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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좋은 종족은 없다고 한다. 문화인류학자가 100여 종족 사회를 연구했는데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좋았던 종족이 단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는 아들에 의해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다. 자식을 낳아주고 길러준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를 긍정하고 받아들이면 아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아버지를 극복해야 자신의 길을 걷게 되며 비로소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게 된다. 아버지는 극복되어야 할 숙명이다.
한상오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는 베트남 가기 전까지는 말짱했다고 한다. 베트남전 막바지에 참전했다가 귀국해 잠깐이긴 하지만 직장 생활도 했다. 그러다 조금씩 이상해졌다. 직장에서 쫓겨난 뒤 방에만 박혀 있다 한번 나가면 알아보지 못할 몰골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결혼 생활이 그를 잡아줄 거라고 기대했지만, 처음 얼마 동안은 그런 것도 같았지만, 더 나빠졌다. 한상오가 태어날 무렵 방 모퉁이에 눕더니 여동생이 태어나고는 영원히 돌아누워버렸다. 자식이 빤히 보고 있는데 자살 시도를 여러 번 하기도 했다. 자살마저 실패한 삶. 한상오는 그런 아버지가 죽이고 싶도록 밉다. 껄렁한 패거리와 몰려다니며 주먹질을 하여 응어리진 마음을 푼다. 그러다 이현우를 만나며 바뀌어가고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이현우에게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는 섬유 산업으로 일찌감치 거부가 된 할아버지의 아들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처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애정과 믿음은 세대를 건너뛰어 이현우에게 집중되었다. 이현우를 손자가 아니라 늦게 얻은 아들처럼 여겼다. 아버지에게 이현우는 아들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나눠 가져야 하는 동생이었다. 그런 까닭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아버지는 이현우에게 체벌을 하고 폭력을 휘둘렀다. 죽이고 싶은 아버지란 공통점 때문에 이현우는 사는 세계가 전혀 다른 한상오랑 깊은 유대를 맺게 된다.
고등학교 2학년 친구이던 이들이 23년 뒤 우연히 만난다. 한상오는 부모를 모두 여의고 맨홀 일을 하고 있다. 이현우는 기러기 아빠로서 거부인 아버지와 아직도 갈등 관계에 있다.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지만 이현우의 아버지가 아직 이현우를 억압하고 있어 이들 관계에도 그림자를 덮는다. 이현우의 아버지는 억 원이 넘는 주사를 수시로 맞으며 얼굴을 갈아엎는가 하면 젊은 애인을 일정한 시기마다 갈아치운다. 그러나 5년째 붙들고 있는 애인이 있으니 김주희다. 김주희는 늙은 애인을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벗어나지 못해 수면의학 전문의인 이현우에게 찾아간다. 그러고는 서로 빠져들며 연인 사이가 된다. 아버지의 여인과 연인이 되는 아들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아버지한테 협박을 당하는 신세가 된다.
정작 두려운 건 따로 있었다. 자신의 과거가 알려지는 것. 자신이 맞고 자란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 그것만은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이 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건 아버지의 애인을 가로채서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맞고 자랐기 때문이었다. 맞고 나면 자신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때린 아버지가 아니라 맞은 자신이 파렴치했다. 그 생각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용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188쪽)
이현우는 끝내 아버지를 죽이지 못한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상오에게 빚을 졌듯이 23년 뒤인 현재에도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상오에게 빚을 진다. 아버지가 갖고 있는 돈의 힘에 무릎꿇는 이현우가 가소롭고 애처롭다. 대차게 한 번 붙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반면에 문제아로 지냈지만 아버지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했던 한상오는 아버지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이현우의 아버지를 죽이는 역할까지 맡게 된다. 굳이 이현우의 아버지까지 한상오가 죽여야 했을까. 그렇지만 아버지를 이기지 못한 고등학생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이현우를 친구로 둔 한상오의 선택은 그리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아들에 의해 죽어야 제대로 된 죽음이 될 텐데, 이현우의 굴복이, 한상오의 오지랖이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