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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죽립을 눌러쓴 남자는 허리춤에 한 자루의 검을 차고 있었는데 이상한 것은 왼쪽 팔이 조금 부자연스럽게 흔들린다는 것이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죽립인이 왼팔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외팔이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죽립인이 "장방을 불러오시오. 손익을 불러와."라고 말하자 점소이가 움찔하는 기색을 보이며 "지금 누구라고 했소?"라고 묻자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왕종, 손님에게 무례하면 안된다. 너는 그만 가 보거라." 얼굴이 네모지고 싸늘한 눈빛을 가진 중년인이 앞으로 나오면서 "내가 장방이오. 당신은 나를 어떻게 알고 있소?" 물으니 죽립인이 "칠살추명조 손익이 초가보의 삼총관으로 현재 대왕루를 관장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소?" 말하니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칠살추명조 손익은 흑도무림에서 그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고수였다. 그는 열 개의 손가락만으로 수많은 고수들을 비명횡사케한 살인마였으며 냉혹하고 심계가 깊기로도 유명한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대왕루를 운영하는 초가보의 삼총관이 설마 그 살명이 자자한 칠살추명조 손익이었을 줄 몰랐는지 모두들 호기심과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장방을 쳐다보고 있었다. 손익은 중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도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손익은 "나도 자네가 누군인지 알겠군. 자네는 바보일세. 본보가 얼마나 자네를 열심히 찾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을 걸세. 이렇게 제 발로 내 앞에 나타나다니 실로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라고 말하니 죽립인이 "내가 여기로 찾아온 것은 이곳의 운영권을 돌려받기 위해서요. 대왕루는 세워진 후 줄곧 본 파의 소유였소. 그런데 초가보에서 비합법적인 수단을 사용해 대왕루를 빼앗았소. 나는 그걸 바로 잡겠다는 거요." 그 말을 들은 중인들 속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 저 사람은 종남파의 제자다."라면서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이 있었고 손뼉을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손익이 갑자기 "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장내에는 무림의 고수들도 상당수 섞여 있었는데 손익의 일갈로 소란스럽던 주위가 조용해지자 내심 그의 고강한 공력에 혀를 내둘렀다. 손익은 뒷짐 진 손을 풀었고 죽립인은 천천히 죽립을 벗었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추레한 청년의 얼굴이 드러난 겉모습은 볼 품없어 보였지만 눈빛은 침착했고 얼굴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는 종남파의 장문인 대신 실질적으로 종남파를 이끌고 있는 소지산이었다. 손익은 더 화근이 되기 전에 소지산을 죽이려고 양 손을 번갈아가며 칠살추명조 중에서도 살초로 이름난 오마색명을 펼쳐 공격했고 소지산은 더 버티지 못하고 어깨 부분에 피를 뿌리며 휘청거렸다. 손익이 한 마리 붕새처럼 허공을 날아 아직도 신형이 흔들리고 있는 소지산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면서 그의 머리에 열 개의 구멍을 뚫으려 할때 "불이야!"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무언가 타는 냄새와 함께 여인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삽시간에 장내는 난장판이 되었다. 손익은 누군가 불이라고 소리친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소지산의 머리통을 부수려고 했으나 어디선가 여섯 개의 비도가 날아들어서 할 수 없이 손을 거두고 물러난 순간에 소지산이 사람들 속에 섞여 사라져 버렸다. 소지산은 여인의 손을 잡고 좁은 골목 사이를 미친듯이 달려갔다. 여인은 본 파가 건재하다는 걸 알린 것만으로 큰 소득이라면서 쾌활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좁은 골목의 담벼락 위에서 한 명의 점소이 손에 호각이 쥐어져 있었다. 점소이가 손에 든 호각을 입으로 가져갔고 소지산은 호각을 부는 날에는 자신들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음을 알았으나 그가 아무리 빨리 달려들어도 담벼락에 도달해서 호각을 부는 점소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살랑 바람이 불더니 피비린내가 짙게 풍겼고 점소이가 담벼락에서 아래로 떨어져 머리통이 산산이 부서졌다. 담벼락 위에는 키가 크고 앙상하게 마른 사람이 선 채로 말없이 두 남녀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장문사형! 돌아오셨군요" 여인이 괴인에게 달려들었다. 자신의 품속으로 뛰어든 여인을 끌어안고 "취아야, 오랜만이구나." 그녀를 안고 있는 괴인의 눈빛도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소지산이 그에게 다가왔다. 소지산은 한참이나 괴인을 바라보더니 "돌아 오셨군요."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종남파 장문사형인 진산월이 헤어진 두 명의 동문 사제들과 다시 만난 감격에 찬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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