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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도가 짚인 채 종리궁도의 옆구리에 매달려 허공을 달려가는 진산월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순식간에 몇 개의 봉우리를 넘고 내를 건너뛰었다. 울창한 수림이 눈 깜빡할 새 코앞으로 다가왔다가 다시 등 뒤로 멀어지고 집채만한 커다란 바위가 발밑으로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숭산을 벗어날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무서운 속도로 달려 나가던 종리궁도의 몸이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렸다. 진산월은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살펴보려 했으나 보이는 것이라고는 바닥에 깔린 무수한 돌멩이들 뿐이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수백 개의 돌로 쌓은 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이었다. 진산월은 크고 작은 돌탑들이 월광 아래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곳이 소림사의 후원에서 멀지 않은 탑림임을 알아보았다. 숭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갈 줄 알았던 종리궁도가 의외로 다시 소림사 쪽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커다란 탑 아래 한 명의 복면인이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금포를 전신에 두르고 있었는데 머리 위까지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도저히 체구와 용모를 알아볼 수 없었다. 금포 복면인은 "불편한 곳은 없소?" 짤막하게 입을 열었다. 진산월은 그의 걸걸한 음성이 변성된 것임을 알아차렸으나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빙긋 웃으며 "괜찮소. 종리대협의 신법이 너무 좋아서 아주 좋은 경험을 했소."라고 대꾸했다. 종리궁도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의혹의 빛이 짙게 떠올라 "한 가지만 물어보자. 조금 전에 왜 전혀 반항하지 않고 내 손에 순순히 제압당한 것인지... 명색이 일파의 장문인이란 놈이 몸을 피하거나 대항할 기색조차 없었다는건 너무 이상한 일이 아니냐?"고 물었다. 진산월이 "그럴 리가 있겠소. 그보다 혈도라도 좀 풀어주면 어떻겠소?"라고 피식 웃었다. 종리궁도는 금의 복면인에게 해혈시켜 주어도 괜찮냐고 시선을 금의 복면인에게로 돌렸고 금의 복면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혈이 풀어진 진산월은 어깨관절을 주무르며 조용히 웃었다. 진산월은 금의 복면인이 미리 포섭한 포일융과 여섯 명의 고수들을 보내 운자추의 시선을 혼란시켜 그들을 일종의 방패막이로 삼은 것, 당수인이 독을 쓸 것을 예상해 종리궁도로 하여금 피독할 수 있는 물건을 지니게 해서 독을 당한 것처럼 꾸며 운자추와 당수인이 방심한 틈을 타 자신을 납치했다고 판단했다. 그는 장문인의 신분으로 본 파의 제자인 동중산을 당연히 되찾아올 책임이 있으므로 종리궁도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려고 일부러 종리궁도의 손에 제압당해 준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상황을 유추해 금포 복면인이 백봉 정소소인 것도 알게 되었다. 점점 흥미롭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 흠뻑 빠지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