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서문에 보면 가르침과 배움의 희망 메시지가 나온다. 배우지 않기, 무언가를 배울 능력이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배우지 않기로 결정을 내리는 것.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을 부추기는 주위의 압력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행위를 배우지 않기로 결정하는 경우. 두번째 희망 퍼뜨리기, 경험으로 드러난 모든 불리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확신하며 정의롭고 공평한 미래를 꿈꾸는 행위. 창의적 부적응은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기술이자 어려운 시기에도 온정과 공감대를 유지하는 한편, 자기 긍정을 배우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서문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허버트 콜의 서문을 읽으면서 뭔가 가슴 안에 묵직한 것이 눌려지는 것 같았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그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저자 허버트 콜은 불온한 사외에 맞서 온당한 일을 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과 보상을 공유하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점을 확실히 밝히고자 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라는 말에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졌다. 그가 겪었던 인종 차별 혹은 소수 집단에서의 압박, 자기 모습으로 있기 위한 그 힘겨움이 있었기에 그는 더 사색하고 견고해졌으리라. 배리와의 일화를 보면서 아이에게 다가가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배우지 않으려는 아이의 입장도 고려하여 배우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은 드라마틱 하기까지 했다. 릭의 일화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를 판단하는 잣대를 내가 내밀 수가 있는 것일까? 허버트 콜이 말하는 인종차별 속에서 배우지 않기를 선택하는 모습 아크미르의 모습 속에서 나를 돌아보았다. 아크미르와 허버트 콜의 논쟁 중 허버트 콜의 말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는데 여기는 어떠한 지적인 견해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며 그에 대한 변론은 물론 반론도 가능하지만 모두의 목소리를 존중하지 않고서는 배움이 일어날 수 없는 법이라는 말이었다. 이크마르를 통해 허버트 콜은 자기를 알아가고 더 성장해 나가는데, 배움은 동시에 일어 난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가르치며 배우는 것. 민감하게 인식하는 것. 이 책의 다양한 학생들과 그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은 허버트 콜이라는 사람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인종 차별, 불평등에 대해서 알아차리고 배우지 않기로 결정하고자 한다. 가르침, 교사가 아이 하나하나에 개인적 관심을 보이고 배움이라는 열매로 아이들의 허기를 달래주면 그들은 서로에게 큰 괌심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말, 위안이 되기도 하는 말이다. 사색하며 고민하며 좀더 민감해지기를 나에게 바라는 밤이다. |
|
수월성, 공평성... 어려운 주제다 최근 제일 공정한 방법이 수능 정시라며 다시 돌아가는 모습이다. 무엇이 가장 공정하고 공평하고 수월한걸까? 평소에 대안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하버트 콜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이 술술 읽혔다. 사실대로 말하면 처음에는 '선생님께는 배우지 않을 거예요'라는 책 제목이 의아했고, 그래서 책장을 쉽게 넘기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서평이 늦어진 까닭도 있다 (물론 게으름도 한 몫 했지만..) 문제아란 무엇일까? '문제아'라는 창작 동화도 있다. 온책읽기 책으로도 읽혀지는 이 책을 읽으며 문제아가 무엇일지, 이것또한 교사의 경험과 생각으로 규정짓고 판단하는게 아닐지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는지 교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역동적인 소통과 관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가야할 것인지 정치와 교육의 굴레가 답답하다면 너무나 도움이 될 책이다 사실 읽으면서도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가지고 있던 궁금증과 의문이 조금은 해소된 느낌이다 이 책을 혼자 읽고 끝내기엔 무척이나 아쉬웠다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면 더욱 좋겠다 |
|
'뭐야, 선생님께는 배우지 않을 거라고? 그럼 누구에게 배울건데?' 처음 책의 제목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교육자들이 위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책 제목만으로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열린 교실이란 용어의 창시자라는 허버트 콜의 소개글은 선입견을 더해 주었다. 흔히 말하는 외국의 좋은 교육을 어설프게 한국으로 가지고 온 교육자들에게 질릴대로 질린 나는 열린 교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너무 많이 만났다. 교육적 철학은 무시하고 말 그대로 벽을 무너뜨려 교실을 열어버린 학교, 모든 학생들의 자료를 게시하느라 무엇이 교육적인지를 잊은 교실... 등등 열린 교실이란 문구를 들으니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이후에는 열린 교실의 의미가 내가 보아온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처음의 그 선입견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이런 선입견은 저자 서문을 보면서 사라졌는데, 무언가를 배울 능력이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배우지 않기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나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을 부추기는 주위의 압력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행위를 배우지 않기로 결정하는 경우에 대한 이야기를 보며 선입견을 가진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결국 이 책은 책소개의 이야기처럼 배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지 않기로 정한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그동안 학생들의 능력이나 의지가 부족하여 배우지 못한다고 생각한 사람으로서 허버트 콜의 책을 읽으며 충격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몰려왔다. 어쩌면 교육자로서 교육의 본질, 학생들의 마음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교육자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잊고 산 것은 아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상에서 교사들의 어려움을 놓지지 않고 위로해 준 저자에게 감사한 책이었다. 이 책은 교육자들에게 성장서같은 책이 될 같다. 다시 한번 찬찬히 책을 읽어보며 교육자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더욱 확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