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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같이 걷는데, 늘 나만 뒤쳐진다. 운동하려는 목적이 아닌 이상 재촉하듯 빨리 걸을 필요가 없다. 탁 트인 하늘도 보고, 저 멀리 산도 보고, 발 아래 핀 꽃도 봐야하는데. 산책하듯 천(川)을 걷고, 낮고 완만한 산을 오르고, 말 소리 웃음 소리 조곤조곤한 어느 골목을 걷는다. 양산에 살 때 오르막에 아파트들이 있고, 아래는 동네였다. 차를 타고 가기에도 어중간한 거리여서 왠만하면 걸어 내려간다. 그 곳은 봄 되면 벚꽃길이 화려하게 펼쳐져 따로 구경 갈 필요가 없다. 봄에 아랫마을 골목길을 걸으면 마냥 행복하다. 낮은 담장 사이 사이 골고루 퍼지는 봄볕이 겨우내 싸했던 집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조용했던 골목이 그 한 줌의 볕으로 생명이 움튼다. 집을 지키던 누렁이가 사람의 인기척에 놀라 짖고, 골목 담장에 그림자가 새겨진다. 겨우내 쉬었던 땅에서 푸릇푸릇함이 깨어난다. 콘크리트 돌을 비집고 나온 보랏빛 광대나물 꽃이 새초롬하게 피어있다. 마당 한 가운데 가르는 빨랫줄에 옷들이 널려있다. 골목은 익숙하지만, 봄여름가을겨울 다 다른 얼굴을 가진 재밌는 공간이다. 익숙했던 골목을 떠나 낯선 골목을 걷는다. 시간이 지나면 그 낯선 골목도 드나듦이 익숙한 골목이 된다. 그 골목에는 여전히 자연과 사람의 온기가 남아있다. 골목에 대한 기억은 어느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움으로, 아픔으로, 기쁨으로, 힘겨움으로..... 생경한 골목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고 싶어 책 <골목 인문학>을 읽는다.
건축가 부부는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직접 찾아다니며 담아둔 생각과 마음의 풍경을 그리고 글을 쓴다. 화려하고 멋진 수도 서울의 겉모습과 달리 한켠에서는 사라져가는 동네가 있다. 옛 모습이 남아있지만 개발과 변화 속에서 이름만 남아있는 동네도 있다. 같은 동네지만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름이 달리 불리는 동네도 있다. 골목을 기점으로 부촌과 빈촌으로 구별되는 아픔을 간직한 동네도 있다. 새로 단장되고 돈의 유입이 많은 동네 골목에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북촌과 서촌, 경리단길, 망리단길... 개발의 붐을 타고 들어오면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할 수 없다. 추억의 동네, 골목은 더이상 처음 좋았던 그 동네가 아니다. 돈에 도매급으로 넘어간 씁쓸한 풍경이다. 건축물이나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재료는 시간이라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이 아니고, 시간이라는 포장이 덮이며 아주 다양한 연상과 감흥을 불러오는 지극히 자연스런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의 가치를 쉽게 탐욕의 수단으로 바꿔버린다. 유럽의 유명한 건축물들 뿐 아니라 평범한 집과 건물들이 몇백년동안 건재한 이유를 생각하게된다. 보존하고 지킨다는 것은 오랫동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전통과 정신의 산물인것이다. 인위적으로 덧붙이지 않아도 장소의 가치는 폄하되지 않는다. 시간이 말해준다.
비단, 서울만 그럴까? 조금이라도 좋은 땅이 눈에 띄이면 언제든 사람들은 몰려온다. 시간의 때가 내려앉은 많은 곳이 재개발의 늪과 허상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린벨트 지역으로 묶여있는 곳도 돈이 유입된다. 조용했던 동네가 삭막하다. 오래된 집들이 허물어지고 그 곳에 창고가 들어서고 필로티 건물이 지어진다. 내 고향 대저는 그렇게 원주민이 나가고 원주민들도 힘겹게 살아나간다. 어렸을적 친구들과 놀던 골목길이 눈에 선한데, 골목은 없어지고 낯선 건물이 서 있다. 내 추억 하나가 사라졌다. 응팔(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그 골목의 친구들을 찾을 수 없다.
인간이 살며서 누리는 큰 즐거움 중 하나는 좋은 길을 걷는 일이다. 특히 포실한 흙길을 목적 없이 천천히 걸을 때 사람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땅과 직접 교감을 할 수 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무장한 도시의 길들을 관리가 편하고 자동차가 속도를 내기는 좋지만, 그 땅으로 빗물이 스며들 수 없고 식물이 자라지 못한다. 결국 그런 환경 속에서 인간은 오랜 시간 탁자 위에 놓아둔 식빵처럼 바싹 마르게 된다. 도시의 불행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속도가 인간을 지배하고 편리가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이다. 아비토끼에게 지나가는 말로 가끔 말한다. 흙길을 걸으면서 살고 싶다. 담장이 낮은 동네, 마당 깊은 집에서 살고 싶다. 아침마다 자연이 깨우는 소리를 들으며 한적한 골목길을 산책하면서 아침을 시작하고 싶다. 그런 곳은 어디일까? 아스팔트 길이라도 콘크리트 담장이라도 높이 우뚝솟은 아파트에 살더라도 야트만한 낮은 뒷산과 아랫마을 골목길이 있다면 참 좋겠다....^^
도시도 사람의 몸과 똑같다. 큰길이 굵은 핏줄이라고 보면 큰길 뒤로 뻗어있는 길들 혹은 집까지 이어지는 길들은 가는 핏줄일 것이다. 큰길 뒤로 이리저리 이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는 그 길을 우리는 골목이라도 부른다. 도시에는 무수한 골목이 있디. 그리고 사람의 몸처럼 모세혈관 역할을 하는 골목이 잘 살아 있고 건강해야 도시 또한 생기 있게 살아나는 것이다. 큰길이 과시와 소비와 속도를 위한 것이라면, 골목은 그 도시의 맨 얼굴이며 그 도시의 정체성이며 또한 삶의 여유를 주는 공간이다. 길이 없어지면 도시의 정체성은 점점 없어진다. 말이 이해된다. 도시의 정체성은 결국 사람이다. 도시의 속도에 따라 사람들이 분주하게 살아간다. 그 틈에서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기보다 흐름에 쫒아가게 된다.
골목에 대한 좋은 기억이 남아있어서 골목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생각이 많아졌다. 아직도 놀고 거닐었던 그 골목이 거기에 있을까? 늦기 전에 찾아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마 변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은 그 시간만큼 나도 어른 아이가 되었다. 서울에 살아본 적 없고, 살지 않아서 서울 변두리 골목의 풍경이 와닿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골목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애틋함과 아쉬움이랄까. 그 느낌만으로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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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편리를 위해서 스스로 불편하게 삽니다. 아니 그건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대단한 일이 벌어지지도 않고 대단한 지식을 얻는 것도 아니어도, 골목을 걷는 것, 골목을 생각하는 것은 저 멀리 떨어져버린 우리의 원초적인 무언가로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p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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