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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전 겨울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치게 되었다. 오래전 내가 속해 있던 ‘상록독서회’의2005년 1월 선정도서다. 당시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보내야 했는데, 보냈는지 어쨌는지 기록해둔 것도 없고, 어쩌다 보니 독서회와 연락이 끊어지고 늘 아쉬운 마음이었다. 십수 년 넘게 활동했던 내 정신의 의지처였던 독서회였다. 작년 나의 첫 책을 쓰는 과정에서 독서회의 추억이 되살아났고 언젠가 꼭 다시 읽어보리라 했었다. 읽으면서 희미해진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과연 책 제목처럼 화자인 인디언 소년 ‘작은 나무’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가득했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며 자투리 시간에 읽느라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감동과 웃음이 내 안으로 밀려왔다.
아빠와 엄마가 돌아가시고 다섯 살인 ‘작은 나무’(본래의 고향인 테네시 주에 머무른 그룹의 자손에 속한다고 함)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산속 오두막에서 살게 된다. 여러 마리의 개들과 산속의 새들과 온갖 동물들, 자연이 소년의 친구다. 체로키 인디언인 조상의 전통을 이어받아 위스키를 제조하는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하고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자연이 주는 풍족한 혜택을 아낌없이 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너무 어려서인지 부모를 잃은 슬픔 같은 건 엿볼 수 없었다. 오히려 어른스러움 마저 느껴졌다. 그저 눈뜨면 자연과 접하고 그 속에서 하나가 되는 삶, 대지의 큰 사랑을 받고 살아서였을까.
몇 되지 않는 산속에 사는 이웃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이야기, 개척촌에서 찾아온 정치인이나 기독교인 등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서 또 하나의 다른 사회를 배워 간다. 자연의 풍성한 혜택을 누리면서도 자연을 함부로 해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동물을 사냥하더라도 모조리 다 잡는 것이 아니라 강하고 튼튼한 종을 남겨 두어 대를 이을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자연과 교감하는 법, 고통을 참는 법 등 인디언의 정신을 할아버지께 배운다. 그리고 이웃 어른들의 죽음을 통해서 삶의 이치도 알아간다.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했다. 살아갈 날이 길지 않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면서 ‘작은 나무’는 어렸지만 어떤 애틋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워낙 영특한 아이였으니.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낯선 여자의 방문은 모두를 슬픔에 빠뜨린다. 교육을 받아야 할 어린이가 자격도 없는 늙은 인디언들에게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누군가 고소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작은 나무’는 고아원에 들어갔지만. 우여곡절 끝에 다시 집에 돌아오게 된다. 소년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거기서 받은 고통 따위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그후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 수 있었던 기간은 고작 2년이었다. 작가 자신의 자서전 격으로 볼 수 있는 이 책은 백인 미국 사회의 잔혹성과 위선을 보여주고 체로키 인디언 사이에서 전해지는 가르침들, 할아버지가 ‘작은 나무’에게 말해주고 싶은 가르침이 녹아들어 있다. 1977년 초판이 간행된 이후 뉴욕타임즈를 비롯하여 산악지방의 주간지에 이르기까지 많은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작은 고전’으로 불리고 있다. 인디언 소년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자연과 사람들 이야기가 감수성 넘치는 필체로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언뜻 생각으로는 우리가 산을 짓밟으면서 앞으로 나갈 것 같았는데, 실제로 걸어보니 산이 손을 벌려 온몸으로 감싸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발자국소리가 조금씩 울리기 시작했다. 주위에 뭔가 꿈틀거리는 것들이 있었다. 만물이 다시 살아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작은 휘파람소리와 숨소리들이 나무들 사이에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P15)
‘그게 이치란 거야.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 하면 안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야. 흑표범인 파코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 너도 꼭 알아두어야 하고.“(P25)
‘할머니가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 나누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퍼지게 된다.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P96)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게다가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부리는 걸 그만두지 않으면 영혼의 마음으로 가는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비로소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영혼의 마음도 더 커진다. 할머니는 이해와 사랑은 당연히 같은 것이라고 하셨다.’(P101)
‘가을은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정리할 기회를 주는, 자연이 부여한 축복의 시간이다. 이렇게 정리해나갈 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했어야 했던 온갖 일들과…… 하지 않고 내버려둔 온갖 일들이 떠오른다. 가을은 회상의 시간이며…… 또한 후회의 계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하지 못한 일들을 했기를 바라고…… 하지 못한 말들을 말했기를 바란다……’(P261)
‘처음 그 별을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는, 그 별을 보며 떠올릴 일들을 낮 동안에 미리 생각해두려고 애썼다. 하지만 나는 얼마 안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면 할아버지가 나에게 추억들을 보내주셨다. 할아버지와 나는 아침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산꼭대기에 앉아있다. 햇빛을 받은 얼음이 찬란한 빛을 뿜으며 반짝거리고,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린다. “산이 깨어나고 있어.” 그러면 나는 그 창가에 서서 이렇게 대답한다. “네 할아버지, 산이 깨어나고 있어요.”(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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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저는 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한 소녀랍니다.ㅎ 지금까지 저는 많은 책을 읽었지만 이렇게 독자리뷰를 쓰는건 처음인것 같습니다. 이책은 읽어도 읽어도 또 읽고싶어지는 책입니다. 할아버지,할머니,그리고 그들의 행복인 손자 작은나무가 나에게 준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서로를 위하는 깊은 사랑이었습니다.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또한 그속에서 자연과 함께 있다고 느끼며 부러워했습니다. 또 아직 자연에서 살아보지 못한 저에게 경험만큼 소중한 상상을 남겨주는 책이었습니다. 한번쯤은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할때 다시 보고 싶게될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꼭 한번 읽어보세요. 당신에게 사랑보다 더큰 감동을 설물할 겁니다. |
| 정말 감동적인 책이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는 재미있고 즐거운 교훈과 유익한 지혜가 깊이 스며있으며,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눈물나도록 슬픈 이야기로도 채워져 있다. 내 영혼도 함께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체로키 인디언의 일상은 자연과 하나 되어 함께 살고 자연을 존중하는 환경 친화적인 삶이다. 자연의 이치대로 필요한 만큼만 갖는 생활 속에서 가진 자들의 욕심과 이기심을 나무라며 현대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바른 전망을 제시한다. "지난 일을 모르면 앞일도 잘 해낼 수 없다. 자기 종족이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면 어디로 가야 될지도 모르는 법."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이 이방인 백인들에게 갖은 핍박과 괴롭힘을 당하며 모든 것을 빼앗긴 채 강제 이주라는 머나먼 고난의 길을 떠나야 했던 참담한 역사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작은 나무에게 들려주는 과거 회상을 통해 담담하게 전해주고 있다. 약자의 진실은 언제나 외면당하고 왜곡되다가 뒤늦게야 밝혀진다. 우리는 백인들이 만든 서부영화 속에 설정된, '말을 타고 무기를 휘두르며 선량한 백인들을 위협하다가 결국 정의로운 백인의 총에 맞아 죽어나는 무법자 미개인이 인디언이다.'라는 고정 관념을 타파해야 한다. 인디언은 인정 많고 지혜로우며 순박한 우리네 이웃들과 다를 바 없다. 이것이 바로 진실이다. 할머니 예쁜 벌이 작은 나무에게 전한 귀중한 가르침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 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널리 퍼지게 된다.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좋은 책을 읽었으니 무엇보다 먼저 다른 이들에게도 권해야겠다. 그것은 좋은 일이니까. |
| 이책을 아직도 보지않은 사람들에게 적극 권장하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3번째 읽고 있습니다만.. 읽을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주는 책입니다. I Kin Ye 사랑한다는 말로는 부족해서 그들만의 언어로 사랑보다 더 깊은 사랑으로 표현 하는 언어입니다... 체로키인들의 삶의 방식과 사람을 사랑하는 또 그들을 대하는 방식들을 많이 배웠습니다. 저는 제 주위 친구들에게 계속 추천해주고잇습니다.. 진짜 감동적인 책을 읽으려면 이책을 읽으라구요.. MBC에서 선정한 도서뿐이 좋은책이 아니라며.. 저 혼자 이런 좋은 책을 읽고 있다는 게 안타까워 서평을 썼습니다. 사서 후회할 책에 대해서 서평은 잘 쓰지 않거든요.. 각자 개인마다 차이가 있으니까요/.. 이책은 누가 보더라도 정말로 후회가 없는 책이에요.. 꼭 한번씩 보세요 |
| 처음 봤을 땐 살까말까 주저했어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책 제목이 너무 고와서..왠지 삼류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 이유로 망설이다 표지 그림에 인디언 꼬마를 한 번 믿어보고 싶었습니다..웃습게도. 그리고 결과는 가슴을 쓸어내리죠. 이 책을 못 만났다면...아휴..그건 생각하기도 싫네요.읽는 동안 작은 나무의 모습이 내 마음을 울게도 하고 웃게도 했습니다. 보기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그저 산에 사는 늙은 인디언에 불과하지만..사람이 가져야 하는 가장 빛나는 덕목을 지니고 ..생활에 실천하며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가진 건 ..두 말할 필요도 없는..작은 나무의 작으면서도 큰 행운이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나 자연속에 있을 때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고..마음으로 생각하는 모습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불편해서 잊어버리고..귀찮아서 뒤로 밀쳐두는 ..향기 있던 우리의 옛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 모두는 부정할 수 없는 천하의 바보들입니다.작은 나무를 만나고 전 이상한 버릇이 생겼습니다. 이 책만 보면 사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냥 한 권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또 한 권을 구입했죠. 가지고 있다가 멀리 가는 친구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해서 선물 했습니다. 다시 한 권을 더 샀죠. 이 책은 다섯살이 된 우리 조카에게 주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은 또래가 읽는 동화책만 보는 녀석이지만 조금 더 크면 읽고 이 고모의 감동을 나눌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그 황홀할 기쁨에 작은 멀미가 날려고 합니다.내 방 책꽂이에 나란히 꽂혀 있는 두 권의 행복한 영혼은..자기보다 훨 더 비싼 책들을 누르고 빛나 보입니다. 비교할 수 없는 자기만의 향기로 절 유혹합니다 |
|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함으로 일관한다. 그 잔잔함에는 어떠한 요동도 존재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내 가슴속으로 밀려드는 그 느린 물결은 어느 순간 거대한 강물이 되어버렸다. 소름이 돋는다. 눈물이 나려던 걸 억지로 참아본다.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의 문화에 대해 접하고 있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그들의 것은 세상의 진리가 되었고, 모든 이들은 그들이 구축해놓은 논리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에 반역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낙오를 의미했고, 단순히 혼자 낙오되는 것이 아닌 소멸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인디언은 불행할 수 밖에 없었다. 체로키 족의 삶은 그러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들에게 주어진 땅은 더 이상 그들의 것일 수 없었다. 자연으로부터 분리되는 그 순간 사람은 죽는 것이었지만, 우린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그들의 것으로부터 분리시켜 버렸다. 이주의 행렬이 진행되면서 전체의 삼분의 일이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죽은 이들을 가슴에 안고 끊임없이 앞만 보며 걸었다. 그 굳건함은 작은 나무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 속에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었다. 작은 나무에게는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그의 스승이었다. 걸어다니며 느끼는 흙내음으로 세상에 눈을 떴고, 자연과 대화하면서 그는 성숙해갔다. 너무 이른 나이에 그를 떠난 부모에 대해 그는 어떠한 원망도 하지 않았다. 체로키 인들에게 죽음은 잠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일 뿐, 그것은 다시 만나기 위한 짧은 여행이었기에, 작은 나무는 그러한 체로키인으로서의 삶을 하나하나 체득해나갔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들 이외의 이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었다.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에 작은나무는 사생아일 수 밖에 없었으며,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인디언이었기에 그는 태생적으로 악한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한없이 맑은 영혼을 지녔지만, 제도권 교육의 우월성을 끊임없이 주장하면서 인디언 자생문화를 말살시키고자 하는 백인들의 관점에서 그는 받아들여질 수 없었고, 감금에 가깝게 느껴지는 고아원 생활은 그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목사는 그가 자연의 섭리를 이야기한다는 것을 두려워했고 경멸했으며, 마치 크나큰 자비를 베푸는 것 마냥 행동하다 스스로 질려 작은나무를 버리곤 만다. 시간이 흐르고 아직은 어린 작은 나무에게 주변의 사람들은 하나 둘씩 보내야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너무도 담담히 죽음을 맞이하는 체로키 인들의 모습 속에서, 인간은 본래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존재이기에 다시 자연으로 돌아감에 있어서 어떠한 두려움도 없는 것은 당연함을 느껴본다.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고, 그 때는 지금 보다 나을 것이라며 이 생을 떠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재산 분쟁이나 억지로 생명을 연장시키려 드는 인간의 욕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10살짜리 아이는 울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는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울 수 없었다. 혼자가 되어버린 이후에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 배운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통해, 그는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잃지 않은, 그래서 혼자일 수 없는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자전적 소설 속에서 나는 우리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들의 허구성을 느낀다. 좁은 땅에 넘쳐나는 사람들로 인해 끊임없이 개발해야 된다는 이야기 속에서 우린 자연의 아파하는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 같다. 나무가, 바람이, 하늘이 우리에게 걸어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귀를 열어놓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렇게 우린 아무도 믿지 못한 체 스스로 고립되고 메마를 수 밖에 없었나 보다. |
| 인디언들의 삶에 대한 얉은 지식이 전부인줄 알았기에 이 책에 크게 기대는 안했다. 초반까지만 해도 할아버지의 말에 작은 나무가 나름대로 해석하고, 교훈을 얻는 얘기들이 계속 반복되어 조금은 지루했다. 그러나 읽으면서 아이의 독특한 시선과 가치관이 담긴 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 책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백인과 물질문명, 교회, 정치가에 대한 해학적인 문구들은 정말로 유쾌하다. 모든 잘못을 정치가에 돌리는 할아버지. '그런거 같다' '맞는 말이다' 라는 식의 작은 나무. 독초와 진드기로부터 백인들을 지켜주지(?) 않는 방관자적 태도에서 순수함이 묻어나기에 귀엽고, 잔인하게(?) 재미있기만 하다. <어느 빈터에 걸었던 꿈들>에서의 상실된 꿈에 대한 허탈함은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윌로 존'의 모습에서는 인디언들의 '한'과 '마지막 자존심'이 느껴진다. 충실한 개들과 자연, 별, 꽃, 나무, 야생동물들에서는 넘치는 생명력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와 반대로 서구문명은 작은 나무가 이해하지 못할 부분으로 가득채워져 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하기에 자연과 동화된 인디언들의 삶에서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에 폐허가 된 정신과 영혼을 다시 꿈꾸어 보고싶다. 아름다움을 볼 줄 알고, 자연을 이해할 줄 알며,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있어서 우리는 작은 나무보다 더 작은 씨앗으로 있는지도 모른다. 성장한다는 것은 영혼의 눈을 떠가는 것. 그렇게 우리는. 나는. 작은 나무가 바라보는 늑대별을 보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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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였는지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잊어먹기 시작했다. 그들과 함께 하기 보다는 그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이용하느냐가 항상 그들의 관심거리였고, 주어진 자연을 누가 더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갈라지는 삶을 살고 있다. 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산을 이요해서 사용하는 삶에 익숙해 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태어난 곳은 자연이고, 우리가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이 자연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자연과 함께 사는 지혜.. 그 지혜를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다. 주인공 꼬마인 작은 나무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인디언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인디언 생활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살아가는 그들은 산속에서 산과 더불어 살아간다. 그들의 생활 방식을 그르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꾸짓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는 우리가 억지로 만들어 놓은 법도 없고 규칙도 없다. 그저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삶은 삶 그대로에 질서가 베여있고 삶 그 자체에 조화가 있고 진리가 있다. 이런 모습을 과연 어떤 잦대로 미개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소박하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울 알으면서 저절로 마음에 스며드는 그들의 따뜻함을 느껴 보는 것도 좋을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나무들은 멋있게 생기고 키도 큰데다 줄기도 곧게 뻗어 있었다. 그 나무들은 이기적이지도 않았다. 산짐승들의 먹이가 되는 옻나무와 감나무, 히코리나무와 밤나부들과 함께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기적이지 않았기 때무에 그 나무들은 크고 강한 영혼을 갖고 있었다. |
| 인디언들의 생활을 통해서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었던 계기였다. 비록 문화의 차이는 있었을지 몰라도 그 무언가가 나의 마음속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하였다. 제목에서처럼 작은 나무의 영혼과 같이 나의 마음속의 영혼 또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할아버지처럼 나의 2세에 대한 교육적인 방법 또한 수긍할 수 있었을 정도로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었다. 물론 읽어 가면서도 이런 점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립된 생활 패턴에서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에 현실사회에 비판하는 모습은 그리 좋은 모습만은 아니었다. 이 부분에서 제일 컸던 부분은 정치가의 타락된 모습에서 비롯된 잘못된 인식이 모든 정치가들의 타락으로 비유되었고 또한 기독교의 절대우월감의 모습 또한 전체적인 기독교의 타락을 일으키게된 점도 아쉬운 점이다. 내가 보던 정치인들이나 기독교인들 또한 그리 좋은 평판은 아니지만 내가 읽으면서 느낀 것은 그런 잘못된 인식을 아이 스스로가 생각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물론 전반적으로 아이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할아버지의 뜻깊은 배려가 있었으나 현대 문화의 접목에 있어서 잘못된 점 또한 아이들의 입장에 서서 바라보지 못하고 할아버지의 생각과 산 속의 생활에 있어서 무조건적인 잘못된 인식을 아이스스로가 배웠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잘못된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비교할 수 있는 방식을 알려주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반적인 인디언생활의 초점을 두고 작은 나무에 입장에서 티없이 맑은 눈으로 세상을 돌아볼 수 있었다. 지금의 내 자신과 앞으로 나의 2세에 대해서 현 사회의 문제점을 스스로 깨우치고 보다 실용적인 면에서 삶의 즐거움과 앎의 즐거움을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더러는 자신만의 공간을 토대로 삶의 여유를 가지고 나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한번더 뒤를 돌아보게 됨으로써 보다 성숙한 자신을 만들 수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책속에서도 할아버지, 할머니, 작은 나무가 산 속에서 각자 자신의 비밀공간을 가지므로서 그 속에서 자신의 주체의식을 바탕으로 나만의 것이란 뿌듯한 마음가짐, 나만의 휴식처를 통해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으로 부각되고 있다. 항상 사람들을 만나고 부대끼면서 느끼지 못하는 여유와 바쁜 일상 생활 속을 탈피해 자신만의 공간에서 더 나은 생활을 위한 에너지 충전의 계기로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땀 흘린자의 보람을 느끼게 해주므로서 사회의 일원으로 소속감을 들게 해준다. 작은 나무 또한 산이란 공동체 안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그 속의 주인으로써 주체의식을 심어주므로써 작은 나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수동적인 삶보다는 능동적인 삶을 우선시 하는 보다 현명한 교육을 실시했다. 또한 산 속의 생활들의 사회에 개방되면서 겪어야 했던 시련을 토대로 혼자 개척해야될 미래, 할아버지의 미래지향적인 교육을 통해 스스로 깨우치게 해준 점도 인상적이었다. 실패를 겪음으로써 보다 나은 방향을 스스로가 판단함으로써 사회에 적응력과 시련에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르치게 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죽음을 토대로 스스로가 삶을 개척함에 있어 지난날을 돌이키고 배움을 토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자연을 벗삼아 그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치고 사회의 부조리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가 깨우치므로서 오늘날 잘못 인식된 교육열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일단 나의 어릴적 모습이 아련히 스쳐지나갔다. 나 또한 뛰어 다니면서 놀고 스스로 조금은 터득했던 것 같다. 요즘은 부모들의 지나친 학구열에 아이들은 학원을 2~3개는 기본으로 다니면서 정말로 아이들의 느끼는 것보다는 아이의 미래를 위한 지름길이라 생각하며 아이들을 혹사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때문에 능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인 삶, 이해심보다는 원리원칙을 강조하는 삶으로 이기적인 인생을 살게될 수 있는 문제점을 야기 시키게 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아이들과 뛰어 놀면서 자유분방한 생활 속에 그무리속에 법칙을 배우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학구열에 아이들은 녹초가 되어가고 이로 인해 가족과의 불화가 생길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과외비, 학원비를 벌기 위해 부모님은 사회로 나가서 돈을 벌고 아이들은 하루종일 학원에서만 전전긍긍하다보니 제대로된 교육은 물론 그만큼 역효과가 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도 안좋치만 그렇다고 혹사시켜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아이들이 바라는게 무엇인지 어른들의 눈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한번쯤은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같이 바라보면서 아이들을 이해해 보는것은 어떨까? 난 나의 2세에게는 강요적인 교육보다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겠다는 교육방법을 채택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로써 아들에게는 버팀목이 되고 아버지를 본보기로 쓰러져도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아들의 보기에 성공한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잣대를 보여줌으로써 나의 2세를 키우겠다. |
| 재미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읽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책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 해주는 여러가지 것들이 투명하고.. 맑고... 때론 진솔하기까지 했으며, 인디언 특유의 사고방식을 읽을수 있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이웃들을 사랑하는 그런 인디언들의 모습에서.. 정말 가슴 가득 따스함이 퍼지게 하는 책이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곁을 떠나 강제로 고아원에 가게 되었을때 잠시 콧잔등이 시큰해지는데, 근간 유행했던 최루성 영화나 소설등지에서 느껴졌던 그런 싸구려 슬픔이 아니라.. 뭐랄까.... 슬픔을 터놓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를 악물며 참는것도 아니고... 당연스레 슬픔을 받아들이는 주인공 꼬마 '작은나무'에게서 난 말로, 글로 표현 할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느꼈다. 이후.. 시간의 흐름이란 절대 불가항력적인 것인지라, 그것이 몰고오는 보랏빛 안개까지도 막을수 없는것이다. 인디언들은 그 인생 막바지 보라색 안개를 억지로 걷어내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뿐이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라며 고통스러워 하거나 슬퍼하지도 않는다. 죽음도 살아있음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정말... 너무 멋있었다. 죽어도 죽은것 같지가 않는 그런 죽음.. 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기르던 가축들도 하나둘 죽어가며 꼬마는 실제로는 있지도 않는 '인디언 연방 정부'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인디언은.. 참 신비롭고 주술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이다. 불도저와 전기톱으로 무장한 백인들은 결코 자연을 정복할수 없으며 기계들 없이는 독이 있는 덩굴풀 앞에서 맥도 못추는 그런 나약한 존재이다. 하지만 인디언들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나무들과 이야기 하고, 동물들과 장난을 치며, 별과 구름을 읽는 사람들이 바로 인디언인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다스림이라고 할 지 모르겠다. (굳이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지, 인디언들은 결코 자연 위에 군림하지 않을뿐더러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이미 알고 있다.) 이 책 덕분에 내가 얼마나 초라해졌는지 모른다. 나무와 얘기는 커녕 나무 이름들 조차 제대로 아는게 별로 없는것 같다. 비단 나무 이름 뿐이겠는가.. '작은나무'꼬마가 가르쳐주는 포괄적인 의미의 '사랑'이라는것도... 내가 미쳐 깨닫지 못하고 .. 느끼지 못하는 것들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