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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개월 전 고인이 된 다나베 세이코의, 우리나라에서는 마지막으로 출판된, 책을 읽었다. 초판 1쇄 발행일이 2019년 7월 15일로, 저자는 자신의 저서가 이웃나라에서 출판되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적어도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평은 듣지 않을 나이다. 작가로서 그는 성공했다. 다수의 저서가 우리나라에도 번역돼 나와 있다. 그렇지만 삶의 매순간이 평탄하진 않았다. 책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남편을 간호하던 순간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집안에 환자가 한 명만 있어도 온 식구가 거기에 매달리는데, 더구나 그에게는 96세에 다다른 노모도 있었고, 그 자신도 적지 않은 나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희망이 보여야 함에도 오히려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 상황. 우중충한 분위기를 피하기 힘들겠다는 짐작을 했건만 아니었다. 매순간 심각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설레설레 사는 게 진리라는 식의 태도는 어찌 보면 너무도 가볍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저자가 견지한 태도를 이해하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그의 일상에는 변화가 별로 없었다. 남편은 수시로 병원을 오갔고, 나중에는 아예 병원 밖 출입이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저자에게는 해야 할 일이 넘쳤다. 글을 쓰는 일은 머리나 손가락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그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가면서 글을 썼다. 글을 쓰는 동안 남편이나 노모의 건강에 대한 염려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수시로 닥치는 마감일을 준수하면서 동시에 그는 밀려드는 강연을 소화했다. 어떤 땐 몇 백에서 일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말을 해야 할 때도 있었는데, 그만큼 완벽한 준비 과정은 필수였을 것이다. 이미 다년간의 경험이 쌓인 덕인지, 적어도 글에서만큼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어찌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할 수가 있는 거지? 남들과 살짝 다른 그의 결혼 생활로 시선이 쏠렸다. 남편과 결혼하게 됐을 때, 그 결혼은 그에게 첫 결혼이었지만 남편에겐 아니었다. 아이가 넷이나 있는 홀아비와의 결혼에 달콤한 신혼 따위를 기대하는 건 곤란했다. 아이들에게 저자는 ‘세이코 아줌마’로 불렸지만 자신이 생각해온 엄마로서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쌓아올리고자 안간힘을 썼을 그의 모습을 알게 모르게 다독여 준 건 아마도 남편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나날이 말라갔다. 체력이 고갈돼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 등을 감당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며,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모두가 똑같아지는 건지, 저자는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며 오래 전 아버지의 임종을 떠올렸다. 그에게 죽음은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생의 한 과정이었다. 그는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울지 않았다. 밀려드는 추모객들에게 건넨 상주 인사에는 위트가 한 가득이었다.
‘죽음’을 인식하기 시작한 건 꽤나 오래 됐다. 무슨 연유에선가 나는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지독히 파고들었다. 당시 지닌 인명사전에는 사람의 생몰 연도가 기재돼 있었는데, 난 그 옆에 일일이 그 사람이 사망할 당시의 나이를 적으며 과연 나는 몇 살까지 견딜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보고는 했었다. 죽음이 나이가 충분히 들어야만 오는 게 아님을 알게 된 이후로부턴 그와 같은 행동을 중단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살고 죽는 일을 수시로 떠올린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문득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며 울컥하고, 멀쩡히 일을 하다가도 왜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죽어가는데 난 아무렇지 않게 앉아 일을 하는지를 따져 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생은 주어진 속도대로 흘러간다. 난 나답게 세상을 살아나갈 것이고, 때가 되면 나다운 방식으로 세상에 이별을 고하게 될 것이다. 그 때 내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저자와 같은 의연함을 보이진 못할 거 같다. 난 언제나 찌질했으므로. 멋있게 사는 건 참 어렵다. 멋있게 죽는 것도 마찬가지일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