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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제목이 《시마》로 2002년 발간된 책의 개정판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시마가 책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다 읽고 나니 시힘이 더 적합하다고 느꼈다. 시마가 좁은 의미라면 시힘은 그보다 더 넓고 포용적이다. '시의 정원을 채우는 창작정신'이라는 부제를 보고나면 훨씬 더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인 김풍기 교수는 고려의 이규보가 쓴 < 구시마문>과 조선 중기 문인인 최연의 <축시마>를 읽고나서 시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시마를 언급한 글은 많지만 시마 자체를 소재로 다룬 글은 많지 않아서 위의 두 글과 유몽인이 쓴 <송홍목이윤경수평서>를 기본틀로 삼았다. 이 세 편이 부록으로 뒤편에 수록되었다. 부록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었다면 더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시마를 무엇이라고 할 수있을까? 아래는 미당 서정주의 <푸르던 날> 중의 일부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이 시를 읽을 땐 매번 감탄을 한다. 특히 4행은 시인도 써놓고 놀라지 않았을까. 이렇게 뛰어나게 좋은 작품이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은 시마를 떠올린다. 사람 솜씨로는 이룰 수없을 만큼 훌륭하다는 말이 숨어있다. 저자는 시인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다가 옛사람들의 일화를 가져와서 그 답을 찾는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옛날에도 시를 본업으로 해서 당당히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겨우 떠오르는 인물이 삿갓쓰고 방랑하는 김시습 정도다. 그런데도 많은 시인들이 시에만 몰두하다가 결국 자신마저 시에 잡아먹히고 만다. 이러니 시를 쓰는 사람에게 시마가 함께 한다는 것을 추정하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이용하는 것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신령스러운 것이 말이고, 말 가운데 가장 정묘한 것이 시다. 시는 인간의 직관적 영감에 기댐으로써 인간의 내면세계가 천지우주와 직접 소통하거나 합일 될 수 있게 하는 매개체다. 앞으로 다룰 시마는 그런 점에서 연결된다. 언어가 가진 일종의 주술적이고 신령스러운 부분은 인간세계의 시공을 초월하여 전혀 새로운 세계의 언어로 인간에게 말을 건다. 그것을 우리는 영감이나 직관, 상상력, 신묘한 의상 등 다양한 용어로 부르는 것이다. (142)
이때 나타난 것이 외부적이라면 시귀, 내면이라면 시마라고 구분한다. 시인이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지 않고 시대와 사회와 인간의 삶을 고민하고 갈등하면서 얻게 되는 깨달음이 창작으로 연결될 때 시귀의 힘을 얻었다고 한다. 시마는 시인이 다른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시만 쓰게하는 힘이다. 그래서 시마에 걸린 사람은 사회적일 수 없다. 혼자 떨어진 곳에서 시와 골똘히 사귐을 갖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시인은 시마와 함께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 다만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는 있다. 시인이 가장인 경우 가장 노릇을 못하는 것이다.
한여름 더위를 깜박 잊을 만큼 재미있게 시마에 관한 내용을 읽었다. 어떤 일에 몰두하는 사람을 우리는 미쳤다고 한다.' 미쳐야 미침이 있다'는 말도 있다. 글을 쓰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거나 시마에게 마음을 뺏겨본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시마란(...)창작의 괴로움에도 끊임없이 창작에 매달리게 하는 근원적인 힘을 가리킨다.(180)
시를 너무 좋아하는 어떤 경지, 그 때문에 모든 삶이 시로 귀결되는 경지를 시마로 표한 한 것이다. (196)
시마는 (...)시구가 지니고 있는 빛나는 어떤 부분, 즉 시구가 뛰어난 표현을 얻음으로써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정수를 의미한다. (279)
시마가 지니는 일차적인 함의는 즐거움에 있다. 어떤 분야든지 좋아하게 되면 거기에 빠지기 마련인데, 시마란 시에 빠져 다른 것을 돌보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시를 쓰느라고 창작의 괴로움에 휩싸여 있다느니, 적당한 글자 하나 찾느라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느니, 애간정을 태웠다느니 등의 표현은 창작의 고통을 말하는 것이자만 그 바탕에는 시에 대한 지독한 즐거움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려는 태도가 깔려 있다. (355)
"이규보가 제시한 시마의 죄상을 거꾸로 읽어보면 시인은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시를 통해 마음껏 자신의 포부를 펼칠 수 있고, 시인은 그 날카로운 예지로써 천지의 드러나지 않은 오의를 파헤쳐 사람들의 인식을 보다 고원한 곳으로 인도해주며, 시인은 온갖 사물들을 관찰하여 거기에 감추어진 의미를 발견해내며, 시인은 자신의 기준에 따라 세속의 질서나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시를 통해 마음껏 비판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니고 있으며, 시인은 세속 사람들이 추구하는 겉모양의 꾸밈보다는 한 편의 훌륭한 시를 창작하기 위한 고초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라는 제 자랑인 것이다.(...)그러고 보면 이 시마란 놈은 무슨 이마에 뿔 달린 귀신이 아니라,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드는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의 다른 이름이다."(373)
시마는 앞을 바로보고 유목적 삶을 자신의 모든 것으로 알고 살아가는 시인의 가장 절친한 벗이다. (397)
시마는 누구나 사용하는 단어이지만 어느 개념으로도 포착되지 않는다. 시대의 그물을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시마는 기존 사유의 견고한 성을 넘으려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또한 새로운 표현 형식을 찾아 방랑하는 사람에게 온다. 한곳에 머무르는 순간 시마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거대한 사유 권력의 그물이 온 생애를 덮친다. 움직이는 자에게 누가 그물을 던질 것인가. 세상 사람들에게 저주 받았으되 행복한 사람. 그이야말로 시마의 진정한 벗이다.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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