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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만 해도 전혀 주위에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는데 어느 새 소리도 없이 나타나 공터 주위를 빈틈없이 포위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잘 수련된 자들인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들은 흑갈방의 흑백쌍사가 제법 오랫동안 고련시켜 온 이십팔살이었다. 흑갈방을 이끌고 있는 흑백쌍사 중의 화면신사, 독공의 제일고수인 신목령 오천왕 중의 독존자 갈황과 전일도와 낙일사영, 구궁보의 군유현과 수하인 진남쌍패, 모용연, 천봉궁의 금교교, 누산산, 진산월과 임영옥, 쾌의당 칠대용왕 중의 운중용왕과 도중용왕, 화중용왕 등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구궁보와 천봉궁, 신목령의 고수들... 등 많은 무림인들이 이곳에 와 있었다. 임영옥의 머리에 꽂힌 봉황금시, 진산월의 품에 있는 천룡궤를 탈취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었다. 운중용왕은 진산월과 임영옥이 이미 자신의 수중에 들어온 것처럼 자기들 멋대로 배분하고 있었다. 화면신사 임조몽은 신검무적 진산월의 목과 태음신맥 음기를 지닌 임영옥을, 화중용왕 소수마후는 봉황금기를, 도중용왕 양천해는 생사를 건 격투에 자신의 모든 걸 내던져 신검무적과 같은 강자를 꺾는 쾌감만을 쫓으려고 행동을 같이 하기로 했다. 독공의 고수인 갈황과 진산월의 싸움이 시작되었고 독존자 갈황이 비참한 몰골로 싸늘한 시신이 되었다. 이어서 오랜 세월동안 무림에서 천하제일도객으로 인정받고 있는 무림구봉 중의 도봉인 금도무적 양천해와 혜성같이 나타나 백 년 내 제일가는 검객이라고 찬사를 받고 있는 신검무적 진산월! 두 절대 고수의 생사를 건 대결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출수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도기와 검기가 솟구쳐 오르고 굉량한 폭음이 울려 퍼지며 세찬 경기가 반경 십여 장 내를 송두리째 휩쓸고 지나갔다. 주변에 있던 중인들은 이미 한참 뒤로 물러나 있었기에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운중용왕이 전음으로 화중용왕에게 "눈치를 보니 구궁보와 신목령의 인물들이 서로 힘을 합칠 수도 있을 것 같소. 그들과 천봉궁이 뭉쳐서 대항한다면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오. 신검무적을 이번에 제거하지 않으면 또 이런 기회를 잡게 될지 알 수 없소. 부인께서 적당한 때에 손을 쓰시리라 믿겠소." 화중용왕은 아무 말 없이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장내의 고수들은 최후의 결전이 임박해 왔음을 느끼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들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바람에 누구도 화중용왕이 머리에 꽂고 있던 나비 모양의 장식 하나를 손에 든 채 앉아 있던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여덟 개의 도영이 진산월의 몸을 난도질 하려는 순간 진산월의 용영검이 환영처럼 움직였다. 그러자 솜뭉치처럼 작은 구름이 생겨났다. 그 구름은 순식간에 확대되더니 이내 장내를 완전히 뒤덮을 수 있을만큼 거대한 구름으로 변해 버렸다. 진산월의 전신을 짓쳐들던 여덟 개의 도광을 덮어 버렸고 팔선절을 펼치고는 체력이 바닥난 채 휘청거리고 있는 양천해의 몸도 그대로 휘감아 버렸다. 양천해가 온 몸이 난자당한 채 질펀한 피바다 속에 쓰러졌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의 날카로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쳐라!" 흑갈방의 고수들이 일제히 중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화중용왕의 암습이 성공하자마자 바로 흑갈방의 이십팔살로 하여금 중인들을 공격하도록 지시를 내린 것이다. 때문에 그들을 제외하고 장내의 누구도 진산월의 모습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서있는 자세가 너무 어색하고 딱딱했으며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그의 눈빛은 왠지 모르게 탁하고 흐릿해 보였다. 흑갈방 고수들의 공격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가운데 운중용왕이 진산월에게 다가오더니 진산월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과연 명불허전이군. 아무리 허점을 노린 암습이었다고 해도 신검무적을 단숨에 꼼짝도 못하게 제압해 버리다니... 과연 선녀호접표의 위력은 놀랍구나. 아름다운 장신구가 강호 제일의 암기라는 것은 아무도 믿지 못할 것이다." 진산월의 목 뒤 아문혈 부위에 나비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것은 진짜 나비가 아니라 여인들이 머리에 꽂는 장신구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거짓말처럼 나비가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나비 장신구는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을 날아가더니 한 사람의 손에 내려앉았다. 손가락 두 개가 움직여 날개를 잡자 그제야 나비는 움직임을 멈추고 평범한 장신구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화중용왕은 독으로는 신검무적을 제압할 수 없어 접미침에 미인루를 조금 묻혔다. 미인루는 강력한 마비액의 일종으로 신지를 상실케 하는 효능이 있어 체내에 투입되면 몸과 마음을 꼼짝할 수가 없는 반송장이 된다. 진산월의 품속을 뒤지던 운중용왕이 "이런 제기랄. 천룡궤가 없소." 욕설을 뱉었다. 화중용왕이 신검무적을 옮긴 후 해독해서 천룡궤의 행방을 토해내도록 하겠다면서 움직이려는 순간 시커먼 물체가 날아오더니 쾅! 자욱한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매퀘한 내음이 코를 찌르는 가운데 노란색 연기가 사방을 뒤덮었다. 진산월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개방의 용두방주이면서 강호 십대신법 대가인 만리무영개 나자행이 오른팔에 진산월을 붙들고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어느 야산의 중턱에 있는 작은 산장으로 들어간 나자행이 무림에서 제일 박학다식한 인물로 알려진 해수 모인풍을 불렀다. 미인루에 들어간 산혼수가 문제인데 산혼수를 깰 수있는 기물인 정혼신주, 취수정, 녹옥룡, 칠채보원신주, 대라옥정, 혈옥수가 있다는 모인풍의 대답에 나자행은 남해청조각의 당대 전인인 이동심 소저에게 혈옥수를 구해서 오겠다고 말했다. 대대로 청조각의 전인들이 외유를 할 때는 혈옥수로 만든 홍옥모니주라는 염주를 소지하고 다니고 실제로 나자행은 저녁마다 홍옥모니주를 꺼내들고 불경을 암송하는 장면을 봤다면서 오늘 저녁까지 홍옥모니주를 갖고 오겠다고 담을 넘어 사라졌다. 진산월의 위기가 개방의 용두방주로부터 구해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