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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내가 읽은 작품들은 몇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읽었던 [검은 고양이] 도 내 기억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다. [어셔가의 몰락], [도둑맞은 편지]도 기억이 어렴풋해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나는 듯했다. 오히려 그 점이 더 좋았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에 대한 감상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으니까.
아서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 루팡', '에도가와 란포'라는 필명. 그리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레이먼드 카버의 빛나는 단편들, 스티븐 킹이라는 하나의 세계. 이 모두는 에드거 앨런 포로부터 비롯되었다.- 뒤표지에서
그의 작품에는 어떤 매력들이 있기에 이런 찬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나의 소양이 부족해서 그 찬사들에 대해 판단은 할 수 없지만, 수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대단한 작품을 썼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것이다. 어떤 작품들을 만나게 될지 궁금함은 극대화 되었고, 드디어 시작.
첫 작품인 [어셔가의 몰락]부터 서늘했다. 어셔가라는 단어와 몰락이라는 단어가 왠지 환상의 조합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이유를 묻는다면 그저 그랬다라고 밖에 할 말은 없다. 주인공이 친구인 어셔를 만나러 가는 과정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풍경이나 인물에 대한 묘사, 무거운 분위기에 대한 묘사가 줄거리에 대한 생각을 잊게 했다. 주인공의 눈에 들어오는 풍경과 분위기는 영상으로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까가 궁금해졌다.
[구덩이와 추]는 몰입력이 엄청났다. 주인공이 극강의 공포와 마주한 상태의 긴장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형벌을 가하기 위해 만들어 내는 수많은 방법들을 만날때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인간의 잔인함의 끝은 어디일까? 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 이 소설에서 만난 장면들도 그에 못지 않았다. 나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장면으로 남아있는 것이 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한 장면인데, 독일군 병사가 연합군의 가슴에 서서히 칼을 꽂는 장면이다. 20년도 훨씬 넘었지만 너무도 기억이 뚜렷하다. 영화일뿐이라고 생각해도 두려움은 남아있는데, 이 단편을 읽으면서 그 장면이 떠올랐다. 소설의 주인공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공포와 맞서 구출될 수 있었기에 공포와 함께 희망으로 이 소설을 기억하게 되겠지만 읽는 동안의 긴장감은 계속 남을듯하다.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치료법]은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만약에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내가 놓여 있었다면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묻게 되었다. 정상인과 비정상인이라고 하는 두 종류로 사람을 구분한다고 할 때 그 경계는 무엇이라고 해야할까? 해프닝으로 소설은 끝났지만,여러가지 질문들이 떠올랐다.
[절름발이 개구리]에서는 타인을 무시했을 때 상대가 어떤 감정일지,그 감정이 극대화 되었을 때 가해져 오는 반격의 크기는 어떠할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언제까지나 누군가의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자신에 대한, 권력에 대한 과대평가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역지사지로 생각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을 상상하면서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지만, 묘하게 통쾌한 느낌도 들었다.
표제작인 [일러바치는 심장]의 제목이 왜 [일러바치는 심장] 인지는 결말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나에게는 이 대목이 무서웠다. 잘못이 없지만 증오의 대상이 됨으로써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상황, 너무 두렵지 않은가? 단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체를 죽이는 동물의 세계가 차라리 인간적이다.
나는 그 늙은이를 사랑했다. 그는 내게 한 번도 잘못한 적이 없었다. 모욕한 적도 없었다. 그의 황금에 대해서라면 나는 아무 욕심이 없었다. 내 생각엔 그의 눈인 것 같다! 그래, 그거였다! 그는 독수리 눈을 하고 있었다. 옅은 푸른색 막이 뒤덮인 눈. 그 눈이 내게 향할 때마다 피가 싸늘히 식었다. 그래서 점차로 아주 조금씩 나는 그 늙은이의 생명을 빼앗겠다고, 그리하여 저 눈을 영원히 없애버리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 p 99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 등장하는 소설이 4편, 죽음이 등장하는 단편이 8편, 복수를 소재로 한 단편이 4편으로 ( 나의 기준으로) 인간의 깊은 곳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 잔인함, 공포를 소재로 한 소설이 대부분이었다. 타인의 심리를 읽어서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을 슬쩍 알려주는 [도둑맞은 편지]와 [일주일에 일요일 세 번 ], 두 이야기는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음울한 분위기였다. 에드거 앨런 포가 이런 분위기의 소설을 썼던 것은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 소개를 읽어보니 그이 삶이 평탄하지만은 않았었다. 소설에서 느꼈던 사람의 밑바닥까지 훑어보는 듯한 차가운 눈빛, 스스로도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헤매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그와 겹쳐졌다. 문학세계와 작가의 삶의 모습이 꼭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문학에 삶이 어느 정도는 녹아드는 것인만큼 그의 삶의 무게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어릴 때는 귀신을 무서워했지만, 지금은 사람이 무섭다. 이 소설을 읽고나니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에드거 앨런 포가 그려낸 인물들은 귀신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더위를 식혀줄 것이다. 아니면, 더 더워질까? 소름이 돋기도 하지만, 식은 땀이 흐를 정도로 긴장감도 있으니까.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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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설리드가 철퇴를 들어 용의 머리를 내리치자 용은 그의 앞에 쓰러져 고약한 숨결과 함께 무시무시하고 거슬리는 귀를 찢을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에설리드는 그 끔찍한 굉음에 손으로 귀를 막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제껏 듣지 못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 p.31 (어셔가의 몰락)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중에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유일한 작품은 고릴라가 범인이었던 바로 그 작품이다.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포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는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의 숨겨진 작품이? 『일러바치는 심장』은 알려지지 않은, 에드거 앨런 포의 숨겨진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지, 뒤통수를 치는 내용보다는 뭔가 의미심장하고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셔가의 몰락>도 그렇다. 어셔가는 우울하며 음울하다. 그런 어셔가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누군가의 죽음. 사건은 여기서 마무리된다. 애써 범인이 누굴까 추리하는 것이 아니라, 기괴한 죽음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건 암울한 상황 그 자체다. 그래서, <어셔가의 몰락>은 작품 자체가 음울하다.
2. 『일러바치는 심장』은 스피리투스 출판사의 문득 시리즈 중의 한 작품이다. 문득 시리즈란 이미 한번쯤은 들어봤을 알려진 작가의 작품 중, 숨겨진, 그러니까 잘 안 알려진 작품을 모아놓은 시리즈이다. 『일러바치는 심장』은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중에서 이미 유명한 작품이 아닌, 누구도 읽어보지 못했을 작품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래서 그런가. 에드거 앨런 포의 고릴라가 범인이었던 작품처럼 깜짝 반전을 원하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이미 앞서 애기했듯, 『일러바치는 심장』이 작품들은 심오하다. 그래서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단순히 스토리상의 흥미로는 끌어당기는 요소가 별로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흥미진진하다.
나는 검은 법복을 입은 판사들의 입술을 보았다. 내게는 그 입술이 하얗게 보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종이보다 더 하앴고, 섬찟할 만큼 얇았다. 그들의 엄격한 표정, 그 확고부동한 결의, 인간의 고통에 대한 eksg한 경멸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얇은 입술. 내게 있어 운명이 될 판결이 그 입술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 이름을 발음하는 것을 보았지만 아무런 소리로도 이어지지 않아 몸서리가 쳐졌다. - p.59 (구덩와 추 중에서)
그래서 『일러바치는 심장』의 작품들은 대체로 공포스럽고 음울하다. 때로는 우울함에 미쳐버릴 지경이기까지 하다. 원래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이 조금 어두운 면이 있기는 하다. 『일러바치는 심장』은 그 어두운 면의 절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책을 권하지 않겠다. 삶이 너무 행복에 겨워 이 행복을 주체하지 못해 웃음이 너무 지나친 사람에게 특히, 이 책을 권하고 싶다.
3. 혹시, 이 책을 본 것이 아닐까 하는 분들을 위하여 이 책에는 어떤 작품이 실려 있는지, 제목을 나열해 보겠다. 어셔가의 몰락, 일주일에 일요일 세 번, 붉은 죽음의 가면, 구덩이와 추, 검은 고양이, 일러바치는 심장, 도둑맞은 편지, 긴 상자,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치료법, 아몬틸라도 술통, 절름발이 개구리. 어떤가? 제목만 봐도, 벌써 우울해지지 않는가! 우울의 끝판에 가면, 오히려 우울이 회복될 수도 있으니, 실컷 암울함을 즐기고 싶으신 분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4. 그리고 그 머리 위에는 시뻘건 주둥이를 내밀고 하나뿐인 눈에 불을 담은 끔찍한 짐승이 앉아 있었다. 내가 살인을 저지르게 수작을 부리고, 그 목소리로 존재를 알려 나를 사형 집행인에게 넘긴 놈. 나는 그 괴물을 무덤에 넣고 벽을 발라버린 것이었다! - p.97 (검은 고양이)
그러나, 내용이 어둡다고 해서, 글을 전개하는 방식이 문장 자체가 어두운 것은 아니다. 문장에는 힘이 있다. 그 힘이 번역의 힘인 것인지, 원문의 힘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원래 심각하게 어두운 내용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힘찬 문장으로 전환을 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어두운 내용이 힘찬 문장과 강건한 문체로 전개나감으로서 이 책에는 가독성이란 게 생겼다. 그래서, 나는 순식간에 이 책을 읽어나갔다,
5. 내 실수는 지나치게 부주의하고, 호기심이 많고, 충동적인 성격으로 인해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나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도무지 뇌리를 떠나지 않는 얼굴이 있다. 그 신경질적인 웃음소리는 영원토록 내 귓가에 울려 퍼질 것이다. - p.155 (긴 상자 중)
나는 다시 내가 앞서 했던 말을 수정한다. 우울한 분들에게도 이 책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스토리상의 흥미가 없다는 것도 나는 다시 수정한다. 스토리는 밋밋해 보이기는 하지만, 아주 다분히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다수 있다. 나의 리뷰에 끝까지 오신 여러분을 환영한다.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일러바치는 심장』은 정말로 재밌고 의미도 있다. 다만, 문체는 경쾌한데, 내용 자체가 밝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뭔가 즐거우면서도 뭔가 웃음이 나오면서도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는.
어쩌면, 인생 자체가 그런 것이 아닐까. 늘 웃으려 노력은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웃음 속에는 진한 고통이 베어 있고, 고생한 흔적이 베어 있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내공이 많이 쌓여 있다고 말한다. 내 글의 내공은 어느 정도일까. 인내의 끝에서 건져 올린 어느 낚시꾼의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며 누군가를 유혹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내공을 쌓아가고 있다면 내 글은 이미 성공한 것이다. 『일러바치는 심장』을 통해 얻은 삶의 또 다른 양면성. 그 양면성에 나의 내공을 시험해 본다. 내 글, 누군가에게 일러바쳐 널리 널리 퍼져나가길.
-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스피리투스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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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검은 고양이>와 <어셔가의 몰락>등 몇 편을 읽은 적이 있다. 아마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로 기억되는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책이 귀한 시절이라 무엇이든 좋았다. 읽다보니 두 작품의 오싹하고 충격적인 장면과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모르그가의 살인사건>도 기억에 있는데 나머지는 처음 접하는 작품이다. 두세 살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망하고 부유한 상인이었던 숙부 존 앨런에게 입양되어 풍족한 생활과 남부럽지 않은 교육을 받기도 했다. 사촌인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하여 10년 남짓 행복했지만 버지니아가 폐결핵으로 사망하자 절망에 빠진 에드거는 극심한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에 빠지게 된다. 부모의 죽음과 입양으로 두 개의 성을 가진 에드거는 ‘존재의 분리’로 인한 불안의 정서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 거의가 음울한 분위기와 폭력성, 복수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특히 검은 고양이는 오랜만에 다시 읽어도 참으로 섬뜩한 이야기였다. 사형선고를 받고 내일이면 죽을 몸이 되어 ‘영혼의 짐’을 덜겠다는 고백적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릴 적부터 유순하고 정이 많은 성품이었던 ‘내’가 비슷한 성향의 아내와 결혼하여 애완동물을 기르면서 나름 행복한 생활을 하는 듯하다. 그런데 술이라는 마귀가 붙어 아내는 물론 동물들에게도 학대가 시작된다. 고양이의 한 쪽 눈을 파내고 급기야는 아내를 끔찍하게 살해하더니 시신을 은폐하기에 이른다. 끝까지 숨길 수 있었던 승리감에 벅차오르면서도 뭔가를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데... 선한 인간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잔혹함을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싶다. 그의 작품들은 인간 내면의 음습한 심연이 어떤 인과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소름끼치도록 자세하게 드러나 있다. <구덩이와 추>는 종교재판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나’가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과정을 몰입도 있게 그려냈다. 감방의 바닥은 악취가 진동하는 구덩이가 있고 천장에서는 거대한 강철 추가 진폭을 넓히며 점점 하강하면서 끔찍한 공포감을 자아내고 있다. 몸은 결박된 채 배당된 음식을 탐욕스런 쥐들에게 빼앗긴 나는 지혜를 짜내기 시작한다. 남은 음식을 결박에 골고루 발라 누워 있다가 냄새를 맡고 달려온 쥐떼들에 의해 결박된 몸은 자유를 찾는다.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위태로운 상황에 어떻게 그런 묘안을 떠올렸을까.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더 절망적인 불지옥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한 치 발 디딜 곳도 없는 감옥 안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려는 찰나 어디선가 뻗어 온 구원의 손길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벼랑위에 선 인간이 강렬한 삶의 의지로 결국 스스로를 구원한 예를 접하기도 한다. 특별한 일 없는 소박한 삶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절망을 빠져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깨닫곤 한다. <일러바치는 심장>은 제목이 풍기는 뉘앙스가 의아했었다. 여기서도 신경질적이고, ‘천국과 지상의 온갖 소리’가 들리는 ‘내’가 나온다. 그는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나 건강한지, 그리고 차분한지 살펴보라고 한다. 그 늙은이를 사랑했다고 했다. 목적도 열정도 없는데 ‘그 생각’ 일단 싹트고 나자 밤이고 낮이고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생각’이란 노인을 죽이는 것이다. 맨 정신으로 그 작업을 하고 완벽하게 흔적을 없애고 승리감에 도취된다. 그런데 별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가려는 경찰을 자꾸만 불러 세운다. <검은 고양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힌트를 주려고 안달을 한다. ‘나는 얼굴에 핏기가 가시는 것을 느끼고 그들이 갔으면 하게 되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귓속에서 종이 울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앉아 수다를 떨었다. 종소리는 점점 더 뚜렷해졌다. 계속해서 더 뚜렷해졌다. 나는 그 기분을 떨치려 더 신나게 말했다. 마침내 그 소리가 내 귓속에서 나는 게 아님을 깨닫게 될 때까지.’(P105) '저걸 듣지 못했을 수가 있나? 전능하신 주여! 아니, 아니! 저들은 들었다! 의심하고 있다! 알고 있다! 내 두려움을 비웃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이 고통보다는 낫겠지! 무엇이든 이 조롱보다는 견딜 만하겠지! 저들의 위선적인 미소를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제 다시! 들어봐라! 더 크게! 더 크게! 더 크게! “악당들 같으니!” 나는 비명을 질렀다. “더는 숨기지 말아요! 인정할 테니까! 바닥 널빤지를 뜯어요! 여기, 여기! 그 끔찍한 심장 박동 소리라고요!”(P106~107) 가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흉측한 기사가 떠오른다. 여기 나오는 주인공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하는 걸까. 수사를 하러 온 경찰이 증거를 찾지는 못하고 시시한 일로 언쟁을 벌이는데 ‘나’는 오히려 격분한다. 일부러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불안하고 점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고 곧 터질 것만 같다. 그렇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을까. 누군가 일러바치지 않았는데 양심 한 조각이 남아서 자신을 괴롭힌다. 폭발할 것 같은 심장 박동, 그것이 바로 일러바치는 심장이었다! 인체기관인 심장을 의인화 한 기발함과 고통스런 마음의 표현이 제목에 절묘하게 묻어난다. 복수에 대한 이야기는 <아몬틸라도 술통>과 <절름발이 개구리>에도 나온다. 포르투나토에게 온갖 모욕과 상처를 받은 ‘나’는 그에게 복수하기로 다짐한다. 그것을 협박하거나 미리 입 밖에 내지 않고 알아채지 못하게 준비하는 것이 방법이다. 와인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포르투나토를 술통이 있는 지하실로 유인을 해서 술에 취하게 하고 회반죽을 친다. 일련의 ‘작업을 하면서도 ‘나’는 그저 가벼운 복수를 하는 듯이 후련한 마음이 된다. 우리는 종종 극과 극인 인간의 양면을 종종 접한다. 봉사와 희생으로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거나 흉측한 살인을 하고 웃음을 남기는 소름끼치는 모습 말이다. 두 얼굴의 표정을 한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오싹하게 다가온다. 농담과 장난을 너무 좋아하는 왕에게 난쟁이 어릿광대가 있었으니 ‘절름발이 개구리’다. 절름발이 개구리는 또 하나의 난쟁이 소녀 트리페타와 함께 각자의 고향에서 끌려와 왕에게 선물로 바쳐진 신세다. 축제가 있던 밤 두 사람을 불러 놓고 와인을 마셨다하면 거의 광기 상태가 되는 절름발이 개구리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고 그 반응을 즐긴다. 또 다시 재미있는 ‘장난’을 주문하는 왕에게 ‘여덟 마리 오랑우탄’이라는 유흥거리를 제안하는데... 왕과 일곱 대신은 쇠사슬로 한데 묶여 횃불 속에 타오르는 신세가 된다. 복수 치고는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찮은 광대라고 놀려대고 가지고 노는 장난감처럼 대하다가 큰 코 다친 셈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던가. 하물며 사람이라면. 에드거 앨런 포는 스트븐 킹,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아서 코난 도일 등 많은 위대한 범죄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또 ‘단편 소설의 창시자’, ‘근대 환상문학의 창시자’, ‘추리소설의 창시자’, ‘공포소설의 완성자’ 등의 평가와 찬양을 받았으며 보들레르나 말라르메 같은 유럽의 작가들에겐 당대에 이미 그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자신의 분리의 불안을 떨치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어떤 곳’을 꿈꾸며 살아야 했던 ‘비참한 영광’의 작가이기도 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그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70여 편이나 되는 단편을 써내려가는 동안에 어느 정도 고통이 치유되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밝음 이면에 존재하는 어둠을 똑똑히 바라봄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인간세상이 조금은 이해되려나.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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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품 가운데 많은 것이 전율에 기반하고 있으며,...(中略)... 나의 영혼 깊숙한 곳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 에드거 앨런 포 作『그로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한 이야기들』 서문 中에서
포의 소설 대부분은 그의 설명처럼 독자들을 전율에 몸서리치게 한다. 소름끼치는 것과 혐오스러운 것이 한데 뭉쳐져 으스스함과 음침함의 분위기가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 1840년 단편소설 25편을 묶어 출간된 그의 선집 제목, ‘그로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한 이야기들(Tales of the Grotesque and Arabesque)’에서와 같이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음산하고 환상적이며 기이한 무엇의 세계, 그로테스크한 이질적 세계로 우리들을 유인한다. 물론 그의 모든 작품이 이러한 범주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 『일러바치는 심장』에 수록된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치료법」이나 「일주일에 일요일 세 번」처럼 풍자적인 작품이 있는가하면, 그에게 추리문학의 창시자라는 명성을 안겨준 명민한 탐정‘뒤팽’이 등장하는「도둑맞은 편지」와 같이 더 이상 그로테스크하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작품들도 있다.
그럼에도 포 소설의 독특한 매력은 익숙하고 편하게 느껴지던 세계가 별안간 낯설고 섬뜩하게 다가오는 당혹감과 그 생경함이 자아내는 통제 불능의 세계에 있으며, 여기에 더해 은닉된 인간과 인생의 모순, 광기, 부조리, 불합리, 어리석음의 드러냄에 있을 것이다. 아마 수록작 중 「붉은 죽음의 가면」은 이러한 감상에 맞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에 치명적 역병이 돌자 궁정의 신하와 숙녀를 동반하여 세상과 동떨어진 격리된 수도원의 성채로 피신하여 성의 안팎을 봉쇄해버린 후 그들만의 향락을 즐긴다. 밖에서는 역병이 격렬하게 창궐하지만 그들은 화려한 가면무도회를 꾸미기에 분주하고 일곱 개의 방으로 구성된 연회의 무대를 준비한다. 아마 이 새로운 세계의 장식을 묘사하는 문단은 그야말로 그로테스크의 전형일 것이다.
“확실히 기괴하게 할 것,온통 눈부셨고 반짝이고 짜릿했으며 환영 같았고, <에르나니>이후로 많이 본 광경이었다. 맞지 않는 날개며 장신구를 단 아라비아풍(아라베스크) 인물들도 있었고, 미치광이 같은 현란한 취향도 있었다. 아름답고 화려하고 기괴한 이들로 넘쳐났다. 끔찍한 모습도, 혐오감을 불러올 만한 모습도 적지 않았다.” - P 52 中에서
이 기이한 시공은 마치 ‘붉은 가면을 쓴 죽음’이라는 음산한 존재를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듯하지 않은가? 이 세계 같지 않은 혐오와 소름과 몽상적 상상이 뒤엉켜 녹아든 광경이야말로 현실 세계의 질서가 파괴되는 전조, 바로 그로테스크가 지향하는 미학적 가치일 것이다. 난공불락의 요새같던 이들의 세계에 붉은 죽음의 가면은 찾아들고, “파티를 즐기던 이들은 피로 물든 벽에 둘러싸인 채....절망 속에 죽어갔다. ....어둠과 부패 그리고 붉은 죽음이 모든 것을 무한히 점령했다.”
현실 세계의 파괴와 새로운 세계에의 환상을 꿈꾸는 이러한 지향과 달리, 괴기스럽고 음산하며 잔혹한 공포의 분위기로써 그로테스라는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 「검은 고양이」는 도플갱어가 섬뜩한 동물의 영역에까지 확장된 죽음의 예술로 우리를 이끈다. 한 인간의 섬세한 영혼을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최후의 파멸로 이끈다. 인간 심리의 원시적 본능, 인간 특성의 분리 불가능한 충동의 세계, 그 어둠으로 깊숙이 따라가다 광기의 나락에 몰린 주인공의 아내 살해 과정과 시체 매장, 그리고 발견에 이르는 세세한 장면은 그 잔혹함으로 인해 강렬한 인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범죄가 보여주는 압도적인 충격으로 뇌가 얼얼해지는 현기증, 공포 소설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
이들과는 또다른 느낌의 공포로서 생매장이라는 모티프가 발견되는「어셔가의 몰락」과 「아몬틸라의 술통」은 지하공간의 음침함과 으스스함, 상상력을 초월하는 악몽처럼 울려 퍼지는 비명, 악마주의의 낯섦으로, 인간 내면의 저 깊숙한 어둠의 심연으로 끌어댄다. 이러한 모티프의 동일성 측면에서 「일러바치는 심장」의 “옅은 푸른색 막이 뒤덮인 눈”의 노인, 「검은 고양이」“플루토의 눈”은 뒤틀린 자아를 읽어 들이는 타자에 대한 반감, 이를 차단시킴으로써 흉물스러움을 유지하려는 인간에 내재된 또 다른 광기의 한 면을 까발리기도 한다.
한편 이들 작품과는 달리 「일주일에 일요일 세 번」과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치료법」 두 단편은 우스꽝스런 인간들의 행태를 풍자하는 웃음의 세계로 안내하지만 이 웃음은 결코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풍자는 악마의 사자이며, 그래서 풍자의 웃음은 악마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미쳐버린 세상만큼 우스운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내키지 않는 웃음, 아득한 심연의 웃음, 불합리를 가지고 유희를 벌이는 일이야말로 또 다른 그로테스크 아니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포는 시종일관 충격적이고 납득 불가능한 기이한 것, 그 불가사의함에 맞서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이해 불가능의 세계에 맞서 싸우려는 포가 그로테스크를 벗어난, 즉 인간의 이해력이 맞설 힘을 잃는 세계, 그 불가사의한 것에 예리한 감각을 가진 인간을 등장시킴으로써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다고 선언한 작품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도둑맞은 편지」는 경험에만 의존하는 경찰의 추리 한계, 불가능의 세계에 열린 틈새를 찾아내 풀어낼 수 있는 수수께끼의 세계로 바꾸어 버린다. 아마 이를 위해 탐정을 등장시킨 최초의 추리문학 작품인 모양이다. 오늘의 추리문학에 등장하는 수사관이나 과학수사대의 그것에 견준다면 유치함을 면할 수 없겠지만 바로 현대의 미스터리 문학작품들의 전범(典範)으로서 문학사적 위치를 고려하여 읽는다면 그 재미 또한 제법 쏠쏠한 수확이라 할 수 있다.
포의 작품들은 믿어 의심치 않던 세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전율들로 빼곡하다. 일상적 삶의 질서가 적용되지 않는 기이함, 광기와의 대면, 위협적 생명력을 발산하는 「구덩이와 추」에 등장하는 진자 운동을 하며 내려오는 서슬 퍼런 칼날,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비명등과 같이 현상의 무수한 왜곡들로 즐비하다. 삶에 대한 공포, 개인적 특성이라는 개념이 파괴되고 관계의 약속, 질서가 허물어지는 생경한 세계를 마주하며 몸서리치는 것이다. 포는 이를 통해 이 세계의 바깥, 어둠속의 세계를 들여다봄으로써 다른 삶의 가능성, 새로운 세계의 이상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를 읽기 위해서 그가 창조한 독특한 예술의 세계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어느덧 “사슬에 매달린 채 끔찍하고 시커멓게” 타버린 여덟 구의 시체덩어리가 발산하는 악취가 진동하는 불타는 복수극,「절름발이 개구리」로 진저리 치며 이 무더위의 어느 순간을 벗어난 자신을 발견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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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바치는 심장 2019년 상반기 독서목록에 있던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고양이'를 독서회 모임에서 읽었다. 단편집이라고 읽었지만 내가 읽은것은 '검은고양이' 딱 하나를 읽고 말았다. 시간이 영 나질 않아서 간신히 단편 하나만 읽고 갔는데 회원분들은 단편집을 다 읽고 와서 놀랐다. 그러다보니 할말이 많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매력이 다 읽고 왔나 싶었다. '검은고양이'의 내용 또한 섬뜩한 느낌의 책이었기에 난 다른책은 별로 읽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모른척 하고 읽고온 회원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에드가 앨런 포의 생애도 짚어보고 책을 보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다 나도 다 읽고 갔으면 더 많은 나눔을 하고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일러바치는 심장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여러 단편들이 있지만 너부터 읽어주리라 생각하고 읽었내려갔다. 나는 가만히 조용히 완전범죄를 하고 싶은데 심장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범죄자가 범죄를 저질를때 보통 완전범죄를 꿈꾼다. 하지만 도리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난의 똑똑함이 묻히는것 같다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것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런 마음을 심장이 알아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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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이 들어 본 이름 에드가 앨런 포. 너무 많이 들어서 그의 작품들도 만나봤다 생각해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생각이 나질 않네요. 의외인것은 에드가 앨런 포의 작품이 몇편 되질 않는 다는 것이였습니다. 분명 꽤 됐던걸로 생각했는데.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딴 추리소설상도 있다는 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니였습니다. 찾아보니 추리소설 창시자로 불리우는 에드가 앨런 포에서 작안한 필명을 쓴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인 에도가와 란포와 헷갈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러바치는 심장] 에서 만나는 여러 단편 중 '도둑맞은 편지'에서는 낯익은 이름이 뒤팽이 나오기에 의아했습니다. 10대 초반에 가장 좋아하는 소설 속 캐릭터인 모리스 르불랑의 괴도 루팡이 떠올랐습니다. 비슷한 이름 혹시 관련이 있나 해서 알아보니 역시 괴도 루팡이 에드가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 속 등장 인물에서 따왔다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에 더해 셜록 홈즈로 유명한 아서 코넌 도일. 거기에 요즘 가장 핫한 소설가 중 한 명인 스티븐 킹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친'추리문학의 창지사','공상과학소설의 선구자','공포소설의 완성자','미국 문학의 새로운 미와 전율을 창조해낸 작가'라는 명성의 에드가 앨론 포의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단편 소설들을 만날 볼 수 있게 기획된 책입니다. 11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는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짧은 단편인 [일러바치는 심장]이였습니다. 살인을 저지른 후 아무도 알아챌 수 없게 깖끔한 뒤처리로 시체를 감추고 완전범죄를 생각. 출동한 경찰들이 아무런 흔적을 찾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승리라고 생각하기에 저 역시도 그의 승리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결국은 탄로나고 마는데 그 탄로나기의 과정이 꽤 흥미롭습니다. '아몬틸라도 술통'편에서는 와인에 있어서만큼은 전문가로 불리우는 남자가 자신을 모욕한 것에 화가나 복수를 하기로 다짐. 자신은 처벌 받지 않을 계획을 꾸미고 실행에 옮기는 이야기도 꽤 흥미롭습니다. 이런 소설도 썼어라고 할 만한 '일주일에 일요일 세 번' 을 포함해 에드가 앨런 포가 명성을 떨치는 이유를 만날 수 있는, 읽는 즐거움을 주는 11편의 단편을 만날 수 있는 [일러바치는 심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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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바치는심장 (2019년 초판)_문득003 저자 - 에드거 앨런 포우 역자 - 박미영 출판사 - 스피리투스 정가 - 11500원 페이지 - 216p 괴기 환상문학의 시조 포우의 걸작 단편선 어둠이 짙게 베인 음습한 새벽녘 거리에서 내 앞에 서있는 기괴한 광기로 가득찬 저 미치광이가 날카롭게 벼려진 중식도를 들고 나를 노려보고 있는것만 같은 기분. 잠시라도 마음을 늦추면 당장에라도 내게 뛰어들어 사정없이 중식도로 나의 머리르 내려쳐 두개골을 갈라버릴것 같은 긴장과 공포감 그리고 전율.... 포우의 작품을 읽을때 그런 불안과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는 것을 느낀다.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 인간에게 내재된 심연의 광기를 끌어내는 공포 환상문학의 정수이자 그랜드 마스터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집이 '또' 나왔다. 일찌기 지금으로부터 17년전 포 단편선의 끝판왕을 자처하며 [우울과 몽상]이 야심차게 출간되었지만 패기를 무색케하는 극악의 발번역은 안타깝게도 독자들의 외면을 받게 하였으니...나역시 구매만 해놓고 책장에 처박아 놓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어차피 포가 남긴 70편의 단편을 한번에 모아 볼 수 없다면야 그냥 단편선집을 선택할 수 밖에 없으니 시중의 수많은 단편선집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본인의 구매 비교요소는 수록작과 번역 그리고 판형이다. 그런의미에서 이번에 출간된 [일러바치는 심장]은 나의 구매요소를 어느정도 만족하는 판본이라고 볼 수 있다. 첫번째로 공포환상문학과 추리문학을 적절히 추려 치우치지 않는 재미를 선사하고, 두번째로 막힘없이 읽히는 매끄러운 번역, 마지막으로 일반 소설책의 반토막 크기의 포켓사이즈의 판형이 마음에 쏙 들었다. '포' 하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떠올릴 [검은 고양이]를 비롯하여 이번 단편집에서 처음 접하는 여러 단편들을 만나면서 다시금 잊고있던 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대략 170년이 흐른 지금에도 전혀 시간의 간극이 느껴지지 않는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역시 거장은 이래서 거장이구나 라는걸 느낄 수 있었다. 1. 어셔가의 몰락 친구인 어셔가에 방문한 나는 집안에 드리운 어둠의 분위기에 이상을 느끼고 어셔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그런중 어셔의 여동생이 급사하고, 장례를 위해 지하실에 시체를 내려놓는데, 어딘가에서 들리는 의문의 소리가 이어지고..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데.... - 비슷한 괴담이 있었지 아마...
부잣집 증손자로 키워지며 모진 학대를 견뎌온 양손자는 어느덧 나이를 먹어 마음에 담아둔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할아버지의 결혼 허락을 받으려 하니 할아버지가 하는 말. 일주일에 일요일이 세 번 오는날 허락하마...... - 손주 며느리의 재치가 증손자를 부자로!~
- 타락과 부정한 쾌락을 종결짓기 위해 찾아온 죽음의 사신이 모든 것을 삼키다. 작가 포의 주변인들과 자신의 목숨마저 앗아갔던 결핵을 공포의 대상으로 그리는 작품. 4. 구덩이와 추 이단 종교재판 후 감옥에 투옥된 남자는 어둠속에서 발걸음으로 감옥의 크기를 재려한다. 그렇게 걷다가 경사로에 미끄러져 넘어진 남자는 바로 자신 앞에 끝도 없는 천길 구덩이를 발견하고 자신이 운좋게 살아남았음을 직감한다. 그렇게 안심하던 찰나 천장위에 매달린 거대한 낫이 자신을 향해 서서히 내려오는 것을 발견하는데..... - 생존을 위한 남자의 몸부림. 스펙터클 서스펜스 긴장감 만프로!
- 이 이야를 모르는 이는 없으리라. -_- 단연 포의 대표작
아무도 없는줄 알고 몰래 들어간 집안에 떡하니 있는 늙은 노인, 기척을 숨기려 노력하지만 결국 노인에게 들킨 남자는 가차없이 노인을 죽이고 집안 흙바닥에 묻어버린다. 그런데 그뒤부터 들려오는 성난 심장소리가 남자를 미치게 만드는데... - 요동치는 심장소리는 노인의 저주인가 남자의 죄책감에서 들려오는 환청인가?
도난당한 장관의 편지를 찾아내는 뒤팽의 놀라운 추리! - 등잔 밑이 어둡다.
여객선에 3개의 객실을 예약한 지인을 이상하게 여긴 나는 지인을 눈여겨 관찰한다. 남자, 아내, 여동생 2명인데 방은 3개? 그렇게 승선하는 지인은 나머지 한개의 방에 길고 긴 나무 상자를 실고....평온하던 항해는 격랑을 만나면서 침몰위기에 빠지는데..... - 지인은 정녕 그 방법 밖에 없었을까?...깊고 차가운 바다속에서 영면하기를....
- 자신을 닭이라 믿는 환자에게 물과 모이만 주어 치료하는 진정 치료법..-_-;; 처음 읽는 포의 작품인데 이 단편집중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이다. 영화 [더 큐어]를 연상케 하는 미치광이 정신병원의 광기와 흥분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스토리와 분위기 그리고 반전까지(예상은 했지만)!! 분명 [더 큐어] 말고도 이 스토리라인으로 흘러가는 공포 영화를 본적이 있는것 같은데...흠... 10. 아몬틸라도 술통 포도주는 아몬틸라도 술통으로 빚은 와인이 최고지!!! - 뭔가 막 은유하는것 같긴 한데 뭘 말하는건지 모르겠다...-_-;;;
절름발이 광대와 난장이 병을 앓고 있는 소녀 광대는 왕의 괴롭힘과 학대를 참아내며 비루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나날이 왕의 학대의 강도는 심해져만 가고...소녀를 가차없이 대하는 것을 본 절름발이 개구리는 왕과 그의 간신들에게 한가지 제안을 하는데..... - 그리고 시작되는 광대의 불타는 피의 복수극이 잔혹하게 펼쳐진다.... 이중 4개의 단편은 동서추리문고판 [검은 고양이]로 읽었던 단편이고 나머지 7 단편은 이 단편집으로 처음 접하는 작품이다. 그가 겪었던 불행한 생애와 고난이 이런 기괴한 초현실의 작품세계를 형성했다니 참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어찌됐던 단명했지만 워낙 유명한 사람이고 당대까지 그의 초현실적 세계관을 이어가는 작가들이 있는 만큼 여전히 그의 광기는 문학에서 살아 숨쉬며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리라. 21세기 공포에 염증을 느낀다면 한번쯤 클래식한 원초적 공포를 접해보는것도 좋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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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스피리투스 / 공명 의 도서 제공으로 작성되었음을 알립니다.
감상 이 소설은 영어 단편소설의 창시자 또 셜록홈스이라는 작품에서의 스티븐 킹이라는 세계관에 영향을 주었고 한편의 비운한 1800년의 작가인 애드거 앨런 포의 대표적 작품입니다. 애드거 앨런 포는 살아가는 내내 약간의 시간을 제외하면 비운하면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였기에 그의 소설은 불안하면서 정착하지 못하는 또 독특한 서술적 묘사로 인해 작품성에 대한 호불호적 판단이 심합니다. 저는 영어단편소설을 보았지만 거기서의 불안의 미묘 ,불안의 인상 때문에 읽는내내 놀라움을 경치 못하면서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특히 인상이 깊었던 붉은 죽음이라는 챕터는 아직도 기억이 나면서 어떻게 하면 이러한 느낌과 함께 저는 이 소설은 공포류로 분류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표지부터 보게 되면 무슨 내용인지 왠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방황하는 모습에서 미묘한 감정과 함께 마음의 한쪽에서 불안감이 조성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애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접해보았어도 그렇게 못한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닥의 추천를 드릴 수 없지만 이거만은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었다. 여름의 폭염의 더위를 점심에 내쫓기 위해서는 에어컨이 약 24도로 유지되어 있는 곳에서 얼음물과 함께 이 책을 30분을 읽는 것이 효과적이었다라는 것을.... 평점 및 추천대상? 저는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고 싶습니다. 저는 애드거 앨런 포에 미쳐서 또는 최고의 불안감을 맛보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적극추천을 넘어 필독서가 아닐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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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의 이 단편집은 수록된 단편 중의 하나인 "The Tell-Tale Heart"를 타이틀로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독자들에게는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이나 어셔가의 몰락, 검은 고양이, 도둑맞은 편지 쪽이 더 귀에 익숙한 단편들인데요, 이 단편집을 표제로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 일러바치는 심장은 처음 읽었고, 짧지만 그 음침한 강렬함에 놀랐거든요. 검은 고양이랑 비슷하지만 좀 더 화자의 그 찢어질듯한 신경질적인 성격이 잘 묘사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원제도 참 재미있어요. tell-tale heart라니. 에드거 앨런 포는 대학, 대학원시절 모두 배운 작가입니다. 생각해보면 참 대단한 작가 같아요. 제가 대학교때 교수님께서는 애너밸-리의 해석과 분석을 과제로 내주셨고, 대학원때는 갈가마귀의 해석과 분석이 과제 중 하나였는데, 영문학이 전공은 아니지만 저는 이렇게 대학-대학교때 모두 배운 작가는 포 외에 셰익스피어밖에 없거든요. 이 사람의 천재성이나 작가만의 독특함은 정말 다른 작가가 따라갈 수가 없을 것 같아요. 19세기 작가이기에 책의 배경도 그러하긴 하지만, 21세기에 읽어도 작가가 의도한 그 음침하고 기괴한 세계관 속에서 독자가 전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얼마든지 추천해주고 싶은 단편집이었습니다. 역시 독자들이 편하게 읽기엔 포의 시 보다는 소설쪽이 발군이네요. 아참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하신 박미영 번역가님의 번역후기가 채널예스에 있더라구요. 여기 링크 놓고 갑니다. http://ch.yes24.com/Article/View/39453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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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은 처음 읽어본다. 보통 그의 소설은 '추리소설의 창시자', '공포소설의 완성자', '풍자소설의 대가' 등의 많은 평가와 찬양을 받는다고 한다. 그의 단편소설집을 읽어보니 왜 그가 이런 많은 수식어에 의해 표현이 되는지 알수 있을것 같았다. 이 책에 실린 11편의 단편을 읽어보니 정말 거의 모든 내용이 우울하면서 끔찍한 결말을 담고 있는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책에 실린 각 편의 소설의 내용보다 왜 작가가 이런 작품을 창작하게 되었는지 그의 인생관이 궁금했다. 보통 난 소설을 읽으면 작가의 세계관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소설의 작가의 생애를 찾아보면 어김없이 그런 내용의 소설이 작가의 삶이 투영되어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히려 소설을 읽으면 소설의 내용보다 그 작가의 생애를 찾아보는 걸 어쩌다가 더 즐겨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11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익히 제목만 들어서 알고 있었던 '어셔가의 몰락' 이나 '검은 고양이' 이 소설의 제목으로 쓰여진 '일러바치는 심장'등 읽으면서도 왜 이런 공포스런 소설을 썼는지 의구심이 많이 들었다. 재미있는건 이 단편 소설들의 시점이 자신이 소설에서 악당이 되기도 하고 직접 관찰자이기도 한 구도라는 점이다. 보통 관찰자의 시점에서 소설을 쓰는게 보통인데 '검은 고양이' 내용만 보더라도 주인공인 나 를 통해 직접 고양이를 죽이고 아내를 죽여서 벽에 숨기는 내용인데 읽으면서도 끔찍한 내용을 자신의 입장에서 쓴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러바치는 심장'에서도 내용은 비슷하다. '나'의 시점에서 노인을 죽이고 숨기고 결국은 죄책감에 못이겨 자백을 한다는 내용이다. 왜 저자는 이런 내용들의 소설을 썼을까? 에드거 앨런 포는 이름부터 그의 순탄하지 않았던 생애를 말해주고 있었다. 친아버지 성이었던 '포'와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자신을 길러 주시던 숙부 '앨런'의 성을 합쳐져 앨런 포의 성으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알콜중독으로 순탄했던 삶도 망가지고, 행복했던 결혼 생활도 아내의 죽음으로 다시 불행의 연속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나마 길지 않았던 10년 남짓의 결혼생활 중 지금까지 회자되는 많은 유명한 단편 소설을 창작했지만 41살의 나이에 술에 만취된 채 길에서 발견되어 다음날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서 코넌도일의 '셜록 홈즈',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 루팡' 등 많은 유명한 추리소설들의 효시로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얘기 한다고 한다. 무르익어가는 가을에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