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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실전편' 정도의 부제가 어울리려나요. 이 책의 광고를 찍는다면, 사진이 잘 나오는 고상한 카페보다 일상이 펄떡이는 전통시장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글쓴이는 가족 간 '호칭'을 한 번 바꿔보겠다며 스스로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싸웁니다. "시댁 식구 호칭은 '님'으로 끝나는데 왜 처가 쪽 호칭은 '님'이 아니라 고작 '씨'로 끝나는 거지? 호칭이 이렇게 위계가 정해져 있으면 평등한 관계에 기초한 '사랑'이란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게 아닐까?" 글쓴이는 이 질문을 꼭 해결하고 싶습니다.
당장, 수면 위로 드러난 건 호칭이지만 바꿔내야 할 건 최소 수백년 가부장제와 사회적 통념, 고정관념. 작가는 맨땅에 헤딩하는 정신으로, 돈키호테처럼 싸우고, 또 싸웁니다. 누구와? 가족들과. 남편, 시아주버님, 형님, 시부모님...한결 같이 껄끄러운 분들과 밤낮으로 문자로, 대화로, 전화로, 오프라인 만남에서 무던히도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 위해 애씁니다. 작가가 정말 대단한 건, 포기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번쯤은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자신을 비하하며 감상에 휩싸일만도 한데 오히려 그런 순간일수록 굉장히 이성적으로 대하려 애씁니다. 또 상대방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생각하려 애씁니다. '문제를 먼저 꺼낸 자'들이 갖는 일종의 책임감을 글쓴이는 잊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문제이기에 한번더 생각하고 한 걸음 더 걸어들어가 고민합니다. 작가는 이 싸움에서 이겼을까요? 궁금하신 분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이야기가 가진 힘이 워낙 강력해서 그런지 몰입도가 무척 컸고 읽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현실 얘기도 이런 현실 얘기가 없는데 어쩌면 이렇게 잘 구성된 소설 같은 느낌이 들까요? 하나의 문제가 또 다른 문제를, 그 문제는 또 다른 갈등으로 이어지는 게...진짜 우리의 이야기라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번더 느끼지만 페미니즘은 어렵고 실천하기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몇 일 전에 책을 다 읽고 나선 정말 통쾌했는데 리뷰를 쓰려고 지금 책을 다시 보니 맘 한구석이 아려옵니다. 작가님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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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호주제 폐지와 함께 민법이 개정되어, 부부가 혼인신고를 할 때 협의하면 자녀가 엄마의 성을 따를 수 있게 되었다. 당시 결혼을 앞둔 나는 크게 고무되었고, 장차 아이가 태어나면 반드시 내 성을 붙이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남편은 김 씨고, 난 아이에게 흔한 성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 결심을 밝히자 다른 누구보다 반대한 사람은 내 아버지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딸만 둘 둔 아버지는 “대가 끊긴다”는 탄식이 입버릇이었기 때문이다. 양자 입적 없이 대를 이을 수 있는 길이 생겼는데도, 아버지는 ‘유난스럽게 굴지 말라’, ‘남들 사는 대로 살라’ 하였다. 만약 시가에도 내 결심을 밝혔다면 어떤 반응이 돌아왔을까. 아이를 갖지 않은 나는 ‘투쟁’의 기회를 놓쳤지만, ‘호칭’에서 야기된 가부장제의 폭력적인 서열을 거부한 용감한 투쟁기가 있다. 작년 말 온라인 댓글난을 뜨겁게 달군 4부작 에세이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가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라는 선언적인 제목을 달고 출판되었다. 시가 식구들에게 가족 호칭을 개선해 보자는 제안으로 시작된, 1년간의 투쟁과 성찰의 기록이다. 저자는 한국 가정의 차남과 결혼을 하고, 곧 아무도 자신에게는 ‘님’자를 붙여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남편의 형을 ‘아주버님’이라 부르지만, 자신은 ‘제수씨’라 불린다. 나이가 같은데도 남편의 형의 부인을 ‘형님’이라 부르고 자신은 ‘동서’라 불린다. 저자는 이러한 호칭에서 자신이 배우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받고, 불평등한 호칭을 개선해서 모두에게 ‘님’을 붙여서 부르는 건 어떻겠냐며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남편의 형과 부인은 저자의 제안을 자신들에 대한 ‘도전’이자 ‘무시’로 받아들이고 격분한다. ‘어떻게 그런 말이 아래에서 위로 나올 수 있느냐’ ― 단지 동생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저자는 형 부부의 ‘아랫사람’이 되었다. 저자는 차별적인 호칭을 바꾸려 했을 뿐인데 온 집안이 뒤집어졌다. 가족 내의 갈등이 커지고 결국 원치 않는 사과를 해야 했던 저자는 논의를 가족 밖으로 확장한다. 남편의 형이 쏟아낸 폭언들을 인쇄한 머그잔을 돌리고,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라고 쓴 피켓을 들고 광장에 서고, 민우회 홈페이지에 에세이를 연재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너무 예민한 것이 아니며, 가족 내의 호칭 문제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자신의 요구는 정당한 권리임을 확신한다. 나아가 작가는 불평등한 호칭 문제가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억압이며, 진짜 싸움의 대상은 한국 가족의 질서 그 자체라고 깨닫는다. 예전보다 여권이 신장하였다고는 하지만 성차별은 여전히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고, 무엇보다 ‘결혼’을 통해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배우자와 결혼했을 뿐인데 ‘며느리’란 이름이 붙고 시댁의 ‘노동력’으로 전락한다. 마치 노비처럼 남편의 동기를 ‘도련님’, ‘아가씨’, ‘아주버님’이라 불러야 한다. 명절에는 자신의 집이 아닌 남편의 집에 먼저 가야 하고, 아이들은 남편의 성을 따르며 자신의 부모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라 부른다. 결혼하지 않으면 겪지 않을 차별이다. 저자는 불평등한 호칭의 문제에서 시작하여, 호칭이 수호하는 가족 내의 서열, 가부장제 가족 구조의 모순으로 점차 사유를 확장해 나간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모색한다. 바로 ‘서열구조를 벗어나 한 개인으로 만나는 가족,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아닌 수평적인 관계로 만나는 가족, 권력 관계가 아닌 사랑의 관계로 만나는 가족’이다. 부당한 현실에 체념과 침묵이 아닌 투쟁을 택한 저자의 분투기가 반갑고 고맙다. 저자와 같은 목소리들이 하나하나 모여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한국 가족의 변화를 위해 널리 읽히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