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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하순 '플라톤전집2'와 '플라톤전집7'을 펴냄으로써, 사실상 천병희 단국대명예교수는 플라톤전집 완역의 마침표를 찍었다. 주요 일간지들은 원전번역으로 플라톤전집을 완역한 놀라운 성과를 인터뷰했다. 두 권 중 전집7은 전체가 신규 번역을 담은 것이었고, 전집2권은 세 편의 대화편, 신규번역한 '에우튀프론/에우튀데모스/메넥세노스'을 포함하고 있었다. 때문에 전집세트 체제에 맞게 전집세트 7권 중 두 권을 추가한 것으로, 사실상 완역과 동시에 플라톤전집 완간을 의미했다. 이것은 우리 출판계에 놀라운 뉴스였지만, 가령, 작가의 대하소설 시리즈 완간과는 달리, 기본에 출간되어 서점에 깔려 있거나 재고로 보유하고 있는 이전에 출간된 플라톤 대화편(단행본)들이 세트 제작에는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이는 출판사는 물론이고 번역가에게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으리라.
[플라톤전집세트-전7권, 플라톤(지은이),천병희 (옮긴이)도서출판 숲[2019-07-23]
위작 논란이 있는 작품들과 대화편으로 보기는 힘든 자료를 포함한 전집7권을 제외하면 우리가 흔히 플라톤 대화편이라고 부르는 대화편이 모두 25편이다. "끝까지 읽도록 쉽게 번역"했다. 앞서 인터뷰 기사의 타이틀이 떠오른다. 플라톤은 정계 입문의 꿈을 접고 철학에 매진한 이래 50여 년 동안 연구와 강의와 집필에 몰두했다. 그가 <국가>에서 역설한 철인정치를 현실 속에서 구현해보려는 시도를(지금의 이탈리아, 시켈레아) 두어 차례 했다. 하지만 어쨌든 그의 이론은 영원한 '이상국가'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번역가 천병희도 학부-대학원-유학등 수학 시절을 제외하더라도, 거의 50여 년을 그리스-로마 고전들을 온몸으로 온정신으로 원전번역하는데 바쳤다.
플라톤전집 완역과 전집세트 발행은 플라톤을 새롭게 만나려는 한국어 독자들에게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얘기할 때 흔히 '문사철'을 거론한다. 문학과 역사와 철학. 로마시대의 저작들을 제외하더라도, 천병희의 플라톤전집 완역이 가능했던 것은, 대화편의 주석에서 거론되는 상당수의 그 시대의 관련 저작들을 원전번역한 사람이 당신 자신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 는 속담이 있다. 책을 구입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읽는, 읽히는 번역으로 정평이 나 있어, 진정한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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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쟁이 천병희, 빚쟁이 봄마을, 예스24에 감사 고전번역가 천병희 선생께서 돌아가셨다! 부고를 접한 것은 12월 22일 점심 시간이었다. 지금 검색해보니 다음 백과사전에 '천병희'(작가 정보)는 "천병희(千丙熙, 1939년 3월 21일~2022년 12월 22일)"로 시작된다. '대한민국의 독문학자이자 그리스 고전 번역가이다.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웠다.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런데 선생님 원전 번역을 60여 권을 출판하였던 출판사와의 가느다란 인연으로 받은 카톡에 따르면, 선생님은 '2022년 12월 21일 22시 49분에 영면'하셨다. 그리고 12월 24일 새벽(04:30)에 장례식이 시작되어, 고향인 경남 고성에 묻히셨다. 돌아가신 시각이 자정에 가까워 장례식은 4일장이 되었지만 '현고학생부군..' 기준에 따라 3일장을 염두에 두면 22일에 세상을 떠나신 것으로 기록한 모양새다. 1939년 3월 21일이 양력이기보다는 음력일 확률이 높아 큰 의미는 없지만 12월 21일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월 단위로 치면 정확히 몇 개월을 딱 채우고 돌아가신 셈이다. 나는 이곳에도 상당수 글을 올렸지만, 천병희 선생님 덕분에 서양 고전의 숲을 거닐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만약 학창 시를 쓰던 문학청년(그 때도 천병희 샘의 원전번역은 출간되기 시작했다)일 때 선생의 번역이 가진 진가를 알았다면, 그리고 서양 고전들을 제대로 읽었다면 눈길 위에 찍힌 발자국과도 같은 나의 인생 행로가 상당히 달라졌으리라, 생각했다. 서양 고전이니 인문학이니 천병희 선생님의 원전 번역 덕분에 먹고사는 서생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선생의 우리 출판계에 한글의 역사에 크고도 빛나는 별이었지만, 정작 독자들은, 사람들은 그 존재를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서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는 '빚쟁이'였다. 흔히 ‘빚쟁이’라고 하면, 빚을 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전은 사뭇 다르다. ‘남에게 빚을 준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1)이면서 ‘남에게 빚을 진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2)이기도 하단다. 그러니까 '빚쟁이'는 빚을 준 사람이기도 하고 빚을 진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 다시 말하면 빚쟁이의 대립어는 없거나 ''빚이 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어떤 단어가 될 수밖에 없다. 천병희 선생님이 낸 서영고전의 숲으로 가는 지름길을 알았고 충분히 걸었으며, 걷고 있다. 지금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이곳에 자주 오지 못하지만 천병희 샘의 원전 번역서들과 관련된 글을 올릴 만큼 올렸다. 싶다. 특히 마지막 번역이 된 플라톤전집(전7궈)과 관련된 리뷰가 이곳에 올라 있다. 천병희 선생님에게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 독자들은 큰 빚을 졌다. 천 선생님은 빚쟁이이고 우리들도 빚쟁이이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으나 ‘천병희 번역상’ 정도는 만들어서, 선생께서 남기신 큰 울림에 대한 인사가 필요하다, 이런 생각을 한다. 더불어 메인화면에 천병희 샘을 추모하는 조촐한 공감을 만들어준 예스24에 감사. 빚으로 빚을 갚는 한국의 번역 환경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펼치고 싶은 이론 생가들을 천병희 선생님은 번역물 아래 깨알 크기의 주석에 남기고 가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