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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내용보기
의사인 저자는 등산 중 사고로 다리에 부상을 입고 수술을 했다.이 때 자신의 다리 감각을 상실하고 다리 자체를 낯설게 느끼는 경험을 하면서사고 이후 신경장애가 있는 환자들을 연구하게 되었다.이 책은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세밀하게 기록했다.처음에 그는 자신이 불구를 면했고 뛰어난 병원에서 입원했음에도 불구하고수술 후 충격에 굴복당했다는 사실에 당황했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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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인 저자는 등산 중 사고로 다리에 부상을 입고 수술을 했다.
이 때 자신의 다리 감각을 상실하고 다리 자체를 낯설게 느끼는 경험을 하면서
사고 이후 신경장애가 있는 환자들을 연구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불구를 면했고 뛰어난 병원에서 입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술 후 충격에 굴복당했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때 모든 고통이 생긴다"는 이모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철저한 신체적/정신적 무기력을 경험한 것이다.

사고나 수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체 일부가 실종된 느낌,
더 이상 그 부위의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상태,
인지하거나 감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를 경험한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이 자신에게 닥치면 단순한 이 말들이 심각한 번뇌와 공포를 몰고 온다는 것이다.
그것을 저자는 '존재론적 위기'로 표현한다.

그러나 더 이상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상태에서 우연한 계기로 감각을 느끼고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실로 은총이라고 느낄 만한 회복을 경험하게 된다.
차트에는 '평범한 회복' 이라고 적혀진 것을 보면서
어떻게 회복이 평범할 수 있는지
말 그대로 급격한 도약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자기에게서 일어나는 회복을 신비롭게 느끼게 된다.

그것은 걸으면서 해결된다.
걷는 데 생긴 문제의 해결책은 걷는 것이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것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회복하는 과정에서,
자기만 이런 경험을 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신체감각을 상실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빈번하게 경험되는 것이라면 어째서 지금까지는 몰랐는지,
자기 신체와 자기가 소원하게 될 수 있다는 걸 왜 알려주지 않는지,
묻고 또 상고한다.

첫째로는, 육체적인 무능력을 들었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나 질병, 감금 상태에서는
존재가 자연스럽게 위축되며,
인식체계 자체가 위축되었다면 자기가 위축되었는지조차 인식할 수 없다.
존재와 공간이 근본적으로 원활하게 소통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마치 태어나서 자기 몸을 움직이며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것을 배우듯
새로이 세상에 적응시키면서 배워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을 뇌의 작용을 들어서도 설명하고 있다.

한편 91년판 후기에 보면, 저자는 이 사고 이후에 또다른 사고를 경험하게 되는데
처음과는 달리 자신의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는 그 차이를
'시간'으로 설명하고 있다.
육체적인 무능력을 경험하는 시간이 단축되고 빨리 예전의 감각과 움직임을 떠올릴 수 있을수록
회복이 빨라진다.

둘째,
이것을 더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는데
바로 
환자의 처지이다.

환자가 되는 순간 '똑바로 선다는 어른의 자세'를 망각하거나 금지당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의사, 진료체계, 병원의 관례에 복종해야 하고,
그 지시에 따르기 위해 환자의 수동성을 강요받는다.
간혹 자신의 경험을 의사에게 전달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퇴짜를 맞는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강요된 침묵을 지킨다.
유기체는 통일된 시스템이어서,
장애가 중심적이든 주변적이든 그 자체로서 시스템이 파괴된다면 신체감각 불능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들은 환자들로부터 나오는 이런 불평에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의료적 처치가 성공적이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기 때문에)
환자들이 자신의 정서를 전달하기 어려울 수 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수동적인 환자의 태도를 강요받은 적이 있어서 백번 공감된다.
심지어 전에 뇌척수액을 뽑았을 때는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떤 항생제 주사를 맞고 얼굴이 화끈하고 막 부어오르는 느낌이 들어서 말하니
그냥 불평으로 들으며 무심하게 '그럴 수 있어요' 했는데
엄청난 속도로 얼굴에 두드러기가 나는 걸 보고서야 길항제를 주고 가라앉혔으니 말이다.

한편,
외부적 사건으로 인해 신체 일부를 손상당한 것 외에도
자기 자신이 신체를 무시하거나 또는 타인이나 외부적 힘에 의해 개인적 공간이 사라진다면
그 부분은 정말로 무시되고,
신체나 자아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취급된다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우리 상담에서 매번 보는 현상이다.

그러나 신경학자 샤르코트가 자신의 제자인 바빈스키와 프로이트에게
신경학적 마비와 히스테리에 의한 마비를 구별하는 과제를 제시한 이후로,
의도하지 않은 결과도 낳았다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 질문 자체가 이분법적이고 이원론적이었기 때문에
모든 마비, 마취, 쓸모없음, 소원한 느낌이 해부학적으로 식별될 수 없다면
히스테리나 정신적인 것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모두 정신적 문제는 아닌데 말이다.

아직도 신경심리학적 장애들이 과학이라는 지도 위에 자리가 허용되지 않는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쨌든 의사인 자신이 환자가 된 경험을 사색하여 섬세히 표현한 이 책은,
이후에 활발한 신경학적 연구를 하기까지의 심리적, 철학적 배경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 완고한 진실이 다시 한 번 떠오른다.

s******2 2016.02.1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평범한 경험을 비범한 글로 탄생시키는 올리버 색스
"평범한 경험을 비범한 글로 탄생시키는 올리버 색스" 내용보기
그의 2007년의 최종경력이 현재도 진행중이라면100살이 가까워오는 그는 아직까지 현업 의사다.주위에서 보통 볼 수 있는 의사가 아니라 작가로써 경력과 유명세까지 더해진 특별한 사람이기에가능할 수 있을 커리어이기도 하겠지만,그 나이에 현역에 있다는 것부터 쉽지 않을 뿐더러맡을 자리가 있다고 다 해낼 수 있는 나이도 아닐텐데그의 글솜씨나 경력은 모두가 놀랍다.책은 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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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2007년의 최종경력이 현재도 진행중이라면
100살이 가까워오는 그는 아직까지 현업 의사다.
주위에서 보통 볼 수 있는 의사가 아니라
작가로써 경력과 유명세까지 더해진 특별한 사람이기에
가능할 수 있을 커리어이기도 하겠지만,
그 나이에 현역에 있다는 것부터 쉽지 않을 뿐더러
맡을 자리가 있다고 다 해낼 수 있는 나이도 아닐텐데
그의 글솜씨나 경력은 모두가 놀랍다.
책은 70년대 초반 그가 등산 도중 한쪽 다리를 다친 경험을
90년대 초 출판한 것으로 의학상식을 겸비한 에세이인데,
굉장히 당시 상황들을 고통스런 기억으로 서술해 냈지만
현재까지 보이는 그의 정력적인 활동을 볼 때
그런 약해보이는 옛 경험들은 되려 놀랍다.
왼쪽 넙적다리를 다치고 좌절하고 회복해가는 과정보다
본문 중에 그가 젊은 시절 역도를 했었다는
짧게 지나가는 정보가 현재의 올리버 색스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됐고 그의 투병기 또한 어두운 정보로가 아니라
밝고 도움이 되는 편한 에세이로 읽도록 해주었다.
어려운 등산이 아닌 가파를 경사로를 오르는 정도의
그런 등산을 하는 도중 그는 황소를 주의하라는 경고판을 만난다.
그리고 그 경고는 현실이 됐는데 실상 그로인해 난 사고가 아니라
빛처럼 빠르게 도망가려다 자신의 발이 꼬였는지
돌뿌리에 걸렸는지 공중에 붕떠 떨어져버린 상황에서
실제 황소의 뿔에 받쳤을 때보다 도리어 더 심했을거 같은
다리 부상을 입는다, 무릎은 너덜거리고
허벅지 근육은 힘줄까지 모두 파열돼
평소 가지고 다니던 우산을 부목삼아
대충 피는 통하게 동여맨 채 어두워지는 산길을 홀로 내려온다.
산밑에서 현지인 2명을 만나 꿀맛같은 브랜디를 얻어 마시고는
약간 기운을 회복하고 몇번의 단계를 거쳐 영국으로 후송된다.
의사인 그의 예상과 거의 일치하는 수술을 받고 깁스를 했는데
그의 왼쪽 허벅지는 오른쪽과 비교했을 때 부상 후
7인치 정도까지 근육이 퇴화되어 갔고
사고 전 같은 감각과 운동신경을 찾으려
물리치료사의 도움으로 하나씩 단계를 밟는다.
자기 다리 같지 않았던 그의 왼다리는 전기치료로 감각을 되찾고
건장한 물리치료사들의 부축을 받아가며
타고난 체력을 바탕으로 정상의 몸을 회복해낸다.
그런데, 이렇게만 줄거리를 이해하면 이 책의 가치를
모두 이해한다고 결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책은 그의 현란한 문체와 꼼꼼한 기억
그리고 의사가 환자가 된 특별한 경험이 다큐처럼 더해져
진정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같은 정서를 지니지 않은 외국사람의 에세이를
이렇게 재밌고 실감나게 읽어본 건 꽤 오랜만인거 같다.
이 작가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글을 잘 쓰는진 몰랐기에
이 책이 더 재밌었는지도 모르겠다.
제목이 원제목과 달리 약간 각색된 면이 있지만
그런 특별한 제목으로 바뀔 만한 주제를 다뤄서 이해는 되고,
무엇보다 사고부터 회복까지 결국 남의 일인데
읽는 사람이 본인의 일처럼 생생하게 빠져들어
읽을 수 있게 만드는 책의 흡입력이 대단하다.

j******3 2013.04.1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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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다리가 사라졌다!`라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몰랐을 때 이 모든 것은 은유로 표현된 것이고 올리버 색스 박사의 글은 심리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글은 실제로 사고를 당한 올리버 색스 박사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씌어진 글인 것이다.색스 박사는 노르웨이의 산을 오르다 만난 황소를 피해 급히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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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다리가 사라졌다!`라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몰랐을 때 이 모든 것은 은유로 표현된 것이고 올리버 색스 박사의 글은 심리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글은 실제로 사고를 당한 올리버 색스 박사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씌어진 글인 것이다.
색스 박사는 노르웨이의 산을 오르다 만난 황소를 피해 급히 길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다리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한다. 그는 자신의 사고정도를 파악하고 스스로의 상태를 외과적인 관점에서 학생들에게 설명하듯 자세한 관찰 결과를 늘어놓는다. 그러다 그는 곧 학생들은 가상의 학생들이며 그들에게 예를들어 설명하고 있는 환자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색스 박사 자신이 의사이지만 환자가 되어본 적은 없었던 그는 이 불의의 사고로 인해 처음으로 환자가 되어 수술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는 다리 수술 후 마비된 다리의 감각을 느끼지 못하면서부터 자신의 다리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하나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한 체험을 정리해놓은 것이 바로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인 것이다.

나는 그러한 경험을 해본적이 없어서 정확히 그런 느낌이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쩌다 문을 닫으면서 내 손가락이 저기 있는데?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내 다른 손이 문을 닫아버리면서 문틈에 끼인 손가락에 통증을 느끼며 빨갛게 부풀어오르는 경험을 한적은 있다. 그러한 느낌과 수술후 깁스를 하고 감각이 마비된 신체의 일부와 똑같은 느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장 근접한 느낌으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년전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시고 수술을 한 후 뼈를 고정시키기 위해 골반쪽에 고정쇠를 받은 채 침대에 누워 몇달을 지냈었다. 내가 볼 때는 그냥 골반쪽에 가로놓인 쇳대일뿐이었는데 어머니는 자꾸만 누운 자세로 그 쇠를 붙잡고 왜 당신을 눕히지 않고 세워두냐는 말씀을 하셨었다. 올리버 색스 박사가 간호사에게 부탁을 해서 자신의 다리를 들어주거나 옮겨달라고 할 때마다 자신은 간호사가 다른 일만 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실제로 간호사는 그의 다리를 제대로 옮겨놓고 수술실밥을 풀어놓은 것과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 이 책을 읽으면서 어머니가 그동안 했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면 어머니가 수술 후유증이나 정신적인 뇌손상의 문제가 아니라 올리버 색스 박사의 이야기처럼 신경단절의 결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환자가 되어보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환자의 입장이 되어 본 의사로서 체험한 병상의 기록은 참으로 대단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의학보고서처럼 딱딱하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올리버 색스 박사의 글은 냉철하고 논리 정연하면서도 그 자신의 유머와 문학적인 감각이 담겨있어서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r***2 2012.11.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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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다리를 찾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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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 박사는 홀로 산에 갔다 실족사 당하면서 톨스토이의 <하지 무라트>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다. 주인공(인지 모르는) 남자로 추측되는 군인이 치명적인 총상을 입은 뒤, "감정이 배제된 이미지들"이 그의 머릿속을 흘러가는 장면. 색스 박사는 자신이 지금 바로 소설 속 그 군인의 의식을 직접 경험하는 중이라고 믿었다. 100년을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며 보낸 인생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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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 박사는 홀로 산에 갔다 실족사 당하면서 톨스토이의 <하지 무라트>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다. 주인공(인지 모르는) 남자로 추측되는 군인이 치명적인 총상을 입은 뒤, "감정이 배제된 이미지들"이 그의 머릿속을 흘러가는 장면. 색스 박사는 자신이 지금 바로 소설 속 그 군인의 의식을 직접 경험하는 중이라고 믿었다. 100년을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며 보낸 인생의 마지막에도 그것들을 한 번씩 되살려보는 파노라마적 되새김의 시간은 아주 짧다고 한다. 다행히도 그는 의사여서 실족사에 대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가치료를 행할 수 있었지만 일반인들이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그는 당시 꿈결처럼 느리게 움직이는 의식과 사투를 벌이며 오로지 살기 위해 걷는다. 한쪽 다리뼈가 완전히 뒤틀린 상태에서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이는 오로지 산길을 엉덩이와 손 혹은 팔의 힘으로 썰매나 스키타듯 미끄러져 내려왔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는데서 온 강력한 의지는 산에서 홀로 맞닥뜨리게 될 만한 황소나 멧돼지에의 두려움을 완전히 불식시키기에는 부족했으나 죽음보다는 확실히 낫다고 판단했고, 죽음의 사투를 벌이던 산에서의 첫 경험으로 인해 의식과 육체의 분리현상에 대해 경험한다.

 

"마지막 생각이 모두 감사가 되게 하라"는 오든이라는 미국시인의 말에 대해서도 뼈저리게 깨닫는다.

 

바로 전날 성당에 앉아 C단조의 미사곡을 들었다는 생각과 그 곡이 실제로는 진혹곡이었던 것. 환청.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한 석양빛 속에 서있는 어떤 남자. 죽음의 고요. 모든 것의 침묵. 부동하는 물체들. 그는 한 순록사냥꾼 아버지와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반갑게도 되살아났다. 작은 병원의 의사는 네갈래근이 찢어졌다고,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만 말했다. 이후 그는 병원이 런던탑의 악명 높은 고문실 리틀이즈를 연상시킨다고 생각한다. 감각과 두려움. 전신마취의 의아함. 의사로서 환자가 되어 기이한 것들을 경험한다. 근육의 일종인 네갈래근이 손상되었을 뿐인데 이토록 끔찍한 대수술을 받고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고 물리치료사의 손길대로 움직이다보면 어느새 의지와는 다르게 이리저리 다른 위치로 가 있는 다리. 그는 근육감각에 이상이 생긴 것이었다.

 

"나는 내 다리를 잃었다"

"나는 '이 물건'을 모른다"

 

색스 박사에게 찾아온 감각의 단절은 신경과 전문의인 그에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내 몸의 일부가 내 것이 아니게 여겨지는 것이 바로 그에게 일어난 기이하고 신비로운 현상이었고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내 다리는 사라져버렸다. 다리가 통째로 잘려나갔다. 이제 나는 다리가 잘린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리가 잘린 다른 평범한 환자들과는 달랐다. 객관적으로나 외형적으로는 다리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다리가 사라진 것은 내 내면에서 주관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따라서 말하자면, 나는 '내면적으로' 다리가 잘린 사람이었다. 신경학적으로나 신경심리학적으로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나는 나의 내면에 있던 다리의 이미지, 다리의 표상을 잃었다. 뇌에 존재하던 다리의 표상이 흐트러지고 지워졌다. 신경학자들이 '신체상'이라고 말하는 것, 즉 나를 찍은 '내면의 사진' 중 일부가 사라졌다. 자아심리학의 용어들을 일부 사용해서 이것을 표현할 수도 있었다. 자아심리학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는 어려울 만큼 신경학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그러니까 '내적인 대상'으로서, 상징적이고 정서적인 '심상'으로서 다리를 잃어버렸다고 말할 수 있다. (p.85)

 

이게 내 다리인가요? 저 팔 좀 식사 후 함께 치워주세요.등등의 주문에 아, 저거 아저씨 다리잖아요.하고 응대할 수 있는 수준의 간호사와 의사들. 모르긴 몰라도 신경증으로 진단되어야 하거나 뇌과학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바, 내내 망상증 취급했으니 이 환자들 참 어이가 없었겠다. 다리가 아래쪽 그러니까 하체에 달려있고 이 부분을 사용해 걷는다는 것을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책의 제목에서 색스 박사가 밝힌 '침대에서 제 다리를 주운' 이들이다. 꿈을 꿈으로가 아닌 현실로 인식하고, 반맹증과 편두통 같은 것들이 동반되는 이것은 분명히 망상이 아닌 질병이다. 음악의 결핍과 소음의 압박으로 가득찬 방에 앉아 홀로 고독과 싸운다. 감각과 영혼을 마주하지만 이것이 곧 공포가 된다. 일종의 오지여행으로도, 연옥의 실현으로도 볼 수 있는 끔찍한 경험 후 색스 박사는 예술과 종교에 기대 위안을 얻으려고 했다. '우리는 진실로 인해 소멸하지 않도록 예술을 갖고 있다'는 니체의 말을 실현이라도 하려는 듯.

 

과학과 이성은 '무'에 대해서, '지옥'에 대해서, 영적인 '밤'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부재, 더움, 죽음'을 담을 공간이 없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맞닥뜨린 압도적인 현실은 바로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p.132)

 

열흘간의 사투 끝에 그는 갈라테아의 대리석 살처럼 다시 살아났다. 희망과 두려움이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상태만큼 캄캄한 시간들이 있을까. 어느 날 문득 걸으니까 걸어지더라는 얘길 하며 소생한 그는 칸트가 말한 '소생의 예술'처럼 영혼을 소생시킨 것 같았다고 한다. 길을 잃고 헤매던 순간을 잊고 갑자기 자유를 얻은 기분. 마비는 풀리고 자유를 얻었고 걸을 수 있게 되면서 회복과 재탄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14일간의 특별한 모험을 통해 얻은 체험에서 우러난 의학적 사고의 기반과 지식은 색스 박사의 환자들에게로 고스란히 투여되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바빈스키와 프로이트의 연구결과가 어쩌면 자기 다리를 잊어버리고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이들의 상태에 대한 이론고착화를, 괴테의 <파우스트>,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이 질환을 겪었거나 겪을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빙의해보는 기이한 체험을 선사할 고독과 불안의 텍스트로 볼 수 있겠다.



s*****d 2012.11.07.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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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 다리를 다시 얻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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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잡동사니의 역습』이라는 책을 읽고 쓴 글에서 언급했듯이, 임상보고서 같은 글은, 아무리 소프트하더라도 잘 읽히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역시 그 때 언급했듯이) 올리버 색스의 책은 다르다. 그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나 『화성의 인류학자』를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다.그래서 어떻게 이렇게 딱딱할 수 있는 얘기가 잘 읽힐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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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잡동사니의 역습』이라는 책을 읽고 쓴 글에서 언급했듯이, 임상보고서 같은 글은, 아무리 소프트하더라도 잘 읽히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역시 그 때 언급했듯이) 올리버 색스의 책은 다르다. 그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나 『화성의 인류학자』를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래서 어떻게 이렇게 딱딱할 수 있는 얘기가 잘 읽힐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런데 이 책은 심지어 (우리말로 번역은 최근에 된 책을 읽었지만) 1984년에 출판된 (거의 30년 전이다!) 책이다. 벌써 현재성은 상실했을 것 같고, 아팠다 나은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 있고, 공감을 가져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전에 읽었던 올리버 색스의 책과 이 책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었다』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이전의 책들이 자신보다는 자신의 환자에 대한 얘기, 그리고 그 환자들과의 교감에 대한 얘기였다면, 그래서 대상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고, 밀고 당기고를 나름대로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었다면, 이 책은 바로 자신이 환자로서 겪었던 일들을 기록한 얘기이다. 그런데, 잘 읽히고, 공감하게 된다. 왜 그럴까?

 

올리버 색스는 노르웨이의 산을 오르다 왼쪽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다. 홀로 두 팔과 한쪽 발로 산을 내려와 죽음 직전에 가까스로 구조된다. 그리고 수술을 받고, 몇 주간의 입원 생활과 재활원 생활을 거쳐 회복된다. 그 사이 그는 다리가 있음에도 그것이 없어졌다는 신경학적인 충격을 맛보았고,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듯 어뜻 보면 간단한 줄거리를 가진 얘기이다.

그렇다면 많은 투병기나, 치료에 대한 얘기와는 무엇이 다른가? 일반적으로 보면 많은 투병기들은 감정 과잉과 자신에 대한 특수화와 일반화를 지나치게 반복한다. 그러나 올리버 색스의 이 다리 골절과 수술, 그리고 회복 과정에 대한 책은, 역시 개인적인 얘기일 수밖에 없지만, 자신의 경험에 대한 솔직함과 함께 병에 대한 지나친 일반화를 지양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른 책들과 비교하여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병(여기서는 다리 골절과 수술) 자체에 대해서 쓰고 있지 않고, 그 병을 대하는 자세와 그 가운데 제기되는 신경학적인 문제를 끈질기게 붙잡아 생각하고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이처럼 극적인 경험을 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병에 걸린 경험이 있고, 그 병에서 회복되는 경험을 갖는다. 그러나 누구나 이처럼 아픔과 회복에 걸친 다양한 경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서 쓰지는 못한다. 바로 올리버 색스이기에 가능하다고 할 만큼 올리버 색스는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하고, 또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극대화했지만, 정의로 일반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스스로 일반화를 하도록 유기하고 있는 것도 올리버 색스의 특장이다. 그렇기에 1974년도의 사고를, 1984년에 처음 출판한, 그리고 1991년에 다시 덧붙인 이 책을 대한민국에서 2012년에 읽더라도 현재감을 느끼면서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2012. 10) 

YES마니아 : 로얄 n*****m 2015.11.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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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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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름만 보고 그 책에 신뢰를 보내며 모두 소장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많지는 않다. 하지만 그 흔치않은 경우에 해당하는 작가의 한사람이 올리버 색스이다. 그는 의사이면서도 대중을 상대로 하는 많은 책을 썼다. 자신의 경험을 잘 살리면서 신경정신과 의사가 전할 수 있는 지식을 간결하고 적절하게 알리고 충분한 사례를 보여준다. 때문에 그의 책은 또다른 세상을 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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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이름만 보고 그 책에 신뢰를 보내며 모두 소장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많지는 않다. 하지만 그 흔치않은 경우에 해당하는 작가의 한사람이 올리버 색스이다. 그는 의사이면서도 대중을 상대로 하는 많은 책을 썼다. 자신의 경험을 잘 살리면서 신경정신과 의사가 전할 수 있는 지식을 간결하고 적절하게 알리고 충분한 사례를 보여준다. 때문에 그의 책은 또다른 세상을 엿보는것같은 새로운 기분과 재미와 지식을 함께 얻어 읽은 후 만족스러움을 함께 느끼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이번에 개정되어 나온 이 책도 그랬다.

 

  제목이 제법 자극적이다. 한번 들으면 잊을 수가 없다. 저자의 다른 책과 다른 점이라면 환자로서의 경험을 서술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의사로서 환자를 만나고 증상을 보고 몸의 이상에 대해 연구했다. 하지만 이번엔 사고로 다리를 다쳐 수술을 받은 환자가 되었다. 흉측하게 변한 모습과 어떠한 움직임에도 감각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는 순수한 환자였다. 그 과정이 참 세세하고 그 많은 생각이 고스란히 적힌 글자를 따라가다보니 그의 절망적인 기분을 내것인양 느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그에게 안쓰러운 마음을 가진 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공감했던 것은 담당의사와의 원활하지 못한 소통으로 인해 환자였던 저자가 받은 스트레스였다. 나도 몇번 환자의 보호자로 병원에 있었던 적이 있다. 환자와 그 가족에게 참을성있게 궁금한것을 설명해주고 짜증을 웃음으로 받아주는 의사처럼 믿음직스럽고 고마운 사람은 또 없다. 반대로 그렇게 살갑지 못하고 제할말만 하는 의사에겐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다. 의사들은 환자들의 날카로운 감정으로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환자들은 의사의 말에 천국과 지옥을 왕복한다. 내게도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저자가 회복후에 의사를 왜그리 미워했었나 회상할때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그야말로 내다리가 내다리가 아닌 기이한 경험은 신경단절로 신체자아장애와 신체이미지장애를 겪고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와 이해로 이어진다. 그는 다리가 회복되면서 세상과 다시 연결되고 모든것을 아름답게 느끼며 무척 행복해했다. 음식을 먹으며 이를 사랑이고 입에 닿는 음악이라고 한 표현이 내게도 즉각 기쁨을 느끼게 했다. 이런 해피엔딩 이후 이어진 의학적인 설명은 고스란히 저자의 경험과 맞닿아있었다. 그의 연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신체의 일부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것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고나니 안타까웠다. 단순히 없어진 손가락이나 팔다리가 아직도 있는것처럼 느낀다 정도의 이야기와는 너무 달라 놀라기도 했다. 나는 이번에도 새로운 세상을 엿보았다.

 

l******o 2012.11.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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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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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이 다가오면 학교에서는 장애 체험 행사를 벌인다. 아들이 중학생일때 시각장애인 체험 행사를 하고 와서는 내게 그런 적이 있다. "엄마, 장애인 중에서 제일 힘든 게 시각장애인 같아.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너무 힘들었어. 엄마는 오른쪽 팔, 다리만 불편하니 그나마 다행이야"   나 또한 그렇다고 생각을 하곤 한다. 특히 장애인 복지관을 다녀오면 더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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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이 다가오면 학교에서는 장애 체험 행사를 벌인다.

아들이 중학생일때 시각장애인 체험 행사를 하고 와서는 내게 그런 적이 있다.

"엄마, 장애인 중에서 제일 힘든 게 시각장애인 같아.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너무 힘들었어.

엄마는 오른쪽 팔, 다리만 불편하니 그나마 다행이야"

 

나 또한 그렇다고 생각을 하곤 한다.

특히 장애인 복지관을 다녀오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몇 년 전에 복지관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선생님이 "왜 그게 안 되죠? 할 수 있어요"했을 때는

정말 짜증이 났다.

'아니 할 수 있는데도 안 한단 말인가?'

"선생님, 저도 정말 하고 싶은데요, 정말 안 되요, 그리고 이해가 되질 않아요.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예전에 내가 잘 걸었었는지도 의문이에요. 전 원래부터 못 걸었던 것 같아요"

 

가르치는 선생님도 짜증이 났겠지만 배우는 나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었다.

솔직한 심정으론 선생님이 멀쩡히 잘 걸어다니니까 내 심정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거라 생각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해를 못해"라며 복지관 동료들과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만약 물리치료사나 의사 선생님들이 환자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훨씬 더 쉽게 환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지은이 올리버 색스는 신경과 전문의이면서 책을 쓰는 작가이다.

주로 환자들의 사연을 책으로 펴내는데 이 책은 저자가 산에 올라갔다가 다리를 다치게 되고 우여곡절끝에 수술을 마치게 되지만 수술 후에 멀쩡히 붙어 있는 다리가 사라졌다고 느끼면서 겪었던 일들을 기록한

병상일지다.

 

저자는 예전에 의사였을 때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환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환자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자신이 직접 환자가 되면서 다른 환자들의 입장을 헤아리게 되고 자신처럼 수술 후 자신의 신체 일부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환자들의 증상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과정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가 걷는 법을 연습하는 과정이 내가 겪었던 과정과 너무 비슷해서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위로가 되었다. 간혹 다리가 멀쩡하게 있으면서도 다리가 없다고 느끼는 환자가 있는 반면 다리를 절단했는데도 자신의 다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환자 뿐 아니라 의료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조금이나마 환자의 입장을 헤아릴수가 있을 것이다.


 

k*****7 2012.11.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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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에서 내 팔을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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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이나 질병은 일상적 삶의 단절을 가져온다. 어느 날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니 내 오른쪽 손목이 덜렁거리며 전혀 말을 듣지 않는 고무팔이 되어버린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 '나는 침대에서 내 팔을 주웠다!' 마치 실 끊어진 연처럼 그렇게 신경이 끊어져 버리고, 갑작스럽게 내공을 모조리 상실한 무인처럼 마비된 근육이 늘어져 버린 경험은 놀람과 충격 그 자체였다. 야생마처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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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이나 질병은 일상적 삶의 단절을 가져온다. 어느 날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니 내 오른쪽 손목이 덜렁거리며 전혀 말을 듣지 않는 고무팔이 되어버린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 '나는 침대에서 내 팔을 주웠다!' 마치 실 끊어진 연처럼 그렇게 신경이 끊어져 버리고, 갑작스럽게 내공을 모조리 상실한 무인처럼 마비된 근육이 늘어져 버린 경험은 놀람과 충격 그 자체였다. 야생마처럼 한창 팔팔한 나이지만 처음 겪는 일이었고 자판을 두드리며 작성해야 할 글들이 산재해 있던 때라 내 마음은 초조하고 불안했다. 심한 말로 하룻밤 사이에 팔병신이 된 것인데 왜 이런 재수없는 일이 발생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처음엔 왼쪽벽에 밀착시킨 침대에서 팔을 뻗고 자다 보니 오른쪽 손목이 침대 가장자리에 눌려서 마비된 것으로 알았다. 지금이야 손목 터널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당시는 아직 그런 병명조차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던 그런 때였다. 선서를 하듯 손을 세우면 손목이 죽은 닭 모가지처럼 아래로 고개를 푹 떨궜다. 잠자리가 나빠 마비된 사지가 잠시 지나면 회복이 되듯 하루 정도가 지나면 손목도 곧 모터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언손이 녹듯 그렇게 지지직거리며 신경이 꿈틀꿈틀 회복될 것이라 지레 짐작했다. 하지만 하루가 이틀이 되고 고무팔이 사흘이 되도록 변함이 없자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결국 병원에서 서너 번의 치료를 받았지만 나는 매우 낯설어진 오른손과 더불어 한 달 가량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손목 터널 증후군은 내게 신체 이미지와 신체 자아에 대한 각성을 불러 일으켰다. 지금까지 한번도 병원에 입원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몸과 신경에 대한 깊은 성찰을 그 때 다 해버린 것 같았다. 당시 푸코와 메를로 퐁티의 책들에 심취해 있던 때라서 신체에 대한 담론적 지식은 풍부했지만 신경에 대한 의학적 지식은 백치상태와 마찬가지였다. 남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지적 호기심을 품어 볼 만도 하지만 막상 자신에게 닥치면 그리하지 못하는 게 사람의 생리다. 그래도 한 걸음 물러나 '고무손' 혹은 '젤리팔'을 바라보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고무로 만들어진 팔을 가진 사람이 되고 보니 신경심리학적인 문제와 이른바 문명병의 각종 증상들에 대한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또한 신체적인 장애가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큰 장애와 불편을 가져다 주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대학 부속 병원의 의사는 내게 손목 신경이 눌려서 그렇다는 말을 들려 주었다. 신경이 고작 눌렸다고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소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바르는 연고와 알약을 처방받고 난 뒤 더딘 회복의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다. 회복되고 난 뒤 몇 개월 뒤 같은 연구팀에 속하는 한 여자 선배가 왼팔에 깁스를 한 채 나타났다! 한창 학위논문을 작성 중인 선배인지라 단번에 알아차렸다. 바로 그 손목 터널 증후군이다! 선배는 현명하게도 한방과 양방치료를 겸비하면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동병상련은 남의 고통에 대한 깊이 있는 공감과 즉각적 이해의 표현이다! 환자의 고통과 애환은 환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올리버 색스의 병상기록《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를 읽으면서 절로 공감이 왔다. 나처럼 신경단절로 고생해 본 분들만이 아니라 단 한번이라도 병원 신세를 져 본 적이 있거나 팔과 다리에 깁스를 해 본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책에서 동병상련에서 오는 즉각적인 이해와 더불어 저자의 깊은 성찰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한 감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1974년 노르웨이에서 등산을 하다가 왼쪽 다리를 크게 다친 색스는 수술을 받았는데 그만 자신의 다리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는 병리현상을 겪게 된다. 자신의 사지 중 하나를 낯선 것으로 인식하거나 그것을 자신과 연관시키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다른 이의 것으로 믿게끔 하는 사례는 안톤 증후군, 병적결손증, 환각성 신체정신장애, 푀츨 증후군(시각-운동감각 이상) 등으로 불린다. 색스는 2주 후에 다리의 신경과 근육이 회복되는 전기적 활동을 느끼면서 신경감각을 회복한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입원'이 환자에게 미치는 정신적 심리적 피해에 대한 진술이었다. 입원한 환자는 마치 작은 감방에 갇힌 죄수들처럼 '죄수 신드롬'을 겪게 되는데 이것이 몸과 정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저자의 담론이 매우 철학적이면서도 의학적이었다. 특히 시각에서 입체감이 제약을 받아 시각적 축소가 일어나고, 존재론적 측면에서 세계의 협소화를 불러 일으킨다는 지적은 비인간적인 독방감옥의 악조건을 개선하고 폐지해야 한다는 인권단체의 주장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동안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은 두 가지였다. 아마 모든 환자들이 나와 똑같은 처지였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환자의 조건이니까 말이다. 그 두 가지 괴로운 일은 서로 합쳐져 있으면서도 또한 뚜렷이 구분되었다. 하나는 나의 존재와 공간이 유기적으로 단호하게 부식되는 신체적인('신체-존재론적인') 장애였다. 나머지 하나는 환자로 전락하면서 생겨난 마음의 문제(그다지 적절한 단어는 아니다)로, 특히 '그들'과의 갈등 및 '그들'에게 항복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그들'이란 의사, 병원 체제 전체, 병원 자체를 뜻한다."(189쪽)

 

병원에 대한 비판과는 달리 재활원에 대한 저자의 예찬은 남다르다. 환자들은 누구나 병원을 떠나고 싶어 안달이지만 한편 소중하게 보살핌을 받는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도 커가게 된다. 그래서 병원을 떠나는 것이 두려워서 실제로 사고를 저지르는 환자들이 꽤 된다고 한다. 바로 이런 환자들을 위해서 평화롭고 안락한 재활원과 같은 과도기적 공간이 필요하게 된다. 저자 역시 한달간 병원 신세를 지내지만 막상 나가야 되었을 때 다리에 깁스를 한 채 옥상에 오르는 충동적인 사건을 저지르다가 제지당하고 만다. 저자가 머문 햄스테드의 재활원은 수도원이나 대학처럼 분위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평화로운 곳으로 환자 생활과 세상으로의 복귀 사이에 존재하는 마법과 같은 공간으로 "토요일 아침 같은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는 안식처에 해당하였다. 저자의 재활원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 등장하는 폐결핵 요양원 베르크호프나 헤르만 헤세의 《요양객》에 나오는 바덴의 온천요양소를 떠올렸다. 베르크호프 요양원이나 바덴의 온천요양소, 그리고 재활원 모두 질병과 정상, 환자 생활과 일상 생활의 이분된 구도의 중간을 점하는 '사이의 공간'에 해당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환자 생활과 세상으로의 복귀 사이에 마법 같은 막간극이 허용되었다. 환자 생활과 가장의 의무, 안에 수용된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 과거와 미래 사이의 막간극이었다. 토요일 아침 같은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다. 일주일, 한 달이 지나도 그 눈부신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209-10쪽)

 


z***a 2012.10.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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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A Leg To Stand On(1984,1991) - 올리버 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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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신경학은 내적인 것(주체의 내적인 경험, 내적인, 구조, 주관성)을 배제하고 전적으로‘객관적인’ 연구를 하는 것, (물리학처럼) 공개적이고, 눈에 보이고, 증명이 가능한 것만 전적으로 다루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1. 그러므로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는 학문의 기준으로 봤을 때 이단적이었다. 하지만 그 이단이 오히려 우리에게 더 친숙하다. 왜냐하면, 신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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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신경학은 내적인 것(주체의 내적인 경험내적인구조주관성)을 배제하고 전적으로객관적인’ 연구를 하는 것, (물리학처럼공개적이고눈에 보이고증명이 가능한 것만 전적으로 다루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1. 그러므로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는 학문의 기준으로 봤을 때 이단적이었다하지만 그 이단이 오히려 우리에게 더 친숙하다. 왜냐하면,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가 사고를 당해 환자가 되어야 했던 불가피한 상황에서 느낀 내적인 것(주체의 내적인 경험,내적인구조주관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환자의 관점에서 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2.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는 작가와 비슷한 사고를 당해 몸의 한 부분에서 단절감을 느낀 사람들거기서 파생되는 내적인 것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감정들이 환자라면 당연히 느낄 수 있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림으로써 위안을 주려는 목적을 가진 책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내적인 것이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 논리적인 견해를 밝힌다. 사고로 인해 단절된 의식과 인간의 고등한 의식(시간과 공간을 개인화할 수 있고생각할 수 있고, 그것을 언어로서 표현한다.)이 만나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3. 이 책에 따르면 왼쪽 다리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그것을 다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무의식적으로 왼쪽 다리를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만약사고를 당한 부위를 가만히 내버려둔다면 단절감과 좌절감은 더욱 깊어진다. 실제로 작가가 그러한 경험을 했고내적인 것을 어떤 문학작품보다도 훌륭하게 보여준다.

 

작가가 처한 이 상황을 슬럼프에 빠진 상태(자꾸만 내면에 대화를 걸어서 의식가능한 세계가 좁아지는 현상)에 대입해보자면슬럼프가 찾아왔을 때그것에 깊이 빠져들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외부적인 영향력이 미치는 환경에 노출한다면 쉽게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4. 슬럼프 하니까 마의 산이 생각나는데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서도 주인공 한스 카르토르프가 순전히 사촌의 병문안을 갔다가 결핵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고 나서부터 늪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대는데, 자신의 의지로 극복하기 전에 누군가가 그를 바깥으로 꺼내봤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그랬으면 7년이라는 시간을 아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5. 결국이런 성격의 내적인 것은 겪지 않으면 좋지만, 혹시나 겪게 되었을 때 그것이 어떤 과정에 있는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나 마의 산같은 책은 경험을 했던 사람으로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대응책을 알려주는 선배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지 않은가이와 유사한 사고를 통해서 내가 느끼는 내적인 것은 대부분이 크게 다친 것은 아닐까 혹시 불구가 되면 어쩌나와 같이 모호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일 때, 그러한 일그러진 상태에서 발생하는 이 내면적인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을 안고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들이 별것도 아닌 걸로 병원에 찾아왔다는 아주 태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때, 그리고 응급 환자가 아니라 그냥 병실에 누운 일개 나일롱 환자 취급을 할 때, 의사와 환자 간의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낄법도 하고, 실제로 그런 경험도 있다.



k*******7 2012.11.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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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된 의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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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특이한 책. 이 책의 저자는 신경과 의사이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산에서 다리를 다친 저자는 자신의 왼쪽 다리를 인식하지 못한다. 아니 아예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낯선 물건처럼 여긴다. 사고 전까지 자신을 지탱해주고 무의식적으로 늘상 사용했던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잊어버린 것이다. 그로 인해 기괴한 악몽에 시달리고 왼쪽 절반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며 시야가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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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부터 특이한 책. 이 책의 저자는 신경과 의사이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산에서 다리를 다친 저자는 자신의 왼쪽 다리를 인식하지 못한다. 아니 아예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낯선 물건처럼 여긴다. 사고 전까지 자신을 지탱해주고 무의식적으로 늘상 사용했던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잊어버린 것이다. 그로 인해 기괴한 악몽에 시달리고 왼쪽 절반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며 시야가 평면적으로 보이게 된다. 자신의 신체이미지를 상실하는 것은 감각적인 정보의 입력이 차단되면서 감각피질에서 그에 해당하는 위치가 사라지며 대뇌겉질에 새로운 신체지도가 그려지는 것이라고 한다.

 병원에 누워있으면 모든 것이 낯설다. 이곳은 바깥 세상과는 다른 또 하나의 세상이다. 그렇다고 병원에 누워있는 사람들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다. 병원이라는 곳에 환자로서 들어가는 순간 이제까지 누려왔던 일상과는 다른 생활이 시작된다. 저자는 의사로서 환자의 경험을 하게 된다. 자신이 의사임에도 자신을 수술한 의사와 소통이 되지 않음을 느낀다. 자신이 환자로서 느끼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의사에게 설명받고 싶어도 그러한 상황이 허용되지 않는다. 환자로서 보호자로서 병원을 자주 들락거리는 나로서도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다. 병 자체보다도 병 때문에 두려움에 떠는 환자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환자의 말을 들어주는 의사를 만나기는 힘들다. 그래서 나는 의사를 선택할 때 의사의 명성 뿐아니라 의사의 태도나 주관도 고려한다. 명의보다는 심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전에 수술을 받고 한달 이상 쉬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저자처럼 상해를 입은 것은 아니지만 꼬박 하루를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있다가 그 다음날이 되자 일어나 앉을 수 있었고 침대에서 다리를 내리는 연습부터 해야 했다. 그리고 누웠다 일어나거나 몸을 옆으로 돌리는 일 자체가 통증을 참는 것과 함께해야 하는 일이었다. 퇴원 후에도 집밖으로 나가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마음은 수술 전과 같은데 몸이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이 답답했다. 저자가 자기 마음대로 자신의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데에서 느꼈을 당혹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는 유기체는 통일적인 시스템이라는 전제 하에서 고전신경학이나 신경심리학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경험에 근거한 '칸트'적인 과학을 탐구하여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학문 분야에까지 적용하고 다른 환자를 치료하는 저자의 태도는 그의 글 전반에서 나타나는 통찰력과 함께 신경학의 새로운 비전 제시로 이어지고 있다.

 총 7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마지막 장의 신경심리학적 접근에 관한 내용 이외에는 아주 쉽게 이해할 만한 내용으로 되어있다. 이 책이 체험에 바탕을 둔 글임에도 소설처럼 느껴지는 것은 저자의 박학다식함과 필력에 힘입은 때문일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내면의 변화와 회복의 과정을 따라가면서 상호관련성으로 통합된 인간의 존재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YES마니아 : 골드 c***p 2012.11.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