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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제일창 유중악의 얼굴에 허탈하고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유중악이 "내 몸은 내가 잘 알고 있소. 이미 진기가 가닥가닥 끊기고 진력이 고갈 났으니 이제 그만 우리 사이의 일을 마무리 짓도록 하세." 누운 채로 복양수를 올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면사 여인과 희인몽이 복양수의 앞을 막아섰다. 복양수가 두 여인을 바라보자 커다란 압박감을 느끼는 듯 신형이 한차례 부르르 떨렸으나 뒤로 물러서는 사람은 없었다. 복양수가 "노부는 여인이라고 해서 사정을 봐준 적이 없다." 복양수가 손을 쓰는 것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어느 새 그의 양 손이 면사 여인과 희인몽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공격을 하기 전에 기척을 보일 법도 한데 상대가 누구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동원해 전력으로 공격하는 것이 복양수가 싸우는 방식이다. 면사 여인의 몸이 삼장 밖으로 나가 떨어지고 한참 후에 복양수의 미간을 향해 손가락 반절 길이의 뾰족한 장신구를 날렸으나 복양수는 오른 손을 자신의 이마에 갖다 댄 자세로 우뚝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복양수의 오른 손에는 여인의 장신구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면사 여인이 갑자기 왈칵 피를 토하면서 면사가 벗겨지며 얼굴이 드러났다. 그녀는 다름 아닌 천수관음의 대제자 신수옥녀 능자하였다. 유중악이 위기에 처한 이 순간에 정체를 감추고 그를 위해 목숨마저 도외시한 것이다. 능자하는 심각한 내상을 입었는데 내상을 억누른 상태에서 무리하게 암기술을 펼쳤으니 내상이 더욱 심각해졌다. 희인몽은 순식간에 다섯 번이나 복양수의 가슴을 노리고 다가들었으나 복양수의 음양건곤수에 가로막혀 제대로 검식을 이어나가지 못하자 그녀는 공세를 무리하게 이어나가다가 복양수가 내뻗은 음양탈화 일식을 감당하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바닥을 굴렀다.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던 연검이 십 여장 밖에 떨어져 내리는 광경은 허무함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복양수는 불과 십 초도 안되어 무공이 절정에 달해 있는 두 여고수를 쓰러뜨렸다. 단후명과 수신사위는 희인몽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자신들을 에워싼 흑백상문신에 가로막혀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복양수의 시선이 곽산쌍려 여씨 부부에게로 향했다. 여불회와 기아향은 한날한시에 죽겠다는 약속을 지킬 때가 된 것 같다면서 서로 웃으면서 손을 마주 잡았다. 두 사람은 몸을 돌려 복양수의 앞에 나란히 섰다. 유중악은 이들 부부의 최후를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눈이 흐릿해지는 것이 눈물 때문인지 진기의 흐름이 끊긴 때문인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유중악은 멀지 않은 숲속의 한편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허리춤에 한 자루의 검을 차고 왼쪽 뺨이 움푹 파여 들여간 칼자국을 보다가 사나이의 시선과 마주친 유중악은 눈물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떨구었다. 진산월은 그런 유중악을 한동안 바라보다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복양수의 모습이 가득 들어왔다. 유중악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강호인들의 의리를 볼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