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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넘어서서 장소와 사람들의 관계에 주목하자
"지도를 넘어서서 장소와 사람들의 관계에 주목하자" 내용보기
학창시절 교실 벽에 걸려 있는 지도를 보면서 '세계가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알아갔던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지도 속의 사실적인(factual) 지리 정보를 보면서, 많은 아이들은 특정 나라의 위치를 찾고, 세계에 나라가 몇 개가 있는지 세어 보곤 했다. 또 어떤 나라가 큰지, 지도에 그려진 땅의 모양을 보면서 이곳에 산, 평야, 바다가 있고, 섬의 갯수가 몇 개인지
"지도를 넘어서서 장소와 사람들의 관계에 주목하자" 내용보기



  학창시절 교실 벽에 걸려 있는 지도를 보면서 '세계가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알아갔던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지도 속의 사실적인(factual) 지리 정보를 보면서, 많은 아이들은 특정 나라의 위치를 찾고, 세계에 나라가 몇 개가 있는지 세어 보곤 했다. 또 어떤 나라가 큰지, 지도에 그려진 땅의 모양을 보면서 이곳에 산, 평야, 바다가 있고, 섬의 갯수가 몇 개인지 세어 보기도 했다. 도시의 인구 수에 따른 기호를 보면서 이곳에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살아가고, 나와 같이 학교, 집, 마트 등에 가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지도 위에서(On the Map)' 재미있게 놀면서, 지도 속 나라, 국경, 섬 갯수 등의 지리 정보가 머릿속에 다 들어있으면 지리 공부는 다 한거라며 우쭐해하기도 했다.


  저자는 '장소(place)'에 관심이 많은 사회지리학자이다. 저자는 사회집단이 장소를 어떻게 점유하고 인식하며 또 서로 경합하고 투쟁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대중적인 글쓰기를 많이 해 왔다. 저자의 대중적 글쓰기 중 하나인 <Unruly Places(국내에는 '장소의 재발견'으로 번역됨)>도 그러한 책이었고, 이 책도 전작과 유사한 컨셉이면서도 새로운 사례 장소들에 대한 글의 모음이다. 이 책의 번역 제목은 <지도에 없는 마을>이라, "지도는 세계를 그대로 담고 있다"는 생각과 충돌하면서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독자로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하지만 책의 원제는 조금 다른 뉘앙스의 <Beyond the Map>로, '지도를 넘어서'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원제의 의미는 앞서 언급한 우리가 지도를 바라보는 통상적인 시선, 즉 지도를 통해 '세계는 이렇게 생겼구나'라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고, '지도를 넘어서' 장소와 사람들을 이해하자는 의미로 읽을 수 있겠다. 왜냐하면 지도 하나만으로 세계를 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의 수많은 장소가 복잡하고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를 객관적 지리 지식으로서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엔, 사회 집단과 장소의 관계와 정치학이 너무나도 복잡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39개의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장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서로 다른 장소들이지만, 하나로 묶어 주는 주제들이 있다. 그 주제들은 지리학이 이미 누구나 아는 명확한 국경과 누구나 인정하는 확정된 정보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기존 관념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책에서 그린 세계는 분열되었으며, 또 분열되고 있다. 유토피아나 분리·독립을 염원하는 야심이 솟구치고 있으며, 환영과 끝없는 비밀이 무리를 지어 떠돌고 있다. (p.379)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제멋대로인 섬들'로, 고립되고 정적인 것 같기만 한 작은 장소인 섬이,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과 국가, 권력의 욕망이 투영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잘 알려진 스프래틀리 군도(난사군도)와, 우리에겐 비교적 덜 알려진 맹키에군도를 둘러싸고 주변 국가들이 온갖 지정학적 책략을 세우고 실천하는 과정이 소개된다. 그리고 섬을 규정하는 법령의 틈을 찾아서 섬의 갯수를 늘리려는 여러 나라들, 실제로 지반이 융기하여 섬이 커지는 나라 등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지도에서 섬의 갯수를 세거나 국가별 통계를 그대로 믿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닿고, 또한 섬은 그저 자연적 실체이고 자연지리적 원리에 따라 그대로 있을 뿐이지만 사람들이 섬을 어떻게 인식하고 집단의 욕망과 정치가 작용하느냐에 따라 전쟁터와 같은 긴장이 감돌기도 한다는 점이 흥미로우면서도 안타까웠다.



*스프래틀리 군도의 Fiery Coral Reef, 중국의 인공섬 및 활주로 건설. 출처: 구글 지도

  (스프래틀리 군도의 인공 섬, 군사시설 건설) 나는 이 미친 짓이 멈췄으면 좋겠다. 한때는 맑고 투명한 파란 물에 둘러싸여 있던 평화로운 작은 섬들을 흉물스러운 탱크 같은 벙커와 흙먼지투성이의 잿빛 이착륙장으로 만드는 행위는 우리 세대, 그리고 우리 인류의 얼굴에 먹칠을 할 뿐이다.(p.49-50)


  이 조건은 유엔해양법협약의 제121조를 반영하고 있다. 제121조는 "인간이 거주할 수 없거나 독자적인 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없는 바위도 섬"이라고 할 수 는 있지만 그런 섬에는 "배타적 경제수역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 "독자적인 경제활동을 유지하며",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섬이 이 지구상에 과연 몇 개나 될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섬들 중에는 없다. 예를 들어 영국이나 몰타는 세계 경제에 속해 있고, 인구가 많아서 식량 공급을 수입에 의존한다.(p.60-61)




  2장은 '고립지와 미완의 국가들'이다. 지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지도 속 사람들을 지구 밖에서 한눈에 내려다보는, 마치 하늘 위 신과 같은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지도를 외우면 지도 속 수많은 사람들을 다 이해할 것만 같다는 착각을 준다. 하지만 2장에서의 고립되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언어, 민족,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일반적인 국가와 다르지만 스스로 분리하고 자 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으려고 하는 '지도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내가 익숙하게 지도를 안다는 그 생각이 착각일수도 있겠다고 되돌아보게 된다. 호주 본다이 비치의 '그들'만의 숨겨진 장소, 여러 민족국가들이 복잡하게 얽혀 갈등 중인 페르가나 분지, 새로운 소수자가 되어 다수에 저항하는 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신러시아, 영토도 없지만 주권이 있는 특이한 국가인 몰타기사단 등의 모습을 읽으니, 피상적이고 섣부른 세계화, 다문화, 국가와 경계에 대한 운운이 오히려 그곳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저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잉글랜드 북부 뉴캐슬에 사는 저자는 '브렉시트'로 인해 유럽으로부터 영국이 떨어져나간 게 아니라 영국이 '파편화'되었다고 개탄하면서, 자신의 장소가 고립되어가는 절망적인 상황에 불안해하기도 한다. 민족분쟁에 대해 지리교과서에서 다룰 때, '다른 민족은 서로 독립되어야 한다'고 쉽게 말하곤 했는데, 그 다름의 경계를 칼로 무 자르듯이 쉽게 규정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지도에 줄 긋듯이' 국경선을 새로 쉽게 긋지만, 누군가는 일상적 장소의 분열과 혼란이 오히려 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페르가나 분지의 얽힌 국경선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Fergana_Valley_political_map-de.svg

  무엇보다 본다이 에루브를 통과하는 방문객은 이곳이 에루브라는 사실을 모르고, 알 수도 없기 때문에 더 그렇다. 한 장소에 있으면서도 그곳이 어떤 장소인지 모르는 현상은 다문화주의가 낳은 뜻밖의 부산물이다. 어떤 지리적 경계와 정체성이 중요한지는 그 사람이 어떤 인종 집단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다른 관점을 접할 때면 당황스럽기도 하다.(p.88)


  (페르가나 분지) 크렘린궁전에 모인 정치인들은 새로운 국가들의 국경을 끊임없이 이렇게 저렇게 손보면서 원조 꾸러미에 영토선물을 끼워 넣었는데, 원조 꾸러미는 곧장 수정되거나 철회되기 일쑤였다. 이런 변덕스러운 조치가 오늘날 이 지역 국경이 변화무쌍한 주된 원인이다. (...) 1990년대 초 다민족 연합체의 주변부가 독립을 선언하고 떨어져 나가면서 이런 상호 교류가 완전히 중단되었고, 그 대신 민족 순수주의와 국경선 긋기로의 급격한 이동이 시작되었다. (...) 민족으로 규정되는 국가가 탄생하면, 어쩌다 그 국가에 속하게 된 수많은 '잘못된 인종' 출신 국민이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p.98)


  나는 스스로 '잔류파'와 '탈퇴파' 둘 중 한쪽에 속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나는 두 진영 모두에게 경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난처한 입장에 있다. (...) 그리고 탈퇴파와 잔류파로 영국 국민을 나누려고 서두르는 과정에서 묻힌 목소리가 있다면, 우리처럼 자기 불신으로 오락가락하는 이들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영국 국민을 탈퇴파와 잔류파, 친유럽연합파와 반유럽연합파로 나누는 과정에서 브렉시트의 지리학적 결과가 '영국의 독립'보다는 분열과 와해로 더 잘 설명된다는 사실도 묻혔다. (p.135)




  3장은 '유토피아의 장소들'이다. 사람들은 다들 자신들만의 민족, 종교, 사상, 취향 등과 관련한 유토피아가 있고, 이를 장소 속에서 상상하면서 동시에 실천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한 개인적 상상이 언제나 옳고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실 속에서 실천되면서 모순되어 버리고, 이룰 수 없는 망상이 되어 버리고, 그럼에도 이를 이루고자 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가져오기도 한다. 저자는 '신유목민'과 같은 새로운 집단이 결국 장소와 인간의 유대감을 간과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덴마크 무정부주의자들의 유토피아 크리스티아니아가 사실은 배타적이고 모순적인 공간 점유라는 점을 비판적으로 본다. 그리고 ISIL의 이슬람 유토피아는 결국 폭력으로 점철되고 만다는 점, 상파울루의 헬리콥터를 통한 교통 유토피아도 결국 사회계층 양극화와 최상류층의 자구책 정도일 뿐이라는 등의 사례를 든다. 이외에도 여러 사례를 통해 누구를 위한 유토피아인지, 누군가의 유토피아가 누군가에게 디스토피아처럼 여겨질수도 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시사한다.


*상파울로의 헬리콥터. 상파울로는 영국 전체보다 헬리콥터가 많다고 하고, 이는 불평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직사회 : 새로운 공간은 어떻게 계층의 격차를 강화하는가>에도 소개됨.

출처: http://www.eduardomartino.com/?portfolio=helicopters-in-sao-paulo

  ISIL은 순수한 장소를 만들고 싶어 했다. 복잡성이 완전히 배제된 이슬람 유토피아를 말이다. 전 세계적인 다문화주의라는 시대의 흐름에 맞서, ISIL은 불확실성이 배제된 단일문화주의로의 회귀를 부르짖었다. (...) 종교적 극단주의는 장소와 극단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을 환기하는 서글픈 현상이다. 종교적 극단주의는 장소를 정화하고 굴복시키고 싶어 하며, 자신들의 영토 완성 과업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자신들이 생각하는 좁은 의미의 이상적인 시민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도 남김없이 쫒아내고자 한다(p.149).


  무엇보다 '유목민'이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거슬린다. 전통적인 유목민은 아무 뿌리 없이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거나 집과 장소를 하찮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고정된 특정 장소들을 오갔다. 예를 들어 여름 초지와 겨울 초지를 오가는 식이었다. 그리고 각각의 장소를 아주 깊이 이해했다. 진짜 유목민은 비행기를 옮겨 타는 디지털 기업가 무리보다는, 장소에 묶인 정적인 무리와 공통점이 더 많다. 아마도 '신유목민'이 스스로를 '작은 이동 주택에서 사는 소규모 자영업자'라고 부른다면 진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p.164)


  크리스티아니아에 새로 합류한 이들은 자신들도 기존 주민만큼이나 이곳에 집을 지을 권리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자치 '마을' 중 한곳에서 주민 전원의 찬성을 받아야만 이곳에 정착할 수 있다. 주민들은 널찍한 거주지와 반목가적인 환경에 만족하고 있다 보니, 외부인이 그런 찬성을 얻어 내기는 매우 힘들다. (...) 우리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외부인인 당신이 자유롭게 들어올 수 없어야 한다는 메세지를 암묵적으로 전하고 있다.(p.184-185)  




  4장은 '유령과 환영이 떠도는 장소들'이다. 이 장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롭고 영험하면서도 으스스한 이야기가 얽힌 장소에 대해 다룬다. 유령이 도시 속 사람을 삼키고, 버려지고 방치된 도시와 장소, 묘지, 그리고 신비로운 주술이 런던을 지배한다는 등의 이야기들이다. 현재의 세계는 과학과 합리성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인간은 불완전하고, 신비로운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기대고 싶어한다. 미신 같아서 놓치기 쉬운 장소에도 지리학에 주목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흥미로웠다.


* 인도 심라에 위치한 영국인 묘지. 식민지에 묻힌 혼령들을 피식민지의 후예들이 위로해주어야 할까? 출처: 구글 지도

  런던의 재주술화 시도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어떤 이들은 이것을 종교와 멀어진 세속적인 도시에서 혼란에 빠진 영적 욕구의 발현이라고 해석할 것이다. 다시 말해 '조직화된 종교'가 없을 때 생겨나는 믿음의 어지러운 삼각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 산책자들과 연구자들은 뭔가 중요한 것을 포착했다. 그들은 이미 열린 문을 밀고 나갔을 뿐이다. 그 문 밖에 어떤 기운이 감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과 도시가 더 자비롭고, 더 신성하고, 더 신비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다.(p.268)




  5장은 '감춰진 장소들'이다. 일반적으로 지도에 재현되거나 부각되지 않지만, 알고 보면 호기심이 갈 만하고 욕망과 권력이 점철되어 있는 중요한 장소들이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이집트의 쓰레기 마을, 스리랑카의 비공식적인 슬럼가 등에 주목하면서 왜 이곳이 숨겨졌는지 이로 인한 문제는 무엇인지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또 권력집단이 인위적으로 숨긴 중국의 비밀 군사기지, 영국 소속의 섬나라 페이퍼컴퍼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내면서, 이런 장소들의 문제점을 밝히기 위해 저자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가 좌절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또한 땅 속과 해저, 얼음 속에 덮여 보이지 않지만 미래에 갈등과 분쟁의 온상이 될 만한 장소까지도 다룬다. 왜 어떤 장소가 일반 사람들에게 놓쳐지는 수밖에 없는 것인지 그 이유를 찾아보고, 어떠한 장소가 은폐됨으로 인해서 생기는 장소에 대한 부작용을 비판하며, 궁극적으로 장소가 인간과 건설적인 유대 관계를 맺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처음 듣는 흥미로 사례가 많은 장이었다.


* 스리랑카의 와타나물라 빈민가. 스트리트뷰가 끊겨 있는 구간. 출처: 구글 스트리트뷰

  구글 어스와 스트리트뷰는 가시성의 기술이다.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영역도 보여 준다. 빈민가에서 활동하는 전 세계의 시민운동가들은 구글 어스를 정부가 감춰진 공동체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런 공동체를 지원하도록 어르고 달래는 도구로 삼고 있다. (...) 구글 어스의 등장으로 이런 상황이 바뀌었다. 더는 이런 빈민가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지금은 빈민가의 구획선이 표시되고 자립을 돕는 지원 정책도 통과되었다.(p.301-302)


  세계 금융 시스템의 빈틈에 숨은 이런 작은 영토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장소의 크기와 권력이 역관계에 있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사례는 세금이 우리를 어떻게 장소와 연결하는가라는 더 포괄적인 주제로도 이어진다. (...) 당신이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권력층이 아니라면, 대다수의 사람처럼 한 장소에 어떤 식으로든 뿌리를 내렸다면, 그리고 그 장소에서 벗어날 수 없거나 벗어나고 싶지 않다면, 그러면서도 '부담'을 회피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p.327)


  (하이난 섬 군사기지) 군사화된 '병영국가'에서는 모든 지형에 감춰진 얼굴이 있다. 병영국가는 우리에게 장소에 관한 아주 구체적이고 특수한 논리를 제시한다. 궁극적으로 장소는 물리적인 힘으로 쟁취하고, 물리적인 힘에 의해 빼앗기는 대상이라는 논리가 그것이다. 모든 법과 협정의 밑바탕에는 영토란 소유하는 것이 아닌 점령하는 것이라는 논리가 깔려 있다. 마오쩌둥이 수긍했을 만한 표현으로 바꾸어 보자면, 장소는 '총구'에서 나온다. (p.341)


  대다수의 공동체가, 그리고 당연히 대다수의 국가가 고고학을 정당성의 결정적인 근거로 삼곤 한다. 우리가 오랫동안 이곳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우리가 이 장소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식이다. (...) 그러면 우리가 뭔가 경외감을 느끼면서 이 사람들이 진짜 원주민이라고 믿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숫자에는 편집증이 살짝 묻어난다. 너무 지나치기 때문이다. 정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 많은 마을과 도시에서는 땅 밑에 있는 것들을 땅 위에 놓인 것들만큼 중요하게 여길 뿐 아니라, 심지어 훨씬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p.346-347)




  책에 등장하는 장소는 영국의 사례가 많지만, 여러 대륙에 걸쳐서 다양하게 분포한다. 저자는 놀랍고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 당혹스러우면서도 안타까운 여러 장소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신의 주위 일상적 장소는 물론 멀리 떨어진 여러 나라의 장소를 직접 답사하거나 여러 자료를 가져와서 소개한다. 저자는 통상적이고 고정된 지리 지식(예를 들어, '섬의 갯수는 변함이 없다'던지, '세계 지도는 세계의 모든 장소를 다 보여준다' 등)의 통념을 깨기도 한다. 이를 통해 저자가 독자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지리학이란 '변하지 않는' 지도 속 지리 지식을 외우는 학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대신에 지리학은 역동적이고 제멋대로인 장소의 형성과정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하면서 장소의 변화에 주목하는 학문이고,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리학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장소', '당신 주변의 사람들의 장소', '그들의 장소' 등에 관심을 가지기를 촉구한다. 이 책에서처럼 장소를 바라보면 어떨까? 수많은 사람들의 유토피아와 좌절이 장소를 중심로 펼쳐지고, 또 여러 집단의 경쟁과 경계 긋기, 이로 인한 기묘하고 비범한 장소를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장소에 대한 안목을 키우다 보면, 나아가 우리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건설적인 장소의 모습을 함께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지리적 상상력을 펼치고 우리와 그들의 장소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YES마니아 : 골드 r*****0 2019.08.1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