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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소설은 "육사에게 단 한 사람의 비밀한 여성이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다."(181쪽)는 신석초 시인의 글이 있었기에 탄생되었는지 모른다. 작가는 '비밀의 여인'을 통해 이육사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정녕 연애는 불가합니까?" 하고 묻는 22세 여인에게 이육사는 아벨 보나르의 [우정론]을 거론하며 "그러니, 연애말고 우정으로 합시다."라고 답한다. 하여 이 이야기는 내내 얼음처럼 차갑게 흐르다가 이육사의 죽음 후에 용암이 분출하듯 뜨거운 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이육사의 말처럼 연애 이야기가 아니고 그렇다고 우정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고 단지 시인이자 독립투사인 이육사에 대한 이야기다. "불길한 것은 불온한 것과 닿아 있으니까. 불온은 혁명의 밑바탕이니까."(37쪽) 이육사라는 필명을 쓰게 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1927년 23세, 대구형무소에서의 첫 번째 옥살이에서 얻은 수인 번호 264. 이원록, 이원삼, 이활 모두 그를 칭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이육사로 남았다. "1939년 가을의 경성은 불균형이 빚어내는 카오스로 혼란스러웠다. 지나친 현란함과 지나친 어둠, 지나친 가벼움과 지나친 무거움, 그 사이에서 많은 이들이 수탈과 악행과 치욕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소비 유흥 문화에 빠져들었다. 백화점, 다방, 술집, 영화, 유성기 ... 노면 전차길과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식민지의 욕망은 어지러이 흘러다녔다."(23쪽) 작가가 전하는 1939년의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 이육사와 비밀의 여인은 처음 만나게 된다.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한 맏딸이었던 동해이모는 막내의 막내딸, 조카인 '나'에게 글 한 편을 남겼다. 동해이모의 막내 동생인 '나'의 엄마는 그 글을 영원히 감추려다 다 키운 아들을 잃고 넋나간 '나'에게 내놓으며 동해이모처럼 이제는 글을 써보라고 했다. 이육사와 동해이모의 이야기를 외울 정도가 된 '나'는 글을 이육사의 유일한 혈육인 이옥비 여사에게 내어놓는다. 글과 현재의 '나'가 이옥비 여사를 만나는 장면이 교차되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조카인 '나'에게는 사실의 기록으로 보이는 글이 이옥비 여사에게는 소설로 느껴진다. <그 남자 264>는 분명 소설이지만, 이육사를 벗어나지 않고 온전히 전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작가는 동해이모를 살아있는 여인으로, 이육사와 우정을 나눈 여인으로 잘 직조해 놓았지만, 나라의 독림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이육사의 삶을 전하는 역할을 잘 수행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남긴 40편의 시와 40여 편의 산문에는 그의 마음과 행동이 스며 들어 있다. 나는 그 작품들을 최대한 소설 속에 녹여 넣어 그의 시가 강처럼 흐르고 그의 산문이 언덕처럼 솟아 있는 풍경을 그려보고자 했다."(219~220쪽)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내가 알지 못하는 40여 편의 산문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육사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생생하고 진실로 다가왔다. 비밀의 여인이 아닌, 이 나라를 사랑한 남자, 이육사가 느껴졌다. 曠野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참아 이곳을 범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즈런한 계절이 피여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 [광야] - <자유신문>(1945.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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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이육사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특히 시인으로만 알았던 그가 의열단 출신이라는 것, 김원봉 대장이 이끄는 군관학교 출신이었으며, 중국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불령선인으로 지목되어 고초를 겪었으나, 끊임없이 비밀스러운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것. 그러나 이육사의 삶에는 알려지지 않은(끝내 밝힐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많았고, 소설은 그 공간을 파고들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이육사의 친구이자 동료 문인인 신석초의 기록. '이육사 곁에 있던 한 여인' 그리고 그의 활동. 이육사는 총을 놓았으나 펜을 들어 싸웠고, 결국에는 다시 총을 든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총과 펜이 하나였듯, 삶과 죽음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삶과 죽음이 한 덩어리로 녹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도 있게 되었죠.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본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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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264_고은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