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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산, 「강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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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골목 어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강철은 고철의 기억을 가지고 산다   위험하다고 말하는가   수많은 벼림 속에서 비로소 달구어져 빛나는   강철의 기억 속에는 망가지고 부러진 채   무너진 자신조차 숨길 수 없는   고철의 질긴 생명이 숨어 있다 되살아 있다   부끄러움을 녹여내는 아픔 속에서   달구어질수록 뜨거워질수록   고철의 쓰라린 추억을 기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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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골목 어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강철은 고철의 기억을 가지고 산다

  위험하다고 말하는가

  수많은 벼림 속에서 비로소 달구어져 빛나는

  강철의 기억 속에는 망가지고 부러진 채

  무너진 자신조차 숨길 수 없는

  고철의 질긴 생명이 숨어 있다 되살아 있다

  부끄러움을 녹여내는 아픔 속에서

  달구어질수록 뜨거워질수록

  고철의 쓰라린 추억을 기억하고 있다

  패배 속에서 슬픔의 언저리에서

  무너지고 쓰러지고 비로소 지키는 사랑

  강철은 아름답다

  - 이철산, 「강철은」

 

 

사람들은 강철 같은 신념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신념이 강철 같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신념이 변하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골목 어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강철은 어떻게 이런 단단한 신념을 온몸으로 표현하게 되었을까? 시인은 강철에 서린 고철의 기억을말하고 있다. 고철은 아주 낡고 오래된 쇠를 의미한다. 그 자체로는 쓰지 못하는 철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달리 말하면 고철은 제련을 해서 써야 한다. 용광로에 고철을 녹여서 새로운 철을 만들어야 고철은 비로소 쓸모 있는 강철이 된다. 마음에 고철을 품고 있는 강철을 누군가는 위험하다고 이야기한다. 무엇이 위험하다는 것일까? 강철이 되면 고철은 잊어야 한다는 것일까? 자기가 살아온 역정을 잊은 채 어떻게 강철이 된 지금을 긍정할 수 있을까? 강철은 고철에 근원에 두고 있다. 고철을 잊지 않아야 강철은 강철로서 삶을 살 수 있다.

 

시인은 수많은 벼림 속에서 비로소 달구어져 빛나는/ 강철의 기억이라고 쓰고 있다. 강철의 기억은 고철이 수없이 벼려지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고철은 벼리고 벼려져야 비로소 달구어져 빛나는 강철이 된다. 시뻘건 쇳물이 되려면 고철은 망가지고 부러진 채/ 무너진 자신조차 숨길 수 없는상황에 이르러야 한다. 고철은 기꺼이 자기를 망가뜨리고 부러뜨린다. 스스로를 죽여 새로이 태어나는 고철의 이 희생정신을 시인은 고철의 질긴 생명이라는 시구로 표현한다. 고철은 자기를 지키지 않음으로써 도리어 자기를 지키는 생명의 역설을 이룩한다. 고철에 담겨 있는 뜨거운 생명성이 강철을 낳는 근원이라고나 할까. 시인의 말마따나 고철은 용광로에 들어가 지독한 아픔으로 부끄러움을 녹여낸다. 부끄러움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부끄러움과 맨얼굴로 대면하는 사람만이, 그래서 온몸이 끊어질 듯한 아픔에 시달린 사람만이 부끄러움을 저 멀리로 내던질 수 있다.

 

달구어질수록 뜨거워질수록달아오르는 고철의 쓰라린 추억은 이렇게 강철을 낳는 쇳물이 된다. 뜨거운 불길에 제 몸을 맡기면서 고철은 패배 속에서 슬픔의 언저리에서피어나는 희망만은 어떻게든 간직하려고 한다. 고철로 사는 인생은 언제나 패배할 수 있다. 자본은 이익이 되는 고철들만 광장으로 받아들인다. 수많은 고철들이 자본의 광장에서 자본을 증식하는 일에 동원되고 있다. 자본 증식에 기여하는 고철은 살고, 자본 증식에 기여하지 못하는 고철은 죽는다. 시인은 자본이 만든 용광로를 온 힘으로 견뎌내고 강철이 된 고철들에 주목하고 있다. 강철은 고철이 살아낸 쓰라린 추억을 가슴 깊이 품고 있다. 패배한 자리에서 고철들이 흘린 눈물을 강철은 기억하고 있으며, 무너지고 쓰러진 자리에서 고철들이 끝까지 지키려고 한 사랑을 강철은 마음 깊이 새기고 있다.

 

강철은 고철이 남긴 사랑을 먹고 자란 존재이다. 고철은 달콤한 사랑만을 남기지 않았다.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 자기를 버린 고철은 쓰디쓴 사랑을 강철의 붉은 마음에 심어주었다. 고철을 기억하는 강철들이 왜 무너지고 쓰러진 자리를 지탱하는 투사가 되겠는가? 강철은 달구어질수록 뜨거워질수록 더욱 단단하게 여물던 고철의 감각을 본능처럼 몸에 새기고 있다. “강철은 아름답다는 시인의 선언은 바로 이 지점에서 뻗어 나온다. 강철은 고철을 기억하고 있기에 아름답다. 돌려 말하면 강철로 하여 고철이 지닌 아름다움이 시간을 넘어 이 세상으로 불려나온다. 죽음을 넘어선 고철은 지금 강철로 돌아와 냉혹한 자본과 맞서고 있다. 자본은 이익이 되지 않으면 노동자의 목숨도 서슴없이 빼앗는다. 자본이 증식되는 자리에서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다.

 

화려한(?) 황무지가 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인은 고철의 기억을 가슴에 품고 태어난 강철을 상상한다. 그냥 강철이 아니라 아름다운 강철이다. 아름다운 강철은 아름다운 신념으로 황무지에 희망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 시인은 무너지고 쓰러지고 비로소 지키는 사랑이라는 시구로 강철이 내딛는 첫 걸음이 곧 사랑을 실천하는 길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사랑은 머릿속으로 하는 게 아니다. 사랑은 늘 행동을 동반한다. 사랑이 없는 세상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일만큼 힘겨운 일이 어디에 있을까? 사랑을 외치던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지금도 어디선가는 고철의 기억을 품은 강철들이 십자가에 매달린 고통을 견디며 자본과 싸우고 있다. 시간이 걸려야 끝나는 싸움이다.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업은 자본의 용광로는 자본에 저항하는 강철들을 무차별적으로 녹여버린다.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고철의 심장을 품은 강철로 사는 것은 이토록 어렵고도 힘겨운 일이다.

 

 

o*****s 2019.07.2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