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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國父)라는 말은 현대에 들어서는 잘 쓰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 "아버지" 같은 존재가 따로 있다는 게
넌센스이며, 어떤 의미에서라면 있어서는 안 되는 개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반대로 허위에 가득찬 확대 가부장 상징 체계가, 독재로 쉬이 이어지는 비극이 부를 부작용이 더 크다는 의미에서겠죠.
그런데 현대의 터키 공화국에서는 사정이 그렇지도 않나 봅니다. 지금은 사세(社勢)가 많이 주춤해진 시사주간 TIME의 경우,
밀레니엄이 바뀌기 전 독자 온라인 투표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뽑으려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때, (우리 못지 않게 인터넷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유저들이 좀 극성맞은 곳인) 터키의 거주자들이, 케말 파샤라는 인물에 대해 전략적 투표 행태로 임하는
바람에, 해당 매체를 구독하는 평균 독자의 성향에 무관하게, 이분이 압도적 1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TIME은
이례적으로 특별 성명을 내어, "터키 국민의 입장에만 서려 하지 말고, 세계 시민의 처지에서 해당 투표를 바라봐 줄 것"을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아타튀르크"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만 해도, 정규 교육을 받던
시기, 교과서나 방과 후 활동에서 이 인물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중학교 과정 사회과에서의 셰계사 커리에서는 언급이 안
된 것 같고, 고등학교 때에는 아마 교과서에 그 이름이 실려 있었겠으나 출제 비중이 미미했던 탓에 기억이 잘 나질 않네요. 제가
이 인물의 생애에 대해 처음 배운 건, 집에서 구독하던 일간지의 주말 특집 어린이용 섹션에서였습니다.
흔히 이
인물에 대해서 오해하는 바가 있던데요. 케말 파샤는 쿠데타로 터키의 정권을 잡은 케이스가 아닙니다. 그렇기는커녕(즉,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행위로 권좌에 오르기는커녕), 국제 정세의 흐름을 잘못 읽고 동맹국(독-오 동맹) 측에 가담하다 영국 등의 응징을
받고, 혼란과 권력 공백을 틈타 아나톨리아에서 이삭줍기를 기도하던 그리스의 침략을 받아 말 그대로 국망(國亡)의 위기에 놓였던
터키(터키라는 정식 국호부터가 근대 공화국 체제 수립 후의 산물입니다. 그 전에는 exonym에 지나지 않았죠)를 건국한
사람입니다.
그는 직업 군인으로서 탁월한 전략 능력을 보였고, 누구보다도 용맹한 기백으로 적군과 맞섰으며, 그 결과
아나톨리아 본토 수호는 물론 이스탄불 위요지인 유럽의 일부까지 재탈환하여, 종전 협상과 국경 획정에 관한 전면 재조정을 이뤄
냈습니다. 물론 술탄이 다스리던 시절의 영역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협소해진 판도였으나, 그가 아니었다면 아마 수천만 터키인은
지금의 쿠르드족처럼 나라 없이 떠도는 신세로 전락했거나, (그리스가 식민 체제 혹은 합병 종속 구조를 오래는유지할 역량이 못
되었겠으므로) 현재의 이라크처럼 구심점 없이 사분오열된 안보 부재의 역정을 이어나가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이 지역이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냉전의 승패가 미-소 중 과연 누구에게 유리하게 기울었을지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그는 또한 이슬람 성직자가 강력한 영향을 끼치던 신정 국가 체제를 강력히 지양하고(술탄 통치 하에서도 그닥 종교의
영향이 크지는 않았습니다만), 철저한 세속 국가의 시스템과 헌법적 기반을 구축하려 노력했습니다. 아랍 문자 대신 로마자를
채택하고, 페즈 같은 전통 복식을 폐지하여, 그 자신부터 잘 손질된 맨머리를 서양식 양복의 착용과 함께 공식 석상에서 노출하고
다녔습니다. 풍채가 의젓하고 미남형이었던 그는, 이런 외형적 트렌드를 국민의 일상에 빠르게 심는 데에 아주 적격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업적을 이룬 인물이라면 아예 세습 왕조(터키의 역사에서 그토록 친숙한)를 구축해도 무방했을 텐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 욕심 때문에, 일생을 통해 스스로 마련해 온 근대 국가의 수립이라는 사명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도 터키인들이 그의 인격과 업적에 감복하는 이유는, 말과 행동이 따로 놀지 않는 이 같은 청렴하고
고귀한 그의 정신에 여전히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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