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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않은 세계를 상상으로 창조한 것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 <인셉션>에서 천재 소녀가 함께 꾸는 꿈을 위해 실험적으로 설계했던 반으로 접히던 도시다. 아무리 현실적인 사람일라도, 그런 종류의 기발하고 환상적인 장면에 감탄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상의 세계에서 과학적 파라다임의 벽은 쉽게 사라진다. 중력은 무시되고 시간은 균질성을 잃는다.
이 책의 배경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20세기 초 쯤에서 시간이 멈춘 어떤 도시이다. 이름도 없는 시대도 알 수 없는 이 도시에서 사람들은 몽유병 환자들처럼 꿈 속을 살고, 안개 쌓인 거리는 온통 잿빛이고, 거리엔 매일 비가 내린다. 인셉션의 도시처럼 환상적 신기함이 미로처럼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도시가 아니다. 도시의 외향은 비루한 현실적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그 현실속에 비현실적 풍경들이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탐정 소설의 주인공 언윈이 매일 비에 젖어 질척거리는 양말을 낡은 구두 속에 신고 자전거를 타고 빗속을 출근하는 곳은 고층으로 올라갈 수록 안개에 점점 히미해지는, 거대하고 높은 건물의 '탐정 회사'다. 영화 <설국열차>처럼 계급과 계급이 철저하게 구분되어 있고, 계급간 대화와 이동, 통신이 차단된 디스토피아적 사회다. 상관과 부하 직원 사이의 개인적 관계가 통제되어 있어서 배달부를 통해 상하층으로 배열된 수직적 계층 구조 사이로 업무가 하달된다. 엘리베이터의 모든 층을 액세스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배달부 뿐이다. 상관이라 하더라도 그 수직 관계에 더 많은 특권이 부여된 것은 아니다. 그저 높은 층에 있고 업무가 아래로 흐를 뿐이다. <설국얼차>와 같이 노골적으로 자본주의적 계급 사회를 빗대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실무자들 사이에서 음성이나 구면을 통해 작업하기 보다는 이메일로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는 현대, 현실의 많은 사무실 작업 환경과 크게 다른가. 효율성 내에서 파생된 공상적 조직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친절한 해설을 기대하고 읽은 책의 마지막 해설 편에서 듀나라는 필명을 가진 평론가는 엄청나게 많은 전문 작가들과 전문 장르들을 언급하며 '이 모든 것이 장르적 패러디다'라고 얘기한다. 난해한 책의 해설까지 난해할 필요가 있을까만 어쨌든, <탐정매뉴얼>은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단서를 모으고 추리를 한다는 점에서는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배경과 몽환적 공상적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는 환상 혹은 공상 문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읽기가 어려웠다. 장면과 장면의 연결 관계를 추리해야 했고, 부분 부분은 읽을만 해도, 전체 속에 하나로 연결되는 서사구조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여기 저기서 이야기는 단절되고 단절된 부분들은 한참 뒤에 다시 계속 언급되며 찔끔찔끔 설명된다. 너무 많은 세부사항들이 사건의 단서와 혼동되어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언윈은 꿈을 세세하게 꾸는 사람이다. 꿈 속의 세부 사항, 현실 속의 세부사항이 한첨 뒤의 어느 지점에 가면 하나로 만난다. 그리고 그것을 단서로 알고 읽어 나가다 보면, 또다른 세부 사항이 합체했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건물의 14층 소속 서기인 언윈에게 갑자기 주어진 탐정 일에는 매뉴얼이 따라온다. 언윈이 읽은 구절 '세부 사항을 단서로 혼돈하지 말아라'라는 부분은 독자에게는 단서로서의 위상을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말장난이다. 독자는 어떻게 세부사항과 단서를 혼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장면이 무엇을 왜 어디에서 하는 것인지를 파악하기도 힘든 판에 말이다.
1/3 쯤 되었을까. 어떤 지점이 지나자 나는 조금씩 이런 몽환적 방식의 서술이 익숙해졌다. 이 소설의 이질적 요소들을 수용하고 나면, 새로운 장르로서 그리고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호응하며 처음에 기대했던 추리소설의 형식적 익숙함를 잊고 이 새로운 장르의 소설을 나름대로 즐길 수 있게 된다. 그 이질적 요소란 이런 것들이다.
이 소설은 탐정 소설이 아니다. 물론 듀나의 설명처럼 장르적으로 탐정 소설의 형식을 고루고루 갖추었으므로, 장르적 패러디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탐정 소설, 범죄 소설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교묘하게 독자를 혼란에 파뜨리는 작가의 함정을 우회해서 읽는다면 이제까지 읽어온 소설과는 다른 새로운 소설을 읽는다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도 있다.
이 소설이 탐정소설이 아닌 이유 첫번째, 이 소설에서 죽음은 끔찍하지 않다. 살인은 범죄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다. 끔찍하고 참혹하고 죽음을 묘사하는 방식은 인간의 절망과 욕망을 드러내는 장르 소설의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죽음은 우스꽝스럽다. 살인 사건의 목격은 마치 코미디의 한 장면 같다. 그 이후에도 총을 쏘고 죽고 죽이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그 죽음들의 무게는 새털처럼 가볍다. 죽음이 소설을 끌고 나가는 주요 동력이 되지 못한다면, 그 소설은 범죄 소설, 탐정 소설일까? 두번째로 대개의 장르소설에서처럼, 비밀이 천천히 드러나는 방식은 소설의 긴장감을 계속해서 높여줌으로써 마치 탐정소설과 같은 효과를 주지만, 결국 그 인과관계가 설득력이 없다. 현실적이지 않은 배경속에서 현실적이지 않은 목적들로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얽히고 섥혀 있고, 지나간 사건들의 오류 속에서 현재의 사건들이 발생하지만, 그 인과관계를 밝히기엔 불충분한 심리묘사 불충분한 인물의 성격들로 답답함을 준다. 대신 사건이 진행되며 사건이 설명된다. 그러므로 독자로서 탐정 소설을 읽으면서 으레히 가지게 되는 왜 라는 논리적 필요조건을 포기하고, 엘리스가 동굴에서 만난 많은 기이한 것들처럼 그 기이한 현상들을 즐기면서, 꼬이고 꼬인 사건들이 풀려가는 과정을 읽어가면 된다. 그것이 이 책을 재밌게 읽는 방법이다.
이 소설이 유일하게 어떤 하나로 수렴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꿈과 현실 그 모호한 경계에 대한 것이다. 책 속에도 장자의 호접몽 이야기가 언급되지만, 이 책은 전체로서 호접몽과 같은 알레고리를 갖는다고 볼 수도 있다. 장자가 꾸었다는 나비의 꿈, 나비가 꾼 장자의 꿈. 거기에 탐정적 형식을 취해 디테일을 가미한 것이라고도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들은 꿈을 통해 의식을 제어한다. 사건의 발단도 꿈 속에서 있었고, 사건의 해결 역시 꿈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이상한 탐정 회사의 비밀은 무의식을 수사하는 임무를 맡은 감독관이라는 계급의 존재에 있었다. 그리고 꿈의 탐정이라는 세계가 그려내는 환상적 디테일은 이 소설이 가진 가장 독자적이고도 위대한 영역이다. 컴퓨터도, 스마트 폰도 없이, 어떤 최첨단의 장치도 부재한 약 1950년대 쯤으로 추정되는 애매한 아날로그 시대에, 읽기 전용의 재생 꿈과 같은 개념을 가진 레코드판 주파수가 등장하고, 죽은 자의 의식 속에 들어 있는 단서를 찾아 꿈의 형상을 소리로부터 재생해 내는 모습은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를 열어준다. 의식을 지배하기 위해 꿈 속에 들어가지만, 결국 그 꿈에 갇히고 마는 모습, 누가 누구의 꿈에 있는지 꿈이라고 얘기하는 것들이 사실은 현실이고 현실이라고 얘기하는 것들이 꿈인 것은 아닌지.. 이런 몽상들을 하면서 따라 읽는 <탐정매뉴얼>을 읽는 내내 잠과 꿈과 같은 몽환적 서술 때문인지 자주 잠이 왔고, 실제로 여러 차례 책을 읽다가 잠들게 되었다. 문학은, 예술은 기존의 가치에 저항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성스러운 작업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 흥미로운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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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매뉴얼’이라는 책이 나온다고 했을 때 관심을 가졌다. 탐정이 나오는 소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탐정이 나온다고 그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이상하게 관심을 가졌던 것을 만나보면 그것과는 아주 다를 때가 많다. 기대하지 않았을 때 더 낫기도 하다. 무슨 기대를 했느냐고 하면 대답할 말은 없다. 기대한 것과 달랐다고 말하는 것은 내 느낌일 뿐이다. 이런 책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 책은 2009년에는 해밋 상을, 2010년에는 크로퍼드 상을 받았다고 한다(추리소설과 환상소설에 주는 상). 내가 이 책에서 재미를 잘 찾지 못한 것뿐이지 책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아주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다. 그냥 추리소설과 다를 뿐이다. 이 책을 보다보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생각나기도 했다. 왜 이게 떠올랐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책보다 영상으로 보면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처음부터 분위기를 알 수 있을 듯하다. 이런 말은 조금 이상하구나. 영상도 글이 있어서 나온 것이니까. 내가 책을 보면서 여기 나오는 것을 머릿속에 더 잘 그려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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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이란 존재는 오해의 산물입니다. 소설에서 탐정은 주로 명석한 두뇌로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고 누구도 보지 못했던 사건의 진실을 찾아내 숨어있는 범인을 잡습니다. 덕분에 탐정은 진실의 발견자이며 질서의 구현자라는 칭송을 얻습니다. 범죄는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회에 혼돈을 가져옵니다. 범죄의 본질은 법의 이름 아래 꽉 짜여 있는 직물과도 같은 질서를 끊고 교란하던 것이니까요. 탐정은 그 끊어진 직물을 다시 잇고 얽힌 질서를 잘 풀어 되돌리는 이를테면 수선공 같은 존재입니다. 그게 우리가 아는 탐정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착각입니다. 탐정은 진실을 발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만드는 존재죠. 또한 질서를 구현하는 존재도 아닙니다. 단지 그 얼룩을 덧칠해서 임시로 보이지 않게 할 뿐입니다. 그는 솜씨 좋은 수선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저 그런 척을 할 뿐입니다. 솜씨 없는 자들일수록 대개 현란한 말솜씨로 자신의 무능을 가리기 마련입니다. 탐정도 그러합니다. 그의 화려한 수사는 진실을 찾지 못하고 질서를 바로 잡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을 가리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가진 탐정의 모습은 허상입니다. 조작된 신화에 불과합니다. 그건 소문만 무성할 뿐, 정작 실체를 본 사람은 드문 망령과도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탐정은 자본주의의 망령입니다. 그는 느닷없이 출몰하고 배회하면서 사람들에게 사회가 안정적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줍니다. 보통의 망령은 현실 세계를 상대화 시키지만 탐정이란 망령은 다릅니다. 그는 현실 세계를 절대화시키기 위해 나타납니다. 그의 화려한 수사는 이 세계를 빠져 나갈 출구가 없다는 흐느낌입니다. 그가 세우는 것은 질서가 아니라 창살입니다. 그는 우리를 감금하고 교도관이 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자본주의가 그런 탐정을 낳았습니다. 그는 역사적으로 분명한 자본주의의 자식입니다. 탐정의 탄생이 가능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모든 가치 질서를 근본부터 뒤엎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신이 지배하던 중세에는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의 높이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계급은 하늘이 정했고 한 번 정해진 이상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경쟁은 원천적으로 배제되었습니다. 그건 오로지 더 많은 영토를 위한 왕과 귀족들만의 것이었고 나머지 농부들은 언제나 변함없는 소박한 일상을 살아갔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유행병이 있었고 자연은 언제 사납게 돌변할 지 몰랐으며 야밤에 강도떼나 이웃 나라 군사의 침입을 받게 되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도처에 많은 위험이 있었지만 스스로 보호할만한 수단은 적었던 그들이었습니다. 정글에서 주위 사정에 민감한 쪽은 대부분 생태계의 약자들입니다. 육체로 부터 달리 생존 수단을 얻을 수 없는 이들이기에 바깥의 정보를 최대한 모으는 것으로 생존을 이어가려 합니다. 이렇게 약자일수록 정보가 중요합니다. 중세의 정보는 지금처럼 책에서 구할 수 없었습니다. 글을 아는 자는 압도적으로 적었습니다. 대부분 수도사만 글을 알았으니까요. 그러니 정보는 오로지 경험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경험을 한 자가 사회의 우대를 받게 됩니다. 그가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으니까요. 아니면 많은 곳을 떠돌아다닌 여행자이거나. 보편적이었던 이방인에 대한 환대는 그런 이유인 것입니다. 오래 산 사람에 대한 존경도 그 때문입니다. 살아온 세월만큼 정보가 축적되어 있으니까요. 네, 중세 시대엔 연장자에 대한 존중이 현대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지금처럼 늙은이들을 뒷방 노인네 취급 하지 않았습니다. 그 연륜에 깃든 경험 때문이죠. 우리나라의 경로사상도 그와 같은 맥락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이제 계급은 하늘이 아니라 돈이 정합니다. 사다리가 올라갈 수 있는 고도의 제한은 이미 없어졌고 하늘 아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했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하지만 이기는 방법은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는 오로지 상품 생산을 통해 목숨을 이어갑니다. 무조건 상품을 많이 만들어 많이 파는 것. 그게 자본주의의 지상 명령입니다. 뛰어드는 사람은 훨씬 많아졌는데 달릴 수 있는 루트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가치가 '돈'으로 단일하기 때문이죠. 자본주의 속의 사람들을 자주 경마장의 말에 비유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단일한 루트' 이것이 궁극적으로 지금의 노인 문제를 가져온 원인입니다. 경마장의 말에게 중요한 것은 연장자의 경험이 아닙니다. 오로지 필요한 것은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근력 뿐이죠. 똑같이 자본주의는 상품을 많이 생산할 수 있는 노동력만이 최상의 수단입니다. 더이상 노인네 경험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매일 똑같은 물건만을 만들 뿐인데 들어봐야 어디다 쓰겠어요? 근력이 딸리는 노인네들은 생산을 저하시키는 방해물일 뿐입니다. 노인의 지위 격하가 가속도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누구나 노인이 됩니다. 육체의 쇠약은 필연적입니다. 궁극에 있는 죽음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지만 싫습니다. 쇠약이나 죽음 모두 자신이 경쟁에 뒤쳐지게 만드는 것이니까요. 노인 혐오와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산물입니다. 바로 그 공포가 추리 소설을 낳았습니다. 죽음이 삶의 당연한 결과로 여겼던 중세에선 추리 소설의 탄생은 불가능했던 것이죠. 현대인들에게 지나치게 죽음에 대한 강박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기필코 피해야 할 것이기에 관심이 그만큼 높아집니다. 추리 소설은 그 강박을 먹고 자라났습니다. 죽음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해 태어난 것이죠. 추리소설을 통해 이제 죽음은 분석의 대상이 됩니다. 탐정들은 무엇보다 임상의로 나타납니다. 그는 죽음이 가지고 있는 공포에 맞서 철저한 분석으로 죽음을 인간의 운명이 가진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로 만들며 결국 죽음이 가진 공포를 무화시켜 버립니다. 공포는 오로지 미지의 것에서만 옵니다. 정체를 알 수 없기에 무서운 것입니다. 파악 가능하다면 공포는 사라져 버립니다. 탐정이 하는 일이 그것이었습니다. 탐정은 죽음의 공포 때문에 벌벌 떨던 현대인들의 '고스트버스터'였습니다. 이제 왜 제가 탐정을 자본주의의 망령이라 언급하는 것인지 아실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가져온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불현듯 출몰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죽음이란 음산한 묘지를 배회하는 존재입니다. 중요해진 것은 얼마나 철저하게 분석할 수 있느냐 입니다. 아주 작은 것까지 분석할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탐정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자질이 관찰하고 파악하며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사람들이 그러한 탐정의 능력에 열광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 능력이 자신이 가진 죽음에 대한 공포를 희석시켜 주기 때문이죠. 셜록에 대한 찬사와 동경은 그가 나를 죽음의 공포에서 건져주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분석과 설명이 납득할만한 것이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납득하지 못하면 공포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보편적으로 납득 가능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규칙입니다. 중세에는 이런 규칙을 만들기가 어려웠습니다. 경험이 가진 개인차가 들쑥날쑥이라 보편적 잣대를 세우기가 어려웠으니까요. 하지만 근대에는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분석과 설명이라는 데 있어서는 정말 좋은 심판이 존재합니다. 바로 과학입니다. 그 과학이 모두를 납득시킬 규칙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합리성'이 태어났습니다. '합리적이다'라는 말은, 달리 말하면 분석과 설명이 과학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과학이란 벗의 도움으로 탐정은 이제 '합리'의 망토를 두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아무리 말도 안되는 가설을 세우고 근거를 제시하더라도 '합리의 규칙'에 의거해 타당하기만 한다면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고 급기야는 유일한 진실마저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시겠지요? 왜 탐정이 궁극적으로 무능한 존재라고 하는 지를. 탐정이 근거하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오로지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현실에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합리성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합리성에다 현실을 그리스 신화의 프로쿠르테스의 침대처럼 끼워 맞춥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겐 매뉴얼이 있습니다. 모든 현실은 오로지 그것을 통해서 재현되고 해석되어야만 합니다. 진짜 현실은 탐정에게 필요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가설과 설명을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납득시켜 줄 매뉴얼 뿐입니다. 매뉴얼이 없으면 탐정은 무능으로 전락합니다. 진실도 입증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질서를 구현하겠습니까? 현실의 질서는 이미 그에게 소용없는데. 탐정에겐 오로지 매뉴얼의 질서만이 중요합니다. 그는 그 질서를 현실에다 세우는 것입니다. 질서의 구현이 아니라 사실은 질서의 왜곡입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구요? 바로 제더다이어 베리의 '탐정 매뉴얼' 때문입니다. 처음 이 책을 보고 제가 기대했던 것은 고전 스타일의 추리 소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저의 기대를 무참히 배반했습니다. 놀랍게도 이 소설은 제가 지금까지 말했던 탐정의 역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지만 결국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탐정의 한계에 대해, 모든 질서의 구멍들을 메우고 바로 잡아줄 것 같지만 정작 하는 건 있는 질서마저도 왜곡 시키는 탐정의 사기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장르가 발전하면 이런 작품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스로 자기가 기반하고 있는 장르의 규칙을 허물고 그 그라운드 제로에서 장르가 가진 규칙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해석하여 새로운 의미를 밝혀주는 작품이 말입니다. 그런 것을 흔히 '자기 반영성의 작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 장르가 궁극에 달했을 때 한 차원 더 높은 단계로 진화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태어나는 일종의 도약을 위한 발판과 같은 것입니다. 단언컨대, '탐정 매뉴얼'이 그런 작품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설명하기 위하여 위에서 저렇게 구구절절 써내려갔던 것입니다. 과연 제가 설명을 잘 했는 지 모르겠습니다. 미흡하다면 바로 '탐정매메뉴얼'을 읽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 설명은 어디까지나 '탐정 매뉴얼'에서 나온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물론 제더다이어 베리가 작품에 투영한 의미를 제대로 잡아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탐정물의 진화된 형태를 구경하고 싶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꽤나 독특합니다. 저는 마치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세계에 초대된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소설 자체가 환상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서 말하고 몽유병자도 나옵니다만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몽환의 미로 속을 몽유병자가 되어 걷고 있는 듯 했습니다. 고전 스타일의 추리 소설을 기대하셨다면 어느 순간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소설입니다. 책이 벽으로 날아가지 않으면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영화를 보셨다면 소설의 내용이 좀 더 수월하게 이해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영화 '다크 시티' 보셨나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소설 속 어떤 부분의 설정이 이 영화의 세계와 많이 유사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인셉션'도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와! 아직도 전 주인공의 이름조차 말하지 않았군요. 그런데도 이렇게나 길게 썼다니 새삼 제가 대견해질 정도입니다. 이름은 언윈입니다. 그는 한 탐정 회사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탐정은 아닙니다. 탐정이 한 일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서기'입니다. 이 '서기'라는 게 왜 나왔는 지는 '왓슨'만 생각해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왓슨' 역시도 홈즈의 서기나 다름없었으니까요. 소설 자체가 홈즈가 한 활약에 대해 왓슨이 쓴 보고서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아가사 크리스티의 탐정 '엘큘 포와로'의 동반자 헤이스팅즈 대위도 왓슨과 똑같이 '서기'라고 할 수 있죠. 전통적으로 추리 소설에선 '서기'가 꼭 필요합니다. 기록을 통해 탐정의 천재성을 널리 알려야 하니까요. 옛날에 알렉산더 대왕은 '트로이'에 나오는 아킬레우스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아킬레우스에겐 호머와 같은 시인이 있어 그의 업적을 영원히 아름답게 남길 수 있는데 자신에겐 그런 시인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죠. '서기'란 그런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가 정작 유포하는 것은 탐정의 천재성이 아니라 합리성의 환상이죠. 회사에서 언윈의 존재 가치도 그러합니다만 '서기'의 존재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그는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죠. 그는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닙니다. 탐정이 본 것을 대리해서 쓰는 것일 뿐이죠. 그는 자기가 알아낸 것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닙니다. 탐정이 알아낸 것을 대리해서 쓰는 것일 뿐이죠. '서기'는 자기가 본 적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것에 대해서 쓰는 것입니다. 메아리와 무엇이 다를까요? '서기'는 탐정의 머리 속에만 있던 것을 보고서라는 물질로 실현시키는 존재입니다. 진정한 현실은 사실 오로지 서기의 손에서 태어납니다. 하지만 그 '서기'가 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자기는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사실 '서기'는 진실이 유포자가 아닌 환상의 유포자입니다. 메아리 자체가 실체 없는 허상이듯이. 그렇게 '서기'의 신체란 현실과 환상의 변증법적 종합과도 같습니다. 그는 환상과 현실이 맞닿아 있는 곳이며 그 내부에선 파도가 쉴 새없이 밀려드는 해변과도 같이 환상과 현실의 경계선이 나날이 고쳐 그려지고 있습니다. 앞서 '탐정 매뉴얼'이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서 말하는 소설이라 한 바 있습니다. 장자의 '호접지몽'을 혹시 아시나요? 장자가 어느날 꿈에서 나비가 되었는데 꿈에서 깨어나 보니 나비의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사람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호접지몽'입니다. 소설이 말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결국 소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존재의 자유'입니다. 언윈이 늘 꿈꾸는 그것이죠. 하지만 언윈은 바깥으로의 자유를 꿈꿉니다. 소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를 묻습니다. 바깥을 통한 자유는 영역이 확고한 경계를 이루고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현실과 환상의 경계조차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 경계마저 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게 소설이 말미에서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화두입니다. 소설이 '탐정 회사'를 통해 '합리성'을 공격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가장 선명한 경계선으로 구획을 나누는 것이 바로 '합리성'이니까요. 그들은 그들만이 진실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토마스 H 쿤의 '패러다임'이 잘 밝혀주었듯이 현실 세계의 진실이 아니라 매뉴얼의 진실일 뿐입니다. '합리성'이란 '매뉴얼 대로'의 의미 밖에는 없습니다. 탐정 회사의 '탐정 매뉴얼'은 여러가지 판본이 있습니다. 어떤 판본은 중요한 내용이 누락되어 있기까지 합니다. 더구나 원본이 되는 매뉴얼은 '서기'가 작성했습니다. 현실을 만드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매뉴얼 자체가 환상 속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매뉴얼이 만들어 내는 경계가 고정적일 수 있을까요? 가장 굳건한 경계선을 만드는 '합리성'이 그렇다면 나머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소설이 하는 말은 정말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경계선은 없습니다. 있다면 오로지 우리 머릿속에만 있겠죠. 초반에 언윈이 그랬듯이 우리는 혹시 있지도 않은 경계선에 구애받아 스스로의 자유와 가능성을 억압하고 있지 않을까요? 진정한 자유로움은 세계를 달리 보는 시선에 있는데 오로지 바깥으로 부터 얻으려고만 하여 스스로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탐정 매뉴얼'은 어느 순간 그런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띠지의 안내 문구는 이 책을 '명탐정이 되기 위한 최고의 안내서'라고 하고 있지만 소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아닙니다. 사실 소설은 메뉴얼의 제거를 추구합니다. 탐정도, 매뉴얼도 존재하지도 않는 경계선을 머릿속에다 주입하여 우리와 자유와 잠재된 가능성을 억압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에겐 탐정도, 매뉴얼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옛날 한 선사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고 했다죠. '탐정 매뉴얼'이 말하고 싶은 것도 그것입니다. '탐정을 만나면 탐정을 죽이십시요. 매뉴얼을 만나면 매뉴얼을 불태우십시요.' '탐정 매뉴얼'은 그것을 위한 총알이자 성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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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남기기에 앞서 이 책의 제목에서 어떤 독특한 인상은 받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고르며 기꺼이 내 책장에 꽂아 두겠다 결정한 것은 전적으로 표지와 내용 덕분이다.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 두고두고 보아도 예쁘고 두고두고 읽어도 재미있다. 초반 도입부에서 작가는 독자를 이 세계로 단번에 끌고 들어간다. 주인공 언윈은 서기에서 탐정으로 막 승진한 직후라서가 아니더라도 꽤 어눌한 인물이다. 전전긍긍하며 애를 쓰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신뢰감보다는 측은지심이 앞서는데, 이 인물이 안간힘으로 짜낸 (말도 안 되는) 지혜로 눈앞에 닥친 일을 하나씩 해결하는 모습은 뜻밖으로 꽤나 훌륭하다. 어쩌면 언윈이 지금까지의 탐정과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애초에 탐정이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캐릭터 하나로 끌고 가는 작품은 아니다. 캐릭터는 스토리를 타고 세계를 종횡무진 누벼야 생명력을 얻는 법이다. 스토리를 진행시키는 힘이 있고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도 알고 있는 작가임이 분명하다. 큰 물건의 냄새가 난다! 간결한 문장으로 자아낸 분위기나 단어 뉘앙스에서 세련된 고전 명작의 느낌이 나는데, 이것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꽤 충격적이다. 문제의 '꿈'이 등장하면서 영화 <인셉션>이 떠오를 수 있지만 소재의 공통점으로 인한 연상작용일 뿐 소설은 영화와 완전히 다르다. 작가가 이 대목을 신나게 썼구나 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클라이맥스는 거침없이 진행된다. 경험 없는 작가가 힘 조절을 하지 못해 이 부분을 망쳐 놓는 모습을 왕왕 볼 수 있는데, 이 작가는 폭주하지 않고 차분히 차근히 밀도를 높여 조여가는 전개를 보여준다. 결정적인 한방의 힘이 조금 부족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랬다간 또 너무 뻔해질 것 같고. 이정도가 적당한 듯하다. 흔들리지 않지만 분명히 변화한 주인공을 따라가는 침착한 전개가 좋다. 독자를 흥분시키기 위해서 작가까지 흥분할 필요는 없다는 것. 작품의 배경은 같지만 다른 세계이다.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 요소를 가진 공간은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처음엔 스토리를 따라가느라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 세계는 아주 정교하게 짜여 있었다. 탐정 회사를 중심으로 남쪽 부두의 빈민가와 도시 한쪽의 숲과, 그 구역에 사는 사람들의 특징까지. 도시 전체의 조감도를 그려보고 싶을 정도였다. 이 치밀한 설정이 어떤 독자들에겐 작품의 가장 큰 매력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간만에 책 읽다가 발까지 동동 굴렀다. 분량이 적지 않아 약간 부담을 갖고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길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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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릭시르 2014년 기대작] <탐정 매뉴얼>
탐정에 대한 로망을 자극할 멋진 소설이 출간 되었다.
권위와 명예를 자랑하는 탐정회사에서 오랜 기간 서기관으로 근무한 주인공 언윈은 갑자기 탐정으로 승진한 이유를 알기 위해 자신의 상사를 찾아간다. 그런데 회사를 대표하는 명탐정 상사는 실종되고, 내부에선 의문의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탐정회사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늘 비가 내리는 음침한 동네, 눈풀린 사람들, 가진 거라곤 우산과 무삭제판 '탐정 매뉴얼' 뿐인 주인공 언윈은 비밀을 밝힐 수 있을까?
복잡한 트릭이나 인간 군상에 연연하지 않아도 어마무시한 반전과 기발한 결말을 보여주는 <탐정 매뉴얼> 탐정 소설과 환상 문학, SF의 영역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지루한 틈을 보여주지 않은 대단한 소설!
곧 닥쳐올 장마와 더위를 이겨낼 환상적인 소설이다.
그리고 사은품으로 주는 '탐정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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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매뉴얼>은 이런 책이야, 간단하게 기록하기가 어렵다. 기존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 탐정 소설과 환상문학과 SF의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이 매력적인 소설을 어떻게 기록에 남겨본담?
무척 기묘한 이 책은 기존의 미스터리 소설의 관습에서 벗어나 무척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실 해빗 상과 크로퍼드 환상 문학상을 모두 거머쥔 놀라운 작가, 제더다이어 베리의 2009년 데뷔작에다
탐정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 <탐정 매뉴얼>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터.
어느 날 갑자기 탐정으로 '승진'하게 된 주인공 언윈을 따라 흥미진진한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모험에 발을 담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는 건, 덤이라면 덤이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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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 평이 인상적이라 고민 않고 구매. "이 데뷔작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웨스 앤더슨이나 카프카처럼, 탐정의 수사 과정을 고전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면서 개성적인 환상 문학의 영역까지 넘나든다"는 평이었는데, 읽고 나니 평도 평이지만 작가의 재치가 예사롭지 않다. 탐정 문학의 규칙을 잘 따라가는 듯 보이면서 팍팍 깨고, 분위기는 정말 폴 오스터나 카프카가 생각날 정도. (인터넷에서 본 것보다 훨씬 예쁜 표지는 덤. 창문이 뚫려 있을지 누가 알았겠어.ㅋㅋㅋ 겉표지도 예쁘지만 속표지와 면지도 정말 예술이다.) 내용으로는 먼저 언어 유희가 최고로 인상적이다. 제일 재밌었던 건 등장인물의 이름을 이용한 말장난. 이 책에서 카니발에서 불꽃놀이를 담당하는 거인 여성의 이름은 힐데가르트인데, 이건 분명히 작가가 중세 시대에 흔치 않았던 여성 지식인(수녀라서 가능한 것이었겠지만) 빙엔의 힐데가르트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 낸 인물일 것이다. 참고 삼아 네*버 캐스트에서 발췌한, '빙엔의 힐데가르트'가 쓴 글귀를 적어 본다. "하늘로부터 매우 밝은 빛이 내 침상에 쏟아져 내렸는데, 그 빛은 마치 타 들어가지는 않으면서 빛나기만 하는 불꽃같았다. 그 불꽃은 태양처럼 내 심장과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갑자기 나는 시편과 복음서, 구약과 신약의 여러 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힐데가르트가 불꽃놀이 담당자가 되다니!! 근데 어울린다. 암.ㅋㅋ 그 외에도 쌍둥이 루크 형제가 바에서 말장난하는 걸 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험프티 덤프티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시계 탑 밑으로 이어져 가는 비밀 통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토끼가 헐레벌떡 뛰어들던 굴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런 소소한 재미를 비롯해 베리는 <탐정 매뉴얼>에서 '탐정 문학'이라는 장르에 대한 풍자나, 그러면서 괜찮은 소설 작품이라면 잊지 말아야 할 현실 사회의 풍자 등도 놓치지 않는데... 데뷔작에 이러기가 쉽지 않은 거 아니었나? 그런 주제에 이야기 구조도 탄탄하다! <탐정 매뉴얼>은 탐정 회사의 고위층이 몰래 간직하고 있으며 세상을 무너뜨릴 비밀이 담긴 수사 지침서의 이름이다. 그리고 현실의 <탐정 매뉴얼>은 말마따나 그야말로 '탐정을 위한 책', 탐정 문학에 바쳐진 재기발랄한 오마주임과 동시에, 책 속 무삭제판 지침서와 마찬가지로 18장으로 구성되어 책 안에 읽는 사람이 찾아야 할 비밀이 있음을 암시한다. 항상 비가 내리는 이름 없는 도시는 어떤가.ㅋㅋ 비가 내리는 잿빛 도시 속의 수사는 하드보일드 누아르 탐정 문학의 상징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비를 막기 위해 갖고 다니는 우산을 매번 무기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쓸쓸한 사립 탐정 필립 말로보다는 코미디 배우 찰리 채플린이 떠오른다. <탐정 매뉴얼>이라는 제목에 따라 내가 아무리 상상해 봤자, 섣부른 추측일 것을, 절대 탐정 소설의 규칙을 따라 사건을 끌고 나가지 않을 것임을 나타낸다. 그런가 하면 도시 한가운데에 우뚝 서 도시를 지키는 탐정 회사는? <탐정 매뉴얼>은 탐정 회사에 숨겨진 비밀을 하나둘씩 드러내며 탐정 회사에 밝은 면만 있지 않음을 보여 준다. 도시의 평안을 지키는 '탐정'이 상징하는 밝은 면과 꿈을 기록하여 들여다보는 신기술로 타인의 삶을 헤치는 '탐정'의 어두운 면을 대조시키며 수많은 첨단 기술로 감시당하는 현대 사회를 나타내는 방식은 꽤나 놀랍다. 데뷔작에서 이 정도의 질에, 탐정 문학이라는 장르의 틀을 쥐락펴락하며 자기만의 화려한 환상 세계를 구축하는 솜씨까지 보여 주었으니, 베리의 앞으로의 가능성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끌고나갈 수 있는 역량, 자신이 전하고 싶은 의미를 정제된 언어에 담을 수 있는 능력은 아무나 타고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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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미행에 대하여.. 우산 손잡이를 자전거 핸들에 끼워 매일 중앙역으로 길을 서두르는 찰스 언윈의 등장은 우리를 짧은 착각에 빠뜨리게 된다. 같은 시각, 같은 목적이라면 뭔가 스파이,탐정들만의 전용 행동이지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사건의 시작을 추측해보다가 그가 매일 아침 같은 시각을 고집하는 이유가 격자무늬 코트를 입은 여자를 위한 것이라는 매우 허망한 사실에 실망하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 찰스는 탐정회사로부터 승진했다는 소식을 듣게되고 역시.. 하게 되지만 서기로서의 일정 규칙을 지키는 삶에 지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탐정을 원하지 않았던 그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이 모든 걸 총괄하는 관찰자에게 알리기위해 나서다가 진짜 사건을 만나게 된다.
관찰자의 죽음, 사라진 탐정, 그리고 오래전부터 시작된 음모라는 당연 탐정이 나서야 할 일들은 찰스가 사라진 탐정 시바트를 찾기위해서라는 이유로 만나게 된 이들마다 어쩌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만났던 모자장수나 사라지는 고양이처럼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영 모를것 같기도 한 이야기를 하거나 영화 '인셉션'에서 돔 코브가 마지막에 돌린 팽이가 멈출지 그렇지 않을지를 열심히 토론하게 했던 그 때처럼 지금 내가 보고있는 이 사람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꿈일지 혹은 진짜 세상일지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쫓아가게 한다. 왜냐하면 매 장마다 번호를 매겨 탐정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규칙들을 이야기해주고는 있지만 일어난 사건과 그 사건 해결을 위해 필요한 듯 보이는 단서는 그가 만나는 이들이 꾸는 꿈에 있기때문이다.
이십 년 칠 개월하고도 며칠동안을 명탐정이라 불리던 시바트 탐정의 서기로서 남들의 완벽한 시선을 받았고 그 시선을 은근 즐겼던 찰스는 자신이 중요하다 여겼던 것과 그렇지 않다 여기고 삭제해가며 정리했던 그 동안의 수많은 사건의 중요 단서나 이야기 구성요소들이 모두 그렇게 보이기를 원한 이들의 시선에 맞춰 자신이 잘못 요약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자신이 했던 일들을 바로잡고자 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그는 점점 사라진 '무삭제판 탐정 매뉴얼'에 어떤 내용들이 들어있는건지 알아내게 되고 오래 묵은 사건의 진실과 가까워지게 된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헷갈리게 만들던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아마도 ..라 하게 만드는 적응성을 지니게 된다. 음모와 대립이 만들어낸 꼬리를 무는 사건이라는 흔한 탐정소설의 줄거리는 꿈을 지배하려는 자, 그 꿈을 감시해 자신의 힘으로 만들려는 자들이라는 누군가의 꿈을 이용하게 되기에 SF라는 생각하지 못한 장르로의 점프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미건조, 무색채 찰스가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지. 그리고 매번 안개속을 걷는 듯한 그의 다음은 어찌될지 궁금해지는 걸 보아하니 나 역시 이야기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건 알게된다.
평범하지 않은 독특한 내용들이 길을 잃게 만들지만 잠을 자지 않는 쌍둥이 형제, 누군가를 잠재우는 능력을 가진 여자. 탐정 그 이상이 되고 싶어하는 이에 절대로 탐정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더 독특한 인물들의 조합이 안개속을 헤매다 나타나는 어렴풋한 그림자에 '찾았다.' 싶은 희망을 주듯, 가끔씩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알것같게 만드는 매력이 은근히 있다.
'델리카트슨'이나 '환상특급'이란 색다른 영화 한편속에 '탐정 매뉴얼'이 함께 한듯, 사건이 끝나고 나면 찰스나 다른 인물들이 점점 색을 색과 모양을 갖춰가게 된다. 온통 짙은 회색의 뒷모습으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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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내가 난독증에 걸린줄 알았다. 이 책 읽기가 하도 힘들어서. 다른 책을 읽을때는 멀쩡하던 해독 기능이 이 책을 들기만 하면 멈춰 버리는 마법에 걸린게 아닌 이상, 이 책을 재밌다고 하는 사람들을 난 믿지 못하겠다. 왜냐면 재미는 커녕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쩔쩔 매야 했기 때문에. 딱 초반 몇 페이지는 흥미를 끌어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분명 앞으로 나가긴 하는듯한데, 거의 제자리를 맴맴 도는 듯한 전개가 책 읽는 것을 끔찍하게 만들고 있었다. 지루하다는 말은 이 책에는 오히려 과분한 단어인듯...지루하다는 것은 그나마 어떤 맥락이라도 있다는 뉘앙스가 있으니 말이다. 두서없고, 횡설수설에, 산만하고 뜬금없으며, 이상한 탐정의 나라에 온 듯한 현실성 없는 이야기는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건지 의심하게 만들더라. 아무리 읽어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신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긴 했다. 너무 취했거나 너무 졸려서 몸이 안 움직여줄때의 갑갑함을 기억하시는지. 제 정신인 상태에서 가위눌림을 겪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하지만 제정신인 상태에서 재밌는 독서를 하고 싶다시는 분들에게는 비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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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전문가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경, 검찰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한 이들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사설업체를 찾곤 한다. 심부름센터.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의뢰 받은 것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법과 제도를 무시한다. 곳곳에 폭력이 깃들고, 순간의 쾌락은 정의에 의해 사그라든다. 탐정은 미래의 유망직종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심부름센터의 악독한 이미지 탓인지 아직까지는 우리의 마음에 와 닿지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시나리오는 어떨까. 매뉴얼은 언제나 기본 이상을 담아내지 못한다. 현장에서 직접 부닥치면서 배우는 게 더 효과는 크다지만 이제 막 업무를맡은 이들에겐 이보다 더 명쾌한 것도 없다. 머리를 굳이 굴릴 필요가 없다고, 매뉴얼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저자는 감히 주장한다. 탐정이라면 필히 보아야만 하는 ‘탐정 매뉴얼’을 저자는 탄생시켰다. 작품은 기이했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판타지 소설 즈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인공 언윈은 탐정 회사에 몸담고 있는 서기다. 그는 수많은 서류를 정리해 탐정에게 보고한다. 어찌 보면 탐정보다도 그가 사건에 대해선 정통하겠구나 싶다. 기이하게도 그의 회사는 부대낌이 없다. 서기인 언윈 역시 상사급에 해당하는 탐정과 직접적인 소통을 하지 않는다. 같은 서기끼리도 마찬가지다. 대화가 금지된 거 같은데, 쓸 데 없이 사건에 관한 정보를 흘리지 말라는 뜻일 게다. 게다가 이보다 더 위계질서가 뚜렷한 곳도 없을 거 같다. 배달원, 서기, 탐정, 관찰자. 위아래, 좌우 모두 꽉 막혀 퇴로는 없다. 그런 곳에서 근무를 해야만 한다면 아마도 미쳐버리고야 말 것이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은 미쳐버리기 전에 잠들어버리고야 말았다. 그들에겐 11월 12일이 없다. 달력에서 하루가 사라졌는데 이유는 모른다. 모두가 움직이고 행동은 하는데 의식은 없다. 도시는 집단 몽유병을 앓는 사람들로 들끓는다. 상황은 점점 난해해졌다. 탐정 시바트는 갑자기 사라졌고, 서기 역할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언윈은 뜬금없이 탐정으로 승진했다는 비보(?)를 접한다. 탐정매뉴얼의 존재에 대해 알고는 있다. 오래도록 서기 역할을 수행했지만 탐정으로서는 근무해본 바 없는 그는 매뉴얼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긴급히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언제나 매뉴얼에 어떤 말이 씌어 있는가를 따져보는 건 힘들다. 오히려 직감을 좇아 행동하는 편이 더 옳다. 게다가 그가 접한 매뉴얼은 논란이 많다. 존재 여부가 불투명한 마지막장 때문이다. 알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배포되는 매뉴얼에서는 삭제되고야 만 바로 그 장이다. 사라진 시바트를 찾기 위해서, 현재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깨워 세상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그 장이 절실하다. 초반의 설정을 지나서부터 이야기는 있을 법한 무엇의 틀을 벗어버리고야 말았다. 설정은 분명한 거짓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생각을 읽어내는 일은 독심술을 배우더라도 쉽지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잠들어 있는 이의 꿈속에 들어가 돌아다니는 건 더더욱 어렵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은 필요에 따라 그리 한다. 심지어 누군가의 꿈은 레코드에 기록되기도 한다.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순간 잊는 꿈이 다반사다. 역사가 될 수도 있었던 꿈을 그리 쉽게 잊어왔다는 사실에 살짝 죄책감도 느낄 뻔했다. 하지만 이 또한 본 작품의 묘미다. 어느 순간부터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부르기 시작한다. 데자뷰(deja-vu)라고 했던가. 한 번 즈음 경험해 본 것 같은 상황을 우린 종종 겪고는 한다. 오래 전의 일이라 잊은 것일 수도 있는데, 그 중 일부는 꿈에 등장했다가 무의식의 영역으로 사라진 것이기도 하다. 명확하지는 않으나 흐리멍덩하게라도 우리는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할지 알 것도 같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의 일상을 주관하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물론 호프만이 꿈꾸던 세상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불순한 의도를 갖고 이 관계를 탐닉하기 시작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는 법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엔 시공간을 거스르는 일도 충분히 가능해질지 모른다. 그 때가 되면 타인의 꿈을 조작하고, 발생하지 않은 일도 현실처럼 만드는 일을 누군가가 행하게 될 수도 있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탐정이 그 시절엔 도처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일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