하이트로의 설명과 같은 내용과 형식을 이 책의 초반부에 보게 되니 또 신기할 뿐이다.
처음 도덕경을 볼 땐 원전이 아니라 한자성어 책 속에서 언급되는 도덕경 구절을 많이 보았다. 몇 권을 읽어봤으니 일차원적인 수준으로는 이해가 된 것도 같지만 그것이 스스로 허상을 만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스스로 채워놓은 것이 있어야 비울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무위의 개념과 도, 도를 구현하는 덕과 같은 것이 내 삶에서는 수박 겉을 핥는 정도가 될지 모르겠다. 아직은 유의와 유지(有知)의 세상 속에서 혼탁하고 어지럽게 걸어가는 중이다. 그래도 방향이 어디로 가는가는 어렴풋하게라도 아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위안을 삼기도 한다.
최근 제품 기획을 하나 하면서 사람들은 그 동작과 연결이란 물리적인 부분의 문제, 하고 싶은 것을 말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획의 내용은 보이지 않지만 그들이 하고 싶은 바를 정리하는 것에 가깝다. 개발자와 이야기를 하고 설명하는 것은 다시 그렇게 동작되는 기술적 요구사항이지만 그 안에 고객과 사용자들이 하고 싶은 바를 심어주는 일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도덕경을 읽으며 몇 주 한 일이 떠오르는데 그런 마음과 자세가 부합하는 것일까?
그런가 하면 지인이 뜬금없이 시장조사를 좀 해보라는 메시지가 왔다. 형님들이 원래 손이 많이 간다. 어쩔 수 없이 숙제를 조금 했다. 내가 하는 일에서도 말씀하신 부분과 연관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 부분이라 세세하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오후엔 갑자기 집이 어디였더라?라는 엉뚱한 질문을 하신다. 또 얼마 지나서 집 근처에 사무실을 하나 사려고 하신다. 머릿속에 또 복잡해진다. 베풀고 그것에 남아있지 않고, 뽐내지 않으면 된다라고 했으나.. 허허 이러다가 머리끄덩이 잡으러 오는 분위기인데.. 뭔 일인지 난 알 수가 없다.
지금 하는 일도 거래처와 잘 진행되고 있다. 며칠 전에 '정예사'라고 해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정예 협력사의 줄임말이란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누군가가 잘 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내게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벌써 작년 수준의 매출을 초과한 상태다. 이번달에 들어서며 단가를 조금 내리려고 했더니, 거래처에서 "왜 내려요?"라는 질문을 한다. 오래 영업을 했지만 이런 말을 듣기도 처음이고, 말투를 보면 이런 일에 익숙하지도 않은 담당자의 목소리다. 그러더니 며칠 뒤에 단가조정이 아니라 연간계약을 새로 갱신해 줬다. 이건 또 신기한 일이다. 가끔 팀장 녀석이 마진을 더 확보해도 되는데 왜 그러냐는 말을 할 때가 있었는데 이번에 기가 막힌 타이밍에 더 잘된 거 같다고 신이 났다. 당장 더 남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가려면 사업관계의 균형도 중요하고, 당장의 이익보다 균형을 위한 최선의 베풂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런 일이 전체 사업의 레벨업이 되는 전조가 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그 순환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질, 자본주의 속에 살며 노자가 말하는 마음의 집착을 버리고, 검소하고, 겸손하고 정직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의 구조속에 적응하며 살아가며, 노자의 생각 한 조각을 품고 살아가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일까? 하여튼 세상은 어지럽고, 어지럽다는 것은 정화의 시간이 또 온다는 순리를 기대하며 살아간다. 무엇보다 내 마음의 혼탁함이 세상의 혼탁함에 연결되니 스스로가 내려놓고 돌아가는 일이 중요하겠다.
#노자 #도덕경 #김원중 #인문학 #독서 #무위 #순환 #kho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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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자신있게 망설임 없이 별점 5점을 주게 되는 책은 좀처럼 없는데 이 책이 그 별점 5점을 오롯이 다 받을 정도로 퀄리티가 뛰어난 책인것 같다. 기존의 한비자에 대한 책들과 비교하여도 매우 월등한 책임이 분명하다(일단 두께 부터 압살한다) 책을 고를 때는 역자를 유심히 보는 편인데 한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지 그에 대해서 오래 연구를 한 사람인지를 중점적으로 살펴 보았다. 알수 있는것 은 약력 등등이지만 역자가 한비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고른책이었는데 예상과 같이 매우 좋았다. 앞으로 이 출판사의 다른 책도 들여다볼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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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접하고 나서 보니 더 마음에 와닿는다. 심지어 장모님께서도 책을 같이 보실정도로 동서고금 막론하고 모두에게 호기심을 유발시키는듯하다. 전쟁에서 적용되는 많은 전술들이 현대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됨을 느끼며 삶이 곧 전쟁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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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24년도 15번째 책 '손자병법' 리뷰입니다.
자세한 리뷰는 아래의 링크에 남겨두었습니다. 리뷰를 읽으시는 분 모두 다(多)독 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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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읽는 한비자 처음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일년후 가까이두고싶어 구입하게된 한비자 사기 삼국지 장자 손자 정관정요 한비자 등 곁에두고 정년때까지 일년에 한번씩 필독하기위해 구입한책 한비자는 좋은책이다 유교를 반박하고 도가나 묵가는 어느정도 인정하고 지도자의 다스리는 법술을 논한다 때론 엄격하고 의심하며 밀당하며 또 의심한다 내가추구하는 정치는 아니나 성인이 아닌 인간인 다음에야 채찍과당근을 유용하게 적절히 사용해아 하는것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