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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월이 북망산에 온 이유는 천봉궁의 총관인 차복승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무당산을 떠날 때 차복승은 북망산에서 한 사람을 만나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으며 대신 유중악의 행방을 알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산기슭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가파른 벼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벼랑들 사이로 하나의 작은 계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삼십 장은 족히 넘어 보이는 아찔한 절벽 사이에 숨듯이 자리한 그 계곡은 은밀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주위의 수림이 워낙 울창해서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계곡을 십여 장쯤 들어가자 조금씩 폭이 넓어지더니 급격하게 구부러진 경사로를 지나자 시야가 탁 트이며 넓은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터 뒤쪽에는 가파른 절벽이 삥 둘러 있어 자연스레 작은 분지를 형성하고 있었고 그 중앙에 작고 초라한 모옥 한 채가 세워져 있었다. 진산월이 모옥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모옥 안에서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곳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인데 어느 고인이 이 외진 곳까지 오셨소?" 진산월이 "차씨 성의 노인께 부탁을 받고 온 종남파의 진산월이라 합니다." 그러자 굳게 닫혀 있던 모옥의 방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그리고 한 사람이 천천히 그 안에서 걸어 나왔다. 무척이나 체구가 건장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모옥의 하나뿐인 방안으로 그를 안내했다. 진산월이 "차 대협께서 '결정했다'라는 한 마디를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라고 말하자 노인의 눈에는 형용키 어려운 복잡하고 미묘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노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의 입에서 그 말을 듣게 되니 마음속의 격동을 참기 힘들군. 내가 그 말을 듣게 되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해 왔는지. 그것은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의 오랜 숙원이 해결되었다는 소리일세. 그리고 내가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이제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며 아울러 그 짐을 이제는 다른 누군가가 대신 짊어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 자네는 내가 누구인지 아는가?" 진산월이 "모릅니다."라고 대답하자 노인이 "내가 바로 모용단죽일세." 진산월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눈 앞의 노인이 천하제일의 고수이며 구궁보의 주인인 모용단죽이란 말인가? 일전에 진산월은 구궁보에서 모용봉의 소개로 모용단죽이라고 자처하는 인물을 만난 적이 있었다. 나중에야 자신이 만난 사람이 진짜 모용단죽이 아니라 다른 사람일 거라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그에 대한 어떠한 확신도 없었다. 그때 만났던 가짜 모용단죽에 대한 인상이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차복승의 부탁을 받고 무심결에 찾아온 북망산의 이름 모를 계곡에 그동안 아무도 행방을 몰랐던 모용단죽이 기거하고 있을 줄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진산월이 구궁보에서 만난 가짜 모용단죽은 조익현이었다. 조익현은 철혈홍안의 오빠이며 천룡궤를 두고 철혈홍안의 남편인 천룡객 석동과 크나큰 싸움을 했고 그 싸움의 여파가 그 후의 무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결국 그것은 그들의 후손인 모용단죽과 아난대활불을 거쳐 당금 무림에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석동이 조익현과의 싸움으로 심한 부상을 입고 강호로 돌아왔다가 소림사 인근에서 실종된 후 아직까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모용단죽이 "나는 천룡객 석동이란 분에게 무공을 배웠으며 아난대활불과의 싸움에서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으나 야율척을 만난 후로 내 자신의 한계에 대해 절감했지. 지난 백 년간 무림의 모든 일이 두 사람의 싸움의 여파로 인한 것이라는 말은 맞네. 그 싸움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결국 내가 구궁보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이곳에 있게 된 것이지. 나는 사실 조익현을 피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일세. 엄밀히 말하면 그가 두려워 이곳에 모습을 감춘 채 꽁꽁 숨어 있는 것이지. 사부님과 조익현은 세 번에 걸친 싸움 끝에 모두 커다란 부상을 입게 되었네. 두 사람의 상처가 너무 깊어서 그들의 싸움은 오랫동안 중지될 수밖에 없었네. 결국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정상적인 몸으로 돌아오느냐가 그들 사이의 승부에서 결정적인 핵심 사안이 되어 버렸지. 만약 사부께서 먼저 몸을 회복했다면 바로 서장으로 조익현을 찾아갔을 것이고 두 사람의 승부는 그걸로 끝이 났을 걸세. 반대로 조익현이 먼저 상세를 회복했다면 그가 중원으로 사부님을 찾아왔겠지. 두 사람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 것 같나?" 모용단죽의 물음에 진산월이 "조익현이 먼저 중원으로 온 것이로군요." 대답했다. 모용단죽이 "그렇다네. 조익현은 중원으로 오자마자 사부님의 행방을 알기 위해 나를 찾았고 나는 그를 피해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네. 단순히 겁이 나기 때문은 아니었네. 다만 내 목숨보다 더 귀중한 한 가지 사명을 지켜야 했네. 그 사명을 이루기 전에는 결코 그의 손에 죽거나 사로잡혀서는 안되는 것이었지. 그 사명은 한 사람을 찾는 것일세. 그에게 한 가지 무공과 한 가지 수법을 전해야 하네. 나는 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곳에서 그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려 왔네"라는 모용단죽의 말에 진산월이 "그 사람이 바로 저란 말씀입니까?" 묻자 모용단죽은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을검선 매종도의 태을선거를 처음 찾아낸 자는 하나의 유골과 한 권의 서책, 정교하게 새겨진 세 개의 미인상을 발견했다. 종남파의 매종도가 창안한 천양신공의 무공과 모든 무공을 집대성한 삼초의 검법을 세 개의 미인상에 새겨 놓은 수수께끼 같은 비밀이 서서히 모용단죽의 입을 통해 풀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