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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의 한 구석인 취미사에서 화산파의 고수인 사익 장로와 그의 손자, 소림사의 굉지 선사가 굉지의 선방에서 흉수와 함께 차를 마시다가 살해 당했고 살인멸구의 수법으로 취미사의 승려들을 모두 죽인 사건이 섬서성은 물론이고 강북 무림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취미사 혈겁 말고도 검보의 정예인 해천팔검이 실종된 일이 생겼고 그 사건을 추적중인 개방의 고수 장안분타주 소방방이 급사한 일 등 사건이 계속 벌어졌다. 더구나 이세적 회갑연에서 가주 이세적이 살해당하면서 커다란 파문이 일어났다. 이존휘는 자신의 부친을 살해한 범인으로 종남파 장문인 진산월을 지적했고 당대의 명숙들인 화산파의 매장원, 개방의 인시망, 소림사의 대원선사도 증언을 했다. 그들의 명성은 중천에 떠 있는 해를 능가하는 이름난 고수들이었고 구대문파에 속해 있는 각 파의 수뇌급 인물들이었다. 진산월이 "이존휘, 당신의 충실한 동업자들의 증언은 단순한 말에 불과할 뿐 실질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다."라고 말하자 모든 군웅들은 입을 딱 벌린 채 아연실색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매장원이 "그렇게 말한 이상 자네는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하네." 싸늘하게 말했고 인시망과 대원 선사도 진산월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지붕 위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며 "진 장문인의 말이 옳다는 것은 내가 책임지겠소." 장내로 뛰어 내렸다. 그는 매장원이 직접 사로잡아 두기춘에게 감시하게 했던 신산 곡수였다. 곡수는 은은한 은색을 띈 소검을 번쩍 들더니 벼락같은 호통을 내질렀다. "본 파의 제자들은 나와서 매화검령 앞에 복명하라." 그러자 매장원의 뒤에 있던 화산파 제자들이 분분히 일어나더니 곡수의 앞으로 달려와서 바닥에 엎드렸다. 매장원은 화산파의 배반자였고 스스로의 손으로 제자들의 피를 묻힌 흉인이었다. 이번에는 개방의 종호가 인시망의 혈도를 제압해 쓰러뜨리면서 "모관 앞으로 나오게." 군웅들 틈에서 어젯밤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던 철심수사 모관이 앞으로 다가오며 오른손을 불쑥 내밀었다. 그의 팔뚝에는 푸른 색실로 매듭이 감겨 있었다. 청의단은 개방 내의 배반자를 색출하고 규율을 잡는 감찰기관이었고 모관은 오의단으로 활동하면서도 청의단에 속해 있는 이중신분이었다. 모관이 개방의 고수들을 둘러보면 "인시망은 본 방의 비밀을 누설하고 순의단의 고수들을 살해한 후에 내가 죽인 것처럼 위장하여 나를 제거하려 했소. 그는 대의를 어기고 동료들을 살해했으니 방주님을 대신하여 그 죄를 묻고자 하니 이해해 주기 바라오." 팔뚝에 묶고 있던 청색 매듭을 풀어 인시망의 목에 감아 청사형을 가했다. 소림사의 대원에게 정화가 "선사께서는 너무 오래 속세에 머물러 속세의 때에 찌드셨습니다. 그러니 본 사의 참회동으로 돌아가 남은 인생을 묵은 때를 벗기며 살아가시거나 스스로 파계를 자청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경우에는 본 사에서 얻은 모든 걸 돌려주고 가셔야겠지요."라고 말하자 대원은 스스로 심맥을 끊었다. 장내의 모든 이목은 이존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던 상황은 모두 정리되었고 이존휘만이 위태로운 벼랑 끝에 홀로 서 있는 신세가 되었다. 진산월이 이존휘에게 "자네의 아버지를 해친 흉수가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나?"라고 말하자 한참 후에 이존휘가 조용한 음성으로 "말해 보게." 진산월이 "마정기는 그날 지일환을 구하기 위해 그곳에 침입했다가 가산에서 공격을 받아 쫓길 때 심각한 부상을 당해 가산 근처의 나무 위에 숨어 있었다고 하네. 그런데 삼경쯤 되었을 때 누군가가 가산의 앞에 나타나더니 비밀 문을 열고 암도로 들어갔다가 반각 후에 암도 밖으로 나와서 사라져 버렸다고 하네. 마정기가 본 자는 평범한 인상의 이십대 청년으로 며칠 전 자네의 소개로 만난 적이 있었던 풍도일세." 이존휘가 무언가를 느낀 듯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진산월이 "자네 부친은 예전에 장안삼걸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네. 삼십 년도 더 된 시절의 일이라 나도 이번에 알게 되었네. 그중 한 사람은 내가 뇌옥에서 구출해간 노인일세. 자네 부친은 장안삼걸의 둘째였네. 그리고 장안삼걸의 막내는...." 진산월과 이존휘의 지척까지 다가온 공료가 버럭 노성을 질렀다. "무슨 이야기가 이렇게 긴가? 이제 이쯤에서 취미사 혈겁의 흉수를 제거하고 무림의 소란을 막는 것이 낫지 않겠나? 아무리 자네가 종남파의 장문인이라고 해도 나를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닌가?" 진산월과 이존휘의 시선이 마주쳤다. "바로 이자 일세." 진산월은 웅얼거리듯 말했고 이존휘는 알아들었다. 공료와 이존휘의 시선이 마주쳤고 이존휘가 "또 만나게 되었군요. 공 국주님, 아니 셋째 숙부님이라고 해야 하나?" 공료의 안색이 홱 변해 움직이려는 순간 이존휘의 몸이 비호처럼 날아와 그의 품속으로 파고 들었다. 거무튀튀한 장력이 노도와 같은 기세로 뿜어 나왔다. 공료의 성명절기인 흑살장이었다. 이존휘는 피하기는 커녕 더욱 빠르게 그의 품속으로 다가들며 오른손을 앞으로 쭈욱 내뻗었다. 놀랍게도 공료의 몸이 허공을 훌훌 날아 오장 밖으로 피분수를 뿌리면서 나가 떨어졌다. 중인들 중 한 사람이 공료의 앞가슴을 들춰 보았다. "아! 대수인... 이것은 밀종의 대수인이다! 서장의 제일무공인 대수인이 나타났다!" 그 말을 듣고 누군가가 "만상공자 이존휘가 밀종의 후예란 말인가?"라고 탄식했다. 이존휘도 역시 완벽하게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이마에 쓴 두건이 풀어 헤쳐지고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하게 변한 채 입가에는 가느다란 핏줄기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곧 몸을 똑바로 멈춰 세운 채 빙긋 웃으며 공료의 시체를 쳐다보았다. "네 놈이 바로 쾌의당의 장안 책임자였군." 이존휘는 입가로 계속 피를 흘리면서 진산월을 돌아보며 웃었다. "풍도는 내가 자네를 해치워 달라고 부탁하여 쾌의당에서 보낸 살수일세. 그런 풍도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자는 쾌의당의 장안 책임자 뿐이지. 풍도가 무슨 수법으로 부친을 살해했는지도 알겠네. 그건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하나의 검이 날아와 이존휘의 옆구리를 그대로 관통해 버렸다. 이존휘는 허리를 반으로 접은 채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져 버렸다. 순간 진산월의 신형이 한쪽으로 날아갔다. 매장원이 막 검을 날려 이존휘를 쓰러뜨리고 어느새 또 다른 장검 하나가 손에 쥐어져 있었다. 진산월은 검정중원을 펼쳐 매장원을 죽였다. 매장원은 쾌의당 칠대용왕 중 검중용왕이었다. 이존휘는 죽어가는 순간에 진산월에게 "쾌의당의 당주를 조심하게... 그자는 탈혼검의 고수야. 풍도는 쾌의당주의 제자 중 한 놈에 불과하단 말이야..."라고 말했다. 진산월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아직도 자네의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 없나?"라고 물으니 이존휘가 웃으면서 "그렇군... 하마터면 잊을 뻔 했어..." 이존휘는 사력을 다해 고개를 천봉궁의 고수들이 있는 방향으로 돌렸다. 이존휘의 시선은 그들의 중앙에 있는 붉은 색 봉황무늬의 여인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봉황인... 거의 가까이 왔었는데..." 그 말을 끝으로 숨을 거두었다. 진산월은 그의 부릅떠진 눈을 감겨주고 한참동안이나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천천히 몸을 돌려 종남산으로 향했다. 취미사의 혈겁 사건 범인이 마침내 드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