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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반주자학자인가? 한문학자 송재소의 말대로, 다산의 글 중에서 주자학과 뚜렷이 대립하는 부분은 전체의 20퍼센트도 안 된다. 하지만 그 20퍼센트가 참으로 귀한 것이다. 당시 공공연히 주자학에 반대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반주자학이라는 말보다 '탈주자학'이라는 말로 다산의 학문적 입장을 정리하고 싶다. 저자 함규진은 다산의 사상을 전통적 형이상학을 배격한 '상식주의'로 규정한다. 저자는 이를 '이(理)에서 상(常)으로'라고 표현한다. 맹자의 양귀(良貴)에 대한 해석이나 주역의 괘에 대한 비판적 해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다산은 형이상학적 이기론이나 음양오행설을 불신하고 실제 경험을 근거로 세계를 이해하려고 했다. 이는 서구의 철학자 칸트와 아렌트의 '공통감각론'이나 토머스 페인이 '상식'을 강조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다.
다산은 서구 자연과학의 기준에서 과학자였나? 저자는 만약 다산이 주자학적 자연철학에서 벗어나 서구적 자연과학으로 넘어갔다고 말한다면 이는 과장과 왜곡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다산은 결코 서구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논리실증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대다수 학자들이 강조하듯, 다산의 객관적 증거를 중시하는 합리적 학문자세와 과학적 실용정신은 서구의 경험주의와는 일맥상통한다.
다산은 도심으로 인심을 극복하고, 대체로 소체를 극복하는 인의 실천적 방법을 몸소 실천하려 했다. 주자학과 양명학이 마음이 착한 사람은 행동도 당연히 선하기 마련이라고 보는 반면에, 다산은 본성이나 기질보다는 오히려 정황에 해당하는 세(勢)를 더욱 강조한다. 즉 주위의 세가 선을 행하기에 곤란하면 착하게 살고 싶어도 그러기 힘들다는 얘기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다산의 상황주의자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상황주의자로서 다산은 사람의 본성과 개인적인 수양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제도와 규범으로써 누구나 선을 행하기 좋도록 북돋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다산은 모든 인간관계를 지탱하는 도덕적 가치로서 효(孝)·제(悌)·자(慈) 삼덕을 강조한다. 수직관계의 효제·자를 명덕이라 보고, 수평관계의 의(義)를 지덕이라 보았다. 효제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지키는 덕이라면, 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덕이다. 다산에게 효제자는 오전과 오교의 요약이자 인간에 대한 사랑, 즉 인(仁) 그 자체다. 다산의 경우, 의는 도덕 훈련이 잘된 소수의 사람만이 제대로 추구할수 있으며 악용되면 인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보았다.
다산은 왕권과 신권의 갈등 맥락에서 군주권을 보다 강화하는 쪽을 택했다. 이는 "차라리 폭군 한 명이 탐관오리 천 놈보다 낫다"는 식이 아니라 군주정치체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려고 고심한 것이다. 다산이 왕권강화를 위해 강조한 황극(皇極) 국가는 공평무사한 왕권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질서정연한 국가다. 따라서 다산은 서구식의 민주주의자는 아니다. 다산의 황극에 대한 신념은 그가 성인으로 흠모한 계몽적인 개혁군주 정조에 대한 굳건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정치경제적으로 극심한 당쟁 대립으로 인한 국가 기강의 해이와 관료의 부패와 착취로 민생이 도탄에 빠진 위태로운 현실을 본 다산은 대동법 시행의 문제와 사창제와 환곡제도의 문제점을 논하면서 신권보다 강한 황극의 군주제를 옹호한다. 대동법은 백성의 입장에서 참으로 편리한 법이었지만 김집과 송시열과 같은 대신들은 대동법을 반대했고, 환곡제도 역시 백성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간악한 아전들이 장부를 조작하거나 법전에도 없는 추가비용을 강제하는 식으로 오히려 민생에 큰 부담을 주게 되었다.
다산은 천주교도였는가? 다산의 말대로, 다산은 한때 천주교에 혹했지만 얼마 뒤 깨끗이 절연했다. 일부는 다산을 배교자 또는 숨은 신자라고 보는데, 원죄설과 천당지옥설 등 천주교도라면 따를 수 밖에 없는 교리를 철저히 무시한 점으로 보아 다산이 한때 신자였다 해도 끝까지 그랬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산은 상제의 재발명을 통해 사회체제를 유지하려고 했다. 다산은 상제를 "하늘과 땅, 귀신과 인간 밖에 존재하시며, 하늘, 땅, 귀신, 인간, 만물을 조화롭게 하시며 주재하시고 제어하시며 평안히 하시고 기르시는 분"이라 말하면서 인격신으로서의 상제를 재조명한다. 저자는 다산이 이렇게 상제의 기능을 강조한 것은 천주교의 영향도 아니고 전근대적 세계관으로 회귀한 것도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도덕적 주체가 되기 위해선 "신이 없다면 발명할 필요가 있다"는 통치 논리를 관철시킨 것이라고 해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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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중기를 만들었으며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 내가 다산 정약용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러다가 즐겨보던 드라마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 적이 있었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런 시는 시가 아니고,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다.”
저런 이야기를 하는 ‘정약용’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제서야 그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고, 이런저런 책을 뒤져보게 되었다.
배경지식이 워낙 없던 터라 읽기 쉬운 책 위주로 몇 권을 읽었으나 그가 어떤 사상을 지녔고, 구체적으로 어떤 주장들을 했는지에 대해 속 시원히 알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북 페스티벌 기간이었던 파주출판단지에 갔다가 한길사에서 나온 ‘정약용;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다’를 보게 된 것이다.
정약용의 저작들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 좋겠지만, 고전이라고는 제대로 읽어본 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선뜻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아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초반에는 저자의 주관적 견해가 강하게 느껴져서 나의 의견을 형성해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가 좀 들긴 했다.
하지만 읽는 동안 내가 한 판단은 저자는 정약용의 굉장한 팬일 뿐 아니라, 솔직하게 정약용을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산의 훌륭한 점은 높이 평가하되, 전근대적인 주장이나 반개혁적인 생각에는 ‘확실히 그렇다’라고 이야기한다. 대신에 당시 상황이 동서양이 다른 점, 현재와 다른 점을 살피어 그런 주장이 나오게 된 상황을 보고자한 면이 마음에 들었다.
책을 가만 보고나니, 200여년 전의 일임에도 지금과 사뭇 겹쳐지는 장면들이 많다.
[지금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백성의 덕이 약해서다. 그러면 왜 덕이 약해졌는가? 물적 조건이 나쁘기 때문이다. 왜 물적 조건이 나빠지는 것을 막지 못했는가? 정치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연이어 일어난 끔찍한 성범죄나, 묻지마 살인 등의 피의자들을 보다보면 한가지 공통점을 알 수 있다. 모두가 하나같이 사회 안전망 안에 있지 못한 사람들이다. 사회의 양극화가 극심하게 진행되면서 삶의 기본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러한 문제는 정치가 제대로된 제도를 만들고 사회를 정비해나가야 점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는 물적조건이 극심하게 나빠져 백성의 덕이 약해진 것의 원인을 잘못된 정치에서 찾아낸 다산의 생각과 거의 일치하는 부분이 아닐까한다.
다산처럼 유능하면서도 백성을 사랑할 줄 아는 인물이 유배당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정치의 후진성 또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와도 매우 닮아있다.
때문에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대통령 선거를 앞둔 이 시기에 이 책이 시사하는 바가 크겠구나 싶었다.
다산은 상식을 존중했고, 세상을 사랑했다. 그래서 이십년이 가까운 세월동안 알아봐주는 이 없이도 혼자 글을 써내려간 고독함을 이겨내온 것일테다. 백성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 그는 수없는 저작을 쏟아냈고 그 저작의 대부분 결국 백성의 삶과 연관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다산처럼 진심어린 사랑으로 우리 사회의 수많은 곳을 어루만질 이가 나타나길 바란다. 그에게서 진정한 학자와 진정한 정치인의 모습을 그려본다.
++덧붙이는 의견)) 디자인이 좀 세심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용문을 꼭 색깔을 넣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폰트도 좀 잡다하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챕터제목별로 색깔 박스를 넣었는데, 책을 옆에서 봤을때, 박스의 색깔이 보이는 페이지도 있고 보이지 않는 페이지도 있다. 이건 좀 신경을 안쓴게 아닐까 하는생각이 든다. 요즘엔 책 내용 만큼이나 디자인도 훌륭한 시대라 일관성이 없는 부분이 한번 눈에 띄니까 자꾸 신경쓰이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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