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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레사프호에서 태양을 보다.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빨랫감들, 폐타이어를 걸어둔 허름한 수상가옥, 아무렇게나 걸어둔 잡동사니들, 허름한 쪽배 그리고 그 위의 닭들과 병아리들. 이게 여행을 독려하는 그림책이라니 말도 안 된다. 여행을 독려한다고 할 때, 우리는 흔히 소금처럼 새하얀 벽에 쨍하게 푸른 지붕, 너울거리는 드레이프 천을 타고 느껴지는 시원하고 습하지 않은 바람, 해가 떠오르고 지는 광활한 수평선 같은 것들을 이리저리 말로 그려내거나, 아늑하고 따뜻한 벽난로가 있는 극지방의 고급별장에서 천장 창문으로 건너다보이는 오로라를 묘사하며 여행의 맛을 일깨워주려 하곤 한다. 하지만 ”여행의 이유“를 쓴 김영하 작가가 말했듯 여행이란 “몸으로 읽는 텍스트”임과 동시에 “나의 직접 경험과 타인으로부터의 간접 경험을 층층이 쌓아올려 만든 크레이프 케이크를 맛보는” 것이다. 여행은 생각이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몸은 경험의 토대가 되고 나아가 모든 자신의 경험은 필시 타인의 경험과 만나 구분 지어지게 마련이다. 결국 여행이란 “텍스트를 앞질러 경험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것이 여행이라면 위에서 예로 든 아름다운 전망과 묘사들이 돋궈주는 입맛은 사실상 여행에 대한 것이 아니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아름다운 전망을 상상하고 도착한 곳엔 낙원이 없다. 낙원은 머리로 으레 짐작하지 않은 순간에 맞닥뜨려져 자연스럽게 허락되는데, 누군가(Somebody)가 삶의 어느 순간에 아무도 아닌 누군가(Nobody)로서 용납받고 환대받게 되는 순간을 맞이할 때 비로소 그 낙원이 경험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행은 기본적으로 “허락되는” 것이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사물들, 게다가 그 모든 지저분한 실사 이미지들을 펼쳐놓은 배경이 고작 한 길 속도 보이지 않는 흙탕물이라니. 하지만 그렇기에 이 톤레사프호는 여행의 이유에 딱 맞는 장소이다. 한 가족이 등장한다. 우기가 되면 아빠는 쪽배를 타고 호수를 떠다니며 닭과 달걀을 판다. 그것들을 모두 잃기도 하고, 대안으로 잡아온 물고기로 엄마는 젓갈을 만든다. 호수의 물을 퍼다 마시는 사람들, 공부를 해서 대학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는 오빠와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소녀, 그리고 마냥 신나 흙탕물을 헤엄치는 아이들. 톤레사프의 흙탕물 호수는 더러운 물이 아니라 삶의 원천이다. 여행은 그러한 또 다른 삶을 간접경험하는 과정이다. 그러기에 여행을 독려하는 책 또한 그런 다른 삶을 간접 경험시켜주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톤레사프호에서 태양을 보다.”가 그러한 과제를 아주 잘 완수했다고 생각한다. 콜라주 표현의 방점은 이입하는 대상과 관찰되어 소비되는 대상을 명확히 구분지어 주는데 찍혀있다. 쉽게 말해 역할과 물건의 구분이 주목적이다. 이를 위해 엄마, 아빠, 소년, 소녀, 아이, 그리고 드넓은 호수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들을 둘러싼 삶의 수단은 사진으로 그림 위에 담아냈다. 이제 페이지를 넘겨보자. 어느새 우리는 톤레사프에서 물고기를 잡는 아빠가 되기도 하고, 수상 가옥 위에서 달걀을 어루만지는 엄마가 되기도 한다. 또 중학교 시험에 붙어 언젠가는 대학에 들어가길 꿈꾸는 소년이 되었다가, 어두운 밤 크레파스를 아껴가며 캄캄한 호수를 스케치북에 담아내는 소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더러는 정오의 태양을 한가득 받으며 낮잠을 자는 지붕 위의 꼬마가 되기도 한다. 책 속에서 우리는 아무도 아닌 누군가로서 그들의 삶의 현장을 목도할 수 있다. 실제로 가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여행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김영하의 말마따나 무작정 아름다운 전망만을 듣고 가고자 하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짜 나의 몸이 이 책에서 독려하고 있는 여행의 순간에 뛰어들었을 때, 경험하게 될 순간들을 최대한 정확하게 느끼게 해주는 이 책은 단연 여타의 어린이 여행도서들을 압도하는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어느새 흙탕물에 대한 머릿속의 생각이 변해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캄보디아로의 여행을 제안할 때, 톤레사프의 흙탕물 호수 위로 떠오르는 태양과 아지랑이, 그 위로 흩날리는 사람들의 향기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실전은 책으로 배우면 안 된다고 하지만, 이 책, 어린이 여행인문학 시리즈만은 예외라고 말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