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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 키팅의 《보이지 않는 국가들》도 비에른 베르예의 《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처럼 낯선 이름의 지명들이 무수히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다른 점은 베이른 베르예의 책이 대체로 이미 과거가 된 이름들이라면(물론 그 지역은 지금도 남아 있지만), 조슈아 키팅의 《보이지 않는 국가들》은 지금 현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낯선 지명들을 다룬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얘기일 수 있고, 또한 이는 미래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 낯선 지명들은 다음과 같다. 압하지야(Abkhazia), 아크웨사스네(Akwesasne), 소말린란드 (Somaliland), 쿠르디스탄(Kurdistan), 키리바시(Kiribati). 그리고 번외로 몰타기사단, 에스토니아의 전자여권, 리버랜드(Liberland), 국적이 없는 이들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조슈아 키팅은 이 알파벳으로 쓰고 읽기에도 녹록하지 않은 이 지명들, 그 지역,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서 바로 현대의 ‘국경’에 대한 문제, 나아가 ‘국가’의 정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언뜻 생각하기에 국가란 명백해 보인다. 그리고 국가가 있으면 국경의 문제는 분쟁이 있는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역시 명백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조슈아 키팅의 이 책은 그런 인식 자체를 허물어 버린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국가를 “주어진 영토 내에서 정당한 물리력 사용의 독점권을 (성공적으로) 행사하는 인간 공동체”라고 정의했고, 이 정의는 국가의 요소로 ‘정부’, ‘영토’, ‘국민’으로 파악하도록 했다. 우리는 이 정의가 근대 이후의 국가를 정의하는 데 충분하다고 여겨왔다. 특히 우리의 경우는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해야 한다는 데 당위성을 느끼고 있기도 하다(‘민족’이란 개념 자체가 근대의 개념이라는 게 거의 밝혀지고 있지만). 하지만 조슈아 키팅의 이 책을 통하면 우리는 현재 이 정의가 통하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는 그 이유를 역사적으로 서방 강대국의 식민 통치의 잔재뿐만 아니라, 현재의 비국가 정치체, 미국(미군)이 동맹국과 적국 모두의 주권을 개입이라는 명목으로 침해로 인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앞에서 든,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지역들은 바로 그런 전통적인 국가 정의가 현재에 얼마나 잘 맞지 않는지,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압하지야는 옛 소련의 지배하에 있다 독립한 조지아 영토 내에 있으면서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조지아 정부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고 있지는 않지만, 국가 체제로서 국제적인 인정(이는 거의 미국의 인정과 동의어로 봐도 괜찮다)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크웨사스네라는 지역은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 사이에, 아니 국경에 걸쳐 있다. 모호크족이라는 인디언이 이곳에 살고 있으며, 양쪽의 국민으로서 스스로는 동일한 지역에서 하루에도 여러 차례 여권을 내보이며 국경을 왕래하고 있다. 소말린란드는 ‘중간 세계’의 성격을 지닌다. 소말리아 북부에 존재하는 소말리란드는 소말리아라는 전혀 국가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국가에 한 지역으로밖에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하지만, 소말리아보다 더 국가다운 곳이다. 그러나 역시 이곳도 국가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 다음은 쿠르디스탄이다. 언론의 국제뉴스에 자주 보도되기 때문에 가장 친숙한 이곳은 쿠르드족이 국가 수립을 염원하고 있는 곳이다. 아마도 이 책에서 가장 국가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 소개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끊임없는 배신으로 국가로 수립되지 못한 이곳은, IS에 맞서는 조직으로 효용가치를 높였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사정이 숨어 있으며, 과연 쿠르드족이 단일한 국가로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한 의문은 현대의 국가라는 조직이 과연 단일한 형태를 띠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키리바시 역시, 그 이름 자체는 그렇게 낯이 익지 않지만 상황 자체는 낯이 익다. 태평양의 산호초섬으로 이루어진 키리바시는 영토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기후 온난화로 인한 수면 상승은 영토(섬)가 바다 아래로 잠겨 버릴 것이란 공포를 심어주고 있다.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과연 키리바시라는 나라는 존속하는 것일까? 아니면 소멸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에 대해서 세계는 어떤 답변을 내놓을까
키팅은 현재의 국경 문제가 대체로 20세기 후반 들어 경직된 국경을 유지하려는 강대국(역시 대체로 미국에 해당한다)의 이해 관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금 좀 문제가 있더라도 이대로 유지하는 것이 말썽이 덜 날 것이라 여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 자체가 모순이다. 지금의 불완전하고 인위적인 국경을 만든 것은(아프리카나 중동 등지에서 특히)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새로 탄생한 주권국가들이 과거에 존재했던 국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국경 점유의 원칙” (170쪽)을 내세우는데, 그 국경이 그 지역의 자연적인 상황에 맞지 않게, 그 지역의 사람들의 바램에 어긋나게 만들어졌음에도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신생국가들의 국경이 영토 자체에 살고 있는 민족의 현실과 연관을 맺고 그려진 게 아니라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 열강의 정치에 의해 그려졌기 때문이다.” (169쪽)
그래서 국가나 국경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얘기한다. 거기에 영토를 가지지 않은 국제적인 조직이지만 UN에서 거의 국가에 준하는 대접을 받고 있는 몰타기사단, 전자여권을 발행하는 에스토니아, 어떤 국가도 점유를 탐하지 않는 틈바구니에 국가를 선포한 이들(이를 테면 리버랜드)을 소개한다. 미래에 국가와 그 국가의 국민이라는 틀이 얼마나 견고하게 유지될 것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가의 틀과 그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 같은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시 고민해야 할 지점은 차고 넘친다. 가장 중요하게는 북한의 문제가 있다. 우리의 국경은 어디인가? 북한은 국가인가, 아닌가? 등등. 현실과 당위 사이에서 질척거리고, 싸우고 있으며, 외부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일치하지도 않는다. 비록 이 책은 한반도의 문제를 바로 지적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쩌면 한 chapter를 더 썼다면 우리의 문제를 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국경에는 의문을 제기해야 하며, 국경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대로 유지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230쪽)
“’자연적인 국경’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산뜻하게 나누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 선을 그리려고 할 때마다 결국 누군가는 어긋난 쪽, 자신이 원하지 않는 쪽에 있게 된다.” (184쪽)
“우리는 지금
시대를 세계화의 시대, 사람들과 자본이 유례없는 속도로 자유롭게 세계 어느 곳이건 돌아다니는 시대, 민족과 문화 사이의 구분이 점점 더 헐거워진 시대라고 여긴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지도상의 실제 국경선과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들의 배치는 고착돼버렸다.” (29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