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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월은 용영검을 거둔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닥에는 일곱 구의 시신들이 이리저리 누워 있을 뿐, 위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오색마왜 강씨 오형제가 쓰러지는 순간 재빨리 몸을 피한 모양이었다. 지금도 어둠에 잠긴 숲속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죽여도 흑의인들의 수는 줄지 않고 자신의 몸은 조금씩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 사방이 온통 시체와 피로 뒤덮여 있었다. 사매를 되찾아 오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종남산을 떠난 것이 불과 며칠 전인데 그동안 두 번이나 습격을 당했고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 허탈할 뿐이었다. '이 피와 죽음으로 뒤덮인 길속에서 과연 나는 생로를 찾을 수 있을까?" 마음 속으로 뇌까려 보았으나 지금으로선 어떠한 확신도 할 수 없었다. 그때 그의 귓전으로 하나의 음성이 "임영옥을 만나고 싶은가?" 들려왔다. 자신이 이 숲속으로 기꺼이 뛰어들게 만든 문제의 음성이 다시 들려온 것이다. 진산월이 음성의 주인을 찾아 사방을 살피고 있을 때 다시 전음성이 들려왔다. "그녀를 만나고 싶다면 동쪽을 뚫고 와라. 십방금쇄진의 유일한 약점이 바로 그쪽이다." 진산월이 자신도 모르게 동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곳은 짙은 어둠을 조금씩 깨는 여명이 밝아오는 곳이었다. 숲을 벗어난 것은 아침 해가 훤하게 뜬 아침 무렵이었다. 진산월은 근처에 흐르는 작은 개울을 발견하고는 피에 물든 얼굴과 팔을 씻었다. 몸을 대충 닦은 다음에서야 진산월은 고개를 돌려 한 곳을 바라보면서 "이제 그만 나오는 게 어떻겠소?"라고 말하자 멀지 않은 바위 뒤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진산월 자신에게 전음을 보냈던 사람이 위관인 것을 알아채고 일부러 그에게는 살수를 쓰지 않았다. 위관의 정체는 흑갈방의 아홉 명 순찰 중 하나였으나 진짜 신분은 번신봉황 이북해가 거느리고 있는 성숙해의 십이비성 중 백양좌를 맡고 있었다. 성숙해는 이북해가 만든 무림 최고의 정보조직이었다. 성숙해의 총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으나 그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천하의 어디에도 없다는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었다. 성숙해의 조직구성도 철저한 비밀에 가려져 있었다. 무림인들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성숙해가 크게 십이비성과 이십팔숙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중 이십팔숙은 이북해의 아들인 산수재 이정문이 거느리고 있고, 십이비성은 이북해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는다는 것 정도였다. 십이비성은 달리 십이성좌라고도 불렀다. 성숙해의 십이비성들은 각기 일좌의 우두머리이며 자신들만의 수하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의 정확한 숫자와 정체는 성숙해의 주인인 이북해도 모르고 오직 해당 좌를 이끌고 있는 십이비성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점조직을 연상케 하는 이러한 독특한 조직체계가 성숙해를 강호 제일의 정보조직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었다. 이북해는 십이비성에게 지시만 할 뿐이고 실제로 어떤 식으로 활동을 할지는 전적으로 십이비성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다. 십이비성이야말로 이북해의 충실한 심복들이며 성숙해를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실세들이었다. 진산월은 성숙해가 자신을 이용한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론하기가 싫었다. 사 년 전, 상관욱은 이정문의 손에 살해되었고, 감종간은 이정문의 꼬임에 넘어가 사부인 단목초를 제거하는데 앞장섰다. 단목초가 쓰러진 후 감종간은 종적을 감추었고 단목초의 제자들인 위태심과 백석기 또한 그 뒤로 행적이 묘연해져서 그들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중원으로 들어와 흑갈방의 방주와 부방주가 되어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흑갈방의 방주인 흑백쌍사에 대해서는 강호에서 여러 가지 소문이 많이 나돌았으나 누구도 그들의 진실한 정체는 알지 못했다. 성숙해에서도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골몰했으나 워낙 그들의 행적이 신비하고 사람들 앞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진산월 일행이 종남산을 떠날 때부터 흑갈방 내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특히 진산월을 제거하기 위해 흑백쌍사 본인들이 직접 전면에 나서자 성숙해로서는 반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성숙해는 흑백쌍사의 정확한 신분을 알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를 절대로 놓칠 수가 없었다. 진산월도 그 점에 대해서는 별로 서운한 생각이 없었다. 성숙해 같은 조직이 사안에 따라 얼마나 사람을 쉽게 기만하고 이용할 수 있는지는 이미 뼈저린 경험으로 알고 있는 터였다. 단목초의 셋째와 넷째 제자인 위태심과 백석기는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사 년 전에 야율척이 서장 무림을 이끌고 중원으로 왔을 때 백석기는 자금과 물자를 조달하는 일을 맡아서 완벽하게 처리했다. 그의 진짜 장점은 그가 천하제일의 미남자라는 것인데 듣기로는 아직까지 그가 유혹해서 넘어오지 않는 여자가 없다고 한다. 게다가 남자들도 반할 정도여서 그를 직접 만나본 사람들 중에는 그를 요물이라고 부르는 자들도 적지 않다. 백석기보다 더욱 경계해야 할 자는 위태심이다. 위태심은 당시에 단목초를 대신해서 거의 모든 작전을 입안한 인물이다. 한마디로 그는 작전의 천재이고 계략을 꾸미는 일에 단목초보다 뛰어나다고 알려졌다. 단목초는 대제자인 감종간의 손에 살해되기 전만 해도 서장 역사상 가장 탁월한 지략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단목초보다 뛰어나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위관이 "위태심은 이번에 진 장문인을 제거하는 일에 실패한 것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으니 그가 이대로 물러날 리는 없소. 서장 무림에서의 위태심의 지위는 무척 특이하오. 사 년 전에 단목초를 대신하여 실질적인 군사의 역할을 한 이후 그는 배분에 상관없이 서장 무림에서 야율척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이 되었소. 단목초가 없는 지금 그는 명실상부한 서장 무림의 이인자요. 진 장문인은 앞으로 행보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거요. 내 짐작에는 서안에서 진 장문인의 손에 멸망한 초가보와 관련이 있지 않나 싶소."라고 말했다. 진산월은 어찌 되었건 위태심이 자신을 계속 노리고 있다면 언젠가는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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